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운 내 고향 / 김대자
낙엽이 지는 가을이 다가오니 왠지 고향이 그리워진다. 객지 생활에 분주하다 보니 마음속으로는 고향을 애절하게 그리워하면서도 오랫동안 가보지를 못했다. 반가워해 줄 부모님들도 모두 세상을 떠나셨고, 가까이 지내던 친인척들도 흘러간 세월만큼이나 멀어져 버렸다.
두루봉 산이 껴안은 듯, 양지바른 산자락에 자리한 내 고향 함평군 손불은 너무나 아늑하고 평화스럽기만 했다. 내가 태어나서 잔뼈가 굵은 요람이니 어찌 그립지 않겠는가?
고향에서 20여 년을 살았고 객지 생활 50년이 넘었지만, 아직도 고향에서 농사짓고 친구들과 어울리던 일이 생생하기만 하다. 순수하고 아름다운 인심 속에 천진난만하게 자랐기에 아직도 객지 생활에 적응을 잘 못하고 종종 짙은 향수에 젖곤 한다.
이렇게 고향을 사모하면서도 귀향이 어려운 것은, 남겨둔 근거가 없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두 팔 벌려 반갑게 맞아 줄 부모님이 계시든지, 일가친척이라도 있다면 상황은 다를 것이다. 피곤한 몸 이끌고 가서 허물없이 벌렁 누울 집이라도 있든지 아니면, 둘러볼 논밭이라도 있었던들 고향을 찾지 않고서는 못 배겼을 것이다.
오랜만에 작년 추석에는 객지에 흩어져서 살고 있는 형제들에게 전화해서 고향에 찾아갔다. 가을이라서 들녘 이곳저곳에서는 가을걷이가 한창이었다.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 속담처럼, 모처럼 찾은 고향 산천은 변해도 많이 변했음을 실감했다. 부모님이 사시다 두고 간 겨우 20평 남짓한 폐가만이 흉물스럽게 남아있었다.
버선발로 뛰어나와 반갑게 맞아 줄 부모님 대신에 빨간 고추잠자리 한 마리가 사립문에 앉아 기다리고 있었다. 뼈대만 앙상히 남아 있는 집터 주변에는 잡초만 무성했고, 어머님이 맛 자랑하시던 장독 위에는 먼지만 자욱했다. 돼지우리 지붕 위에는 돌호박이 넝쿨을 뻗고 올라가 여기저기서 배꼽을 보이며 Ⅹ세대들의 배꼽티를 대변했다.
집터 여기저기에 심어놓은 감나무며 대추나무가 주인을 기다리고 있었지만, 어느 누가 따 가는 이도 없고 쳐다봐 주는 이도 없이 알몸을 드러내 놓은 채 파리떼에 시달리고 있었다. 이름 모를 잡초가 피워 올린 꽃들이 자태를 뽐내며 하늘거리고 있었다.
우리 형제들은 흉물스러운 폐가를 돌아보면서 이곳저곳에서 부모님의 숨결을 느꼈다. 어머님이 드나들던 곡식 창고의 자물쇠통마저 녹이 슬어 열리지를 않았다. 어렸을 적 엄마 몰래 뛰어넘어 밤마실 나가던 담장이 허물어져 가는 것을 볼 때 그동안 세월도 많이 흘렀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동생들의 옷가지며 기저귀를 빨아 널던 빨랫줄에는 참새들의 발 때가 까맣게 묻어있었다. 조상들의 발자취가 있고 어릴 적 정열을 발산하며 꿈을 키웠던 고향을 오랜만에 찾아왔으나 허전하기만 했다. 모처럼 찾은 고향,
“고향이 그립지 않더냐?”
“왜, 그리도 외면하고 살았더냐?”라고 뾰로통한 모습이기에,
“와보지 못한 고향이 더 애절하게 그립더라.”고 혼잣말로 마음을 달래 보았다. 고향, 고향은 어떤 미사여구로 단장하여도 다 표현할 수 없는 곳이다. 사람은 꿈을 꾸어도 고향에서의 꿈을 꾸고, 낭만과 선망의 대상이었던 여인들도 꿈을 통해 고향에서 만나는데 아직도 고향을 멀리하고 사는 실향민들의 마음인들 오죽하겠는가?
유년의 고향이 아니라도 좋으니 고향 갈 수 있으면 좋겠다며, 꺼져 가는 생명줄 붙잡고 망향의 한을 달래는 저들에게는 언제쯤이나 사과, 배 사 들고 고향 갈 날이 오려나? 우리의 영원한 고향은 어디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