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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홀로 서는 너를 위하여
Kent Nerburn
정승현 옮김
1 아버지의 그림자
내가 성년에 대한 생각들을 형성하고자 시도할 때는
항상 아버지의 모습이 나의 눈 앞에 유령처럼 떠오른다.
나는 지금 그분의 모습 -
그분의 외모, 자신이 과거에 겪었던 일들에 대한 기억들을 거의 잃어버린 모습,
시간을 죽이기 위해 텔레비젼의 채널을 이리저리 돌리시며
한가하게 시간을 소비하는 모습 -을 바라보고 있다.
나는 그분의 현재 모습을 보고 있지만
내 머리에서는 과거 그분의 모습이 어떠했는가를 기억하고 있다.
온 몸이 흥건하도록 많은 땀을 흘리시며 밤늦게까지
풀을 뽑거나 갈퀴질, 혹은 페인트 칠을 하시던 그분의 뒷모습.
상자마다 가지런히 붙어 있던 목록표들과 각종 도구들을 걸어두는 걸이 못이 박힌,
항상 깨끗하게 정돈되어 있던 지하실의 작업대.
그분이 화내던 모습과 이성문제에 대해 머뭇거리며
내게 무언가를 말씀하시려 하던 시도들. 그분이 보여준 침묵과 근면성,
그리고 말로는 설명할 수 없는 의식을 당신의 관습들을 통해
내게 보여주시려 했던 애매모호한 노력들을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한다.
그리고 또한 나는 기억한단다.
당신의 아이들이 자라고, 대학을 졸업하고, 짝을 찾아 독립했을때의,
말로는 형용할 수 없는 얼굴 가득히 뿌듯해 하시던 그 자부심을.
그분 자신은 이제 그런 일들을 거의 기억하지 못하신다.
그분의 기억력은 이미 쇠퇴기에 접어들었다.
내 앞에서 링컨의 게티스버그 연설을 줄줄외우시던 바로 그 분이
이젠 더 이상 그날이 언제였던가를 기억조차 하지 못하신다.
그분의 작업대는 버려져 수라장이 되었고
오랫동안 잊혀진 계획의 파편들만이 먼지가 수북이 쌓인 채
지하실 한쪽 구석의 상자 속에서 한무더기로 처박혀 있다.
내 기억 속에서 언제나 나를 훨씬 능가했던 - 어깨, 근육, 힘 모두 -
바로 그분이 이제는 골 깊은 주름이 지고, 쪼그라들고,허약해진 몸으로
조심스레 움직이고, 걸을 때도 몸을 제대로 가누지 못하신다.
난 그런 모습을 볼 때마다 말로는 표현할 수 없는 깊은 슬픔을 느껴야만했다.
그러나 그 슬픔에는 두려움과 착잡한 마음의 갈등이 혼합되어 있었다.
지나간 날들, 그 많은 하루하루의 나날들을 지나오면서
나는 얼마나 많은 세월을 그분과 함께 살아왔는지를 느끼고 있고,
내 삶의 모든 영역에서 그분이 얼마나
커다란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는지를 실감하지 않을 수 없었다.
물론 그 크기에 있어서는 사람마다 다를 수도 있겠지만
아버지라는 존재가 자신의 삶에 분명한 영향력을 미친다는 사실은
모든 사람들이 똑같이 느끼고있을 것이다.
누구라도 그러한 아버지의 그림자로부터 벗어날 수는 없다.
비록 그 그림자가 우리를 공포스럽게 하더라도,
비록 그 그림자가 이름도 얼굴도 없다 하더라도,
우리 삶의 모든 구석구석으로부터 그 사람의 가치와
그 사람이 존재했었다는 사실과 그 사람의 남겨진 기억을 전부 몰아낸다 해도,
그 그림자는 우리에게 어떻게든 영향을 미친다.
그 사람의 그림자는 결코 부인할 수가 없는 거란다.
내 경우는 무척 다행스러웠다.
비록 당신이 화가 나 있고 외로움이 가슴을 저밀 때에도,
아버지는 자신의 내적인 문제를 겉으로 드러내
내가 주눅이 들게 하거나 나쁜 영향이 미치게 하지 않으셨다.
그분의 손은 내가 필요로 할 때 항상 내 어깨위에 있었고,
당신의 아들에게 자신이 짊어지고 살았던 가난의 고통스런 업보를
물려주지 않으시려고 평생을 열심히 일하셨다.
그렇게 행운이 있는 사람은 그리 많지는 않을 게다.
많은 사람들에게 있어서 어린 시절의 아버지에 대한 기억 속에는,
폭력과 무자비함과 술냄새와 물건들이 깨지는 소리를 들으며
한쪽 구석에 웅크리고 앉아 두려움에 떨던 순간들이 가득 차 있다.
어떤 사람들에게는 아버지의 기억이 있어야 할 자리에
가슴저린 슬픈 상처들만이 남아 있기도 한다.
그러나 우리들 모두는 역시 아버지의 그늘아래서 살아간다.
그것이 현재의 우리를 만들었고, 우리가 되고자 하는 사람의 모습을 형성시키는 거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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