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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미돋]할머니의 사랑까지 독차지했던, 수빈박씨와 숙선옹주 이야기

작성자딸기맛 아메리카노|작성시간14.07.20|조회수6,643 목록 댓글 36

 

 

2011.6.20이후 적용 자세한사항은 공지확인하시라예

출처: 여성시대 딸기맛 아메리카노

 

 

제 1편: 가장 불행한 공주였으나 행복했던 여인, 정명공주 이야기

 http://cafe.daum.net/subdued20club/ReHf/716760

 

제 2편: 조선판 사랑과 전쟁, 효정옹주 이야기

http://cafe.daum.net/subdued20club/ReHf/719003

 

 

 

(본 글은 위키백과, <<조선왕조실록>>, <<음식잡학사전>>, <<책벌레들 조선을 만들다>>, 네이버 등을 참조하였습니다.)

 

(이 글의 사진들은 실제 내용과는 연관없는 사진이야!ㅎㅎ)

 

 

안녕 여시들!!

 

정명공주, 효정옹주에 이어서 이번에도 옹주 이야기로 돌아왔어!!ㅎㅎ

딱히 의도한건 아닌데 어째 연속으로 조선시대 왕녀들 이야기가 되어버렸넹?ㅎㅎㅎ

 

아 그리구 이번 편에는 옹주의 어머니인 후궁 이야기도 같이 넣어봤어!

이번편도 재미있게 봐줘^0^~!!

 

 

이번 글에서 소개할 인물은 숙선옹주(淑善翁主)야!!!!

숙선옹주는 조선의 제 22대 임금 정조와 수빈 박씨 사이에서 태어난 딸이며, 순조의 여동생이야.

 

 

 

 

정조는 조선의 왕들 중에서도 정말 자식복이 없는 왕이었어.

의빈 성씨가 낳은 문효세자를 비롯해서 거의 모든 자식들이 어릴때 죽었고,

살아남은 자식이라곤 제일 늦게 입궁한 수빈 박씨 소생의 순조와 숙선옹주밖에 없었다능ㅠㅠ

 

어린 자식들을 여러 명 잃고, 42세의 나이에 딸을 본 정조는 숙선옹주를 정말 예뻐했다고 해!

 

그리고 정조의 할머니이자, 숙선옹주의 증조할머니(?)뻘 되는 정순왕후 또한 숙선옹주를 아주 예뻐했던 인물 중 하나야.

 

여기서 잠깐!!!!!!!! 그럼 정순왕후는 왜 숙선옹주를 그리도 예뻐했을까??

 

정조 재위 당시, 궁중 여인들의 위계순서는 정말 복잡했어.

영조의 계비인 정순왕후, 정조의 생모인 혜경궁(혜빈) 홍씨, 정조의 정비인 효의왕후까지!

 

당시 이 궁중 여인들의 대립구도는 정순왕후 vs 혜경궁, 효의왕후였음!

 

 

쨉쨉?

 

 

 

 

그런데 여기에 왕의 유일한 후계자를 낳은 여인인 수빈 박씨가 더해진거지! 

 

 

 

그래서 정순왕후는 수빈 박씨를 자신의 편으로 끌어들이기 위해 정말 많은 애를 썼다고 해 ㅋㅋㅋㅋㅋㅋ

 

 

사실 수빈 박씨는, 정조의 후계자를 낳기 위해 간택된 후궁이었어.

여시들이 잘 아는 장희빈같이 궁녀에서부터 차근차근 빈의 위치까지 올라간 경우가 아니라능 ㅋㅋ

 

양반집에서 간택되었고, 후계자를 낳기 위해 처음부터 빈의 첩지를 받고 입궐했어!

 

전하는 이야기에 따르면, 수빈의 어머니가 그녀를 잉태했을때 꿈에서 한 노인이 큰 구슬을 하나 바쳤다고 해.

그런데 그 구슬의 광채가 온 집안을 가득 채웠다는거야!

 

 

또, 수빈이 어렸을때  커다란 호랑이가 집안으로 달려들어온 일이 있었어.

함께 있던 두 언니들은 놀라 넘어지면서 울음을 터뜨렸지만, 수빈은 어린아이답지 않게 차분하게 방안으로 들어갔대.

 

 

그래서 사람들은 수빈 박씨가 범상치 않다는 것을 알고, 크게 될 아이라고 생각했다고 해 ㅎㅎ

 

어쨌든 이렇게 범상치 않던 아이, 수빈 박씨는 후궁이 되어서 왕의 아들을 낳게 되지!

 

간택 후궁인 만큼 명문가 출신이자 다음 왕의 어머니임에도 불구하고, 수빈 박씨는 무척이나 예의바르고 검소했어.

 

유명한 일화로는, 궁녀가 옷을 짓고 남은 천조각을 버리자 그것을 크게 꾸짖었다는 것과,

그녀의 아들이 세자로 책봉되자 아첨하는 무리들이 뇌물을 바치자

수빈 박씨가 의금부에 이를 알려 줄줄이 의금부로 끌려갔다는 이야기가 있음 ㅋㅋㅋㅋㅋ

 

수빈 박씨는 자신이 왕자를 낳았다고 하여 왕비인 효의왕후를 절대로 업신여기지 않았고,

 

 혜경궁 홍씨는 물론 효의왕후도 아주 공경했다고 해.

 

그만큼 왕실의 웃어른인 정순왕후(남편의 할머니이니 시할머니뻘?!)도 극진히 모셨어.

그래서 정순왕후는 수빈 박씨를 아주 예뻐해서 ‘수빈 저하’라고 부르라고 시키기도 했대 ㅋㅋ

 

(원래 ‘저하’는 세자에게만 붙이는 칭호였어! 정순왕후가 얼마나 수빈을 예뻐했는지 알겠지?ㅋㅋㅋ)

 

 

 

저기...... 너 내편 안할래.....? 내가 널 이만큼이나 조화해...ㅎㅎㅎㅎ

 

 

 

정순왕후는 수빈의 딸인 숙선옹주 또한 손자들 중 제일 총애해서,

신하들에게 공주보다는 낮고, 옹주보다는 높은 작호를 찾으라고 시켜서 숙선옹주에게 붙여주려고도 했어 ㅋㅋㅋ

 

 

이렇게 정순왕후는 예의바르고 공손한 수빈을 매우 총애했지만,

 

결국 수빈은 끝까지 정순왕후의 제안(?)을 거절하고 혜경궁, 효의왕후의 편에 섰다는거ㅋㅋㅋㅋ

 

 

 

 

한편, 수빈 박씨의 딸로서 왕실에서 총애를 독차지했던 수빈의 딸 숙선옹주는!

동복 오빠인 순조와도 매우 사이가 좋았어.

 

 

 

그래서 순조는 동생의 혼인을 맞아  쌀 1백 석, 무명 10동(同), 포(布) 5동, 돈 3천 냥을 내렸다고도 해.

(참고로 3천냥은 현재 화폐로 약 6천만원ㅋㅋㅋㅋㅋㅋ)

그리고는 이는 숙선옹주에 한한 일이니 전례로 삼지 말라고 하교했다고 함 ㅋㅋㅋㅋㅋ

 

또한, 얼마나 우애가 좋았던지 신하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시집간 여동생 집에 놀러가기도 했대! ㅋㅋㅋ

 

 

숙선옹주는 1804년, 영명위(永明尉) 홍현주(洪顯周)와 혼인하게 돼.

 

 

숙선옹주의 남편 홍현주는 할아버지가 혜경궁 홍씨의 6촌 오빠였기 때문에,

상당한 명문가의 자제였어!ㅎㅎ

 

또한  정명공주의 후손이자, 매우 실력있는 선비였어.

생전 110수의 차에 관한 시(茶詩)를 남겼을 정도로 차 애호가였기도 해.

 

 

 

부창부수라고, 숙선옹주 또한 문집과 많은 한시들을 남겼을 정도로

 왕실 여인들 중에서 가장 활발한 문예활동을 한 여인이야!

 

특히 이 시는 여인답지 않게 남성적인 멋과 정취를 나타낸다고 평가받는 작품이야 ㅎㅎ

 

 

逢隱者(봉은자)

淸風入羅袖(청풍입나수) 맑은 바람은 소매자락에 들어오고

身隨白雲去(신수백운거) 몸은 흰구름 따라가네

啼鳥無定樹(제조무정수) 우는 새는 정한 나무가 없고

流水向何處(유수향하처) 흐르는 물은 어느 곳으로 가는가

 

 

정말 멋있지 않아?ㅋㅋㅋ

 

그리고 숙선옹주는 깍두기의 시초로도 유명해!

홍선표의 저서 <<조선요리학>>에 따르면,

‘정조의 사위인 홍현주의 부인이 임금에게 무를 무김치를 작게 송송 썰어 올린 음식을 만들어 올렸는데, 아버지인 정조가 크게 기뻐하며 칭찬했다’ 고 소개하고 있어. 

 

바로 이 음식이 깍두기의 시초가 되었다는 얘기지.

 

(그런데 이 책에는 정확한 근거자료가 없기 때문에 숙선옹주가 개발한 음식이 아니라,

이전에 민간에서 먹고 있었던 음식이거나

옹주가 누군가의 도움을 얻어 만들었다는 얘기도 있어!)

 

 

 

마지막으로 숙선옹주와 부마 홍현주 사이의 흥미로운 야사 하나를 소개하고 끝낼게!ㅋㅋㅋㅋ

(근데 이건 정말 야사일 뿐이니까 재미로만 보기!ㅎㅎㅎㅎ)

 

 

 

((((((((((약간 숭함주의))))))))))))

 

 

정조의 하나뿐인 딸 숙선옹주는,

 

하문(下門=膣口)이 열리지 않았다는 치명적인 신체적 결함이 있었음.

정조는 이에 엄청난 고민을 했지만, 이를 숨기고 명문가의 자제 홍현주를 부마로 간택하게 됨.

 

문장실력도 뛰어났던 그는 높은 벼슬을 한 형을 따라 관직생활을 하고 싶었지만,

부마가 된 탓에 관직이 금지되었으니 좀 화도 났다고 함 ㅋㅋㅋㅋㅋㅋㅋ

 

그런데다가......하필이면 무슨일인지 혼례의 첫날밤도 치르지 못한거야!

그리고 옹주의 몸상태를 핑계로 차일피일 합방은 미뤄지기만 함...........ㅎ

 

자신을 무시한다는 느낌에 골이 났던 홍현주는,

어느날 밤에 늙은 궁녀가 막아서는것을 뿌리치고는 아내의 방에 몰래 들어감ㅋㅋㅋㅋ

 

 

그러다가  마침내....  아내의 하문(下門)이 닫혔다는 사실을 알게 됨 ㅜㅜㅜㅜㅜㅜ

옹주는 마침내 비밀이 들켰다는 사실에 절망에 빠짐......ㅠㅠ

 

그런데 그때 홍현주가 작은 칼을 들고 들어와 손수 아내의 하문(下門)을 수술해 주었다고 해 ㅋㅋㅋㅋㅋ

그리하여 옹주의 병은 고쳐졌고 둘은 합방하여 아들 하나를 낳았다는 해피엔딩~ ㅇㅅㅇ)/

 

 

!!!!!!!!!!!!!!!!!!!!!

 

 

 

 

이번에 내가 준비한 내용은 여기까지야!!!!ㅋㅋㅋㅋ

이번편은 굉장히 소소한것 같아 부끄럽다......★

그래도 여시들이 재밌게 읽었다면 난 만족한다능~~~>_<

담편에도 흥미로운 궁중 여인들 이야기로 다시 찾아올게!!!

안녕♡♡♡♡♡♡♡♡♡♡♡♡

 

문제시 둥글게 둥글게 댓글로 알려주세요!!

 

재빠르게 수정하겠습니다! ㅎㅎ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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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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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이태일(900924) | 작성시간 14.07.21 흥돋!!!!!!!!여시야 고마워>_<
  • 삭제된 댓글입니다.
  • 답댓글 작성자딸기맛 아메리카노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14.07.21 혼례 당시 숙선옹주는 숙선옹주는 12세, 부마 홍현주는 15세였어!ㅋㅋ 아무래도 옹주가 어리긴 한데 보통 조선시대 왕녀들은 거의 이쯤에 혼인하니깐 뭐...ㅎㅎ 지금 나이로 치면 십대 중후반쯤 아닐까?ㅋㅋㅋ
  • 답댓글 작성자딸기맛 아메리카노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14.07.21 경수야 넌꼭행복해야돼 엇..... 나도 찾아보니까 둘이 생년은 같은데 가례일자가 1804년, 1807년으로 다르게 나온다.. 뭐지...?;;;;ㅠㅠㅠ 이건 내가 관련 책을 더 찾아보도록 할게!!ㅎㅎ
    웅웅 보통 왕녀들은 진짜 빨리 결혼하더라구ㅋㅋㅋ 10세에 혼인한 옹주도 있었음...!!ㅋㅋㅋ
  • 답댓글 작성자딸기맛 아메리카노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14.07.21 경수야 넌꼭행복해야돼 여시얌 내가 조선왕조실록을 찾아봤는데, 순조 4년(1804년) 4월 9일 기록에 숙선옹주의 도위를 홍현주로 정하였고, 영명위라는 위호도 내렸대! 이때 가례청 설치도 명령했구:) 네이버에는 홍현주가 1807년에 혼인했다고 되어있는데 아마 오타난것 같아!!ㅎㅎ 조선왕조실록의 기록엔 홍현주와 숙선옹주는 동갑이고 둘다 12세에 혼인을 한게 맞대!!ㅎㅎ 결국 여시 생각대로 둘다 열두살이었엌ㅋㅋㅋㅋㅋ 참...숙선옹주랑 홍현주.. 얘네 빠르다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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