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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미돋]새누리당이 이기는 이유에 관하여-1

작성자딸기맛쿠션|작성시간15.04.30|조회수1,236 목록 댓글 7


출처: http://www.82cook.com/entiz/read.php?bn=16&cn=#=166310&page=1&searchType=search&search1=4&keys=31418

이하 작성된 글은 한나라당 시절 09년도 글임.
2012년 여시에도 올라온 글인데 너무 길어서 여러 번 잘라서 올려.
글이 의식의 흐름을 따라 가는 경향이 있고(글쓴이가 휘트니 휴스턴 팬인가봐) 마음에 안드는 단어를 선택하더라도 읽어볼만 한게 왜 새누리당이 당선될 수 밖에 없는가에 관한 물음에 부분적인 해답을 내려놓음.


내가 노무현이라는 사람을 맨 처음 봤던것은 1988년 국회의원 선거때였다.
내가 기억하는 모습은 흑백사진의 아주 찌질해보이는 꼰대 하나가 인상을 잔뜩 찌푸린채로 나와있었고
그 옆에 [인권변호사]라는 타이틀이 보였다는것만 기억한다. 인상이 아주 안좋아보였다.
내가 사는 동네에서 1988년에 제일 처음으로 국회의원 선거에 나왔다. 그때 나는 싱싱한 국딩(초딩아님!)이었고 국회의원 선거가 뭘 의미하는지도 몰랐고 노무현이 어떤 사람이었는지도 몰랐고
다만 내가 사는 동네골목마다 사진이 붙어 있었기에 저런 사람도 있구나 하고 넘어갔을 뿐이었다.

그때 당시 민정당 후보로 허삼수가 출마하였고 김영삼씨의 통일민주당 후보로 노무현씨가 출마한 것이었다.
난 당연히 기호1번이기에 허삼수가 될 줄 알았는데 전혀 뜻밖에 흑백사진의 찌질한 노무현씨가 당선이 되었다.
나중에 집으로 온 전단을 보고 알게 된 것이지만 부산과 경남에서 단 한곳을 제외하고 모두 다 김영삼씨의 통일민주당 후보가 국회의원에 당선이 되었다.
집에 "뽑아주셔서 감사합니다" 라는 내용의 당선자 이름과 사진 그리고 동네가 주르르 적혀있는 전단이 통일민주당으로부터 왔고 그것을 보고서는 "노무현이라는 사람은 정말 별거없는 사람인데 김영삼 당이어서 당선이 되었구나" 라는 생각을 잠시 했었다.

그 이후로 5공청문회가 있었고 노무현이라는 사람이 아주 유명해졌다는것은 기억한다. 하지만 난 청문회자체를 안봤고 봤더라도 그게 뭘 하던 것이었는지 그때 당시에는 전혀 몰랐다.
다만 내가 태어난 곳에서(88년 선거 이후로 이사함) 국회의원 당선이 된 노무현이라는 사람이 아주 유명해졌다는 것만 기억한다.
이전에 어떤 분이 말씀하시기를 "내가 대학 들어갈때는 법대가 인기가 아주 많았다고. 물론 언제나 인기많은 곳이었지만 5공 청문회에서 변호사들이 너무나 멋지게 잘 해주었기 때문에 그걸 보고는 애들이 [나도 저런 변호사가 되어야지] 라고 생각해서 법대를 많이 진학했다" 라고 말씀하셨을정도로 사람들의 뇌리에 깊히 인식이 된 사건이었다.

그 이후로 김영삼씨의 3당합당이 있고 민정당과 공화당 그리고 민주당은 합당하고 김대중씨의 평민당만 남겨지게 되고
3당합당에 반대한 일부 현역 국회의원들은 김영삼씨를 따라가지 않고 독자적으로 행동하게 된다.
내가 기억하는 부산의 정치인만 꼽아보면
중구 - 김광일
영도구 - 김정길
동구 - 노무현
해운대(or 기장.. 정확하지 않음) - 이기택

이렇게 4사람을 기억한다. 4명의 행보가 어찌되었는지 다 적어보고 싶지만 글이 너무나 길어지니 생략하고...

누군가가 나에게 "왜/언제부터 위대하신 휘트니 휴스턴님하를 좋아하게 되었나요?" 라고 물어보면 꼭 해주는 대답이 있다.
"왜/언제부터 화장품과 미용에 그렇게 많이 관심을 가지게 되었나효?" 라고 질문하면 대답할수 없지만..(이건 특별히 계기가 없다)
다만 한번도 받지 않은 질문이 있는데 "왜/언제부터 한국 현대 정치에 그렇게 관심이 많아졌느냐?" 라고 질문을 받는다면 해주고 싶었던 대답이 있다.

1992년에 정말 말도 안되는 한국 정치의 모순을 보았기 때문에 그게 어린마음에 너무나 충격적이어서
그 말도 안되는 현상을 내 나름대로 설명하기 위해서 정치에 관심을 가질 수 밖에 없었다..

1988년 이후로 4년이 흘러서 1992년 국회의원 선거가 이루어졌고
부산 동구에서 김영삼/노태우의 민자당 후보로 허삼수가 출마했고
민주당(이기택씨와 김대중씨가 공동대표)후보로 노무현씨가 출마했다.

허삼수가 누군지 모르는 사람이 많을텐데 위에 말했던 5공 청문회에서 증인으로 출석했던 사람이고
광주민주화운동에서 진압작전을 담당했던 그리고 5공의 실세중 하나였던 사람이다.
어떤 사람은 청문회에 출석해서 "내가 잘먹고 잘 살려고 자국민들을 총으로 쏴 죽였소. 그리고 7년간 잘 먹고 잘 살았소~~" 라고 증언했던 쓰레기이고
다른 사람은 청문회에서 "니가 안그랬으면 그럼 누가 그랬단 말야! 귀신이 발포명령을 내렸냐?" 라고 추궁해서 유명해졌던 사람이었다.

그런 두 사람이 1988년에도 국회의원 선거에 같이 나왔고
1992년에도 역시 같은 지역 부산 동구에서 국회의원 선거에 나왔다.

결과가 과연 어찌 되었을까... 득표율은 모르겠지만 허삼수씨가 당선이 되었다.









그 결과를 보고 난 패닉에 빠질 수 밖에 없었다.
어찌 저게 말이 되는 일인가? 라는 생각밖에 할 수 없었다.
그때 당시 언론에서는
"노무현씨는 유명해졌다고 건방져서 지역구를 버리고 서울에서만 열나 활동하면서 지역민원을 제대로 돌보지 않았는데 허삼수씨는 4년간 지역여론을 돌보면서 지역에서 인지도를 키워서 당선이 되었다" 라고 보도를 했다.
말도 안되는 소리이지만 백번 양보해도 그게 사실이라고 보기 힘든게
뒤에 또 언급하겠지만 1996년 국회의원 선거에서 부산 동구는 인구가 작아서 통합되어서 부산 중/동구(중구와 동구가 통합)로 바뀌는데 그때도 역시 허삼수씨가 출마하게 된다.
노무현씨는 부산 중/동구에 출마하지 않았고 지역구를 옮기게 된다.
다만 웃긴건 허삼수씨는 김영삼의 민자당 공천에서 떨어져서 무소속으로 출마하게 되고 민자당 공천으로 다른 후보가 출마하는데..
지역구를 잘 돌보셨다는(ㅋㅋ) 허삼수씨는 낙선하고 더이상 국회의원 출마는 안하게 된다. 민자당의 공천을 받은 후보가 당선..
지역구를 잘 돌봐서 국회의원이 되었다고? ㅎㅎㅎㅎㅎ

그냥 간단하게 말해서
1988년에는 김영삼 당이니까 노무현을 뽑아준거고
1992년에는 역시 김영삼 당이니까 허삼수를 뽑아준 것이었다. 그게 가장 정확한 분석이다.
다만 내가 이해를 할 수 없었고 나를 혼란에 빠뜨렸던 것은 아무리 김영삼이 좋아도 광주 민주화 운동에서 자국민을 학살한 허삼수 같은 사람을 뽑아줄 수 있느냐? 라는 것이었다.
그것도 전국적으로 유명했던 노무현을 떨어뜨리고 국민을 학살한 허삼수를 뽑아주는게 과연 정상적인 인간들이 할 수 있는 행동인지...
그게 너무나 충격적이었고 전혀 말도 안되는 일이고 나로서는 지금도 도저히 이해를 할 수 없기에.. 왜 이런 일이 벌어지는지 그걸 알고 싶어서 내가 현대 정치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이었다.

이것에 대해서 주변 부산사람에게 직접 물어보면 간단하게 대답해준다.
"김영삼을 대통령 만들어야 하니까 허삼수를 뽑아줬을 뿐...."
1992년 연말 김영삼이 대통령이 되었고 1992년 국회의원 선거때는 아직 대통령이 되기 전이어서 허삼수고 뭐고 상관없이 걍 뽑아준거라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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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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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김피아노 | 작성시간 15.04.30 어휴 답이없다 진짜.. 여시야 고마워 앞으로 올라오는 글들도 잘 읽을게!
  • 삭제된 댓글입니다.
  • 답댓글 작성자딸기맛쿠션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15.04.30 한 4편까지 되는데 몹시 뻔하고 뻔한 이유임.
  • 작성자오징징징이 | 작성시간 15.04.30 우리집은 전남인데 어제 티비보면서 엄마아빠 오 새누리가 다 이겼구나 라며 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함 도가텄나 별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는게 슬퍼졌음 ㅋㅋㅋ
  • 작성자물 속의 그림자 | 작성시간 15.05.01 슬프다.....변하지않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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