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다리 소년 / 이정경
여름은 눈길 닿는 그 어디에나 출렁이는 푸른 물결이다. 녹초 우거진 푸른 공기가 무더운 삼복더위를 식혀준다. 사람들이 흘리는 땀방울은 피톤치드가 내어주는 청청한 기운에 청순하게 씻어진다.
가만히 있어도 등 떠밀려서 가고 있는 청춘의 계절 여름이다. 눈 맑아지니 마음 또한 청아해지는가. 싱그러운 푸른 잎이 지친 눈을 밝혀주니 흐린 노화가 잠시 주춤한다. 화끈한 불볕은 열정의 생기를 돋우어 결실의 매듭을 정정하게 엮어가고 있다. 나도 모르게 돋아난 푸른 날개가 높푸른 상공 하늘을 비상하게 하고, 녹색 열기 온몸에 힘 실려 푸른 가지를 뻗고 있다.
도심 속 신축 아파트에는 활기찬 젊은이들의 행보가 돋보인다. 푸른 바람 사이로 땅을 짚고 세상을 걸어 다니는 어린아이들의 눈빛이 총총하다. 해맑은 아이들 눈높이에서 웃으며 대화하다 보면 변색된 흰머리의 할머니 신분이 잊힌다. 하얗게 사그라지는 무의식 세계의 진화에 노화를 더디게 한다. 덥거나 아주 추울 때는 우리 집에 반가운 손님이 온다. 외국에 사는 손자가 여름 방학이라 몇 달 만에 집에 놀러 와서 보게 되었다. 한참 시간을 건너뛰어서 만나보면 아이의 성장이 눈에 두드러지게 달라져 있다.
코로나가 한창 심하던 몇 년 전 손자는 인터넷 게임을 즐기며 좋아하였다. 조부모 집에 가서 평소 하고 싶어 하는 게임을 실컷 하면서 쉬고 오라고 아들 내외가 태블릿을 쥐어주며 보냈다고 하는데, 할머니인 내 눈에는 게임 중독자 같아 심각한 충격에 봉착했다. 우리 아이들 키울 때는 구경도 못한 게임에만 몰두하니 놀라운 마음 금할 수 없었다. 눈만 뜨면 게임에 집중하고 앉으나 서나 게임하기에만 마음이 쏠린 것을 눈으로 목격하고 보니, 타국에서 자기 자식을 잘 키우려고 고생하는 아들 내외가 측은하게 느껴지고 화까지 울컥 올라왔다.
그런 손자가 어릴 적 책에 파묻혀 지내던 책벌레로 다시 돌아왔다. 이제 국제학교 중학생이 된단다. 게임을 못 하게 채근하던 할머니를 대하는 태도가 완연하게 다르다. 할머니 눈치를 힐끗힐끗 한 번씩 봐 가며 거슬리는 행동은 하지 않으려 하고 할머니께 자기 의사를 또렷하게 밝히며 타협을 한다. 진정으로 자기를 사랑하는 할머니의 심중을 이해하고, 사랑이 듬뿍 담긴 애정으로 와락 안아 주며 할머니 마음을 위로해 주기도 한다.
이번 방학에는 많이 달라졌다. 그동안 시간이 길게 지나온 만큼, 성큼 자란 소나무처럼 손자의 마음이 훌쩍 성숙해 보인다. 게임에 집착하지 않으니까 아파트 놀이터에 있는 작은 그네를 타면서도 행복해 한다. 외모만 아동이지 읽고 있는 영어 원문은 상급 학생에 속할 정도로 전문 서적으로 보인다. 영문과를 나온 할머니라고 무슨 내용인가 싶어 훑어보니 낯선 고유어가 많이 나오고 문장이 난해하다. 허나 손자는 태연하게 한글 책을 읽듯이 거침없이 매수를 넘기며 의연하고도 여유 있게 읽어나간다.
우와! 부럽다. 한 문장 읽으면 두 문장 잊어버리는 만학도인 할머니와는 다르게, 어린 시절의 교육 환경이 부럽고 거기에 잘 적응하여 커 가는 손자가 대견스럽다. 어린 아이들은 커 가는 과정을 지켜보며 어른들의 느긋한 기다림이 필요했구나. 아이들의 눈높이에 성숙된 어른의 안목이 받쳐주지 못하면 자칫하면 자녀 교육이 잘못되어 어긋나지 않았을까. 반듯하게 제 길을 가게끔 이끌어준 아들 내외가 고마웠다.
일곱 살 조금 넘으면 요즘은 사춘기라고 했던가. 일찍 홍역을 잘 치른 것 같다. 아이의 나이 키 높이 보다 해야 할 공부 책임량이 더 많은 현실이지만, 무탈하게 친구들과 잘 어울리며 하고 싶은 취미나 공부에 소소한 만족을 느끼며 행복한 아이로 성장하길 바란다. 자식들과 현실적으로 생활하는 거리는 멀리 있지만, 우리들 마음의 거리는 언제나 한 마음으로, 함께 어울려 희로애락을 같이 누리며 살길 고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