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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미돋]조선판 사랑과 전쟁, 효정옹주 이야기

작성자딸기맛 아메리카노|작성시간14.07.16|조회수6,100 목록 댓글 50

 

 

2011.6.20이후 적용 자세한사항은 공지확인하시라예

출처: 여성시대 딸기맛 아메리카노

 

(본 글은 위키백과, 네이버 블로그,

 <<조선 공주의 사생활>>, <<조선왕조실록>>, <<숨겨진 조선의 연애비화 48가지>>를 참조하였습니다.)

 

(사진은 본문과는 아무 관련이 없는 사진이야!ㅎㅎ)

 

 

 

안녕 여시들!!!ㅎㅎ

 

여시들이 정명공주 이야기를 정말 좋아해줘서 감동받었어ㅠㅠ

글쓰면서 사실 재미없을까봐 걱정했는데 ㅠㅠ흑흑

 

덕분에 힘나서 얼른 다음편 준비해왔당!!!!!!

이번편도 재밌게 읽어줘~~>_<

 

 

 

오늘 소개할 인물은 효정옹주(孝靜翁主)야.

 

 

 

 

 

효정옹주는 조선 제11대 임금인 중종과 숙원 이씨 사이에서 태어난 둘째딸이야!

동복 언니로 정순옹주가 있어.

사실 숙원 이씨는 여시들도 무척이나 잘 아는 인물이야 ㅋㅋㅋ

‘대장금’에서 나온 연생이의 모티브가 바로 숙원 이씨라는거!!ㅋㅋ

 

 

 

 

중종은 조선시대 임금 중에서도 부인이 많았던 왕이야.

 

제일 유명한 문정왕후를 포함해서 왕비가 3명이나 되고, 후궁들도 7명이나 된다능 ㅋㅋ

그중에서도 숙원 이씨는 명문가 출신도 아니었고, 자식이라고는 정순옹주와 효정옹주만을 낳고 일찍 죽어버림 ㅠㅠ

 

중종은 유독 자식들에 대한 사랑이 크고, 하가한 자식들에게 화려한 집을 많이 지어줘서

신하들에게 잔소리도 많이 들었다고 함 ㅋㅋㅋㅋ

 

 

그중에서 중종은 착한 딸 효정옹주를 아주 예뻐했음!!

하지만 정순옹주와 효정옹주 자매는 슬프게도... 행복한 결혼생활을 누리지 못했어 ㅠㅠ

 

부마는, 왕녀와 혼인하였으므로 첩을 둘 수 없음은 물론이고 부인이 먼저 죽더라도 재혼을 할 수 없었어!

그리고 당연히 관직생활도 금지되었지.

사실 부마들은 꽤나 명문가의 자제들인 경우가 많았어.

하지만 명망 있는 양반집 자제임에도 불구하고, 왕녀와 혼인했다는 이유로 많은 사회적 규제를 받았지.

 

 

게다가 옹주와 혼인한 부마는, 규제는 똑같이 받지만 혜택은 공주의 부마보다 훨씬 덜 받았음 ㅠㅠ

기록에서는 옹주의 집을 새로 짓는 규모가 공주의 집을 수리하는 수준이었다고 하니...

 

아마 부마들은 여러모로 억울한 마음도 없잖아 있었을 것 같아.

 

 

정순옹주는 10세에 여성위(礪城尉) 송인(宋寅)이라는 사람과 혼인을 했는데,

남편이 정말 한량 중에서도 한량이었음 ㅠㅠ

 

 몰래 첩을 두어 자식까지 낳질 않나, 낄데 안낄데 구분을 못하고 상중에도 잔치를 열고,

흉년으로 나라가 뒤숭숭한데도 잔치를 여는 등 온갖 사고는 다 치고 다님...........

그래도 딸 남편이라고;; 중종이 크게 벌하지 않고 봐줬다고 해 ㅋㅋ

 

근데 이사람은 효정옹주의 남편에 비하면 그나마 양반이야 ㅋㅋㅋㅋㅋㅋㅋㅋ

 

 

효정옹주는 순원위(淳原尉) 조의정(趙義貞)과 혼인하였다고 해.

그런데 효정옹주는 그리 미인이 아니었던데 반해, 효정옹주의 몸종인 풍가이가 정말 예뻤다고 함 ㅋㅋ

(하지만 이건 증거가 없기 때문에, 그냥 추측이라는 설도 있어!)

 

 

 

 

 

다른 여자나 기생을 데려다 첩으로 삼으면 쉽게 들통나겠지만

 

풍가이는 옹주의 몸종이었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숨기기가 쉬웠어 ㅋㅋㅋ

 그래서 효정옹주의 남편인 조의정은 풍가이를 애첩으로 삼음!!!!!!!!!!!!!!!!!!!!!!!!!!!!!!

 

 

게다가 조의정은 풍가이를 효정옹주보다도 훨씬 총애하여,

 

옹주를 몸종의 처소와도 같은 허름한 곳에 머물도록 하고 오히려 풍가이를 옹주의 처소에 살도록 했어;;;;;;;;;;;;;;;;;;;

 

 

  

 

 뭐이새끼야!?!?!!?!?!?! 부마가 감히 바람을 피워?!?!?!?!?!!

 

 

 

어린 나이에 어미를 잃어 애지중지 키웠던 착한 딸이 시집가서 이런 대접이나 받고 있으니 ㅠㅠㅠㅠㅠ

 빡친 중종은 조의정을 불러들여 자주 꾸짖었지만, 이러한 행태는 전혀 나아지지 않았어.

.

 

 

 풍가이를 잡아오라는 명이 떨어지면 집안에 숨기기도 하고, 

왕이 풍가이를 추방하라고 하면, 몰래 다른 여자로 바꿔치기해서 보냄 ㅋㅋㅋㅋㅋ

그러고는 오히려 효정옹주를 시켜 중종을 말리도록 했어;;;;;;;;

 

그러나 착한 옹주는 아버지 중종에게 가서, 오히려 남편과 풍가이를 두둔함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중종은 남편을 탓하지 않는 딸이 답답해

 

‘부녀자가 되어 투기도 할 줄 모르면 여자가 아니다’ 며 나무라기도 했어 ㅠㅠㅠㅠㅠㅠㅠ

 

 

 

결국, 중종은 풍가이를 내수사로 잡아들여 죄를 다스리고,

조의정은 외방(外方, 한양 바깥지역)으로 내쳐 반성하도록 명을 내림.

 

 

그런데 효정옹주가 임신을 하게 된거야!

그래서 중종은 남편 조의정을 외방에서 다시 데려와 함께 살도록 해줬어.

 

한편, 동고동락했던 몸종 풍가이가 추방되어 고생한다는 소릴 듣고는

효정옹주는 중종에게 부탁해 풍가이를 다시 데려오게 돼 ㅋㅋㅋㅋㅋㅋㅋ

(이분 최소 보살......ㅎ)

 

딸이 걱정된 중종은 효정옹주의 출산달에 의녀를 보내주겠다고 해.

근데 정작 남편인 조의정은 일언반구도 없음 ㅋㅋㅋㅋㅋㅋㅋ

그러다가 효정옹주가 출산 도중 위험하게 되어서야 의녀를 청하고는

의녀가 오기도 전에, 옹주가 죽었다고 알리면서

궁에서 보낸 의원과 의녀를 집안에 들여보내주지도 않았다고 해 ㅋㅋ.......

 

 

결국 효정옹주는 옹주는 1544년, 25세의 나이에 아이를 낳고 나흘만에 죽어ㅠㅠ

 

 

 

 

 

그런데, 효정옹주가 출산하고 죽은지 3개월 후에 풍가이도 아이를 낳음;;;

효정옹주가 자비를 베풀어 데려와줬는데, 다시 조의정과 간통을 한거지 ㅋㅋㅋㅋㅋㅋㅋㅋㅋ

 

 

옹주의 죽음으로 진노한 중종은 조의정과 풍가이를 의금부에 가두고,

 문초를 가하면서 옹주가 죽게 된 이유를 조사하기 시작해.

 

그러면서 조의정이 옹주에게 행했던 모든 잘못이 낱낱이 드러나게 돼!

 

조의정은 옹주와의 정이 돈독했다고 주장했으나,

중종은 조의정이 옹주를 박대한 일, 궁에서 데리고 온 보모와 시녀를 내보낸 일,

그리고 옹주의 임종에 앞서 외할머니를 불러달라는 부탁을 들어주지 않은 일 등을 꾸짖음.

그러면서

‘나는 나이 어린 부마의 광패한 소치라 생각하고, 용서하여 죄를 다스리지 않았는데 오히려 내심 기뻐하며 옹주를 더더욱 박대하였다. 조의정이 옹주가 죽는다면 이 첩을 아내로 맞이하겠다는 계획을 세운 지가 이미 오래됐다’ 진노했어.

 

 

 

 

결국 부마였던 조의정은 유배를 가게 되었고, 풍가이는 장 1백대를 맞고 유배형에 처해졌어.

 

 

그런데 효정옹주의 이모이자, 숙원 이씨의 여동생이었던 상궁 은대(銀臺)가 종들을 시켜 풍가이를 잡아 가두고

곤장 맞은 자리를 더 때려서 죽여버린거임!!!!!!!!!!!!!!!!!

 

사실 은대라는 상궁은... 이렇게 풍가이를 죽였을 뿐만 아니라

 

앞서 말했던 효정옹주의 언니인 정순옹주 남편의 첩과 그 아이까지 죽여버린 사람이야 ㅋㅋㅋㅋㅋ....

조정의 신하들은 이러한 은대의 잘못을 고하며, 중종에게 은대를 벌하여야 한다고 했어!!

그런데 이시대의 진정한 딸바보 중종은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절대 그렇게 못한다고 고집을 피움 ㅠㅠㅠㅠ

그러면서 딸 효정옹주가 겪었던 온갖 마음고생들을 구구절절하게 신하들 앞에서 얘기함..

 

 

 

흑.........내 딸이 얼마나 구박을 받고 살았는지 니네가 알아?ㅠㅠㅠㅠㅠㅠㅠㅠ

 

 

 

조선왕조실록 전체에서 봐도, 왕이 이렇게 개인적 감정을 드러낸 부분은 거의 없다고 해.

 

실제로 조선왕조실록 중종39년 기록을 보면, 신하들이 부마 조의정에 대해 처벌을 중지하기를 부탁할 때도

 중종은 한결같이 그를 벌주어야 한다고 강력하게 주장함 ㅋㅋㅋ

 

 

 그렇기 때문에 어쩌면 중종은 자기 대신 딸의 복수를 한 은대를 벌하고 싶지 않았던 걸로 보여!

그래서 한편으론 옹주의 이모인 은대가 조카 대신 앙갚음을 했다는 설과 함께,

중종이 은대를 시켜 복수를 했다는 설도 있어.

 

그러나 결국 조정 대신들의 압박에 못 이겨, 중종은 은대를 대구로 귀양보내는 선에서 일을 마무리지어.

 

이후, 중종이 죽고 문정왕후의 아들인 명종이 즉위하게 돼.

그런데 명종 2년, 대왕 대비가

 

전 상궁 은대가 먼 곳에 귀양가 있다. 나인이 귀양간 일은 조종조에 없었던 일다. 중종께서 처음에는 죄주지 않으려고 하였지만 대간이 여러 날 두고 복합(伏閤)하므로 귀양보낼 것을 명한 것이다. 그간에 사면령이 여러번 있었으니 놓아 보내도록 하라. 은대를 풀어줌 ㅋㅋㅋㅋㅋㅋㅋㅋㅋ

 

한낱 상궁인 은대를 임금인 중종이 보호하려 했고,

결국 전례없이 귀양까지 간 은대를 대왕 대비까지 나서서 사면시켜 준 건

 아마도 망나니같은 남편에게 시집가 평생을 회한 속에 살아간 옹주를 안쓰럽게 여겨서가 아니었을까.....?

 

 

왕의 딸이었지만, 세력 없는 어머니 밑에서 태어나 시집가서도 남편의 박대를 받으며 산 효정옹주...

 

 

 

 조의정과 풍가이, 그리고 효정옹주의 이야기는 조선판 사랑과 전쟁이라고 불릴 만큼 가히 충격적인 사건인것 같아ㅋㅋㅋ

 

결국 효정옹주는 맘고생만 하다 출산 중에 세상을 떠났지만,

 

자신을 진정으로 사랑했던 아버지 덕분에 조금이나마 한이 풀렸을것 같아!ㅎㅎ

 

 

 

이번에 내가 준비한 내용은 여기까지야!

내 글을 읽어준 여시들 모두 너무너무 고마워♡♡♡♡♡♡♡

 

앞으로도 흥미로운 여인들 이야기로 찾아올게~^0^

문제시 둥글게 둥글게 알려주세요!

재빠르게 수정할게!!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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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댓글 리스트
  • 작성자안데니여자친구 | 작성시간 14.07.17 이런거 넘 좋다능 존잼이야!!!!!
  • 작성자너를그려봄 | 작성시간 14.07.17 여시 진짜 금손ㅠㅠㅠ잘보고가~
  • 작성자안구건조증ㅗ | 작성시간 14.07.17 잼따..ㅠㅠ 은대 사이다!!ㅠㅠㅠ
  • 작성자헤유니 | 작성시간 14.07.18 요즘같으면 장인눈이 누서워서 못햇을 일을!! 재밋게 읽었어요 감사합니당!!
  • 작성자루이 강 | 작성시간 14.08.03 존나개빡쳐슬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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