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마음의 하모니카 / 김혜영
동구에 다다르자 구수한 냄새가 반긴다. 서둘러 마당에 들어선다. 시어머니가 가마솥에서 한가득 옥수수를 소쿠리에 건져내고 계신다. 나는 얼른 다가가 여느 때보다 살갑게 소쿠리를 받쳐든다. 시어머니는 내 갑작스런 방문에 놀란 듯 반가운 듯 ‘혼자서 몰래 먹으려고 했는데 어떻게 냄새 맡고 왔냐’며 눙친다. 시댁 근처에 볼 일이 있어 온 것이지만 어머니 보고 싶어 왔다며 나 역시 능청스럽게 받아넘긴다.
어렸을 때 나는 뛰놀다가도 옥수수 삶는 냄새가 나면 번개처럼 집으로 달려가곤 했었다. 또래 친구들은 알사탕이며 라면땅, 고구마과자 등을 주된 군것질거리로 삼았지만 나는 철 따라 나오는 고구마나 옥수수 같은 작물이 군것질의 주된 메뉴였다. 넉넉하지 않은 형편이라서 또래 아이들처럼 과자를 쉽게 접하진 못했으나 그렇다고 부러워하지도 않은 것 같다. 특별히 옥수수는 유독 내가 좋아하는 주전부리였는데, 씹히는 질감과 씹을수록 고소한 맛에 길들여진 때문이기도 하지만 옥수수를 베어 물면 동네 오빠가 떠올랐기 때문이다. 그 오빠는 여름이면 동네 모정에서 하모니카를 불곤 했다. 나는 다 먹은 옥수수 깡치에 입술을 대고 좌우로 옮겨가며 콧소리로 흉내를 내곤 했었다.
옥수수는 어떻게 삶느냐에 따라 맛이 다르다. 나는 별스럽게 공을 들여도 시어머니가 삶은 옥수수 맛을 따라갈 수 없다. 알맞게 달큰하면서도 짭조름한 맛이 나지 않는다. 아마도 시어머니처럼 간간한 삶을 살아보지 않아서이지 싶다.
김이 무럭무럭 나는 옥수수 소쿠리를 마루에 내려놓자마자 옥수수 하나를 집어 든다. 한입 베어 물다가 그만 손바닥에 뱉고 만다. 앞니가 시큰하다. 시어머니가 모른 척 멀리 동구 쪽에 시선을 둔다. 그렇게 옥수수를 앞에 두고 이런저런 말들이 드문드문 오간다.
시어머니는 마을 회관에 가져가신다며 옥수수 몇 개를 주섬주섬 검정 봉지에 담는다. 남은 옥수수를 한 보따리 담아 내 손에도 쥐어준다. 당신 입으로 들어가는 건 몇 개 되지 않는데도 해마다 자투리땅에 자식 돌보듯 옥수수를 키운다.
시어머니의 따뜻한 마음과 어릴 적 추억을 한 보따리 싸들고 돌아오는 길, 운전석에 앉아 지인들에게 “찰지고 맛난 옥수수 드실 분은 손드세요.”라고 메시지를 띄운다. 여기저기서 ‘카톡, 카톡’ 소식이 온다. 잠시 차를 멈추고 그들에게 줄 옥수수를 비닐봉지에 소분한다. 가만 보니 옥수수 생김새가 똑같은 게 하나도 없다. 옥수수를 달라고 연락 온 지인들처럼 다양한 것 같다. 기다랗고 엉성한 것이 있는가 하면 몽땅하지만 야무지게 생긴 것도 있고, 속 좁은 친구처럼 알맹이가 홀쭉한 것들이 어우러져 있다.
아파트에 도착하니 메시지를 받은 지인들이 벌써 나와 있다. 옥수수를 건네주자 어떤 지인은 검은 봉지를 내민다. 둥글둥글 만져지는 것이 삶은 달걀 같다. 평소 그녀의 마음처럼 따뜻하다.
집에 들어와 여남은 개 남은 옥수수를 냉동실에 넣으려는데 문자가 온다. 택배기사의 방문 메시지다. 나는 얼른 지퍼백에 옥수수 몇 개를 담았다. 사람과 사람 사이가 멀어지는 요즘, 특별한 것은 아니지만 소소한 것이라도 나누고 싶은 생각에서였다. 메모지에 편지를 쓴다. ‘별것 아니지만 맛있게 드세요’ 커피 물을 끓이면서도 귀는 현관에 기울어진다. 인기척이 들리고 잠시 후 얼른 문을 열어보았다. 기대와는 달리 옥수수는 손잡이에 그대로 매달려 있다.
시간에 쫓겨서일까, 아니면 남의 호의를 받기 어색해서일까. 별생각이 다 든다. 한동안 서서 멍하니 옥수수 봉지를 바라본다. 어릴 적 옥수수 맛은 그대로인데 사람과 사람의 관계는 멀어지는 것 같다. 요즘 들어 이웃 간의 정이 더 소원해지는 것은 개인주의 때문이기도 하겠으나 옥수수는 변함없는 내 마음의 하모니카다. 옥수수 알갱이들처럼 사람과 사람은 어깨를 겯고 살아가야 한다. 어쩌면 옥수수는 고소한 맛뿐만 아니라 사람이 부딪히며 살아가야 하는 실체적 진실을 말해주는 삶의 교과서이지 싶다.
변변찮은 옥수수이지만 이웃과 나누고자 오뉴월 땡볕을 이고 옥수수를 키우는 시어머니의 마음이 덩그렇게 걸려 있는 봉지에 얼비친다. 시어머니에게 전화를 한다. 고향의 봄 컬러링이 허공을 가로질러 그 옛날 오빠의 하모니카 소리와 겹쳐진다. ‘어머니, 아까 갑자기 들르느라 빈손 들고 가서 미안해요, 다음에 맛난 거 사드릴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