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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 화분을 채우며 / 허혜연(서울 경인지부)

작성자배만식|작성시간26.06.23|조회수35 목록 댓글 0

빈 화분을 채우며 / 허혜연

 

별일 없으면 베란다에 머무는 시간이 길어졌다. 그곳에서 자라는 식물을 보기 위해서다. 인도고무나무와 콩고, 레인보우처럼 큰 식물을 중심으로 나무와 꽃을 닮은 다육이가 있다. 오랜 시간 나와 함께 한 그것들을 보는 일은 행복한 일이다. 작은 그릇에서 식물이 넘치게 자라는 것은 경이로운 우주와 같다. 아파트로 온 그들은 나의 손길을 기다렸다. 내가 물과 공기와 햇빛을 마음가는 대로 결정해 전해 주었다. 자연이 아닌 이곳에서는 어쩔 수 없는 일이다.

화초를 좋아하지만 초기엔 생태에 맞는 환경을 조성하지 못해 병이 들거나 갈무리를 못해 겨울을 넘기지 못했다. 빈 화분이 늘어 가는 걸 보면서 안타까웠다. 그럴 때면 남은 식물들을 잘 관리하자고 다짐했다. 남은 것들은 제때 물을 주지 않아 잎이 마르거나 생각날 때 턱없이 물을 많이 주어도 끈질기게 살아남아 제대로 모양새를 갖췄다. 얼마 전 친정에서 가져 온 화분 몇 개가 더해졌다. 빈티지한 화분 옆으로 토분 몇 개와 자기로 된 작은 화분이 올망졸망하게 어울렸다. 친정에서 온 것은 황금가시 선인장을 제외하면 나머진 비어 있다.

친정에는 부모님만 계신다. 철새들처럼 모두 떠난 빈 둥지를 지키는 일은 부모님 몫이다. 친정엄마는 무릎 수술을 거듭해 다리가 불편하다. 두 분은 소일거리로 텃밭을 가꾸신다. 그것은 또 다른 행복이라 말한다. 잠시 다니러 간 우리가 돌아오는 날엔 무언가 남기고 갈까 분주히 챙겼다. 미리 거두어 둔 것 외에 채소들이 있는 곳을 일러주었다. 우리에게 다 사 먹어야 하니 하나라도 더 가져가라며 재촉했다. 부모님은 그렇게 텃밭을 비우고 채우신다.

키운 작물을 거두는 일도 쉬운 일은 아니다. 나는 바구니를 들고 텃밭으로 나섰다. 텃밭머리에 비를 맞은 선인장이 보였다. 이슬이 맺힌 황금가시가 아침햇살에 빛나고 있었다. 이전엔 실내에 있던 것인데 어째서 여기 있을까 의아해 둘러보았다. 크고 작은 빈 화분들이 옹기점처럼 진열되어 있었다. 우리는 기념일이나 이사, 계절 따라 즉흥적으로 들여 놓은 화분을 감당하기 힘들면 친정에 가져다 놓았다. 부모님은 우리들의 빈자리를 메우는 것처럼 화분을 거두어들였다. 화초들은 부모님 손길에 잘 자라기도 하고, 수명을 다한 식물은 정리되어 빈 화분으로 남아 있었다. 각각의 사연을 가진 것들이다. 마음이 가는 화분 몇 개를 골랐다.

빈 화분을 보며 어떤 식물을 심어야 할지 생각하는 즐거움도 있다. 큰 빈티지 화분엔 란타나를 심어서 색깔이 바뀌는 꽃을 감상해 볼까, 헝클어진 줄기가 멋진 실달개비를 심을까. 내가 아는 화초들의 이름과 모양을 떠올렸다. 내 생각의 식물들은 벌써 자라 꽃이 피고 열매를 맺었다. 화분에 맞는 식물이나, 공기를 정화시키는 식물 등을 인터넷으로 검색하며 꽃집을 기웃거렸다. 각기 다른 매력으로 다가오는 식물들이 보란 듯이 곱게 단장하고 줄지어 있었다. 크고 현란한 꽃들 속에 앙증맞고 아련한 작은 꽃들도 매력이 있다. 다육이 종류는 물을 자주 주지 않아도 되니 키우기 편하다. 고심 끝에 몇 개를 골랐다.

새로 온 식물들 속에 선인장의 황금가시에 눈길이 머문다. 친정에서 위엄을 뽐내던 것이었다. 어느 날, 친정아버지가 발을 헛딛고 넘어지며 손을 짚은 것이 화근이었다. 손에 가시가 박힌 채 며칠 전전긍긍하다 병원 신세를 지셨다. 선인장은 텃밭머리로 밀려났다. 미운 털이 박힌 선인장을 내가 가져 오기로 했다. 차마 내 던져버리지 못한 걸 거두니 다행이라 여기셨을까. 아버지는 딸이 혹여 두고 갈까 현관 앞에 미리 가져다 놓으셨다.

선인장이 담긴 화분도 화해의 동병상련인지 금이 가 있었다. 빈 토분에 선인장을 옮겨 심었다. 베란다에 놓고 애증의 눈길로 보고 있다. 자주 보다 보니 가시가 부드러워 보이면서 사랑스럽다. 어릴 적 자상하고 세심한 반면 성격이 불같은 친정아버지는 맏이인 내게 유독 엄격하셨다. 동생들의 본보기였다. 비슷한 성격의 나와 날카로운 가시로 부딪힌 때도 있었다. 지금의 아버지에게 선인장의 가시 같은 모습은 사라진지 오래다. 세월의 흔적처럼 나도 닮아간다.

동그란 화분 네모난 화분, 높낮이와 크기가 다른 화분들은 사람의 군상을 보는 것 같다. 그 속에서 적응하며 살아가는 식물들은 화분 크기만큼의 뿌리를 내리고 그만큼의 생을 살다간다. 사람도 같은 모양이면 아집을 버리고 자기 분량만큼 살아간다면 다툼이 없으려나. 집들이나 생일 선물로 주고받았던 화분마다 가족의 추억이 깃들어 있다. 그것들은 기쁘거나 슬픈 마음을 온기로 채워주었다. 화분의 본분은 식물을 품는 것이다. 식물을 심은 화분에 물을 주었다. 물을 머금은 식물들이 기지개를 편다. 어쩌면 우리의 삶도 인생의 빈 화분을 채워가며 가꾸는 일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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