[흥미돋][요약ㅇ]시계에 관심 없으면 이해하기 힘든 사진 한 장 (feat. 똑같은 세이코 아냐?)
작성시간26.10.22조회수12,664 목록 댓글 13출처:https://www.fmkorea.com/10454761963
0. 이 글을 쓰게 된 이유
코로나 시절 롤렉스를 비롯한 인기 시계들의 가격이 미친 듯이 오르면서,
시계값이 끝없이 올라갈 것 같던 시기가 있었음(사실 이건 지금도 그럼, 오메가 씨마가 1000이라니..).
그때 한동안 돌아다니던 사진이 바로 이 세이코 시계 6개짜리 짤임.
사실 시계에 관심 없는 사람 입장에서는 다 똑같이 생긴 시계인데 가격은 수십 배씩 차이 나니,
'이걸 왜 저 돈 주고 삼?', '그래봐야 30만 원짜리 스마트워치한테 따이는 거에 돈쓰는 ㅄ들'
같은 소리가 나올 만한 전형적인 짤이었음.
그때 이 사진을 보고 언젠가 한번 글을 써봐야겠다고 생각했는데,
어쩌다 보니 5년이나 지나서야 쓰게 됨.
개인적으로 오늘날의 고급 시계는 현대미술과도 비슷하다고 생각함.
왜 저런 방식으로 만들었는지, 어떤 기술이 들어갔고 어떤 역사와 의미가 있는지 설명을 들으면
가격 차이가 나는 이유는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음.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 가격에 모두가 납득하는 건 또 다른 문제임.
'그래 봐야 손목에 차는 스틸시계가 몇백? 몇천? 금이나 보석이 들어간 것도 아닌데?'
반응이 나오는 것도 당연하다고 생각함.
여하튼 당시 이 짤을 보면서 한번 써보고 싶었던 이야기를, 5년이나 지난 지금 갑자기 삘 받아서 써보는 똥글임.
1. 기계식 시계는 이미 쿼츠에 패배했음
1960년대에서 70년대부터 일본 시계회사들이 쿼츠 시계를 '싸게' 상용화하면서 사실상 기계식 시계는 기술 경쟁에서 패배했음.
정밀한 기계식 시계를 만드는데 온 힘을 기울였던 스위스 시계 입장에서는 아무리 노력을 기울여도 이길수 없는 상대가 나온것
(사실 스위스 시계 회사들도 다 같이 투자해서 정교한 시계 만든다는 명목으로 쿼츠 투자하긴했는데..
훨씬 싼값으로 일제회사들이 내놓거에 패배함 쿼츠는 그 특성상 차이점을 만들기 어렵기도 했고)
- 시계의 왕도 쿼츠 팔던 시절 -
멘탈 나가서 멘헤라 상태로 우리도 쿼츠 팔자~ 하면서 파텍도 롤렉스도 전부 쿼츠 달면서 춤추다가
겨우 정신차린 시계회사들이 내놓은 답은 간단함
- 쿼츠요? 우리는 애초부터 기계식만 팠습니다 -
시계 회사들은 기계식 시계를 실용재가 아닌 사치재, 특히 남성들을 위한 액세서리로 발전시켰음.
얼마나 정확한지보다는 얼마나 복잡하고 정교하게 만들었고, 거기에 얼마나 많은 노력을 들였는지를 강조하기 시작한 거고.
지금도 대부분의 고급 시계 브랜드들은 쿼츠를 저가형에 사용하거나 아예 취급하지 않음.
요즘은 시간을 보기 위한 수단으로는 쿼츠시계조차 필요가 없어졌음.
스마트폰도 있고 스마트워치도 생겼고 굳이 수백만 원씩 주고 전통적인 손목시계를 살 이유가 없는 세상이 되어버렸음
- 시계라고 꼭 정밀한 시간을 봐야할 필요가 있을까? -
결국 기본적으로 오늘날 고급 시계는 사치재임.
다이아몬드를 볼 때 크기나 투명도, 색상, 컷 등을 따져서 가격을 매기듯이 시계도 비슷함.
무브먼트가 얼마나 정교한지, 얼마나 독창적인지 (범용 안쓰고 자체 무브먼트를 쓰는지)
케이스나 다이얼 마감은 어떤지, 제작에 얼마나 많은 공을 들였는지 등 시계 업계에서 중요하게 생각하는 기준들이 있음.
결국 이건 시계 업계와 소비자들 사이의 일종의 암묵적인 약속이기도 함.
제조사는 더 좋은 무브먼트를 넣고 마감에 더 많은 공을 들이고, 소비자들은 그런 차이를 인정해서 더 비싼 돈을 지불하는 거지.
물론 업계 밖에서 보면 고작 그 정도 차이에 수백만 원씩 더 내는 게 이상하게 보일 수도 있음.
그렇지만 생각해보면 사치재라는 게 원래 그런거 잖슴 좋아하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그 차이가 꽤 중요한 거지.
아직까지 이런 시계를 사면서 무브먼트가 어떻고 마감이 어떻고 따지는 사람들은 시계 환자들이라고 보면 됨.
그리고 결국 시계회사들의 세일즈 대상도 이제는 시계 환자들만이 남은거고
2. 세이코도 이 공식을 그대로 따라갔음
쿼츠 파동의 주인공 세이코도 똑같았음. 기본적으로 쿼츠가 저가, 기계식이 고가 이렇게 보면 됨
거기에 각 무브먼트 끼리도 등급을 나눠놓았음. 쿼츠도 보급형부터 고급형까지 있고,
기계식도 4R, 6R 그리고 그세에 쓰는 9S같은 식으로 급이 나뉨
상위 무브먼트일수록 좀 더 높은 성능을 목표로 만들어졌다고 보면 됨.
무브먼트뿐 아니라 케이스 연마나 다이얼, 핸즈 마감에서도 차이가 있음.
같은 세이코라도 가격대가 올라갈수록 이런 부분에 좀 더 공을 들이고, 그만큼 가격도 올라감.
- 세이코와 그랜드 세이코 -
첫짤의 윗 시계 3개는 세이코, 그리고 아래쪽 3개는 그랜드세이코라는 브랜드 제품인데
세이코와 그랜드 세이코의 관계는 현대차와 제네시스, 일제니깐 토요타랑 렉서스 정도로 생각하면 편함.
세이코와 그랜드 세이코도 비슷함. 얼핏 보면 별 차이 없어 보이지만
그랜드 세이코는 케이스 연마부터 핸즈, 인덱스 가공까지 엄청나게 공을 들임.
무브먼트도 더 높은 기준으로 만들고 조정하고.
특히 그랜드 세이코는 실물로 보면 왜 얘네가 마감에 미쳤다는 소리를 듣는지 알 수 있음.
케이스는 물론이고 핸즈와 인덱스까지 거울처럼 연마해 놨는데,
인덱스 하나하나가 보석처럼 여러 면으로 각져 있어서 빛을 받는 각도에 따라 반짝이는 모습이 전부 다름.
손목을 조금만 움직여도 빛이 여기저기서 반사되면서 그냥 철로 만든 시계인데도 마치 보석을 박아놓은 것처럼 블링블링함.
이게 사진으로는 잘 표현이 안 되는데, 실제로 야외에서 햇빛을 받으면 정말 미친 듯이 빛남.
- 본인의 시계였었던 SBGM221, 지금은 방출함 -
3. 그럼 다시 이 사진을 분석해보자.
비교를 위해 최대한 광고 샷은 배제하고 손목에서 실제 사용자들이 찍은 이미지 중 크게 나온 사진들을 좀 추려봤음
1번 — 세이코 SGG715
사진은 적절한 손목샷을 못찾아서 고른 다이얼 색만 다른 SGG717
가장 기본적인 쿼츠 시계임. 기스에 강한 사파이어 글라스 + 100미터 방수까지 갖춘 실용적인 모델로,
저렴한 가격에 정확한 시간을 확인하는 데 중점을 둔 시계라고 보면 됨.
보면 알겠지만 요즘은 스틸도 연마제로 마감을 해서
밝고 빛나게 만든다던지 하는 기교를 부리는데 이건 그런게 없음, 브레이슬릿의 저세상 유격도 포인트
2번 — 세이코 SUR311P1
1번보다 비싼 모델이지만 스펙에서 큰 차이가 나는 건 아님. 얘는 1mm 정도 더 얇다는거 정도?
빛을 쬐인 부분의 반사정도를 보면 조금 더 마감(폴리싱, 브러싱)에 신경을 쓴게 보이긴 함.
하지만 여전히 유격은 저세상 간격
3번 — 세이코 SARX035
6R 오토매틱 무브먼트가 들어간 기계식 시계
당연하게도(?) 앞의 두 쿼츠 시계보다 정확도는 떨어짐.
빛나는 부분을 보면 알겠지만 외장 마감에도 좀 더 공을 들인 모델임.
브레이슬릿도 공들인 티가 나고 이정도면 세이코 이름 단 기본 시계 중에서는 신경 써준 편임
아, 이게 세이코 이름 단 시계중에 비싼 시계는 절대 아님,
세이코 이름 달고도 수백만원 대 시계들은 더 많음
어제 양조장네한테 스윕당하면서 시즌 끝난 오타니형의 시계이자
국내 시계인들 사이에서는 추노 마크 X로 더 유명한 프로스펙스 X 시리즈
다이버계의 왕....은 아니고 한 후작 정도 되는 다이버워치 62MAS
그리고 4번부터는 그랜드 세이코, 통칭 '그세'임.
4번 — 그랜드 세이코 SBGX261
그세의 엔트리급 시계라고 보면 됨.
그세치고는(?) 비교적 저렴한 가격에 특유의 외장 마감을 경험할 수 있는 모델임.
사실 그세 하면 이런 기본 검판보다는 눈송이 다이얼로 유명한 모델들이 더 많이 언급되긴 함.
쿼츠 모델 중에도 SBGX355라는 눈송이 모델이 있고.
우리나라 사람들은 그걸 더 선호하기도 함 흰 다이얼판에 파란색 초침이 포인트인데 진짜 이쁘긴 함
- 스노우 플레이크, 일명 눈송이. 사실 동일한 컨셉으로 오토매틱 모델, 스드모델이 다 있다. -
그래도 SBGX261은 별다른 기믹 없이 깔끔한 검판 디자인으로 꾸준히 인기가 있는 모델임.
무브먼트 역시 일반적인 쿼츠가 아니라 그세의 고급 9F 쿼츠가 들어감.
연오차 ±10초 수준으로 정확도도 상당히 높고,
케이스부터 핸즈, 인덱스까지 일반 세이코보다 훨씬 정교하게 마감되어 있음.
5번 — 그랜드 세이코 SBGR253
9S 오토매틱 무브먼트를 사용하는 기계식 시계임.
그세 특유의 외장 마감은 마음에 드는데,
'나는 쿼츠 말고 무조건 기계식이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입문용으로 볼 만한 모델임.
당연히 일반 세이코의 6R보다 높은 정밀도 기준으로 제작하고 조정한 무브먼트가 들어감.
앞서 2번과 3번의 차이처럼, 4번과 5번도 결국 쿼츠냐 기계식이냐에 따라 가격 차이가 크게 발생한다고 보면 됨.
물론 무브먼트 자체의 제작 비용이나 조정 과정에서도 차이가 있고.
6번 — 그랜드 세이코 SBGA285
사진에도 적혀 있지만, 얘는 스프링 드라이브라고
그랜드 세이코만의 독특한 무브먼트가 들어간 모델임.
일종의 기계식과 쿼츠의 하이브리드라고 생각하면 됨
그세의 기함급은 다 이걸로 통일임
일반적인 기계식 시계(오토매틱)처럼 손목의 움직임으로 태엽을 감고,
그 태엽의 힘으로 전기를 만들고(!)
그렇게 만든 자가 발전식 전기로 쿼츠회로를 작동시킴.
그냥 배터리 안쓰고 배터리 대신 기계식 발전장치를 넣어놨다고 보면 됨
이 전자회로가 시계의 속도를 제어하는 방식이라,
태엽으로 움직이는 시계인데도 월오차 ±15초 수준의 정확도를 갖췄음.
이건 세이코가 독자적으로 개발한 기술이고, 현재도 사실상 세이코만의 전유물이라고 할 수 있음.
그리고 이 무브먼트의 가장 유명한 특징이 바로 초침임.
일반 기계식 시계는 초침이 미세하게 끊기면서 움직이고,
쿼츠는 보통 1초씩 움직이는데, 스프링 드라이브는 초침이 정말 물 흐르듯이 부드럽게 움직임.
이 초침에 반해서 이걸 사는 사람도 있을정도
다만 워낙 독특한 구조다 보니 수리나 정비를 맡길 수 있는 곳이 제한적이고,
유지보수 비용도 부담이 될 수 있음.
또 그래봐야 쿼츠아니냐 사문난적이다 이런 사람도 있고
그래서 이 독특한 기술과 움직임을 좋아하는 사람도 있지만,
그냥 전통적인 기계식을 선호하고 이 시계를 선호하지 않는 사람들도 많음
개인적인 의견으로는 결국 스위스산이 아닌 일제, 그리고 그랜드 '세이코'라서
그런거이기도 한거 같은데..
4. 그래서 이 시계들이 저 돈을 주고 살 가치가 있냐?
그건 또 별개의 문제라고 생각함. 15만 원짜리나 900만 원짜리나 결국 시간 알려주는 건 똑같고,
심지어 정확도만 따지면 더 저렴한 쿼츠가 이기는 경우도 있으니까.
다만 시계 좋아하는 사람들은 그 안에 들어간 기술이나 마감,
역사 같은 것들에 가치를 두고 기꺼이 돈을 지불하는 거임.
(사실 비싸다고 욕하면서 삼)
개인적으로 이 짤도 그런 관점에서 봐줬으면 좋겠음.
그냥 똑같이 생긴 시계 6개가 아니라, 나름대로 저마다 다른 기술과 노력이 들어간 시계들이고
그걸 알아주는 사람들이 있다는 정도.
그래서 뭐? 결국 똑같이 생긴 세이코 6개 아님? 이라고 생각한다면 그것도 맞는 말임.
21년도였나? 그때 이짤 펨코에 올라왔을때 베스트댓글이 아마 비슷한 내용이었던거 같은데
'어차피 관심없는 사람들한테는 아무리 설명해줘봐야 못알아먹는다. 알아 먹고 싶어 하지도 않을거고'
약간 이런 투였던거 같음
맞음 사실 시계 관심 없는 사람한테는 그게 정상적인 반응일지도 모르겠음
세줄요약
시계를 알고 실제로 좀 화질 좋은걸로 보면 왜 급차이가 나는지 알 수 있다.
일반인(?) 머글(?) 들은 그래봐야 시계인데 왜 이가격차이인지는 알 수 없다
사실 시계인들도 가격 보고 욕하면서 산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