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
"성경 기록의 영역"
단정적으로 내가 이해하는, '그 신앙에서 '복음을 전한다'는 표현이 담은 의미는, 곧 '성경을 기록하는 것과 진배가 없다.' 그러기에 그런 사람들이 기록한 내용을 복음서라고도 하는 이유다. 물론 그 복음서 라는 명칭은 그 저자 본인이 붙인 것은 아니고, 후대에 성경을 기독교 경전으로 만든 사람들이 붙인 것이라고 해야 한다. 곧 다른 성경들도 일종의 그런 복음서라고도 할 수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물론 그것을 읽는 사람들 대부분은 아직 그 의미를 제대로 모르기에 선뜻 동의 하기 어렵겠지만, 실은 '그런 의미를 제대로 아는 것이 그 신앙의 완성'이기도 할 것이긴 하다. 그것이 곧 '그 신앙의 두 단계'이기도 하고, 그 수준이며 역시 그 영역 또는 그 차원이라고도 표현 할 수 있다. 그런 면에서 '복음을 전한다'는 표현이 가지는 의미의 그 내용은, 절대 그리 쉽지 않은 것이기도 하다. 성경 기록의 수준이다.
문제는 대부분의 신자라는 사람들의 인식이, 복음을 전한다고 하면, 그저 기독교를 포교하는 정도로 이해하는 것처럼 보인다는 안타까운 현실이다. 사실 '복음은 이미 기독교인 된 자들에게 전하는 것이고, 그것도 그런 사람들 중에서도 '심령이 가난한 사람들'에게 전해야 하는 것'이기도 하다. 즉 '말씀의 표면적 곧 그 표현을 넘어, 그런 표현이 담은 그 진정한 의미를 알고 싶어하는 사람들'에게 전해야 한다'는 의미다.
그런 면에서 '복음화란, '한 개인의 전인적 신앙화'와 같은 의미'라고 해야 한다. 즉 '복음화 된 사람'이란, 곧 '그 시대 그리스도가 된 사람'이기도 하다. 그런 사람만이 거짓 증거가 아닌 진정한 복음을 전한다. 그야말로 그 전도자 곧 '도(道)를 전하는 사람'이다. 즉 '성경의 표면(표현)적 의미가 아닌 그 내면 아니 그 중심 곧 그 진정한 영적 의미 곧 '하나님의 뜻'을 전하는 것'이다. 영원 차원의 의미와 내용을 전한다.
물론 그 전하는 형태는, 성경이 그렇듯이, 역시 그 존재적 표현으로 할 수 밖에 없기에, 어렵지만 우리가 아는 역시 상징과 비유를 동원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기도 하다. 그 이유도 분명한 것이, 그 영원이라는 차원은 존재적으로 표현할 수 있는, 그 어떤 방법도 형태도 없기 때문이다. 그러기에 존재적인 것들을 상징과 비유로 묘사하는 것이 최선이기도 하다. 물론 그 이해는 역시 은혜다. '알 사람이 안다'고 하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