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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목사 말씀 나눔

사랑, 신앙에서 사랑의 의미, 복음

작성자오랜기다림|작성시간26.06.18|조회수2 목록 댓글 0

[사랑]

"신앙에서 '사랑'의 의미, '복음'"

사실 '복음을 전한다'는 것은, 한편으로는 '신앙이나 성경의 용어 해설'이기도 하다. 무슨 말인가 하면 늘 강조하지만 '신앙의 본질은 그 영원이라는 개념 이해'에 있다. 즉 존재적이 아니라는 의미다. 그런데 문제는, 우리가 그 신앙은 전부 예외없이 '존재적으로 표현하고, 그렇게 유통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하긴 이런 표현도 이해 못할 사람들이 상당할 것이긴 하지만, 어쨌거나 '존재인 우리가 그 영원이라는 그 신앙을, 그 영원으로가 아니라 존재적으로 이해하고 있다'는 의미다. 만약 그렇다면, 그 신앙은 그 신앙이 아니라는 의미가 된다. 그저 '종교적 열심'일 뿐이다. 곧 성경이 예수 당시 유대인 대부분과 그 중에서도 엘리트라고 자부하던 바리새인들의 모습을 그 내용으로도 삼아, 보여주는 중요한 지적이기도 하다. 곧 '그들이 그 정도라면 너희는 말해 무엇하겠는가' 하는 의미가 된다.

무슨 말인가 하면, 이처럼 '존재인 우리는 본질적으로 그 신앙을 이해하는 것이 거의 불가능하다'는 것을 분명하게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는 의미다. 우리 존재의 한계와 운명이 그렇다. 즉 존재란 그 존재의 차원에서만 그나마 무언가를 알 수 있고, 역시 교류할 수 있다는 한계를 말한다. 그것이 우리 존재의 운명이다. 그런 면에서 그런 존재와는 전혀 다른 차원이라고 해야 하는, 그 영원이란, 우리로서는 알 수 있거나 아니 아예 접근 조차도 불가능하다는 지적이다. 사실 그래서 등장하는 것이 종교다. 다르게는 율법이라고도 표현한다. 곧 그런 존재인 인간에 의해서, 나름 개발된, 그 영원을, 그나마 접근하고 알 수 있게 하는, 일종의 틀 곧 형식이다. 역시 존재와 영원 사이에 일종의 소통 방식 곧 '그 영원과 존재의 연결 고리'라고도 할 수 있다. 실은 그것도 실로 큰 은혜이긴 하다.

그런데 여기서 발생하는 안타까운 문제는, 우리 인간들이 그런 의미를 재대로 이해하고, 역시 그것을 잘 활용해야 하는데, 오히려 거기 매몰되어, 그 종교에 매이게 되어 버린다는 것이, 역시 그 한계이기도 하다. 즉 그런 종교를 통해서, 그 안에서 그 신앙을 알고 이해하여 그 신앙과 하나 되어야 하는데, 거기까지 가지 못하고, 그 종교 곧 형식과 틀 곧 그 껍데기에 매몰되어, 그것 자체를 '키우자'거나 역시 그것이 전부인냥, 정작 그 신앙은 제대로 알지도 못하고, 거기 머물러, 거기서 결국 죽고 끝나고 만다는, 안타까운, 그러나 그 때나 오늘의 현실이기도 하다. 역시 그것이 성경의 중요 내용이기도 하다. 그 대표적인 예가, 출애굽 때 60 만이 넘는 사람들이, 애굽을 탈출하지만, 정작 그 약속의 땅이라는, 그 가나안에는, 정작 2 명만 들어가는 것을, 그 샘플로 보여주는 이유다.

그것은 그 때나 역시 오늘도, 그런 표현들을 통해서 그 안에 담은 그 의미로 이해하지 못하면, 역시 다르지 않음을, 지적하는 것이기도 하다. 물론 외관상으로는 많은 사람들이 그 땅에 들어간 것으로 보이지만, 정작 그 애굽을 탈출한 그 첫 세대 사람 중에는, 여호수아 갈렙만 이고, 그 나머지는 전부 그 애굽을 모르는, 중간에서 태어난 자들이란 의미이기도 하기에, 성경 이해의 어려움 이고, 역시 복음이 절실하게 필요한 이유다. 그러면 그들도 비록 몸은 가나안에 있지만, 그 의미적으로, 즉 그 신앙 수준은, 애굽에 있는 것과 다르지 않다는, 일종의 경고성 의미의 지적이기도 하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즉 오늘 우리에게도 하는 지적이다. 하긴 이런 지적을 제대로 들을 수 있는 것이 실은 그 은혜다. 이렇게 들을 수 있다면, 그는 이미 그 신앙의 차원에서는, '가나안에 있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즉 '그 약속을 이해하고, 그 약속 안에 있다'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안타까운 것은, 오늘의 대부분의 신자라는 사람들도 그런 의미를 제대로 이해하는 것이 결코 쉽지 않을 것이란 생각이다. 그저 오늘 열심히 교회에 출석하고, 하라는 것 하면, 잘 하는 것으로 생각하거나, 그렇게 인정을 받기 때문이다. 그것이 바로 '그 종교에 매몰되었다'는 반증'이기도 한 것은, 모른다. 그 '하라는 것과 하지 말라'는 것이 무슨 영적 의미를 가지는지를 모르는 것은,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즉 몸은 가나안에 있지만 그 수준이나 차원은 아직 그 애굽이라는 의미다. 아직 광야도 아닐 가능성이 크다. 이처럼 '그 모든 시대적 환경과 상황 그리고 그런 것들의 명칭들 그리고 그것을 표현하는 용어들이 전부 존재적'이어서, 그것의 본래적 의미인 영적으로 생각하지 못하고, 그저 존재적으로만 받아 드리기 때문이다.

실은 출애굽의 여정은 상당히 중요한 상징과 비유의 메시지이기도 하다. 그 여정에서 많은 시간을 그 광야라는 곳에서 보내게 된다. 사실 지도를 보면 그 광야는 그리 넓은 곳이 아니다. 길게 잡아야 걸어서도 그저 열흘이면 통과할 수 있는 거리다. 그 거리를 무려 40년을 걷는다. 그러기에 그 광야는 좀 비약해서 비유하자면, 곧 '우리 존재가 머무는 현실에서, 하나님 곧 그 영원의 의미를 깨닫고 이해하는 시간'이기도 하다. 어쩌면 그것이야말로 그 신앙 생활의 전부이기도 하다는 의미다. 그러나 '그 때 그 영적으로의 시고 전환이 이루어지지 못하면, 지금 어디에 있든지 결국 애굽이 되고 만다'는 사실도 알아야 한다. 물론 사실 존재만으로 사는데는 애굽이 훨씬 더 좋을 수도 있긴 하다. 그것이 종교가 주는 매력이고 역시 그 한계이기도 하며, 역시 유혹이고 결국 그 시험의 내용이기도 한 이유다.

그래서 복음 곧 그 재해석과 설명이 절실하게 필요하게 된다. 곧 복음이란 그 사실을 적나라하게 알려 주는 것이, 그 내용이기 때문이다. '진정한 의미의 구원을 이루는 것'이기 때문이다. 애굽을 탈쥴하는 것이 구원이 아니라는 의미다. 그것은 그 구원의 시작에 불과하다. 문제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애굽을 나오지만, 역시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 광야에서 스러져 그 생이 끝나고 만다는 상징적 비유다. 예수가 분명하게 짚어 주었다. 곧 '많은 사람들이 그 광야에서 만나를 먹었으나 역시 대부분이 거기서 죽었다'고 말이다. 즉 그 만나가 '무엇인지'를 묻기만 했지, 정작 그 의미 곧 '그 무엇인가' 라는 표현이 담은 그 답을' 몰랐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람이 떡 곧 그 만나로 사는 것이 아니라 그 말씀, 그 진리의 말씀으로라야 진정으로 산다'고 하는 것이다. 그 '무엇인가'가 히브리어로는 진리적 의미다.

그저 종교 안에 들어가기만 하면, 사는 것이 아니란 의미다. 그 종교를 통해서, 그 종교 안에 담아 놓은 그 영원, 다르게는 그 진리를 깨닫고 이해하여, 그 특징대로 하나가 될 때, 비로서 '진정으로 산다'는 것이다. '영원의 삶'이 된다. 바로 그 내용을 제대로 전해 주는 것이, 곧 복음을 전하는 것이고, 그것을 다르게 표현하면, 그 '사랑' 곧 헬라어로 '아가페', 히브리어로는'아하브'라고도 하는 이유다. 즉 성경이 말하는 '그 하나님의 사랑'이란, 그 내용이 그런 것이다. 우리가 존재적으로 이해하는 그런 감정적이거나 그래서 생각하는 어떤 느낌과는 전혀 다르다는 의미다. '그 사랑의 샘플이 곧 예수 그리스도'였다. 그리고 그 신앙의 완성은 곧 우리가 그렇게 예수 그리스도 처럼, '이 시대 그리스도가 되는 것'이다. 그것이 곧 그 사랑의 실천 모습이기도 하다. 신앙의 완성은 결국 내가 그리스도가 되는 것이다.

다시 강조하지만 성경이 말하는 '그 하나님은 사랑이라'는 표현이 담은 진정한 의미는, 존재적 표현으로는 가히 쉽지 않은데, 그래도 이해를 위해 굳이 설명하자면, 존재의 윤리도덕적 또는 감성적 것으로가 아니라, 영원적인 것이라는 의미와 함께, 예수 그리스도가 샘플로 보이는 '그 존재 됨'이다. 물론 그럼에도 우리가 존재로서 이 땅을 사는 동안, 그런 서로 간의 존재적 사랑을 하지 말라는 것은 절대 아니다. 그런 사랑도 분명 귀한 것이다. 그러나 '그 신앙에서 의미하는 사랑이란 '영적인 내용'이라는 의미다. 그리고 그것이야말로 진정 그 신앙이 말하는, 곧 '그 구원에 이르게 하는 내용'이기도 하다. 충만이고 완성이다. 자유이고 영적 평안이다. '이 시대 그리스도가 되어, 복음을 전하는 것이 곧 그 사랑의 실천'이기도 하다. 바울이 표현대로 '그리스도를 본 받는 것 같이 나를 본 받으라'는 의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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