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혼자 가실과의 약속을 지킨 설 처녀 이야기

작성자배만식|작성시간26.04.29|조회수27 목록 댓글 0

삼국사기와 비슷한 내용의 완도군 설 처녀 설화

전라남도 완도군에 전해지는 설 처녀 설화는 김부식이 편찬한 『삼국사기(三國史記)』(1145)의 열전 설씨조에 실린 이야기와 매우 유사한 형태이다. 설화의 구성과 내용을 비롯하여 등장인물들의 이름까지 똑같이 설정되어 있다. 다만 삼국사기에서는 설 처녀의 아버지가 군대에 징집되었다는 내용이었지만, 설 처녀 설화에서는 장보고 장군과 함께 해적을 토벌하기 위해 전쟁에 참여한다는 내용으로 구체화되어 있다. 이는 문헌에 실린 설 처녀 설화가 완도의 지역적 특성에 맞춰 변이하여 전해지는 것으로 보인다.

 

아버지 대신 전쟁에 나간 가실을 7년 동안 기다린 설 처녀

옛날 청해진에 가난한 어부였던 설씨 노인이 아름다운 딸과 함께 살고 있었다. 그때 청해진은 해적이 침입하여 사람들을 끌고 가서 노예로 파는 일이 자주 일어났다. 이 모습에 화가 난 장보고 장군은 해적을 토벌하기 위해 마을 남자들을 뽑아 황해까지 싸우러 갔다. 어느덧 늙은 설씨 영감 차례가 되었다. 설 처녀는 늙은 아버지가 전쟁터로 나간다는 것이 너무 슬펐지만, 자신이 대신 갈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설 처녀가 걱정으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을 때 같은 마을에 살고 있던 가실이라는 청년이 그녀의 집을 찾아왔다. 오래전부터 설 처녀를 짝사랑했던 가실은 설씨 노인을 대신해 자신이 전쟁터에 가겠다고 했다. 설씨 노인은 가실의 제안이 정말 고마워 자신의 딸을 짝으로 주겠다고 했다. 가실은 “낭자, 내가 전쟁터에서 꼭 살아올 것이니, 우리 그때 혼례를 올립시다.”라고 했다. 그러자 설 처녀는 자신의 품속에서 구리거울을 꺼내 반으로 나눈 후 한쪽을 가실에게 주었다. 이후 가실은 장보고 장군과 함께 전쟁터로 떠났다.

 

약혼자 가실과의 약속을 지킨 설 처녀

 

그렇게 시간이 흘러 어느덧 7년이라는 시간이 지났다. 노인은 가실을 기다리며 7년 동안 과부처럼 지내는 딸을 보니 안쓰러웠다. 그래서 노인이 “딸아! 7년 동안 돌아오지 않는 것으로 보아 가실이는 죽은 것 같구나. 이제 그만 기다리고 다른 곳으로 시집가는 것이 좋겠다.”고 했다. 그러나 설 처녀는 울면서 그럴 수 없다고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설씨 노인은 설 처녀에게 말도 안하고 다른 총각과 결혼할 날짜를 잡아버렸다. 설 처녀가 원하지 않는 결혼을 하는 날, 드디어 가실이 고향으로 돌아왔다. 7년이라는 시간 동안 전쟁터에 시달렸던 가실은 예전의 모습을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초췌한 모습이었다. 

 

가실은 설씨 노인의 집으로 가 자신이 돌아왔다고 했으나, 설씨 노인은 “어디 거지 같은 행색으로 가실 행세를 하느냐?”라며 쫓아내려 했다. 이 소리를 들은 설 처녀가 놀라 방에서 나왔고, 가실이 지금까지 고이 간직해왔던 거울 반쪽을 꺼내자 설 처녀는 자신이 갖고 있던 거울 반쪽에 맞춰보니 딱 맞았다. 그렇게 두 사람은 7년 만에 다시 만났고, 기쁜 마음에 끌어안고 엉엉 울었다. 이리하여 두 사람은 혼례를 올렸고, 행복하게 잘 살았다고 한다. 지금도 완도의 나이든 사람들은 ‘가실가실하게’라는 말을 쓰는데, 이 말은 가실과 설 처녀의 너무도 힘들었던 만남에서 비롯되었다고 한다.

 

신의의 중요성을 담은 이야기

설처녀 설화는 약혼자 가실과의 신의를 굳게 지킨 여인의 이야기로, 남녀 간의 혼인 약속을 중심으로 효(孝), 열(烈), 신의(信義)의 가치를 드러내고 있다. 설 처녀는 효와 열의 가치를 무조건 따르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의지와 신념에 따라 행동하고 있다. 설 처녀는 효를 실천하지만, 아버지의 뜻이라 하더라도 바르지 못한 행동을 교정하는 주체적인 면모를 보인다. 또한 가실과의 혼인은 자신의 의지에서 비롯된 것은 아니지만, 아버지를 대신해 전쟁에 참여한 가실을 기다림으로써 효와 정절의 이중적 가치를 표상하고 있다. 즉 설 처녀는 인간의 보편적 윤리인 신의를 강조하며, 효와 열도 함께 지켜 내는 모습을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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