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FE

카페에서 / 지설완(서울 경인지부)

작성자배만식|작성시간26.06.23|조회수33 목록 댓글 0

카페에서 / 지설완

- 예측할 수 없는 삶

 

텀블러만 들고 집을 나섰다. 병원에서 차를 돌리면 평소엔 4킬로미터 떨어진 카페로 가는데, 오늘 아침은 병원 근처의 조용한 카페가 문득 떠올랐다. 토요일인지라 한적한 갓길에 주차도 가능하겠다 싶었다. 요행을 바라면 적당한 자리에 주차를 하고 카페 안으로 들어섰다. 평화롭고 한적하다.

카페에서 ‘카공족’처럼 하루 종일 자리를 차지하는 것도 아니고, 인터넷 기사 사진에서 보듯 프린터기를 설치하고 일하는 것이 아님에도, 나의 카페 순례기를 듣던 지인은 ‘그렇게 오래 앉아 있으면 민폐지.’ 한다. 그 말에 서운하지만 신경이 쓰이기는 해서, 가능한 카페보다 도서관을 이용하려고 한다. 그러나 가끔은 카페의 스런거림과 달각거림이 듣고 싶어지기도 하는 날이 있다. 엿듣지 않아도 들리는 그런 남의 삶도 궁금하다. 오늘이 그렇다.

이른 아침엔 그나마 빈자리가 많아서 마음이 편하지만, 열 시쯤 돼가면 차와 간식이 담긴 쟁반을 든 이들이 빈자리를 찾아다니는 모습에 나도 덩달아 빈자리가 있는지 그들의 시선을 따라 이리저리 둘러보게 된다.

대부분의 카페는 주말이면 붐비기 마련인데, 이곳은 오히려 평일보다 한가하다. 평화롭기까지 한 2층, 마음에 드는 자리에 차와 샌드위치를 내려놓았다. 양옆에 벽으로 막혀있어 아늑한 자리다. 앞으로 토요일마다 이 자리에서 글을 써야겠다는 야무진 생각했다. 이층엔 나와 외국인 한 사람뿐이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젊은 여성이 어린아이와 함께 들어왔다. 주스와 아이스커피, 간식이 담긴 쟁반을 들고 “무겁다” 하고 말하면서 자리를 찾는다. 나는 다시 책 내용을 따라가고 있었다. 그러다 문득 아이의 목소리가 들렸다. 영어를 읽고 있다. 귀여운 발음에 절로 내 귀가 딸려갔다. 책을 읽다가도, 아이의 목소리에 귀 귀울이다가를 반복했다.

문득 아이 엄마의 목소리가 들린다. 처음에는 상냥한 목소리였는데 시간이 흐를수록 신경질적인 짜증이 서서히 시간과 비례하고 있었다. 꼬마가 집중력이 흐트러지기 시작했나 보다. 어른인 나도 이삼십 분 집중하기 어렵다. 저 작은 아이가 벌써 한 시간 가까이 공부를 하고 있다니 대견하면서도 안쓰러웠다.

고개를 빼고 소리 나는 방향을 바라보았다. 아이의 얼굴을 보이지 않고, 엄마의 뒷모습만 보였다. 아이가 틀리게 읽는지, 엄마는 싸늘한 말투로 다시 읽으라고 한다. 아이는 더듬거리다가 엄마의 다그침에 아이는 쉬고 싶은 마음은 포기한 듯, 기계처럼 읽는 소리가 가지런해졌다.

언젠가 TV에서 봤던 어린 남매가 등장하는 예능 프로그램이 생각난다. 외국 시장에서 남매는영어로 의사소통을 하면서 물건을 샀다. 그 장면을 보는 한국의 많은 학부모들은 ‘내 아이도 저렇게 되면 좋겠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러니 요즘 젊은 엄마들이 카페에서 영어 학습지를 펼치고 아이를 가르치는 모습을 자주 보게 되는 것 아닐까. 또한 00동 ‘7세 고시’ 이야기도 사라지지 않는 이유이기도 하다. 능력자들은 자녀가 어릴 때 영어권에서 한동안 살다 온다. 그 박탈감도 만만치 않으리라.

드라마 ‘라이딩 인생’은 00동의 ‘7세 고시’를 앞두고 벌어지는 학부모들의 욕망과 질시, 치열한 경쟁을 그린 이야기이다. 본래의 뜻이 변질된 ‘라이딩’은 아이를 학원이나 병원, 상담센터 등으로 실어 나르며 차 안에서 보내는 생활을 말하는 것으로 유행어가 되었다.

친구들과 자유롭게 뛰어놀아야 하는 시기에 좁은 공간에서 영어 학습을 하느라 놓치는 것들이 얼마나 많을까. 그렇게 달리는 인생의 종착지는 어디쯤인가. 자신을 내던지는 그들의 고군분투가 안쓰럽다. 그렇게 보내지 않은 아이는 원하는 미래를 얻지 못할까. 인생은 예측할 수 없다.

노트북을 닫았다. 테이블 주변을 정리하고 쟁반을 들고 일어섰다. 젊은 그들은 예측해서 계획하는 대로 살 것이고, 나는 지금 여기에서 이 순간을 살아야 한다. 목을 좌우로 움직여 보고 어깨를 편다. 카페 문을 여니, 나뭇잎 사이로 반짝이는 햇살이 어른거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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