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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꽃이 피던 지붕 아래 / 김나현(부산지부)

작성자배만식|작성시간26.06.11|조회수48 목록 댓글 0

박꽃이 피던 지붕 아래 / 김나현

 

첫 삽도 뜨지 않았는데 가슴은 새벽 해처럼 벅차오른다. 위채에서 신고식부터 정성 다해 올릴 작정이다. 나의 문우와 친애하는 벗들은 마을 뒤편 감자밭에 영면하신 아버지 산소에 문안부터 드리고, 산기슭 오빠 농막으로 갈 때 말간 산골 정취에 젖어 심신이 느긋해질 것이다. 문 앞에 걸 현판도 빚어야지. 글을 품은, 문학의 온기가 서릴 공간을 떠올리는 것으로도 속이 따뜻해진다.

내 문학의 안식처가 될 곳은 고향 집 아래채다. 장차 글의 곳간이 되고, 책 향기로 채워질 공간. 곡식 창고로 쓰는 아래채를 오빠가 흔쾌히 내주었다. 세파의 흔적으로 두루 손길이 필요하고, 그때가 언제일지 기약도 없다. 그럼에도 종이책 냄새로 채워질 걸 상상하면 히죽이 미소가 번진다.

고향 집은 전형적인 시골집이다. 사시장철 바지랑대가 떠받친 긴 빨랫줄이 마당을 가로지르고 서 있다. 아침 해를 정면으로 받는 위채와 정남향인 아래채가 ‘ㄱ’ 형태를 이루었다. 아래채와 장독간, 위채와 외양간이 마당을 사이에 둔 네모형 배치인데 장독대 옆으로 대문간이 나지막이 자리했다.

기와를 얹은 위채와 달리 아래채는 슬레이트 지붕이다. 섬돌에 올라 마루로 오르는 위채가 높직이 앉았다면 아래채는 마당과 처마 사이가 가깝다. 누추해도 햇살이 종일 머무는 이 아래채가 문학의 방으로 낙점됐다. 원래는 이엉이던 초가였다. 가을걷이가 끝난 늦가을이나 초겨울엔 연례 행사로 이엉을 엮고 지붕에 이엉을 올렸다. 이엉 얹는 날, 어른들을 따라 사다리를 타고 오른 지붕에서 내려다보는 마당이 아득하게 높았다. 다리가 후들거렸다.

지금 보면 아래채는 처마가 손끝에 닿을 듯 가깝다. 이 초가지붕으로 박덩굴이 타고 올라 지붕은 초록색 밭이 되고, 그곳에서 우윳빛 박꽃이 송송 피었다. 달빛을 머금고 뽀얗게 빛나던 박꽃은 꿈속에서 본 듯 아른거린다. 함박웃음 머금은 듯 순박하고 순수한 꽃으로 기억된다. 달빛 아래서 유독 희어 파르스름한 빛을 발하던 박꽃, 그 박꽃이 피었던 지붕 아래 내 방이 마련된다니. 어린 날 박꽃 피던 추억 속으로 성큼 들어설 수 있겠다.

어른 한 걸음 폭의 마루에는 따사로운 햇살이 오후 나절까지 머문다. 위채 그늘에 가려 마루 끝에서부터 밀려난 볕은 지붕 끝에서 슬며시 사라진다. 누런 호박덩이가 뒹굴고, 무청 시래기가 흙벽에 걸친 줄에 치렁치렁 매달려 마르던 곳. 쓰임이 없는 소쿠리와 체 같은 생활의 흔적들은 아직도 벽에 걸려 집과 운명을 같이 하고. 마루 한쪽 끝 곳간은 찬 공기만 고였다. 나락 가마니가 아버지 가슴을 든든하게 채웠던 그곳에 고인 썰렁한 정적도 걷어 내야지.

이 아래채가 문학의 방으로 자리 잡은 건 한순간이었다. 고향 집 사진을 본 풍수 전문가는 아래채 터에 특별한 기운이 흐른다고 했다. 무심코 그 말을 오빠에게 전했더니 뜻밖의 제안을 내놓았다. ‘네 문학관을 만들면 되겠네.’ 생각지도 못한 말에 가슴이 둥둥댔다. 흙으로 만든 집은 거주하지 않으면 삭는다. 온기를 지피지 않고 보살핌이 없으면 빠르게 쇠락의 길을 걸을 것이다. 묵혀둔 집에 공기가 통하고 온기 지피면 형제들도 좋아하지 않겠는가. 감히, 문학 거장처럼 웅장한 문학관을 꿈꾸는 게 아니다. 책꽂이에 넘쳐나는 책을 옮기고, 글방 이름을 자그마한 방문 앞에 문패처럼 걸면 될 일이다. 손만 닿아도 쩍 갈라질 위태로운 흙바람 벽부터 손봐야지 싶다. 쌀뒤주는 오랜 자리에 그대로 둘 것이다. 이 뒤주만큼 어릴 적 가난을 상징하는 물건도 없을 테니.

아궁이에 불을 머금은 지 오래되어 딱딱해진 장판은 걷어 내야지. 먼지가 켜켜이 눌러앉은 마루는 쓸고 닦고, 쓰임 없어 녹슬어 가는 경운기는 알록달록하게 페인트칠하는 게 좋겠다. 색칠하는 일은 나의 손주들에게 시킬 생각이다. 마당 한쪽에 아버지가 생전에 쓰시던 농기구와 더불어 남겨두고 부모님을 추억하고 싶다.

내 아호는 서정豫靜이다. ‘펼칠, 널리 알릴 서豫’에 ‘소리 없는, 고요할 정靜’ 자를 쓴다. 나서지 않고 알리지 않고도 널리 뜻을 펼치라는 뜻으로 지인이 지어 준 아호다. 문학방에 걸 이름을 상상하며 즐겁다. 책숲 책향기 문학방 글숲 서실 책다락 글빛…. 또 글빛서정, 서정의 책다락 또는 글빛정원, 바람책방….

당호도 멋스럽겠다. 문향당文香堂, 수향재守香齋는 어떨까. 몇 평 정도 되는 작은 방 한쪽 벽에 작은 족자를 걸어도 되겠다. ‘글로 피우는 빛, 서정이 머물다’와 같은.

박꽃 피던 지붕 아래, 그 아늑한 공간에는 작은 책상과 나무 의자도 몇 개 놓고 싶다. 방이 조금씩 정돈되어 가는 동안, 마음 맞는 문우도 초대할 생각이다. 일거리 잠시 제쳐두고 소박하게 밥 지어 먹고, 달콤쌉쌀한 믹스커피를 마시고, 하룻밤은 이야기꽃을 피우리라. 창문이 희붐하니 날이 새면 아침 이슬 밟으며 산책길에 나서야지. 마을 앞 개울 건너 과수원을 따라 걷다가, 저만치 동구 밖에서 어머닐 기다리며 놀았노라고, 동심 속 얘기도 담담하게 털어놓으리라.

하릴없이 무료하면 하루에 세 번 들어오는 시골 버스를 타고 읍내로 나가는 거다. 노선 따라 산골 몇 마을을 돌아 읍내로 가는 길 곳곳에서 옛 추억도 만나리라. 나간 김에 시골 추어탕이나 소고기국밥을 먹고, 시장에 들러 시골 향취에 한껏 취해 보리라.

이런 것들이 어우러지는 공간을 꿈꾸는 것만으로도 설렘에 감싸인다. 다만, 이 모든 건 아직 실현되지 않은 꿈일 따름이다. 상상으로 그칠지도 모르는 일이다. 간절함이 지극하면 불쑥 그 꿈의 첫 삽을 뜨게 되지 않겠는가. 오지 않은 그날이 벌써 마음속에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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