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까이서는 어떤
책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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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까이서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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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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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틴어 |
Prophetia
Aggaei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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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 |
Book of
Haggai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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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가톨릭대사전] | |
하까이란 성경
이름은?
하까이는 12 소예언서 중에서 열번째로 나오는
성경으로, 즈카리야, 말라기와 함께 바빌론 유배 이후에 수집된 예언서 중의 첫번째 책입니다. 예언자 ‘하까이’가 하느님의 말씀을 전한 책이라,
그 이름을 따서 책이름이 붙여졌어요. 하까이는 ‘축제’라는
뜻이에요. 생계를 유지하기에 급급하면서 지내던 이스라엘 백성에게 하느님 안에서 축제를 지내는 삶을 살 수 있도록 성전을 재건하기를 촉구하였던 책 내용과 잘 어울리는
이름이지요.
누가 언제
썼나요?
다른 예언서와는 달리 예언을 선포한 연대가 아주
명확하게 나타나 있어요. “다리우스 왕 제이년 유월 초하루였다. 야훼께서 예언자 하깨를 시켜 스알디엘의 아들
즈루빠벨 유다 총독과 여호사닥의 아들 여호수아 대사제에게 말씀을 내리셨다”(1,1)고 첫머리서부터 분명히 언급되어 있으니까요.
그뿐만 아니라 성전재건이 진행되면서 있었던 중요한 일들이며 예언 말씀이 시간별로 정리되어 있어요(1,14-2,1. 10.
20).
성서본문에 기록되어 있는 내용으로 볼 때, 하까이
예언자가 주로 활동하던 시기는 다리우스 왕 제이년, 곧 기원전 520년이었을 거에요. 그 해에 이루어진 예언 활동 외에는 아무것도 전해 내려
오지 않는 것은, 아마도 그가 바빌론에 의해서 무너진 옛 예루살렘 성전을 본 적이 있을 정도로 나이들었기 때문일 거에요(2,3). 기원전
515-516년에 완공된 성전 재건축에 대한 언급이 전혀 없는 것을 보면, 기원전 520년에 선포된 예언 말씀이 518년경에 후대 사람들에
의해서 기록되었을 거에요.
왜
썼나요?
기원전 538년에 페르샤의 고레스가 바빌론을 함락시킴으로써, 바빌론에
유배되었던 이스라엘 백성은 고국 땅으로 돌아갈 수 있게 되었죠. 하지만 바빌론에서 안정된 터전을 잡은 사람들은 귀환하기 보다는 바빌론에 눌러
살기를 희망했어요. 바빌론에 함락된 채 반 세기가 다 되도록 버려져 있어서 황폐하기 이를 데 없는 예루살렘에 돌아간다는 것은, 바빌론에서
닦아놓은 기반을 모두 포기하는 것을 뜻했으니까요. 물질적인 안정보다는 고국으로 돌아가기를 희망했던 사람들도 계속되는 흉작을 겪으면서, 민족
공동체를 재건한다는 희망은 다 사라지고 오직 생계유지에만 급급했지요(1,5-9).
이 때에 하까이 예언자는 사람들의 시각을 근본적으로
바꾸어 놓고자 했어요. 흉년으로 먹고 살 식량마저 없는데 무슨 성전을 짓느냐는 이스라엘 백성의 반응에, 하느님의 성전을 짓지 않고 생활하는
까닭에 풍성한 수확이라는 축복을 받지 못함을 일깨웠던 거지요. 어려운 가운데서도 성전을 세울 때 그 옛날처럼 뭇 나라들이 조공을 가져다 바치는
다윗 시대의 영화를 다시 누리게 될 것임을 선포했던 거지요. 실제로 하까이가 본격적으로 예언활동에 나섰을 때에는 다리우스 왕의 취임을 기해
페르샤 제국 전역에서 봉기활동이 활발히 일어나고 있었죠. 이러한 제국의 불안정한 정국이 이스라엘의 민족국가 수립을 꿈꾸게
해주었어요.
<새김과
나눔>
이스라엘은 생활이 어려운 가운데 성전을 재건하는 일에
힘을 모읍니다. 날마다 바쁘게 생활해 나가는 우리는 어떤 일에 내 힘을 쏟고 있습니까?
주의 성전을 짓기
시작한 이날부터 주의 성전을 지을 때가 되었다(하까이
1,1-11)
아무리 애써도 소출을 별로 거두지 못하게
된 것은 무슨 이유 때문일까요?(1,9)
야훼 하느님은 아직 주의 성전을 지을 때가 아니라고
말하는 사람들에게 하까이 예언자를 시켜 당신의 말씀을 전하시죠. 씨는 많이 뿌렸어도 수확은 적었고, 먹어도 배부르지 않으며, 마셔도 성이 차지
않는 생활을 그동안 해온 것은, 무너진 성전은 아랑곳하지 않고 제 집만 지으려고 이리저리 돌아다닌 탓이 아니겠냐고요. 하느님은 생각지 않고
자신만 돌보는 생활을 했기 때문에, 온 땅에 가뭄이 들게 되었으니 사람도 짐승도 모두 배를 곯게 되는 것임을 일깨워 주어요.
지도자들과 백성의
응답(하까이 1,12-15ㄱ)
이스라엘 백성은 언제부터 야훼의 성전을
짓기 시작했습니까?(1,15ㄱ)
유다 총독 즈루빠벨과
대사제 여호수아와 그밖에 살아 남은 모든 백성은 하까이가 전하는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는 성전을 지을 마음이
움직여요. 그래서 다리우스 왕 제이년 유월 이십사일에 성전을 재건하기
시작해요.
하느님께서 함께
계시리라(하까이 1,15ㄴ-2,9)
하느님께서는 성전이 지어지는 곳에 무엇을
주리라고 약속하시나요?(2,9)
물자도 부족한 상태에서 재건되는 성전이 솔로몬 때 세운
예전의 성전보다 화려할 리가 만무하지요. 그래서 이 따위 성전은 있으나 마나 하지 않느냐는 생각에 사로잡힌 즈루빠벨과 여호수아와 백성들이
실망하지 않고 성전 재건을 계속할 수 있도록 북돋워요. 비록 지금은 보잘 것 없다 해도 하느님께서 역사하시는 날에는 뭇 민족이 보화를 가지고
와서 성전을 가득 채울 것이라고요. 그렇게 되면 지금 짓는 이 성전이 예전의 성전보다 더 영화로울 것이고, 평화롭게 살 수 있게 될 것이라는
희망을 불러 일으킵니다.
그 날부터 복을
내리리라(하까이 2,10-23)
이스라엘 백성이 어떤 일을 한 다음부터
하느님께서 복을 내리기로 결심하시나요?(2,18-19)
제물로 바쳤던 고기를 싼 옷자락에 다른 음식이 닿았을
때에는 거룩해지지 않지만, 부정을 탄 사람이 어떤 음식을 만지면 그 음식도 부정하게 되는 것이 인간 세상에서 벌어지는 일이죠. 하지만 성전
주초를 놓은 날부터는 하느님께서 복을 내리실 것이니, 수확물이 어떻게 달라지는지 눈여겨 보라고 일러요. 또한 하느님께서 뭇 나라 옥좌를 뒤엎게
되는 날에는 즈루빠벨이 하느님의 종으로 들어 높여지리라고 선포해요. 하느님께서 뽑으신 인물이니만큼 그를 옥새처럼 소중하게 여기실
테니까요.
<새김과
나눔>
하까이는 기근이 들어서 생계를 유지하기 힘든 곳에 성전을 세울 것을 촉구하지요. 우리의 성전은 주로 빈민지역에 위치해 있을까요? 아니면 부유한 곳에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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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bible.catholic.or.kr/3explain/old/23.html
참고
하깨서 Book of Haggai /
가톨릭대사전
http://info.catholic.or.kr/dictionary/view.asp?ctxtIdNum=4609&keyword=%C7%CF%B1%FA%BC%AD&gubun=01
하깨서 Haggai, The Book of / 전례사전
http://info.catholic.or.kr/dictionary/view.asp?ctxtIdNum=8590&keyword=%C7%CF%B1%FA%BC%AD&gubun=04
하까이(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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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인명 |
하까이(Haggai)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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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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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인구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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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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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지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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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연도 |
+6세기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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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이름 |
기원전 538년 바빌론 포로생활에서 첫 번째 귀향한
유태인들은 폐허가 된 예루살렘에서 다시금 올바른 예배를 드릴 수 있도록 힘을 기울였다. 그들은 우선 ‘번제의 제단’을 세웠다(에즈 3,1-6).
그리고 성전을 다시 짓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포로로 끌려가지 않고 팔레스티나에 남아 있던 ‘지방민’(사마리아인과 아시리아의 식민지 주민)의
방해로 이 첫 번째 재건축의 시도는 좌절되었으니, 이 지방민들은 옛날 아시리아 왕들이 이스라엘에 포로로 끌어온 이교도들의 후손으로, 야훼께 대한
순수한 신앙을 우상숭배로 오염시킨 자들이다(에즈 3,7-13; 4,1-5 참조). 그래서 그 후 18년 동안 성전을 다시 짓는 공사는 중단된
채였다.
그러던 중 522년 페르시아제국의 캄비세 왕이 죽고 다리우스 1세가 등극하게 되었는데, 귀향한 예루살렘의 유태인 공동체는
이 사건을 하느님의 간섭을 예고하는 징표로 보았다(하깨 2,21-22). 이러한 징표를 느끼던 유태인들 앞에 하까이와 즈카르야는 예언자로
등장하였다. 그들은 하느님의 왕국이 도래하기 위해서는 성전을 다시 지어야 한다고 조건을 내걸었다.
성 하까이는 6월의
신월제(新月祭)를 지내던 날, 정확히 말하면 기원전 520년 8월 27일에 설교를 시작하여 그 해 12월말까지, 그러니까 약 넉 달 동안 활약을
하였는데, 그의 설교는 하깨 1장 14절이 증언하듯 성공적이었고, 성전 재건축을 위한 예언활동은 즈카르야에 의해 계속되었다(에즈 5,1-2).
히브리어 ‘하까이’(Haggai)라는 말은 ‘나의 축일’이란
뜻인데 이 이름은 우리가 잘 모르는 이 예언자의 모습을 보여 주는 하나의 열쇠로 볼 수 있다. 아마도 예언자가 예배와 성전에 큰
관심을 쏟고 성전 주변에서 생활하였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므로 하깨는 고대 이스라엘의 성전 예언자의 후계자로 보인다(1사무 10,9-10;
2열왕 4,38; 예레 35,4).
포로생활에서 돌아온 유태인들은 매우 가난하였다. 게다가 팔레스티나에 남아있던 지방민들의 방해로
시달림을 받아 실의에 빠져 있었다. 하깨는 그들에게 시대의 징표를 해설하며 귀향한 공동체가 겪는 가난의 원인은 바로 종교적 열성이 저하되고
성전을 짓지 않는 데 있다고 지적하며 이방민족들의 왕국이 뒤흔들리는 것은(2,7-22 참조) 하느님께서 또다시 당신 백성의 역사에 적극적으로
개입하신 증거라고 하였다. 예언자들의 전통적인 설교도식에 따라 하까이는 귀향한 유대 공동체가 평화를 선물로 받고(2,9) 이방민족들의 보화를
차지할 것이라고 하며(2,7-9를 이사 60,5-13과 비교) 또한 즈루빠벨(2,20-23)이 다윗의 후예 메시아를 대변하고 있다고
예언하였다.
하까이의 활동기간은 아주 짧았지만 공동체를 다시 일으키고 예배를 정화시키고 희망을 진작시켰다. 그리고 솔로몬이 지은 첫
성전보다 더 영화로운 제2 성전과 하느님의 통치를 이룩할 왕적인 메시아에 대한 그의 예언은 하느님의 백성인 우리를 마지막 성전이자 종말의
메시아인 예수 그리스도께 대한 신앙으로 인도한다. 비록 하까이와 즈카르야의 설교로 기원전 515년에 완공된 제2 성전은 사라졌지만 하까이는
지금도 우리들에게 살아있는 성전인 부활한 예수 그리스도께 대한 참 신앙의 요구를 하고 있다.
http://info.catholic.or.kr/saint/view.asp
자메 티소, 하까이, James Tissot, Haggai, circa 1896–1902, watercolor
https://en.wikipedia.org/wiki/Haggai
러시아인 이콘화가, 예언자 하까이, Russian icon of Haggai, 18th century (Iconostasis of Kizhi monastery, Karelia, Russia. 러시아 카렐리야 키지 수도원
조반니 피사노, 하까이,
Giovanni Pisano, Haggai, 1285-95, Marbel, height 61 cm, Duomo, Siena 이탈리아 시에나
두오모
http://www.wga.hu/cgi-bin/search.cgi?author=&title=Haggai&comment=&time=any&school=any&form=any&type=any&location=&format=5
예언자 하깨(Prophet
Haggai)
예언자
하깨(Haggai)
예언자
하깨(Hagga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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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깨(Haggai)
예언자
하깨(Haggai)
http://info.catholic.or.kr/pds/album/read.asp
예언자 하깨(Haggai)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