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자는 진리의 불꽃으로 타올라야 한다
런던에서의 유학 시절, 어느 겨울 늦은 오후, 스펄전의 생애에 기념비적인 설교장소로 기록된 옛 크리스털 궁전터를 방문했던 적이 있다. 빅토리아 여왕이 “세계에서 가장 경이로운 건축물 가운데 하나”라고 극찬했던 크리스털 궁(Crystal Palace)은 세인트 폴 대성당(St. Paul's Cathedral)보다 세 배나 큰 건물이었다. 기록에 따르면 그것은 얼마나 웅장했던지 궁의 대형 홀의 끝에서 맨 앞의 오르간 연주자를 보면 작은 점으로 보일 정도였다 한다. 비록 1936년의 불운의 화재로 그것은 소실되었지만 그 웅장했던 터는 그 곳에 그대로 남아있었다. 스펄전은 불과 23세의 나이에 이곳에서 설교하도록 요청받았다. 당시 그 예배에 참석했던 사람들의 숫자는, 입장시 입구에서 확인된 숫자만 23,654명이었는데, 그것은 당시까지의 역사상, 인간의 목소리가 미칠 수 있는 실내 군중 규모 최대 숫자였다. 그리고 스펄전의 목소리는 수많은 청중들에게 뚜렷이 들릴만큼 “강하고 깨끗하고 낭랑했다”고 기록되어 있다. 차가운 겨울 바람이 부는 그 거대한 광장에 서자니 마치 피를 토하듯 외쳤던 이 거인의 웅장한 사자후(獅子吼)가 거센 바람과 함께 차가운 공기를 뚫고 귓가에 진동하는 듯 했다.
스펄전은 그야말로 자신의 모든 진액을 쏟아 설교하는 설교자였다. 그러나 우리가 “설교의 왕자”로 알고 있는 이 설교자를 올바르게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가 또한 불타는 목회자였음을 먼저 기억하는 것은 유익할 것이다.
목회자는 불꽃처럼 타올라야 한다
스펄전은 평범한 목회자는 흉내내기 힘든 비범함과 열정을 가진 목회자였다. 실로 그의 목회사역은 경이롭기까지 하다. 예를 들어 스펄전은 그 지식에 있어서 “모든 문학, 전기, 과학, 신학, 역사, 미술, 시 등에 식견을 가지고 있었다.” 그는 셰익스피어의 모든 희곡을 읽었으며, 그 중 몇 권은 여러 차례 되풀이 하여 읽었다. 그리고 스펄전은 그의 나이 세 살 때 처음으로 존 번연의 천로역정을 접한 이래, 이 책을 100번이나 읽었다. 또한 기록에 따르면 그는 책이 귀한 당시에 매주 내용이 충실한 여섯 권의 책을 정기적으로 읽어 내렸다. 뿐만 아니라 스펄전은 일주일에 약 500여 통의 편지를 썼다. 또한 그는 그의 평생동안 약 135권의 책을 저술하고 28권의 책을 편집했는데, 이는 평균 두 달 반마다 한 권의 책을 출간한 것을 의미한다. 이 설교자의 비범함은 여기에서 끝나지 않는다. 기록에 따르면, 스펄전은 자신의 교회의 모든 성도들의 이름을 외울 수 있었으며, 새로운 교회의 회원이 8천명 가량 될 때도 그들 대부분의 이름을 외울 수 있었다. 런던의 터버너클 교회에서 그가 감당했던 사역에 관해 그는 이렇게 토로한 적이 있다. “내가 쏟아야 하는 노력과 관심이 얼마나 많은지 아무도 알지 못한다.... 고아원을 돌보아야 하고, 4천명의 교인들이 있는 교회를 책임져야 하며, 때때로 주례해야 할 결혼식과 장례식도 많다. 매주마다 설교문의 수정과, 『검과 흙손 (The Sword And The Trowel)』의 편집, 그리고 그 외에도 매주 평균 500통의 편지에 답장을 써야 한다. 그러나 이것들은 내가 수행해야 할 일의 절반 정도에 불과하다. 친구들이 개척해 세운 교회에 관련된 많은 일들이 있으며 그들이 어려울 때면 나에게 조언을 구하는 것에 답해야 하는 것은 말할 나위도 없다.” 뿐만 아니라 스펄전은 이러한 목회 사역 외에도 매주 쇄도하는 엄청난 회수의 집회를 인도해야 했다. 가히 초인적인 스펄전의 설교사역은 그의 가까운 친구에게 보낸 한 편지에서 엿볼 수 있다.
“사랑하는 친구에게,
피곤한 군병이 전우에게 편지를 쓰며 잠시 위안을 얻네. 이번 주에는 열한 번의 집회를 인도했고 다음 주에는 최소한 열세 번의 집회가 약속되어 있다네. 교회 외에서 설교한 횟수가 지난 해에 282회였고, 올해는 지금까지 지난 세 달 동안 80회 이상 설교했고 다음 달에 30회가 예약되어 있네...그러나 시간은 우리에게 한번 더 설교할 기회를 주지 않을 걸세... 모든 시간, 모든 집회의 장소는 문까지 꽉 사람들로 가득하네... 이번 주에는 라이톤 버자드(Leighton Buzzard), 푸츠 크레이(Foots Cray), 카탐(Chatham) 지역에 갔었는 데, 많은 군중으로 인해 앉을 자리가 없었다네. 다음 주일 설교 일정을 보고 기도해 주기 바라네.
주일: 아침과 저녁, 본 교회, 오후에는 학교들
월요일: 아침, 하워드 힌톤(Howard Hinton) 교회, 오후와 저녁, 본 교회
화요일: 오후와 저녁, 라이톤(Leighton) 교회
수요일: 아침, 저녁, 시온(Zion) 교회, 화이트 교회(White Chapel)
목요일: 아침, 댈스톤(Dalston), 저녁, 본 교회
금요일: 아침, 플레처 박사 교회(Fletcher's Chapel),
저녁 로저스 교회(Mr.Rogers Chapel)”
그러나 이러한 빈번한 설교사역이 스펄전의 설교에 대한 열정을 식게 한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그는 그것을 영광으로 여겼다. 스펄전은 어느 한 설교에서 이렇게 말했다. ““수년 전 사람들이 제게 이러한 말들을 했습니다. “한 주에 열 번씩이나 설교를 한다면 당신의 건강은 망가지고 말 것입니다.” 글쎄요, 그러나 만약 그렇게 된다할지라도 저는 그것을 기쁘게 여길 것이며, 또 다시 이 일을 할 것입니다. 만약 내 몸이 50개라 할 지라도 저는 주 예수그리스도를 섬기는 일 때문에 소진된다면 기꺼이 그렇게 할 것입니다.” 또한 그렇다고 해서 이러한 그의 빈번한 설교가 그의 설교의 질을 약화시킨 것도 결코 아니었다. 스펄전은 앞에서 본 것처럼, 비범한 독서의 소유자였다. 비록 그의 설교 준비가 널리 알려진 것처럼 토요일 저녁에 이뤄지긴 했지만 그러나 그의 준비는 “항상”이라고 말하는 것이 보다 타당할 것이다. 그는 매일 그리스도를 묵상했고, 그의 말씀 안에 온전히 젖어 있었다. 그리고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스펄전은 매주 목회와 설교 준비를 위하여 내용이 충실한 여섯 권의 책을 정기적으로 읽었으며, 이를 통하여 끊임없이 그의 빈 화살통을 새로운 말씀의 화살들을 가득 채웠다.
설교자는 불꽃처럼 타올라야 한다
스펄전의 목회사역에 대한 이같은 열정적인 태도는 설교가 선포되는 강단사역에서도 예외는 아니다. 스펄전은 자신의 진액을 모두 쏟아 설교했다. 그는 옛 설교자들이 그러했듯, 설교자는 죽어가는 사람이 다른 죽어가는 사람에게 설교하듯, 설교해야 한다고 확신했다. 어느 한 설교에서 그는 자신의 한 설교사역을 이렇게 회상한다. “제가 고뇌하며 이 강단에 올라와 피를 토하듯 여러분에게 설교하던 때를 기억합니다. 그날 집으로 돌아가서 침대에 누웠을 때, 제 마음은 근심과 번민으로 가득 찼습니다... 저는 그때 하나님을 찾았고 이 강단에 다시 설 수 있게 해 달라고 부르짖었습니다. 저는 가련하고 어리석은 방식으로 ‘죽은 사람에게 죽은 사람으로서’ 설교하려고 했습니다. 제 사역이 끝나지 않기를 소원했습니다. 저의 옷자락에 핏자국이 묻어 있어도 청중이 피에서 해방되는 기회를 얻을 수 있으리라고 확신했습니다.”
열정! 그것은 스펄전의 설교사역을 특징짓는 대표적인 단어이다. 스펄전이 믿기에 설교자의 열정은 설교의 사활을 거는 핵심적인 요소였다. 스펄전은 말한다. “그리스도를 위하여 영혼들을 얻는 데에 성공하기 위해 목사에게 가장 필수적인 덕목이 무엇이냐고 물으신다면 저는 “열정”이라고 대답할 것입니다. 그리고 두 번, 세 번 동일한 질문을 한다 해도 저는 동일하게 대답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제가 개인적으로 관찰한 결과 대체로 설교의 성공은 설교자의 열정과 비례한다는 결론에 이르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여러 경우들을 보면 목회의 성공은 거의 전부 영혼을 위한 강렬하고도 불타는 열정, 하나님의 대의를 위한 진지한 열심에서 그 이유를 찾을 수 있습니다. 저는 다른 조건들이 동등할 경우 그 마음이 거룩한 사랑으로 불타 오르는 것만큼 그 사람이 거룩한 사역에서 성공을 거둔다고 믿습니다.” 나아가 스펄전은 진정한 소명에서 나오는 열정을 설교자의 표지로 삼았다. 스펄전에게 그것은 설교자의 존재의미와도 연관있다. 스펄전은 말한다. “그런 거룩한 불길이 없다면 대체 우리가 여기에 있을 이유가 어디 있습니까? 설교하지 않고서도 살 수 있는 사람이라면 설교하지 않고 살도록 하십시오.”
그렇다면 스펄전은 설교행위에서 열정을 왜 그토록 중요한 요소로 생각했는가? 그는 그 이유에 관하여 비유적으로 다음과 같이 말한다. “사람이 사용할 수 있는 힘을 만들어 내는 요인 중 가장 큰 것은 열입니다. 불처럼 인간의 목적을 위하여 큰 힘을 만들어 내는 것은 없는 것 같습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영적인 세계에서도 불에 타는 요소야말로 영적인 힘을 일구어 내는 데 중요한 요인이 됩니다. 우리는 철두철미하게 열정적이어야 하고 그리하여 우리를 태우는 그 열정이 불타오르는 것을 느껴야 합니다. 그렇지 못하면 힘을 별로 얻을 수가 없습니다. 우리가 소멸해야 합니다. 우리가 환하게 비치는 빛이 되려면 우리 자신이 불에 타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목숨도 살리고 다른 이들도 살릴 수는 없습니다. 사람들을 구원하려면 자신이 무너져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보다 구체적으로 설교자의 열정은 어떠해야 하는가? 이에 관하여 스펄전은 다음의 네 가지 중요한 지침을 제시한다.
첫째, 설교자는 자신의 설교사역에 항상 열정적이어야 한다. 스펄전에 따르면 비록 표면적으로는 다를 수 있겠지만 교회의 성도들이 서로 싸우고 분쟁을 일삼는 주된 이유는 궁극적으로 설교자로부터 그들이 충분한 영적 양식을 공급받지 못한 까닭이다. 하나님의 집에서 풍성한 영의 양식을 취한 회중은 풍성한 사랑의 마음을 가지게 된다. 반면 그것에 굶주린 회중들은 불만족 속에 분쟁 가운데 놓이게 된다. 따라서 목회자는 목회에서 열심을 내는 것과 함께 성도들에게 영적인 양식을 공급하는 강단사역에서도 열정적이어야 한다. 스펄전은 말한다. “싸움에서 이기느냐 지느냐 하는 것이 바로 강단에서 판가름 납니다. 따라서 우리 목사들에게는 강단에서 우리의 능력을 어떻게 유지할 것인가 하는 문제가 최고의 관심사가 되어야 합니다. 마음과 정신을 일깨우고 그 능력을 최고로 발휘하여 영적 파수대를 지켜야만 합니다.”
둘째, 실제 설교에 임할 때도 열정적이어야 한다. 만약 설교자가 자신이 전하는 것이 별로 중요한 문제가 아닌 양 아무렇게나 설교한다면 그것은 설교의 직무를 모욕하는 것일 뿐 아니라 하나님 보시기에도 불경스러운 것이다. 또한 이러한 설교는 회중석의 경청과 변화를 이끌어 낼 수 없다. 스펄전은 말한다. “무딘 목사가 무딘 청중을 만들어 내는 법입니다.... 불경건한 세대의 양심을 졸게 만드는 가장 지독한 원인 중 하나는 바로 설교자의 미지근함입니다. 다가올 심판을 말씀하는 동안 설교자가 졸고 있는 것을 죄인이 보게 되면 그는 심판이란 그저 그 설교자가 꿈꾸는 것에 불과하다고 생각하게 되고 결국 그것을 하나의 꾸며낸 이야기로 취급하게 됩니다.” 또한 강단의 열정은 청중의 산만한 마음을 녹이는데 기여한다. 스펄전에 따르면 교회에 나아오는 많은 회중들이 무거운 인생의 짐들로 차갑고 무기력하거나 산만한 정신으로 설교의 자리에 나아온다. 따라서 거룩한 묵상과 강렬한 호소를 통하여 그러한 세상의 생각들을 열정의 용광로에서 녹여야 한다. “회중석에서 열심히 생겨나서 강단으로 전달되는 법은 거의 없습니다. 강단에서 회중들에게 흘러 내려가는 것이 자연스러운 이치입니다. 그러므로 물론 하나님께 달려 있는 문제입니다마는, 성도들의 열심을 유지하게 하려면 강단은 반드시 최고의 열정으로 지켜져야 합니다.”
셋째, 강단에서의 열정이 진실해야 한다. 강단에서 열정은 꾸며내거나 가장된 것이어서는 안된다. 스펄전에 따르면 이는 “인기를 얻기 위해 쓰는 속임수 중 가장 혐오스러운 것”이다. 이런 거짓된 열정은 외양만 보는 청중을 기쁘게 할 수는 있어도 진정한 변화는 이끌어 낼 수 없으며 진실을 사랑하는 회중들의 역겨움을 유발한다. 또한 열정적인 체 회중을 속이는 설교자의 가식은 하나님의 진노를 격발시킨다. 이러한 행위들에 관해 스펄전은 엄중히 경책하였다. “그 얼마나 뻔뻔스러운 짓입니까! 성령님의 순전한 역사하심으로 나오는 열정을 기술적인 목소리 조작으로 흉내내려 하다니 이 얼마나 위선적인 행동입니까! 강단에서 연기를 일삼는 이들이여 경계하십시오. 그 훌륭한 연기로 성령을 거스르는 죄를 범하는 자가 되지 않도록 말입니다.”
넷째, 강단의 열정과 함께 설교자는 그 후의 결과에 대해서도 강렬한 사모함을 가져야 한다. 설교자는 열정적인 말씀의 선포 후 그러한 수고가 헛되지 않게 해 주시기를 하나님께 끈질기게 간구하고 거룩한 결과를 위해 끝까지 열정적인 관심을 기울여야한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자신이 씨를 뿌려놓은 밭을 돌보지 않는 사람들에게 영혼의 수확을 주시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또한 그렇지 않을 경우 설교자의 강단에서의 열정 또한 의심받을 것이다.
설교의 불꽃을 희미하게 만드는 바람들
설교사역에서 열정의 중요성에 관한한 모든 설교자들이 인지하고 있지만, 현실에서 그것은 또한 너무나도 쉽게 망각되어 버리는 듯 하다. 그렇다면 설교자의 열정을 상실하게 하는 요인과 환경은 무엇인가? 이 질문에 대한 현명한 분석은 우리로 적절한 대응을 위한 해결책을 암시해 줄 수 있다. 스펄전은 이를 위해 열 가지 유익한 중요한 통찰을 제공해 준다.
첫째, 동역자들과의 교제가 있는 곳에서 사역하는 목회자보다 인적이 드문 외로운 곳에서 홀로 사역하는 목회자의 열정이 식어지기 쉽다. 불타는 장작들을 한데 모아두지 않고 흩어놓으면 금방 불이 꺼져 버리듯 혼자 있는 목회자는 상대적으로 이러한 위험에 더 많이 노출되어 있다. 그렇다고 도시에서 목회하는 목회자라고 해서 이러한 위험에서 완전히 자유로운 것은 아니다. 스펄전에 따르면 도시의 목회자들 또한 온갖 잡다한 일들로 인해 열정이 식어버릴 수 있다. 따라서 아무에게도 방해받지 않는 묵상의 시간을 확보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렇지 않으면 목회와 설교사역은 힘을 잃고 말 것이다.
둘째, 새로운 사역을 시도할 때보다 오랜 세월동안 동일한 사역을 단순히 반복할 때 열정이 식어지기 더 쉽다. 따라서 설교자는 변화를 추구할 뿐 아니라 언제나 동일하신 하나님께 매너리즘의 유혹을 극복할 수 있도록 끊임없이 간구해야 한다.
셋째, 말씀에 대한 연구를 소홀히 함으로 열정을 잃어버릴 수 있다. 하나님의 영의 양식을 먹지 못한 설교자가 그것을 열정적으로 전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자신이 굶주린 상태에서 전투에 올바르게 임할 수 없듯, 진리의 양식을 충분히 공급받아 누릴 때만 설교자는 왕성한 활기로 진리를 전할 수 있다. 반면, 기이하게도 반대의 경우도 있는 데, 곧 연구로 인해 오히려 열정이 식어버리는 경우이다. 이런 경우 연구 자체의 문제라기보다 방법의 문제로, 설교자가 머리에만 양식을 공급하느라 마음의 불을 잃어버린 경우이다. 따라서 지식을 얻는 데만 지나치게 관심함으로 설교하는 일보다는 논문을 쓰는 일에만 합당한 설교자가 되지 않도록 경계해야 한다. 스펄전은 말한다. “우리가 만일 책벌레로 전락해 버린다면 그것은 옛 뱀의 기쁨이 될 것이요, 우리에게는 천추의 한이 될 것입니다.”
넷째, 경박스런 대화, 특히 동료 목회자들 간의 쓸데없는 한담을 통해서도 설교자의 열정은 크게 손상받을 수 있다. 스펄전에 따르면 일반적으로 동료 목회자들과의 만남은 보통의 성도들과의 만남보다 훨씬 더 자유롭다. 그러나 그 자유가 지나쳐 경박하고 공허한 대화로 기울어진다면 그것은 설교자에게 해가 될 수 있다. 따라서 설교자는 대화 속에서도 유쾌함과 경박스러움을 잘 구분해야 한다.
다섯째, 냉정하고 차가운 회중과 접촉함으로 열정이 식어버리는 경우도 있다. 특히설교에 대한 공평치 못한 무자비한 논평을 일삼는 회중이나 설교자가 생명과 죽음 중 하나를 선택하라고 호소할 때조차도, 시계를 바라보고 있거나 평상시보다 오 분이 더 길어졌다고 불평하는 회중들에 의해 설교자의 열정은 깊은 상처를 받을 수 있다. 특히 젊고 경험이 부족한 설교자일 경우는 더욱 그러한데, 이는 마치 “천사가 빙산 속에 갇히는 것”과 같다.
여섯째, 회중 전체가 설교자의 열정을 완전히 식혀버릴 수도 있다. 설교자가 열심히 말씀을 전했으나 전혀 그것에 관하여 반응하지 않는 무덤덤한 교인들은 설교자를 낙담하게 만든다. 특히 장소가 크고 회중이 적은 텅빈 좌석들은 설교자를 더욱 움츠리게 만들 수 있다. 또한 회중들의 사소한 무질서, 예를 들어 구두 발자국이나 아이들의 울음소리, 많은 교인들의 지각과 같은 사소한 요인들 역시 설교자의 심령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칠 수 있다. 특히 간과하기 쉬운 이러한 사소한 요인들이 가져올 수 있는 위험에 관한 스펄전의 조언은 주목할 필요가 있다. “크고 심각한 혼란보다는 아주 하찮은 문제들이 오히려 열정을 더 잘 파괴하는 법입니다. 큰 낙심이 있을 때에는 그 문제에서 스스로 물러서서 하나님께 자신을 내어 던지고 새힘을 얻습니다. 그러나 사소한 침체가 있을 때에는 염려하고 언짢아하게 되어 오히려 더 심각한 결과들을 초래하기도 합니다.”
일곱 번째, 몸상태를 적절히 돌보지 못할 때 설교자의 열정은 영향을 받을 수 있다. 밤에 잠을 설치는 것과 같은 육체적인 요인이나 변덕스러운 날씨와 같은 일상적인 요인들로 인해 무기력한 상태가 일어날 수도 있다.
여덟 번째, 오랫동안 수고했지만 눈에 보이는 열매가 없을 때 열정이 식어지기 쉽다. 특히 이 때에 성공을 거둔 동역자들에 대해 시기심을 품지 않도록 경계해야 한다. 오히려 사역에 합당한 열매가 보이지 않는 그때야말로 일곱 배나 더 부지런히 수고해야 할 때이다. 그리고 거룩한 인내로 계속해서 기다리며 씨를 뿌릴 때 하나님은 풍성한 수확을 허락하신다.
마지막으로, 우리의 연약한 육신과 본성은 침체상태로 기울게 하는 경향이 있다. 스펄전에 따르면 설교자들은 한번 태엽을 감아 놓으면 곡조를 계속 울리는 노래 상자나 목표물을 향해서 계속해서 날아가는 화살과 같은 존재가 아니다. 오히려 그들은 하늘의 바람의 힘에 의해 나아가는 바다의 배와 같은 존재들이며, 숨을 불어 넣지 않으면 소리를 내지 않는 나팔과 같은 존재들이다. 따라서 하나님의 은혜를 매일 갈망함으로 스스로 무딘 심령이 되지 않도록 끊임없이 자신을 경계하며 하나님의 은혜를 구해야 한다.
설교의 불꽃이 타오르도록 하는 하늘의 기름
그렇다면 설교자가 상실된 열정을 극복하고 변함없이 진리의 말씀을 열정적으로 선포하며, 그것을 배가시키는 방법은 무엇인가? 이를 위해서는 먼저 설교자의 열정의 근원에 관한 탐구가 필요하다. 스펄전은 설교자의 열정을 마틴 로이드 존스가 그러했던 것처럼 인간의 기질이나 박력과 구별짓는다. 스펄전에 따르면 그것은 보다 근원적이며 본질적인 것이다. “강단에서 아무리 뜨겁게 보인다 해도, 홀로 하나님과 함께 있을 때에 그보다 더 뜨겁지 않으면 그것은 별로 소용이 없습니다. 마음에서 나오는 불길이 참된 불길인 것입니다....설교는 절대로 입에서 나오는 불길과 섬광으로 요리가 되는 것이 아닙니다. 영혼의 깊은 곳에서 나오는 열기로 덥혀져야 하는 것입니다. 그 보배로운 말씀은 그 하나님의 진설병은 우리의 본성의 중심부에서 구워져야 하며 또한 내주하시는 성령께서 가져다 주시는 열기로 구워져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스펄전은 보다 구체적으로 그것의 공급과 유지를 위한 방법으로 비유를 통하여 다음의 일곱 가지 원리를 제시한다.
첫째, 꺼지지 않는 불꽃에서 불을 지펴야만 한다. 스펄전에 따르면 열정의 불은 영원히 꺼지지 않는 하늘의 불꽃으로부터 계속 불을 공급받을 때만 가능하다. 그렇다면 꺼지지 않는 불꽃이란 무엇인가? 스펄전은 말한다. “꺼지지 않는 불꽃이란 오직 하나 밖에 없습니다. 곧 그리스도의 사랑의 불꽃이 그것입니다.” 주님께서 설교자에게 그리스도와 영혼들을 향한 사랑을 주셨다면 그 설교자는 절대로 그 사랑을 잃어버리지 않을 것이다. 또한 주님의 성령은 설교자의 열심이 그저 인간적인 느낌이나 감정으로 그치지 않고 생명의 원리가 되도록 도우신다.
둘째, 열정의 불길이 믿음의 화로에서 타올라야 한다. 다시 말해, 설교는 진리에 대한 확신에 근거해야 한다. 이것의 중요성을 스펄전은 이렇게 말한다. “참일 수도 있고 거짓일 수도 있는 내용을, 혹은 다른 세상의 가르침처럼 대체로 유익이 되겠다고 여기는 내용을 선포하는 사람은 필시 매우 무력한 설교자가 될 수 밖에 없을 것입니다. 자기도 확신이 없는 내용에 대해 어떻게 열정을 가질수 있겠습니까?... 그러나 만일 성령께서 은밀한 곳에서 우리를 가르치시고, 우리가 선포해야 할 진리를 깨닫게 하셨다면 그때 비로소 우리는 불의 혀를 가지고 열정적으로 그것을 선포할 것입니다.”
셋째, 불길에 연료를 자주 공급해야 한다. 창조된 모든 존재는 그 힘의 유지를 위해 무언가를 공급받아야 한다. 성소의 등불조차 기름이 필요하듯, 열정의 불길을 위해서는 새로운 연료의 지속적인 공급이 필요하다. 그렇다면 무엇이 새로운 연료가 될 수 있는가? 그것은 죄인들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과 그의 아들의 죽으심, 사람의 마음에 역사하시는 성령님의 활동으로 이루어질 위대한 결과들에 대한 거룩한 묵상과 기대감이다. 그러나 스펄전에 따르면, 무엇보다도 그리스도와의 친밀한 교제야말로 가장 좋은 연료이다. 스펄전은 말한다. “주 예수님과 깊은 교제를 긴밀히 유지하는 설교자치고 마음이 냉랭한 사람을 만나본 적이 없습니다. 하나님의 집을 향한 열심이 우리 주님을 삼켰습니다. 그러니 우리가 그와 교제를 가지면 그것이 우리도 삼키기 시작합니다. 그때에 우리는 주님과 함께 보고 들은 것을 말하지 않을 수 없고, 진정으로 그것들을 체험한 사람으로서 열정적으로 전하지 않고서는 견딜 수 없는 심정을 가지게 됩니다.”
넷째, 연료와 함께 기도의 바람을 불어 넣어야 한다. 기도란 모든 설교자들에게 필수불가결한 것이며 설교의 열정을 위해서는 더더욱 절대적인 것이다. 이를 위하여 스펄전은 규칙적인 경건의 시간들과 습관을 가지는 것도 중요하지만 일상 속에서 기도의 정신을 소유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조언한다. “여러분의 열정에 거센 불꽃이 피도록 바람을 불어 넣기 위해서는 서재에서든, 목회실에서든, 강단에서든 언제나 어디서나 성령 안에서 기도하도록 끊임없이 기도의 정신을 갖기를 구해야 합니다... 강단에 앉을 때든, 찬송을 부르기 위해 일어선 때든, 성경본문을 봉독할 때든, 설교를 할 때든, 언제든지 간에 한 손을 하나님께로 들어 올려서 그에게 축복을 받아 다른 손으로 교인들에게 나누어 주어야 합니다.” 스펄전은 이러한 기도를 의무가 아니라 특권이요, 즐거움으로 여겼다.
다섯째, 새로운 사역을 자주 시도함으로 그 불길을 휘저어야 한다. 설교자는 정신이 무디어지고 정체되지 않기 위해서 가능한 모든 수단을 강구해야 한다. 이를 위하여 스펄전은 자신의 경험에 비추어 새로운 사역들을 시도하는 것이 유익이 되었음을 고백한다. 스펄전은 말한다. “과거부터 해 오는 일이 다소 정체된 상태가 되면 거기에 새로운 종류의 사역을 첨가하십시오. 그러면 그 전체 사역이 한 덩어리가 되어 신선함을 얻을 것입니다. 한 번 시도해 보십시오. 그러면 새로운 땅을 경작하며, 새로운 원수의 영역으로 침입하며, 거기에 주의 깃발을 꽂는 일이 얼마나 유익한가를 곧 알게 될 것입니다.”
여섯째, 하나님의 임재 속에서 성도들과 가까이 생활해야 한다. 열정을 유지하기 위해서 설교자는 성령의 임재와 그 능력 안에서 생활해야 한다. 그러나 더 나아가 성도들의 삶의 구체적인 자리에까지 나아가야 한다. 스펄전은 이것의 중요성을 다음과 같이 역설한다. “맡겨진 영혼들과 친숙하게 지내기를 힘써야 합니다... 사람들과 함께 어울려서 직접 그들의 상태를 아는 일이 없다면 복음사역자로서는 돌팔이에 지나지 않을 것입니다... 책들은 물론 사람을 읽으십시오.” 그렇다면 회중의 삶은 설교자의 열정과 구체적으로 무슨 상관이 있는가? 스펄전에 따르면 회중의 삶은 설교자의 열정을 유발하거나 새롭게 하는 또 다른 동력과 동기가 될 수 있다. 예를 들어 성도의 열정적인 삶이나 거듭난 영혼들의 기뻐하는 모습은 새로운 열정이 솟아오르도록 하는 동력이 될 수 있다. 또한 사람의 임종은 설교자에게 무언의 메시지가 되어 인생의 무상함과 복음의 소중함을 일깨워 준다. 특히 도시의 빈민가나 부랑자들이나 술주정뱅이들이 모여 사는 지역의 방문은 설교자의 사명과 복음의 열정을 회복하는 데 기여할 수 있다. 스펄전은 말한다. “의사가 병원을 걸어다니듯, 여러분도 이곳저곳을 다니면서 죄가 만들어 놓은 악행들을 보아야 합니다. 죄가 이 땅에서 만들어 놓은 그 황폐함을 눈으로 똑똑히 보고 피눈물을 흘리며 흐느끼게 될 것입니다.... 무수한 무리들이 죄 가운데 살며 술취함과 안식일 거부와 폭력과 불경함으로 더럽혀져 있는 것을 보십시오... 세상은 극심한 빈곤과 처절한 슬픔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이런 인간 영혼의 절박한 현실에 대한 치유책은 위대한 복음밖에 없습니다.... 가서 여러분이 직접 보십시오. 가서 직접 보시면 그 큰 구원을 설교하며, 그 위대하신 구세주를 입으로만이 아니라 마음으로 높이기를 배우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여러분의 사역과 혼인하여 절대로 그것을 버리지 않게 될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설교자의 열정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설교자가 그 사명을 소홀히 할 때, 설교자 자신과 그 성도들에게 끼칠 비참한 결과에 관해 진지하게 생각하는 것이 필요하다. 곧 우리의 회중들은 망하게 될 것이며, 그들의 피값은 설교자에게 찾게 될 것이다. (겔3:18)
설교자는 진리의 불꽃으로 타올라야 한다
얼마전 소천하신 한 존경하는 설교자께서 언제나 자신을 부끄럽게 하는 글이라 이야기 했던 스펄전의 글은, 다소 길기는 하지만 오늘 영광스러운 설교자의 후예로, 불꽃같이 설교하기 원하는 현대의 설교자들이 여전히 기억할 가치가 있다.
“설교를 하도록 부르시는 성령의 역사하심이 진정 그의 안에 거하는 그 사람은, 어찌할 도리가 없다 ― 그는 설교를 해야만 한다. 그것은 그의 뼈 속의 불길과도 같아서 불꽃이 밖으로 퍼져 나가기 전에는 견디지 못하리라. 친구들이 그를 판단하고 적들은 비난하며 조롱자들이 비웃을지라도 그는 굴복하지 않는다. 곧 하늘의 부르심을 입었기에 그는 설교해야만 한다... 내 생각에 정말 부르심을 받은 자를 설교하지 못하게 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것은 거대한 폭포를 멈추게 하기 위해서 어린 아이의 컵으로 그 세찬 물살을 받아 내려는 것과 같다. 그 사람의 마음은 천국으로 움직였는데, 누가 그를 멈추게 할 것인가? 하나님이 움직이신 자를 누가 방해할 것인가... 성령이 말을 주심으로 설교할 때 그는 영광의 기쁨을 누릴 것이며 천국의 기쁨을 느낄 것이다. 그리고 성령의 역사가 끝나면 그는 그 사역을 다시 하기를 원할 것이며 한번 더 설교할 수 있기를 갈망하게 될 것이다.”
설교자! 그는 오늘도 진리로 자신을 태워 만든 불꽃으로 설교할 것이다. “불로 응답하는 신, 그가 하나님이니라”고 말씀하셨듯, 불의 혀를 가진 사람, 그가 바로 하나님의 설교자이다.”
손동식/ 서울신학대학 신학과(B.A)와 연세대학교 대학원 신학과(Th.M)를 졸업한 후 영국의 London School of Theology에서 찰스 스펄전, 마틴 로이드 존스, 존 스토트의 설교 연구로 박사과정(Ph.D)을 마쳤다. 현재 명지대학교 사회교육원 교목 및 교수이며 서울신학대학에 출강하고 있으며 월간강해설교 편집위원으로 섬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