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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목사 말씀 나눔

복음, 거짓으로 참(진리)을

작성자오랜기다림|작성시간26.06.17|조회수3 목록 댓글 0

[복음]

"거짓으로 참(진리)을"

'복음을 전한다'는 것은, 물론 상징적이고 비유적이지만, 위의 부제처럼 '거짓의 것으로 그 참 곧 진리 다르게는 그 뜻 또는 원리를 이해하도록 설명하는 것'이라는 이해다. 즉 거짓 것이 반드시 있어야만, 그것을 근거로 참 곧 그 거짓의 참 의미 곧 그 내용 또는 그 진리를 설명할 수 있기 때문이다. 즉 우선 성경에서 거짓이란, 우리가 존재적으로 이해하는 그런 것과는 다르다. 곧 '거짓이란, 그 진리를 알려 주기 위해, '존재적으로 표현'하는 것을 통틀어 하는 말'이다. 즉 그 참이란, 원래 존재적으로건 아니 무엇으로건 표현이 불가능한 영역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역시 문제는 우리 존재인 인간들은, 그런 존재적인 표현이 아니면, 역시 알 수 조차 없기도 하다.

바로 그런 서로 간의 불통을 위해, 그나마의 소통을 위한 방법이, 곧 그 거짓 또는 형태적으로는 우상이라고도 하는 것들을 이용해서 표현을 한다는 것이다. 즉 그 영원의 표현을 거짓 이라고 하는 것이다. 즉 이런 영원이란 표현도 그 자체로는 바로 '그 거짓의 예'가 된다. 그 대표적인 것이 곧 성전이기도 하고 율법이기도 하다. 즉 형태를 가졌고 존재적 언어로 표현하기 때문이다. 그러기에 비록 거짓이란 존재적 표현을 하지만 그 의미로는 긍정적인 것이고 어쩌면 꼭 필요한 것이기도 하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부정적 표현이기도 하다. 그것을 긍정적이고 역시 꼭 필요한 것이 되려면 반드시 그 다음으로 '이차적 은혜'가 있어야 한다. 곧 복음이다.

곧 복음이란 반드시 그 첫 번째 은혜로 주어진 그 거짓이나 우상이란 표현으로 등장한 그런 것이 전제되어야만 한다. 곧 율법 곧 성경이고 그 전에는 성전이기도 하다. 하긴 그런 면에서 우리 모든 존재적인 것들이 거기 해당하기도 한다. 그 상징적 개념의 가장 대표적인 것이 곧 그 예수이기도 하다. 그러기에 그 예수를 성경이 '죄의 모양이라거나 율법 아래 왔다'고도 묘사하는 이유다. 그리고 역시 그 예수가 결국은 죽어 없어져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왜냐하면 것도 결국 존재의 형태이기 때문이다. 곧 그 영원적 본질인 그리스도 곧 성령으로 그 형태가 없는 것으로 남고 그 껍데기 인 형태 곧 거짓 것은, 죽는 것으로 사라지는 것이다. 당연한 처사다.

즉 우상으로 그 본질인 그 영원 다르게는 그 하나님을 알면 그 형태인 우상은 버린다고 하는 것과 같은 의미다. 그 때는 그 하나님과 하나가 된다고도 묘사한다. '그리스도란 곧 그렇게 그 영원 곧 하나님과 하나 된 존재'이기도 하다. 요한의 표현대로 '말씀 육신'이다. 그러기에 우리 존재인 인간은 언젠가는 죽는다. 자연스러운 결과이기도 하다. 그래야 존재적인 것은 사라지고 진정한 그 영원이 되는 것이기도 하다. 복음은 바로 그렇게 필요한 것이다. 그러기에 반드시 거짓 것이 전제되어야 하고 그것을 근거로 그 본질 즉 왜 그렇게 거짓 것을 동원했어야 하는 지를 알고, 그것을 통해 그 진의 곧 진리를 깨우쳐, 결국 그 하나가 되게 하는 것이다.

사실 성경은 온통 그 이야기가 그 내용이다. 그것을 성경을 기록하는 사람들마다 서로 자기 표현대로 묘사했기에, 그렇게 당연한 책들이 등장하는 것이다. 사실 그 여러 다양한 책들 중에서 오직 한 권 만이라도 제대로 이해하면 실은 성경 전체를 다 아는 것이기도 하다. 실은 그 한 권 중에서도 그 핵심 내용만 제대로 이해하면 마찬가지의 결과다. 개인적으로 사실 나는 성경의 첫 시작이라고도 할 수 있는 창 1:1이 곧 성경 전체 내용의 요약이라고도 이해한다. 곧 다른 부분들은 결국 그 요약 내용을 다시 설명하는 것이라는 이해다. 그리고 바로 그것이 그 복음의 골자이기도 하다. 즉 복음 이해로만 이해되는 내용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자유 안식 완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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