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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하는 수호지

[개인평론]【3】연청의 수호지 탐구-<수호지의 식인풍습>

작성자낭자 연청|작성시간01.05.17|조회수780 목록 댓글 0
수호지를 보면 사람을 잡아먹는 일화가 많은 편인데 의외로 사람들이 무심코 넘기는 경우가 많다. 알고보면 의미심장한 이 식인의 현장들을 한번 짚고 넘어가보자. 저 유명한 십자파의 손이랑은 인육으로 만두를 빚고 남편되는 장청은 살코기를 팔러 다니기도 한다. 소문을 익히 들은 무송은 이를 간파함으로써 오히려 이들 부부와 친교를 맺게 되고, 후에 살인을 저질렀을때 인육만두의 희생자인 행자의 의복을 얻어입게 되어 평생 행자로 지내는 계기를 만든다. 십자파의 인육판매 행위로 오히려 도움을 받은 경우이다. 인육을 파는 술집은 송강이 당할 뻔한 이립의 가게도 마찬가지이고, 양산박을 찾아온 임충을 노리던 주귀의 술집 역시 그러하다. 살인을 즐기는 흑선풍 이규는 맨밥이 먹기 싫어 '가짜 흑선풍' 이귀의 살을 저며내어 반찬삼아 먹는다. 등비는 사람고기를 즐겨먹어 화안산예라 불릴 정도로 눈이 빨갛기까지 하다. (이규 역시 살은 검지만 사람고기를 많이 먹어 두 눈이 붉게 충혈되어 있다.) 청풍산의 세 두령들은 송강을 잡아다가 간을 꺼내어 해장국을 끓이려고도 했다. 여기까지 보면 이들은 정말 막나가는 악당들이다. 사람죽이는걸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하는 것도 모자라 사람을 잡아먹기까지 하는 식인종들이며 동양판 홀로코스트라고 할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아직 더 있다. 송강이 심양루에 적어놓은 시로 인해 황문병의 모함을 받아 한바탕 고생한뒤, 황문병을 사로잡았을때 조개와 송강은 이규를 시켜 황문병의 살을 조금씩 저며내어 안주로 삼고 마지막엔 간을 꺼내어 국을 끓여먹었다. 아무리 원한에 찬 복수라지만 이건 너무하다. 인의의 상징이라는 송강조차 이러하다면 양산박은 진정 악당들의 소굴인가? 사실 중국에는 오랜 식인풍습이 있어왔다. 인육을 먹는 행위, 즉 흘인(吃人) 행위는 양민,도적의 구별이 있었던게 아니라 위로는 황제부터 아래로는 도적까지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일반적이었다. 좋은 의미(?)에서는 병을 고치기 위해서 자신의 살을 부모에게 먹이는 일이 비일비재했으며 수많은 어린아이들이 납치되어 잡아먹혔다. 전쟁이 벌어지면 상대편의 시체를 팔기도 했다고 한다. 요리법도 다양해 날로 먹을때는 회를 떠 소금물에 적셔서 먹었으며 그 외에도 절임, 구이 등의 다양한 방법으로 먹어댔다. (양고기와 맛이 비슷하다고 한다.) 원나라 말기, 도종의의 <철경록(輟耕錄)>에는 인육의 맛과 요리법 등 이에 대한 내용들이 자세히 나와있기도 하다. <서유기>,<홍루몽>,<평요전> 등의 다른 고전에서도 식인풍습이 언급되고 있다. 이러한 행위들은 비단 중국뿐 아니라 인도, 로마에도 정사,신화,전설 등을 통해 그 기록이 수두룩하게 남아있다. 반란을 일으켰던 전호는 경영과 장청에게 생포된 후, 개봉으로 호송되어 '능지쇄과형'의 형벌을 받는데, 이는 즉시 죽이지 않고 조금씩 살점을 잘라내어 천천히 죽이는 형벌이다. 황문병의 최후와 같은 꼴이다. 구경을 하기 위해 모여든 사람들은 이 처참한 장면에 오히려 환호성을 지르며 잘라낸 살점을 서로 차지하기 위해 싸운다. 이런 처형시에는 관리가 직접 살점을 파는 경우도 있었다고 하며 죄수의 피를 빵으로 적셔가 약으로 먹는 사람들도 있었다고 한다. 당시 인육(뼈, 내장 등을 포함)은 약재로도 생각되었다고 한다. 이러한 식인행위는 당시 사람들의 집단정신이상으로 볼게 아니라 식량의 부족에서 기인한 문화라고 생각되어진다. 청나라때까지만 해도 이런 일이 있었다고 하니, 역사의 기록을 보면 오히려 지금에 와서 식인행위가 없어진 것이 더 이상할 정도이다. 참고자료: 이야기에서 출판한 사네요시 다츠오의 <무서워서 읽을 수 없는 수호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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