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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인의 나라 / 김근우(대전지부)

작성자배만식|작성시간26.06.08|조회수40 목록 댓글 0

노인의 나라 / 김근우

 

부모님을 모두 여읜 남편과 결혼해 37년을 주부로 살았다. 결혼하던 해부터 내 나름대로 며느리 노릇을 하겠다고 가정의례준칙을 뒤적여가며 시부모님 기제사와 차례를 모셔온 날들이 그 안에 있다. 새살림을 막 시작한 그때는 명절 전날까지 쉴 줄 모르고 일했다. 가게 문을 닫고 느지감치 시작한 차례 준비가 끝나 가면 훤하게 날이 밝았다. 뒤틈바리였지만 정월 초하루 저녁 시아버님 기제사도 끄떡없이 해내곤 했다. 그런 세월이 도와준 덕에 지난번 차례 때는 세 돌 베기 손주가 고사리손을 맞잡고 술잔을 올렸다. 그렁저렁 이제는 일머리나 일하는 시간 어디에도 걸림 없는 며느리가 됐다.

그런데 얼마 전 친정아버지 기제사를 모신 후 병이 나고 말았다. 제수祭需를 준비할 때부터 골반하고 엉치뼈가 아파서 몇 번이나 쉬어야 했다. 다른 때는 지압으로 다스려 하룻밤 지나면 좋아지곤 했었는데 자고 나니 통증이 더 심해졌다. 하는 수 없이 불편한 걸음으로 병원을 찾았다. 여기저기 침을 꽂고 누워 있으니 극노인이 따로 없었다. 날밤을 새우거나 일에 쫓겨 동동걸음을 한 것도 아닌데 기제사 한 번으로 병원에 드러눕고 말았다. 늙었다고 투정하는 몸의 말이 틀림없었다. 세포의 회복 탄력성이 고장 나서 오래도록 아파야 할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자 덜컥 두려움이 올라왔다. 노인의 나라로 가는 여행이 시작된 것이다.

많은 경우 여행 갈 계획이 잡히면 가는 곳의 날씨는 어떠하고 가보고 싶은 곳은 어디인지 살핀다. 또 문화적 성향은 어떠하며 조심해야 할 것은 무엇인지도 꼼꼼히 알아보면서 짐을 챙긴다. 그런 준비 없이 낯선 곳에 덜컥 도착하게 되면 놀라고 당황스러워 여행이 아닌 고행이 되는 것은 말할 나위도 없다.

노인의 나라로 가는 여행이라고 다르겠는가. 세심하게 잘 준비해야 허락된 만큼의 여정을 수월하게 마칠 수 있으리라. 더욱이 노인의 나라는 한 번 가면 다시는 돌아올 수 없을뿐더러, 저승으로 가는 제비뽑기가 수시로 행해진다는 곳이다. 그러니 철저한 여행 준비가 필요할 수밖에 없다.

그 준비 중 하나가 세상을 보는 마음 대사량을 키우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마음을 움쑥 기워내 바늘귀만도 못한 통찰력으로 짊어져야 했던 삶의 무게를 덜어내고 싶었다. 버거웠던 삶을 순리대로 해석하고 받아들이면 남아 있는 시간의 효율이 높아지리라 믿었다. 그런데 욕심이 지나쳐 마음과 몸을 균형 있게 간수하지 못했다. 마음을 살피느라 몸이 달라는 운동이나 휴식은 물론 잠자는 것까지 몰라라 한 것이 병을 부른 듯했다. 생각은 그랬으면서도 몸보다 더 무거운 건 또 마음이었다. 침과 약으로 조금씩 회복되어 가는 몸과 달리 준비하지 못한 여행에 대한 불안함이 며칠째 일상을 무력하게 만들었다.

답답한 마음이나 풀 겸 다니던 미용실에 갔더니 외출 중이었다. 하는 수 없이 친절이 지나쳐 부담스러웠던 동네 미용실을 찾았다. 마침 코로나 때문에 착용한 마스크가 굳어 있는 표정을 가려주었다. 텔레비전에서는 코로나19 확산을 조심하자는 방송이 진행되고 있었다.

“아이고 경로당도 못 가시고, 집에만 있기 힘드실 텐데 어떻게 지내세요?”

‘경로당?’

“아, 할 수 없지요, 뭐. 그냥 그렇게 지내고 있어요.”

머리를 깎는 내내 가슴 안쪽에 납작 엎드려 있던 노인이 눌러둔 속을 비집고 끊임없이 구시렁댔다. 수고했다는 인사를 하고 나오는데 경로당이라는 말이 주춤주춤 따라왔다. 집으로 올라오는 엘리베이터 거울에는 허옇게 바랜 세월을 머리에 얹은 ‘경로당 노인’이 낯선 얼굴로 눈을 맞췄다. 며칠 전 병원에 누워 있던 극노인도 거기 있었다.

경로당마저 갈 수 없는 상황을 염려해 주는 친절한 인사였음을 안다. 더구나 얼굴을 마스크로 가렸으니 반백에 가까운 머리로 봐서는 경로당 회원으로 보였을 것이다. 그렇게 인심 쓰듯 말할 것도 아닌 것이, 어디를 가든 이제 나를 부르는 대명사는 어머니로 통한다. 게다가 손자가 할머니 자격증을 준 지가 벌써 세 해가 지났으니, 노인의 경계선을 넘어 동네 할머니가 된 것은 오래전이다. 그런데도 시시콜콜 분별하고 싶은 생각이 치솟아, 경로당 다니는 원로 할머니와 이제 막 손자를 둔 초보 할머니가 자리다툼을 하는 노역奴役을 하고 있었다.

육십을 넘기면서부터 나를 구속하는 세상의 기준을 하나씩 뽑아내자고 마음먹었다. 당연히 타인의 시선에서 웬만큼 자유로워지자는 것까지 포함해서 생각한 바였다. 그런데 미용사가 경로당 회원권을 넘겨주는 순간 받기 싫다고 손사래를 치고 있었다. 바깥의 기준보다 내 나름의 시선으로 세상과 자신을 보고자 했던 생각들이 가슴으로 가지 못하고 머릿속에서 미아가 되고 말았다. 노년기를 자유롭고 오롯하게 살아내자고 스스로 부추겼던 여러 다짐이 한순간에 무색해지고 말았다. ‘말 단 집에 장 단 법 없다’는 어른들의 얘기가 불편한 심기 정곡을 찔러댔다.

살림에 서툴렀던 신혼 때부터 머리가 허연 오늘까지 주방에 선다. 뽀득한 설거지를 끝내고 손목이 틀어지게 짠 행주를 털어 널지만 돌아서기가 무섭게 주방은 다시 전쟁터가 되고 만다. 펼치고 다시 제자리 찾아 넣는 주방에서의 37년이, 걷고 뛰다 보면 어느새 넘어져 있던 내 삶과 다르지 않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아프면 불고 힘들면 비틀대며 살아온 그 일상의 갈피에서 ‘그래도 털고 다시 시작하자’는 내 주문呪文이 제법 쓸모가 있었다는 거다.

변함없이 주방에 다시 서듯, 경로당이라는 말에 걸려 넘어진 나를 일으켜 세운다. 하루 한 달 일 년씩 흐르는 시간을 타고 가다 보면, 노인의 나라로 간 여행자는 어엿한 정착민으로 자리를 잡을 것이다. 소화가 안 되는 날이 오면 덜먹고 숨이 차 걸음이 느려지면 천천히 쉬면서 가야 가리라. 그마저도 어려워 바깥으로 향하는 문을 닫아야 하는 날이 오면 그때는 조용히 앉아 내 안에 고인 소리를 들을 것이다. 생체 시계가 점점 느려지다 멈출 그즈음, 내 안에 모아진 소리는 나를 자유롭게 하는 한 편의 시가 되어 있을지 모른다.

세상과 나눈 온기 가득한 소리를 향해 마음을 열고 노인의 나라로 가는 짐을 다시 꾸린다. 외로움 두려움 미움, 그리고 사랑과 감사가 뒤섞인 여행 보따리 안에서 금방 터질 것 같은 죽음이 물컹 손에 잡힌다. 화들짝 놀란 손끝에서 힘을 빼고, 나란히 붙어있는 생과 사의 진동에 가만히 나를 맡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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