못난 인간 / 박자연
“여보세요, 나야, 순심이. 너 지금 바뿌나? 아! 괜찮다고, 일단 고마워. 내가 요새 하도 괴로워서 누구라도 붙잡고 하소연이라도 해야 살 것 같은데, 그럴 만한 사람이 아무도 없는 기라. 근데, 니가 퍼뜩 생각이 난다. 아이가. 니 아직 서울에 안 왔제? 만나서 이야기하면 좋은데, 우짜겠노 전화라도 해야지. 안 그러면 내 상태가 좀 그래.
응! 맞다. 아들놈 3층에 산다. 그라모 뭐하노 지 새끼들 밥먹이 주는 것은 중하고 지 애미는 우찌 사는지, 별 관심이 읎다. 퇴근 함셔 잠깐 얼굴 내밀고 엄마 괜찮냐고? 한마디만 해도 될 텐데, 지 몸이 천근인지 터벅터벅 계단 올라 내 집 지나치는 소리만 들린다. 딸년은 지방에서 학원 항께 코빼기 내밀 시간도 없다 카지만, 같은 건물에 사는 아들이 그러면 안 되는 거 아이가? 자슥들 암만 키아놔도 소용없다는 말 맞는 갑다.
순심아! 니도 알제, 내 남편 삼수하고 우리가 우찌 결혼했는지…. 그런데 우리 부부가 50년 가까이 우찌 살아왔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아이가, 사람들은 겉만 보지 자세한 것은 모르는기라.
아! 사고가 우째 일어났냐고? 글쎄, 내가 손녀 둘 키우면서 그랬는지, 무릎 연골이 닳아빠져가 수술할라꼬 입원했다 아이가. 사실 좀 있다가 해도 되는데, 육 개월 전에 영감이 파킨슨병 확증을 받았거든. 근데, 병원을 안 갈라 카는기라. 그래서 내가 꼬셨지. 내랑 오래 살라 카몬 열심히 치료받아야 한다고, 그래서 그런지 좀 나아지더라. 문제는 내 다리였어. 손녀들 돌보랴, 영감 수발들랴, 힘에 부쳐 고장이 놨나 봐.
순심아! 사람이 참 그렇더라. 수술 전날 입원실에 우리 영감이 와갔고는 병실 사람들 보는 데서 우리 마누라 수술받으면 자기가 간호를 잘해줄 거라며, 큰소리를 치는 기라. 내가 속으로 그랬다. ‘별일이네! 안 하던 짓을 다 하고, 저 양반이 죽을 때가 됐나?’ 근데 그게 참말로 그 양반의 마지막 말이었다. 수술하는 날 새벽에 내가 문자로 구운 김 가지고 오라고 했는데, 그것도 나중에는 후회가 되더라. 통화를 했으면 한 번이라도 목소리를 더 들을 수 있었는데….
수술 시간 맞춰 오겠다는 영감이 영 안오는기라. ‘그러면 그렇지, 뭐시! 잘해줄끼라고’, 그 말을 믿은 내가 미친년이지, 원망으로 가득한 채 혼자 수술했다. 아이가. 근데, 깨어보니 청천벽력 같은 소식이 기다리고 있더라. 영감이 뇌진탕으로 의식 불명이래. 나한테 오다가 계단에서 떨어졌는데, 수술했지만 가망 없데. 같은 시간에 수술대에 누워있었던 거지. 연명하는 줄 달아났지만, 의미 없고, 보호자인 내가 가야 한다나?
담날, 구급차로 영감에게 갔는데 보는 순간 기절할뻔했어. 얼마나 퉁퉁 부었는지 사람 모습이 아니더라. 의사가 나한테 마지막이니 하고픈 말을 하래. 영감 옆에 내 침대를 부쳐주더라. 내가 손을 잡고 말했어. “내 수술받고 나면 간호해준다더니 이렇게 누워있으면 우짜능교? 빨리 퍼뜩 일어나 보소. 와 이러고 있는교?”
순심아! 사실 그때, 이게 꿈인지 생신지도 모르겄고, 아무 말도 생각 안 나고, 눈물도 안 나더라. 그런데 내 소리를 들은 그 양반 눈에서 눈물이 주르르 흐르는 기라. 그게 끝이었어. 마지막 내 목소리 듣고 떠난 그래. 나는 그 양반 숨 끊는 꼴은 차마 못 볼 것 같아 그냥 나왔어. 당연히 장례식도 못 갔지. 그래서 마지막 길도 배웅 못 했어.
21일 후 퇴원해서 집에 왔는데, 그 양반이 나를 맞이하는 거야. 활짝 웃으면서 말이야. 순심아! 이런 말 하면 좀 이상하게 들릴지 몰라도, 내가 우리 남편, 억수로 미워했다. 글쎄, 그 양반은 평생 남 챙기기 바빴지 내 맘 한번 헤아려 준 적이 없었다. 아이가. 늘 부모가 우선이고, 친구나 친척한테는 깍듯했다. 근데 집에 오몬 암말도 안하는 기라. 내가 얼마나 그 인간한테 섭섭했으면 속으로 별의별 욕을 다했을까! 그래 놓고는 또 양심에 찔려, 밤에 교회 가서 기도하며 회개했다 아이가. 이혼? 그런 것은 생각도 못 했지. 명색이 우리 부부는 모법 적인 크리스천인데, 그리고 애들이 있는데 우찌 그런 생각을 하노, 안 글라.
순심아! 우리가 처음으로 둘이 여행을 갔다. 애들이 칠순 여행을 보내줬거든. 숙소 앞이 바로 바다더라. 돌담에 걸터앉아서 저녁노을을 보는데, 뜬금없이 그 양반이 그러더라. 자기가 나한테 많이 잘못했다고, 젊었을 때는 부부가 어떻게 사는지 몰라서 그랬고, 또 남들만 챙긴 것은 장남인데다 직업도 그랬으니! 아무튼 모든 것이 미안하다면서, 용서해달라는 말은 차마 못 하겠고, 대신 지금부터 진짜 잘해주면서 당신에게 진 빚 다 갚겠노라고 하더라. 그 말을 듣는데 순간 내 얼음장 같은 맴이 쪼개 녹아내리는 것 같더라. 속으로 ‘아따! 이 양반도 이제야 철이 쪼매 드는갑다. 살다 본께 이런 날도 오고. 그라몬 이제부터 진짜 한번 잘살아 보는기다. 내도 뭐 꼭 잘한 것만은 아닌게’ 그런데 이게 뭣꼬? 뭔 놈의 기회가 이리도 짧노? 말이다.
순심아! 아무래도 내 상태가 정상이 아인 기라. 시도 때도 읎시 골이 나고, 옆에 그 인간이 읎다는 것이 더 화가 나는 거라. 그래서 내가 이럴 때 우짜는 줄 아나? 영감탱이를 때리면서 패악을 쓴다. 아이가. “뭐 좋다고 쳐 웃어 샀노. 인정머리 읎는 영감탱이야, 니는 천국 가 있응께 좋나? 잘해주겠다는 말만 해놓고 그냥 가뿌몬 혼자 남은 내는 우짜라는 긴데 으이? 말 좀 해봐라.”라며, 소리 지르고 발광한다 아이가. 물론 영정 사진한테 그라제.
순심아! 내, 미쳐가는 게 맞제? 글쎄 오늘은 또 눈 뜨자마자 “이 양반, 벌써 출장을 갔나?”라며, 영감 방문을 확 열어젖히고, 밤에는 또 뭐한다고 빨리 안 들어오고 사람을 이리 기다리게 하냐며 혼자 시불랑거린다. 이쯤 되면 정신이 오락가락하는 것 진짜제?
순심아! 내는 평소 죽음을 가볍게 여기지는 않았지만, 무서워하지는 않았다. 내세에 대한 확신이 있었으니까. 하지만, 이제는 죽음이 얼마나 무서운지 알겠어. 죽음은 모든 것이 끝나버려. 죽음이 주는 단절과 절망은 살아있을 때 쓰는 말과는 차원이 달라. 그래서 살아있을 때 해야 했어. 용서든, 사랑이든. 그때 바닷가에서 그 양반 사과할 때 내가 맞장구라도 쳐주었다면, 이렇게까지 후회는 안 할 긴데, 자존심이 뭐라고….
못난 인간이지. 미운 정도 정인 것을 깨닫지 못한 내가 참으로 못난 인간이고 말고. 사실은 그 양반도 피해자지 여편네 사랑 한 번도 못 받고 원망만 받다가 홀로 훌쩍 떠났으니. 그래서 마지막으로 울었을까? 그 흐르던 눈물을 생각하면 마음이 괴로워. 이래서 사람 속은 복잡스러운가? 하루에도 몇 번씩 미웠다가 아쉽고, 원망했다가 미안하고, 화해 못 한 것도 그렇고. 내 맘을 참말로 모르겠어. 그래도 니한데 털어놓고 나니 숨통이 좀 트이네. 참말로 고맙다. 담에 서울에서 차 한잔하자. 내, 또 전화할게. 이만 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