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귀인전崔貴人傳 - 이정숙 / 2024. 1. 제267호 신인상 수상작

작성자홍윤선|작성시간24.01.10|조회수152 목록 댓글 3

최귀인전崔貴人傳 / 이정숙 (2024. 1.)

 

 

귀인의 본명은 선이다. 성과 함께 부르면 고유명사라기보다 보통명사로 인식되기에 십상이다. “최선을 다하겠습니다.”이게 최선입니까?”처럼, 세간에 무시로 회자되는 낱말 최선과 동음이의어이다. 나 역시 남편에게서 귀인을 소개받았을 때, 동호회에서 불리는 별칭이거나, 교사라는 직업과 관련하여 최 선생님을 줄여 부르는 말 정도로 생각했다.

 

귀인의 출생과 성장 과정은 자세히 알 수가 없다. 본시 과거에 연연하거나 왕년의 행적을 과시하기보다 현재의 지락至樂을 중시하는 성정이라 몰두 중인 취미나 즐거움에 관하여 대화하기에도 시간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지나가듯이 듣게 된 일화 한 토막으로 성격 형성의 근원을 짐작해 본다.

우리 아버지가 상놈의 교육을 하셨기 때문에 지금도 나는 언니나 오빠에게 공손히 존대하지 않아요.”

상하 관계가 중시되는 유교적 훈육을 탈피한 평등주의 교육관의 수혜를 입었다는 의미일 것이다. 그 때문인지 몇십 년 교분을 이어 온데다 연배로도 조카나 막냇동생뻘이 될만한 남편에게 반말하지 않을뿐더러 이름 뒤에 을 붙여 호칭한다. 그의 배우자인 나에게 정숙 님이라고 부를 때도 거리감이 생기기는커녕 친근함이 인다. 흔히 예의라는 말을 들었을 때 떠오르는, 틀이 명확하게 정해진 경직성 대신 자연스레 몸에 밴 배려를 느끼게 하는 까닭이다.

 

남편은 청년 시절부터 마라톤 동호회 활동을 꾸준히 하여 굵직한 대회마다 참가하여 완주하였다. 대회가 없을 때는 체력 단련을 위해 동호회 안에서 결성된 모임인 토요일 달리기(토달)’, ‘일요일 달리기(일달)’에 수시로 참여하는 것은 물론이요, 주중의 수달목달’, 심지어 크리스마스에도 크달에 출석할 정도로 혈기왕성한 한때에 세상 곳곳을 뛰어다녔다. 그 이십여 년의 세월 속에도 귀인께서 계시었다.’ 어떤 시인은 나를 키운 건 팔 할이 바람이라고 말했지만, 남편의 멘토로서 그의 정신적 성장에 크게 일조한 사람은 최 귀인인지라 극존칭으로 존경을 표하는 것은 나로서 당연한 일이다.

 

이런 인연으로 최 귀인은 우리의 결혼식 주례를 흔쾌히 맡아주었다. 내가 결혼한 뒤에 강산이 이미 한 번 바뀌고 두 바퀴째 도는 중이다. 그사이에 결혼식 풍속도 사뭇 달라졌다. 주례사를 부모의 덕담이나 언약을 낭독하는 것으로 갈음하고, 하객도 절친한 관계 위주로 초청하는 요즘의 문화를 목도하노라면 나 역시 옛날 사람이 되었다는 생각이 절로 든다. 나의 경우 당사자끼리의 의논으로 결혼 택일을 하여 부모님 마음을 상하게 한 죄가 있어 결혼식만은 혼주의 눈높이에 맞추어 드리리라 생각했다. 버스 터미널에서 멀지 않은 예식장, 뻔하지만 무난한 웨딩 뷔페, 축의금을 갚으러 온 부모님 지인과 친인척이 하객의 대다수를 차지한 보통의 결혼식에서 여성의 주례사는 유일하게 튀었다. 신부 입장 직전 예식 도우미가 일러둔 몇 가지 조언 중 하나가 떠오른다. 아버지의 손과 웨딩드레스 자락을 잡는 법과 같은 자잘한 팁을 알려 주며 단상 앞에서 시선을 주례 선생님의 넥타이에 두라는 것이었다.

어머, 여자 선생님이시네요!”

도우미가 놀란 듯이 속삭이며 넥타이 매듭이 위치할 만한 곳을 보라고 정정했다. 주례사를 남자가 하든 여자가 하든 무엇이 중요할까마는 관습이나 의식이 세상 변한 만큼을 바로 따라가지 못한 탓인지 특이하다는 반응이었다. 그러면 부모님들은 어떠하셨을까. 내놓고 말씀하지는 못하지만, 은연중 봉건적 인식을 표출하시고야 마는 시부모님들도 귀인의 주례만큼은 쌍수 들고 환영했다. 그간 쌓아온 정리情理를 통해 그 됨됨이를 알아본 덕분이리라. 최 귀인의 덕성을 치하하면서도 그런 귀인을 만나 교분을 이어온 아들의 바른 성품 또한 짐작할 만하다는 일거양득의 칭찬을 지금껏 이어가고 계신다.

 

결혼식 주례를 일회적인 행사로만 생각하지 않고 한 쌍 부부의 결혼 생활을 끝까지 책임지기라도 할 심산이었을까. 귀인은 화목하고 단란한 가정을 꾸리는 것에 물심양면의 베풂을 마다하지 않는다. 고양이 흰둥이를 입양했을 때 흰둥이에게 필요한 것을 마련하는 데 쓰라며 금일봉을 하사하였으며, 내가 수필 창작 교실에 등록했다는 사실을 전해 듣고는 문우들과 사귐을 위해 커피값을 쾌척하는 등의 섬세한 마음 씀은 최근의 일이기에 잊을 수도 없고 잊어서도 안 된다.

 

더 큰 베풂은 사실 따로 있다. 직장생활 중 업무와 관련된 깊이 있는 지식의 필요성을 절실히 느낀 남편이 대학원 진학을 결심했을 때 귀인은 누구보다 기뻐해 주었다. 그와 동시에 석박사 과정에 드는 학비 일체를 보내주었다. 매 학기 장학금을 수여하는 기쁨도 크겠지만 언제 어떻게 될지 모르는 게 사람의 일이니 한꺼번에 수여하게 된 것을 이해하라는 말과 함께였다. 박사 학위를 받게 되면 더없이 좋겠지만 그러지 못하더라도 지식을 얻는 즐거움을 누린다면 그것만으로 족하다는, 어찌 생각하면 부모나 형제간에도 쉽사리 낼 수 없을 만큼 대가를 바라지 않는 마음에 남편의 눈가가 붉어졌다.

 

광에서 인심 난다.’라고들 하지만 풍요하다고 해서 늘 기쁘게 나누기가 쉽지만은 않은 일이다. 귀인은 형편이 어려운 학생들에게 꾸준히 기부해 왔으며 시각 장애인 달리기 교실 봉사 등 무수한 봉사활동을 거쳐 현재 머무르는 경기도 가평의 실버타운에서도 버킷리스트를 하나씩 실천해 나가고 있다. 빈터에 꽃 심기, 공원에 그네 기증하기, 해마다 인근 도서관에 도서 100권 기증하기 등 그때그때 떠오르는 일과 시일이 걸리는 일을 수행하느라 항상 분주하다. 귀인은 말한다.

하느님이 내게 마라톤을 하게 하신 것은 달리는 시각 장애인의 눈이 되라는 뜻이며 가평으로 부르신 이유는 특별히 그곳의 소외된 아이들을 소개하기 위함이었어요.”

자신의 소명뿐만 아니라 교편을 잡고 있을 당시의 학부모 팬클럽과 만남을 위해, 좋은 사람들과 차담을 나누기 위해서 가평과 부산을 수시로 오고 간다. 귀인의 체력과 건강을 걱정하는 나에게 남편은 말한다.

최선 누님은 당신이 걱정할 만한 평범한 사람이 아니야. 히말라야 등반을 동네 뒷산 다녀오는 것처럼 말씀하는 분인데.”

귀인이 즐기는 여행은 고생바가지여행이다. 걷기만도 벅찰 산티아고 순례길을 짐이 가득한 배낭을 메고 여러 날에 걸쳐 걷는가 하면 K2 등정만도 한두 번 해낸 게 아니다. 조금 편했던 여행길이 노르웨이 피오르 트레킹 정도라 할까. 귀인을 존경하지만, 함께 여행할 생각은 추호도 없음을 미리 밝혀 두는 바다. 물론 세월의 흐름에 근력이 쇠하여, 온천 여행과 같은 휴식을 원하는 때가 온다면 또 모를까. 세상 어느 것 하나 장담할 수 있는 것이 없다지만 그날이 와도 귀인의 체력이 나보다 월등할 거라고 조심스레 점쳐 본다.

 

매인 데 없이 실로 바람 같은 영혼의 소유자, 백범 선생이 주창했던 꽃을 심는 자유를 누리는 진정한 자유주의자, 나로서는 손 닿을 수 없는 차원에 존재하지만, 그림자만이라도, 혹은 진정 축하해주고 싶게 만드는 깔끔한 자랑의 방식마저 흉내 내고 싶어지는 인생의 스승을 감히 나의 귀인이라 칭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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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홍윤선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24.01.10 이정숙 선생님, 신인상 수상을 큰 박수로 축하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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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변종호 | 작성시간 24.01.11 신인 답지 않은 탄탄한 등단 작품에 놀랐습니다. 지면에서 좋은 작품 고대합니다.
  • 작성자김정화 | 작성시간 24.01.11 필력이 대단하군요. 이정숙 신인의 행보를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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