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6.20이후 적용 자세한사항은 공지확인하시라예
출처: 여성시대 반포자이
1편: 가장 불행한 공주였으나 행복했던 여인, 정명공주 이야기
http://cafe.daum.net/subdued20club/ReHf/938569
2편: 조선판 사랑과 전쟁, 효정옹주 이야기
http://cafe.daum.net/subdued20club/ReHf/938705
3편: 시할머니와 증조할머니의 사랑까지 독차지한 수빈 박씨와 숙선옹주 이야기
http://cafe.daum.net/subdued20club/ReHf/939359
4편: 기생의 남자 (1) <조선 3대 기생 홍랑의 목숨 바쳐 지킨 사랑 이야기>
http://cafe.daum.net/subdued20club/ReHf/942034
(본 글은 <조선왕조실록>, <기생, 작품으로 말하다>, <조선 기생 이야기>, 네이버, 한국학중앙연구원, 德田 장 봉 혁 님의 네이버 오픈백과 등을 참고하였습니다.)
안녕 여시들!!!ㅋㅋ 여시들이 너무 오매불망 기다릴까봐 빨리 글 쪄서 돌아왔어!ㅋㅋㅋㅋㅋ
기생의 남자 2편, 조선 3대 기생 홍랑과 고죽 최경창의 사랑 이야기 지금 시작합니다!
돌아가신 명종 왕비의 국상기간에 기생 홍랑과 애정을 나누었다 하여 파직당한 최경창과,
감히 관기의 신분으로 근무지를 벗어났으며, 함경도 사람에게는 통행이 허락되지 않은 한양에 마음대로 출입했다는 이유로 한양에서 추방된 홍랑.
홍랑과 최경창은 세 번째 이별을 겪게 돼.
한양을 떠나는 홍랑에게, 최경창은 ‘송별(送別)’이라는 시를 지어주며 사랑하는 연인을 떠나보내.
옥같은 뺨에 두 줄기 눈물흘리며 한양을 떠나는데,
새벽 꾀꼬리 한없이 우는 것은 이별의 정 때문이네.
비단적삼에 명마를 타고 하관 밖에서
풀빛 아스라이 홀로 가는 것을 전송하네.
이렇게 헤어진 둘은 몇 년 동안 서로 만나지 못했어.
기약 할 수 없는 만남을 기다리고 기다리며, 홍랑은 최경창이 보고 싶을 때마다 그가 지었던 시, 그리고 자신에게 지어줬던 시들을 보면서 그리움을 달래.
그런데 몇 년 후, 기적적으로 최경창이 함경도 종성이라는 지역의 부사로 발령받게 돼!!!!!!!!!!!!!!!!!!!!!!!!
아씨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세 번이나 깨졌는데 다시 만났어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여러분 이정도면 천생연분 아니에여?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기적적으로 다시 만난
홍랑과
최경창은
관사 곁에 신방을 차리고 함께 살게 돼!ㅋㅋㅋㅋ
가장 애틋할 때 헤어졌다가 몇 년만에 만났으니, 이때야말로 둘의 애정이 가장 불타올랐을 것 같음 ㅎㅎㅎㅎㅎㅎㅎ
그런데 최경창의 삭탈관직 되었다가 종상부사로 승진한 것을 시기하던 반대파들은
최경창을 모함했고, 그는 종성 부사로 간 지 일 년 만에 성균관 직강으로 강등당하여
또다시 홍랑과 헤어지게 돼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평생을 정쟁에 휘말려 여러 번 벼슬이 삭탈되었다가 강등당하는 고통을 겪은 최경창은,
이런 상황이 반복되면서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게 돼.
게다가 전편에서 언급했듯이, 최경창은 유난히 몸이 약한 선비였어.
최경창은 이러한 정신적 고통에 시달린 탓인지, 다시 상경하는 길에 머물게 된 객관에서 객사(客死)하고 말아ㅠㅠㅠㅠㅠㅠㅠ
또다시 기약 없이 헤어진 이별이었지만, 살아 있으면 언젠가 또다시 만날 수 있으리라는 희망을 잃은 홍랑은 오열하며 절망해..ㅠㅠㅠㅠㅠㅠ
하나밖에 없는 연인을 잃은 홍랑은 사무치는 그리움과 애끊는 사랑에, 객사한 최경창의 영구 행렬을 따라서 한양까지 가게 돼.
하지만 홍랑은 천한 관기의 신분이었고, 그러한 신분으로 명망 높은 가문의 장례식에 참석하는건 불가능한 일이었어.
목숨까지 걸 만큼 사랑한 남자였지만, 정작 그의 마지막 가는 길조차 바라볼 수 없었던 홍랑.
애절하게 최경창을 추모하던 그녀는, 아무리 노력해도 그와 나누었던 사랑을 잊을 수가 없었어.
결국 홍랑은 해주 최씨 선영에 묻힌 최경창의 무덤에 머리를 풀고 소복차림으로 나타나.
홍랑은 무덤 옆에 조그만 묘막을 짓고, 아침저녁으로 무덤을 돌보며 음식을 지어 올리며 시묘살이를 해.
당대 최고의 기생으로 불리며, 아름다운 용모와 재주로 칭찬을 받던 기생 홍랑은 마음만 먹으면 누릴 수 있는 화려한 생활을 모두 거절하고 오로지 최경창의 무덤만 지켰어.
그러나 속세를 벗어나 오로지 연인의 무덤만 돌보며 살겠다는 홍랑의 소원은 곧 위험에 부딪치게 돼. 젊고 아름다운 여자가 홀로 무덤가를 지키며 살고 있다는 소문이 퍼지면서 홍랑에게 흑심을 품은 남자들이 속속 생겨나기 시작한거야.
날이 갈수록 점점 위험해지는 상황에, 홍랑은 마침내 중대한 결심을 내려.
바로 자신의 아름다운 외모를 스스로 없애버리기로 한 거야.
홍랑은 뜨거운 석탄을 삼켜 자신의 아름다운 목소리를 없애고,
뜨거운 석탄으로 얼굴을 지져서 천하절색이던 외모를 엉망으로 만들어버려.
홍랑의 눈부신 외모와 목소리가 사라지자, 그녀를 눈독들이던 사내들의 마수는 곧 사라졌고 홍랑은 안전하고 평화롭게 최경창의 무덤을 지킬 수 있었어.
언제까지나 최경창의 무덤을 지키면서, 죽는 날까지 그의 옆에서 함께하고자 하던 홍랑이었지만 역시 하늘은 무심하게도 그녀의 애원을 들어주지 않았어.
홍랑이 최경창의 무덤을 지킨 지 9년이 되던 해, 임진왜란이 발발하게 돼.
모두들 피란을 갔지만, 홍랑은 사랑하는 최경창을 두고 떠날 수 없어 그의 무덤 곁에서 생을 마감하려고 했어.
하지만 살아있을 당시 최고로 칭송받던 홍랑의 연인 최경창은
쓸쓸하게 변방에서 객사했으므로, 그의 아름다운 시들과 문장을 기억하고 간직하던 자는 아무도 없었어.
오로지 최경창과 사랑을 속삭이고 마음을 나누었던 연인, 홍랑만 그를 기억했지.
홍랑은 최경창이 썼던 아름다운 시들을 많이 간직하고 있었어.
홍랑은 왜군들의 손에 죽는 것은 전혀 두렵지 않았지만,
연인의 아름답고 훌륭한 작품들이 이름을 남기지 못하고 스러져 가는 것은 견딜 수가 없었어.
결국 홍랑은 최경창의 문장과 글을 지키기 위해, 눈물을 머금고 9년간 한시도 떠나지 않았던 연인의 무덤을 떠나.
그리고 임진왜란 동안 홍랑은 외로이 전국을 떠돌며 최경창의 작품들을 품에 넣고 지켰어.
홍랑은 오로지 최경창의 삶과도 같았던 글을 지키기 위해, 아는 사람, 도와주는 사람 하나 없이 혈혈단신으로 여인의 몸으로 길고 긴 7년의 전쟁을 견뎌내.
끝나지 않을 것만 같았던 전쟁, 후대에 정묘, 병자호란과 함께 조선의 운명을 바꾸어 놓은 전쟁이라고 평가되는 임진왜란은 발발 7년 후인 1598년에 막을 내려.
정처없이 전쟁을 피해 떠돌던 홍랑도, 최경창의 무덤이 있는 곳으로 돌아오게 돼.
그녀는 최경창의 가문인 해주 최씨 문중을 찾아가, 참혹한 전쟁동안 소중히 지켜왔던 연인의 글들을 고스란히 전해줘.
전쟁으로 최경창의 작품들이 모두 사라졌을거라고 생각했던 문중은
홍랑이 전해 준 글들에 매우 기뻐하지.
그리고 해주 최씨 문중은 홍랑이 전해준 최경창의 글들을 모아,
그의 호를 붙인 ‘고죽집(孤竹集)’이라는 문집을 만들어 후대에 간직할 수 있게 돼.
그리고 이 고죽집 안에, 최경창과 홍랑이 나누었던 사랑 시들도 전해지고 있어.
저번 화에서 소개했던, 홍랑이 최경창에게 써 주었던 ‘버들가지를 꺾어 보내노니-’ 이 시도 원래 한글로 쓴 시였지만,
최경창이 한자로 번역해서 남긴 번방곡(飜方曲)이라는 이름으로 고죽집에 남아 있다고 해.
(아마 최경창은 연인이 쓴 아름다운 시를 오래오래 남기고 싶었던 마음에서 한문 시로 번역하게 된 것 같아ㅎㅎ)
홍랑은 목숨보다 더 사랑했던 연인, 최경창의 훌륭한 글들을 지키겠다는 다짐을 이루었으니
더 이상 바랄 것도, 원하는 것도 없다고 생각해.
결국 그녀는 자신의 모든 것이었던 사랑하는 최경창의 무덤 곁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어.
최경창의 가문인 해주 최씨 문중은,
최경창의 훌륭한 작품들을 상하지 않게 지켜서 문중에 전해준 홍랑에게 매우 감사했으며
또한 오로지 최경창 하나만을 위해 목숨까지 걸었던 그녀의 사랑에 매우 감동을 받아.
그래서 문중은 비록 기생이기는 했으나, 정절과 사랑을 지킨 그녀를 최경창의 무덤 발치에 장사지내고,
무덤 앞에는 ‘시인홍랑지묘’라는 비석을 세워 그녀의 일생을 적은 비문을 세워주게 돼.
현재 경기 파주시 교하면에 남아있는 고죽 최경창과, 그의 불멸의 연인이었던 홍랑의 묘의 모습이야.
한시도 마음 놓고 살 수 없었던 선비 고죽 최경창, 그리고 다재다능했으나 연인만을 위해 목숨을 바쳤던 기생 홍랑.
마침내, 그들은 한 많은 삶을 끝낸 후에야 영원히 함께 지낼 수 있게 되었어.
위의 사진에서 위에 있는 무덤이 최경창의 묘, 그리고 아래의 무덤이 홍랑의 묘야.
함께했던 시간은 꿈결같이 짧았지만,
10년이 넘도록 최경창을 향한 마음을 변치 않았던 홍랑의 마음에 감격한 해주 최씨 문중은
해마다 홍랑의 제사를 지내주게 되었고, 그녀의 무덤을 지금까지 돌봐 주고 있다고 해.
2000년 조선일보에는 홍랑과 최경창의 이러한 절절한 사랑이 담긴 홍랑의 버들가지 시와, 홍랑에게 최경창이 보내주었던 답시의 원본이 소개되기도 했어.
당대 최고의 문장가이던 고고한 선비 고죽 최경창,
당대 최고의 미모와 재능으로 칭송받던 기생 홍랑.
결코 이루어질 수 없었던 신분과 상황을 뛰어넘은 그들의 불멸의 사랑은
홍랑이 목숨 걸고 지켰던 시들로 남아, 지금도 우리의 곁에 살아있는 것 같아.
마지막으로, 연인을 한양으로 떠나보내며 쓴 홍랑의 마음과
사랑하는 사람을 남겨두고 떠날 수밖에 없었던 최경창의 답가를 전해주고 난 이만 떠날게!
다음 이야기에서 만나요 ~♥
묏버들 가려 꺾어 보내노라 님의 손에
주무시는 창 밖에 심어 두고 보소서
밤비에 새잎 나거든
나인가 여기소서
말없이 마주보며 그윽한 난초를 주노라
오늘 하늘 끝으로 떠나고 나면 언제 돌아오랴
함관령의 옛 노래를 부르지 말아라
지금까지도 비구름에 청산은 어둡나니
문제시 둥글게 알려주세요!
안문제시 홍랑같은 불멸의 연인 만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