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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현미가 내민 # / 구다겸

작성자홍윤선|작성시간24.02.21|조회수87 목록 댓글 0

과현미가 내민 # / 구다겸

 

 

좋아하는 노래가 생겼다. 처음 듣자마자, 온몸에 탄산 기포가 터지는 듯했다. 라이브로 듣고 싶어 몸이 근질거렸다. 성지를 찾아가고 싶은 심정이랄까. 거짓말처럼 콘서트 소식이 들려왔다. 멤버들의 군백기와 코로나 비대면 시기를 합해 무려 6년의 공백을 깨는 콘서트였다. 세상이 나를 위해, 짜여진 각본대로 돌아가는 듯한 착각마저 들었다. 예매를 하고 나서 “나 콘서트 가! 콘서트 간다고!” 보는 사람마다 붙들고 자랑했다. 어린 왕자를 기다리는 여우처럼 설렜다. 내 하루에 #이 붙었다. 밥 먹을 때도 청소할 때도 평소보다 반음 들떠 있었다.

 

콘서트장은 파란색으로 넘실댔다. “신나게 즐겨봐요.” 옆자리 앉은 분과 서로의 파란색 드레스 코드를 칭찬하며 결의를 다졌다. 화려한 레이저 조명이 무대를 비추며 공연이 시작됐다. 밴드의 보컬 Y는 우리에게 앉을 틈을 주지 않았다. 좀 앉아 볼까 하면 “뛰어!”, 좀 쉴 만하면 “소리 질러!” 숨 좀 고를라치면 “원” 하고 마이크를 내밀었다. 우린 “투” 외쳤다. 그날 공연에는 쉼표가 없었다. 드디어 공연을 마무리하는, 마지막 노래만 남았다.

“이 곡을 들려드리려고 여기까지 달려왔습니다.”

내가 그 노래를 얼마나 듣고 싶어 했는지 아티스트 본인도 알았던 걸까? 해외 콘서트를 수없이 했지만, 그 노래만큼은 한국 팬들 앞에서 처음 부르고 싶어 아끼고 아껴두었던 곡이라고 했다. 객석에서 환호가 터져 나왔다. 무대와 객석의 물리적 거리는 의미가 없었다. 가수와 관객은 한마음으로 연결돼 있었다.

 

뚜둥퉁퉁 탕! 드럼 소리가 심장을 때렸다. 사람을 이렇게 막 두드려 놓고 시작한다고? 잔잔한 기타 전주로 시작하는 음원과 달랐다. 드럼이 내 심장에 박힌 것 같았다. 퉁탕거리는 가슴을 부여잡고 있는데 기타와 베이스가 합세했다. 마음에 회오리가 일었다. 이어서 보컬이 잔잔하게 기타 음을 타고 들어왔다. 내 안의 감정들이 거품처럼 부풀었다. 보컬의 표정과 호흡, 제스처, 목소리 톤, 바이브레이션 모든 것이 진한 카라멜 시럽이 되어 가슴속 거품에 스며들었다. 심장무단침입죄. 입을 다물지 못하고 듣는데 모든 음이 뚝 끊겼다. 탕 탕 탕 드럼이 또 한 번 심장을 두드렸다. 심장폭행죄. 간주 부분에서는 멤버들이 드럼 주변으로 모여 서로의 소리에 자신의 소리를 맞추었다. 서로를 바라보는 얼굴에 봄꽃 같은웃음이 가득했다. 휘몰아치는 연주와 함께 무대에 꽃가루가 내렸다. 내 마음에도 꽃이 날렸다.저죄인들을 우리 집에 가둬놓고 하루 종일 연주시키는 상상을 했다. 망상유발죄 추가.

 

콘서트에 다녀온 후, 나는 ‘과현미’ 폐인이 됐다. 과현미는 노래 제목 ‘과거현재미래’의 줄임말이다. 매일 먹어야 하는 쌀처럼, 어쩜 제목도 그럴까. 흑미 백미 과현미. 듣고 또 듣는데도 질리기는커녕 들을수록 감정이 진하게 우러난다. 내 밥, 내 사골 과현미.

 

직접 연주해보고 싶다는 단순한 생각으로 덜컥 기타학원에 등록했다. 한 달 남짓 배웠지만 아직 노래를 연주할 정도는 못 된다. 손가락으로 기타 줄을 정확히 누르는 연습부터 해야 했다. 띵띵띵띵 띵띵띵띵의 반복. 답답했다. 나도 얼른 아름다운 소리를 냈으면….피아니시모로 시작한 소망에 포르티시모가 붙었다.

 

연주 영상을 녹화했다. 어느 손가락이 몇 번 플랫, 몇 번 줄을 누르는지 보고 그대로만 따라하면 된다는 단순한 생각이었다. 하지만 영상 속 손가락은 바람처럼 빨랐다. 아니, 아니 뭐라고? 어떻게 한다고? 저게 가능하다고? 악보도 볼 줄 모르는 주제에 무모하기 짝이 없었다. 하지만 스마트폰에 코를 박고 계속 보다 보니 몇 개의 음이 보이기 시작했다. 레 파# 레 파#.

 

레 파# 레 파#을 반복해서 치는데 느닷없이 눈물이 핑 돌았다. ‘레’랑 ‘파#’이 도대체 왜 슬픈 거지? 알 수 없는 일이었다. 두 음이 내 안에 파고들어 와 단단했던 마음에 틈을 벌려놓은 건가. 틈이 너무 커서 격정적인 것도 아니고, 너무 좁아서 금세 잊힐 것도 아닌, 오래도록 잔잔하게 끌어안고 갈 수 있는 딱 아름다운, 슬픔이었다. ‘레’와 ‘파#’은 밝은 느낌의 음이지만 ‘시’를 근음으로 쓰면 쓸쓸한 느낌이 날 수 있다. 실제로 레 파# 다음으로 나오는 음이 ‘시’였다. ‘시’는 슬픈 느낌의 음이다. 레 파#은 ‘시’를 다리 삼아 내 안의 또 다른 ‘시’에게 다가와 어깨를 내어주었다. 토닥이고 기다려주었다. 차올랐던 눈물이 마를 즈음, 가슴 속이 시원했다. 푹 가라앉았던 ‘시’가 흘러넘쳐 어디론가 가버린 것 같았다.

 

가사는 단순하다. 이별의 기억을 안고 살아가는 사람이 있다. 어떤 날은 괜찮고, 어떤 날은 미치도록 그립고, 또 어떤 날은 정말 밉다. 하지만 그러다 보면 언젠가는 잊히겠지 보통날이 찾아오겠지 스스로를 위로한다. 그래서 “우린 과거 현재 미래에 있어.”라고 한다. 나는 이 후렴구가 그렇게 좋을 수가 없다. 들을 때마다 내 과거와 현재, 미래를 생각하게 된다. 노래를 만든 Y도 그랬나 보다. 콘서트 직캠*을 보니 노래가 끝나고 감았던 눈을 떴을 때 눈가가 촉촉했다. 팬들과 함께 해온 14년의 과거, 함께하는 현재, 함께할 미래를 생각하지 않았을까? 그날 Y는 “과거에도 지금도 함께 있어 줘서 고맙다”며 “영원히 함께 하기로 약쏘옥” 하자고 했다. 그가 내민 새끼손가락에 나는 얼떨결에 약속을 하고 와버렸다. 이들과 과거는 공유하지 못했지만, 현미는 함께하기로 했다. 어쩜 ‘과’ 하나를 빼도 ‘현미’가 남냐고. 건강에도 좋게 말이야.

 

콘서트가 끝난 지 한 달이 다 돼 가는데도 나는 직캠을 보고 또 본다. 그러면 두려움과 불안에서 멈추려는 마음이 흐르는 것 같다. 흘러간 자리에는 새로운 것이 들어온다. 모나지 않게 품을 수 있다.

 

누군가는 그림을 보고 또 누군가는 춤을 보고 마음이 말랑해질 것이다. 흐를 것이다. 괴테는 말했다. 날마다 적어도 짧은 노래 한 곡을 듣고, 좋은 시 한 편을 읽고, 강렬한 그림 한 편을 감상하라고. 고이면 썩는다. 죽은 것은 딱딱하고 산 것은 부드럽다. 우린 살기 위해 아름다움을 찾는지 모르겠다.

 

올해 들어 복잡한 일들이 겹치며 ♭붙은 나날을 보냈다. 무얼 해도 반음 가라앉아 있었다. 혼자 나오기 힘든 구덩이에 빠진 기분이었다. 그곳에서 나는 과거의 기억이 만든 필터로 현재를 보고 미래를 상상하며 옴짝달싹 못 했던 것 같다. 하지만 지금은 원음으로 거의 돌아왔다고 말하겠다. 아니, 도약진행도 가능할 것만 같다. 과현미가 내민 #을 잡고서.


* 팬들이 직접 촬영한 캠 동영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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