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들어가는 글
『전경』에는 상제님께서 후천(後天)에서의 음양 도수를 조정하시는 공사에 관한 이야기가 나온다. 상제님께서는 그 자리에 참석한 종도들에게 종이쪽지를 나누어 주시면서 후천의 음양 도수를 보기 위해 각자 다른 사람이 알지 못하도록 점을 찍어 표시하라고 이르셨다. 그리고 종도들이 자신의 마음에 있는 대로 점을 찍어 올리니, 이를 살펴본 상제님께서는 “응종은 두 점, 경수는 세 점, 내성은 여덟 점, 경석은 열두 점, 공신은 한 점을 찍었는데 아홉 점이 없으니 자고로 일남 구녀란 말은 알 수 없도다.”라고 말씀하셨다. 이후 상제님께서는 각자 찍은 점에 대해 자신의 의도를 물었는데, 공신은 “건곤(乾坤)이 있을 따름이요 이곤(二坤)이 있을 수 없사오니 일음 일양이 원리인 줄 아나이다.”라고 대답하였다. 상제님께서는 공신의 말이 옳다고 하시며 “너는 정음 정양의 도수니 그 기운을 잘 견디어 받고 정심으로 수련하라”고 분부를 하셨다.01
상제님께서 공사로 확정하신 후천의 음양 도수는 결과적으로 일음일양(一陰一陽), 정음정양(正陰正陽)으로 조정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천지공사(天地公事)의 일환인 음양 도수의 조정 공사로 확정된 일음일양과 정음정양을 명확히 이해하기 위해서는 일남구녀(一男九女)에 대한 이해 또한 간과할 수 없는 문제라고 할 수 있다. 일남구녀는 오늘날 우리의 일상에서 쉽게 접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전경』의 내용만으로 그 의미를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용어가 아니다. 따라서 이 글에서는 음양 도수 공사와 관련하여 상제님께서 말씀하신 ‘일남구녀’가 무엇인지? 즉 일남구녀가 담고 있는 용어의 성격과 그 의미에 대해 이해해 볼 것이다. 먼저 일남구녀가 쓰인 문헌들을 찾아 그 용어가 쓰인 배경과 의미를 알아보겠다. 그리고 동아시아의 문화에서 나타난 음양론과 남녀의 관계를 통해 일남구녀가 갖는 의미가 무엇인지 살펴볼 것이다.
2. 『정감록(鄭鑑錄)』과 동학(東學)의 일남구녀
상제님께서 “아홉 점이 없으니 자고로 일남 구녀란 말은 알 수 없도다”라고 밝히셨다. 여기서 음양 도수를 조정하시기 위해 찍지 않은 아홉 점을 예로 들어서 일남구녀를 언급했다는 사실은 일남구녀를 평가하기 위해 선택한 의도적인 말씀인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그러므로 일남구녀라는 말은 당시 민중들 사이에 인간의 생활양식이나 행동양식 등과 관련하여 널리 퍼져 있었던 사유가 아닌가 여겨진다. 이는 상제님께서 음양 도수와 관련하여 민간에서 풍문이나 기록으로 돌던 일남구녀를 가르침의 소재로 삼으셨다는 것을 시사한다. 이러한 일남구녀에 대한 단서는 당시의 시대적 상황이 반영된 개인적 저술이나 가사 문학과 같은 기록물에서 찾을 수 있다.
1894년 동학농민혁명에 참여하였던 오지영(吳知泳, 1868~1950)이 동학 교단 및 천도교의 역사를 다룬 『동학사(東學史)』(초고본)를 작성하였다. 이 책의 내용 중에는 동학농민혁명 당시의 사회적 상황과 민중들의 동향뿐만 아니라 일남구녀의 내용을 다룬 서술이 있어 주목된다.
정감록(鄭堪錄)이라는 일종(一種)의 참서(讖書)가 민간(民間)에 도라단니는 것이다. 그 참서(讖書)는 어느 어느 사람이 지여 내노는 것인지는 알 수가 업는 것이나 그 참서(讖書) 속에 씨여 잇는 말로는 “이조(李朝) 오백년후(五百年後)는 공주(公州) 계룡산(鷄龍山)에 정가(鄭哥) 성(姓) 가진 자(者)가 왕(王)노릇을 하리라 하엿스며, 진인(眞人)은 남해도중(南海島中)으로붓허 나는다 하엿스며, 이조말(李朝末)에는 인종(人種)이 만이 업서저서 일남구녀(一男九女)가 되리라하엿스며, 유덕자(有德者)는 생(生)하고 무덕자(無德者)는 사(死)라 하엿스며, 부자(富者)는 망(亡)하고 궁자(窮者)가 산다 하엿스며, 피난지(避亂地)는 십승지(十勝地)를 말하엿다” 그리해서 이 말이 만구전파(萬口傳播)로 도라다니며 경상도(慶尙道) 태백산(太白山)과 전라도(全羅道) 지리산(知異山)이며 충청도(忠淸道) 유구(維鳩) 마곡(摩谷) 등지(等地)를 차자가는 사람이 만엇섯다.02
저자는 『정감록』이라는 참위서(讖緯書)가 민간에 널리 유통되는 당시의 정황을 설명한다. 그리고 『정감록』에는 이씨 왕조 오백 년 후에 정씨가 계룡산에 왕조를 세운다고 하였고, 이씨 왕조의 말기에는 많은 사람이 죽게 되니 십승지를 찾아 피난하라는 내용을 담고 있다고 기술하였다. 여기서 일남구녀는 『정감록』의 핵심 내용을 설명하는 곳에서 나온다. 인용문의 서술을 살펴보면 일남구녀는 『정감록』에서 나온 용어로 그 단어적 의미는 ‘한 남자 아홉 여자’를 말한다. 이는 이조말(李朝末)에 사람이 많이 없어지기 때문에 일남구녀만이 생존할 수 있다는 주장을 담고 있다.
▲ 동학농민혁명기념관 벽면 부조 <우금치 전투>, 2012년 10월 11일 촬영
조선 후기에는 세금 제도인 삼정(三政)이 문란하면서 각종 형태의 억압과 학정(虐政)에 시달리던 민중들 사이에 도참(圖讖), 비기(祕記) 등을 이용한 예언 사상이 유행하였다. 이때 널리 유행한 예언서가 『정감록』이었다. 『정감록은』 조선의 영조(英祖) 때인 1739년 5월 15일 『승정원일기』에 처음 언급된다.03 『정감록』은 단일한 한 권의 책이 아니며 여러 가지 비결의 집성으로 이본(異本) 또한 매우 다양한 것이 특징이다. 『정감록』의 핵심은 풍수에 근거를 둔 ‘이망정흥설(李亡鄭興說), ‘진인출현설(眞人出現說)’, ‘해도기병설(海島起兵說)’, ‘십승지(十勝地)’에 관한 정보가 주요 내용을 이룬다.04 이러한 『정감록』은 곳곳에서 말세에 일어날 참혹한 사건에 대해 묘사하고 있다. 그것은 전쟁과 흉년, 전염병 등의 재난으로부터 수많은 사람들이 죽는다는 내용이 주를 이루고 있다. 오지영의 『동학사』(초고본)에서 기술한 『정감록』의 내용 또한 이러한 『정감록』의 핵심을 벗어나지 않는다. 일남구녀는 이러한 참혹한 재난의 결과로 언급되어 있다.
오늘날 현존하고 있는 『정감록』에서 일남구녀와 관련된 내용을 찾을 수 있을까? 정감록은 특정한 책이라기보다 여러 비기 도참을 하나로 아우르는 개념으로 정감록류 비기 도참서라고 말하는 것이 정확할 것이다. 일본인 관변학자 호소이 하지메(細井肇)가 1923년 이런 비기류들을 묶어 『정감록비결집록(錄鄭鑑錄秘訣集錄)』이란 이름으로 출판한 이후, 그 범위가 고정되기 시작하였다.05 그 결과 도참 비기 가운데 하나에 불과했던 『정감록』이 조선 후기 예언문화를 대표하는 단행본으로 여겨졌다. 1973년에 편찬된 『정감록집성(鄭鑑錄集成)』06에는 일남구녀의 용어를 찾을 수 없다. 이것은 『정감록』의 특성상 여러 예언이 필사본으로 암암리에 전파되었다는 실정을 볼 때 아마도 수집하는 과정에서 누락 또는 소실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다만 『정감록집성』에서는 이와 유사한 내용이 발견된다. 「남사고비결(南師古秘訣)」에는 “백가일우(百家一牛) 십녀일부(十女一夫)”, 「무학전(無學傳)」에는 “백가병일우(百家幷一牛) 십녀봉일부(十女奉一夫)”, 「부록(附錄) 비결집록(秘決輯錄)」에는 “오녀일남(五女一男)” 등의 용어들이 보인다.
그렇다면 일남구녀의 예언은 한국의 역사 기록에 언제부터 등장하였을까? 조선왕조실록인 『성종실록(成宗實錄)』에 ‘의금부에서 박석로 등이 요사스런 말로 사람들을 현혹시킨 죄에 대해 아뢰다’라는 기사가 있다. 전라도 구례현에 사는 백정 박석로(朴石老)가 “전염병과 전쟁의 재변으로 경인년(1470)ㆍ신묘년(1471) 두 해에 사람이 8분(分)은 죽어서, 집은 있으나 사람은 없으며 땅은 있으나 경작하지는 못할 것이다. 그리고 아홉 여자가 한 지아비와 함께 살며[九女共一夫] 열 집이 한 마리의 소를 함께 부리며[十家共一牛] 집에는 연기가 끊어지고 곡식은 쌓아 두고 먹을 것이 없다.”07라는 말로 많은 사람을 현혹하였다고 사건을 기록했다. 이처럼 조선의 성종 시기에는 일남구녀와 비슷한 성격을 가진 구녀공일부(九女共一夫)가 사람을 현혹했던 부정적인 내용의 말로 발견된다. 그러므로 일남구녀와 유사한 내용의 예언은 조선 전기에 이미 대중들에게 알려져 있었던 내용인데, 이후 『정감록』과 같은 여러 부류의 예언서에 수용되어 전해진 것으로 볼 수 있다.
오지영의 『동학사』(초고본)에서는 이조말에 일남구녀가 생존할 수 있다는 『정감록』의 주장을 담고 있다. 여기서 일남구녀는 생존자의 수를 나타낸다. 그렇다고 해서 남녀를 합해 모두 10명의 사람만이 생존한다는 것은 아니다. 일남구녀의 의미는 구녀공일부(九女共一夫: 아홉 여자가 한 남자와 함께 산다)와 십녀봉일부(十女奉一夫: 열 명의 여자가 한 명의 남자를 섬긴다)의 용어를 적용하여 살펴보면 더욱 분명해진다. 일남구녀는 생존자의 남녀 성비 숫자, 즉 특정한 시공간[이조말] 내에서 생존하는 남녀 성별의 비율을 나타내기 위해 사용한 말이라는 것을 유추할 수 있다. 『정감록』에서 말세의 환란들은 조선왕조가 쇠망하는 절망의 시대를 암시하기도 하지만 동시에 새 왕조 출현의 징표가 되기도 한다. 따라서 일남구녀는 생존자의 수를 나타내는 것이지만, 새로운 세상[정씨 왕조]에서는 한 명의 남자와 아홉 명의 여자가 음양(또는 부부)의 관계를 이루어 삶을 영위한다는 뜻으로 해석할 수 있다.
이러한 일남구녀는 동학의 포교 활동에서도 나타난다. 동학의 2대 교주인 해월(海月) 최시형(崔時亨, 1827~1898)의 말을 받아 적어 기록한 『해월신사법설(海月神師法說)』 「부인수도(婦人修道)」 편에 일남구녀의 내용이 나온다.
묻기를 “우리 도 안에서 부인수도를 장려하는 것은 무슨 연고입니까.” 신사 대답하시기를 “부인은 한 집안의 주인이니라. … 부인수도는 우리 도의 근본이니라. 이제로부터 부인도통이 많이 나리라. 이것은 일남구녀를 비한 운이니, 지난 때에는 부인을 압박하였으나 지금 이 운을 당하여서는 부인도통으로 사람 살리는 이가 많으리니, 이것은 사람이 다 어머니의 포태속에서 나서 자라는 것과 같으니라.”08
최시형은 결혼한 여자인 부인(婦人)의 수도에 대해 말하고 있다. 과거에는 부인이 억압받았으나, 현재는 부인의 수도가 중요한 시대라고 하며 이것이 ‘일남구녀(一男九女)를 비유한 운’이라고 가르침을 설파한다. 여기서 일남구녀는 도통(道通)을 받는 것이 남자 한 명과 여자 아홉 명으로 여자가 상대적으로 남자보다 많다는 것을 나타내기 위해 사용한 용어이다. 다시 말해서 최시형은 여자가 남자보다 도통을 많이 한다는 자신의 주장에 대해 그것이 『정감록』과 같은 예언서의 내용인 일남구녀를 비유한 운이라고 강조한 것이다.
또 상주본 동학 가사집인 『춘수가(春修歌)』의 「대운가(大運歌)」에 구녀일부(九女一夫)가 나온다.09 구녀일부는 일남구녀와 비교하면 남(男)과 부(夫)의 글자가 다르지만, 그 단어의 의미가 남성을 나타낸다는 점에서는 차이가 없다. 일남구녀와 관련된 가사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 이십사방(二十四方) 윤회중(輪回中)에 방위(方位)마다 상극(相克)되야 괴질풍우(怪疾風雨) 일어나서 옥석구분(玉石俱焚)될 것이요. 옥석구분 그 가운데 인종(人種)이 난구(難救)되야 백조일손(百祖一孫) 될 것이요. 백조일손 그 가운데 구녀일부(九女一夫) 될 것이니 부디부디 깨달아서 안심안도(安心安道) 극진(極盡)하소.10
이 「대운가」에 따르면 재난으로 살아남은 자가 구녀일부(九女一夫: 아홉 여자 한 남자)가 될 것이라 주장한다. 그 이유는 괴질과 풍우가 일어나서 사람을 구하기가 어렵게 되어 백조일손(百祖一孫)이 된다고 한다. 백조일손은 ‘백 명의 조상에 한 명의 자손’으로 할아버지가 백 명이면 손자는 한 명밖에 안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백조일손 가운데 구녀일부가 될 것이니 부디부디 깨달아서 안심 안도를 극진하게 하라고 호소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여기서 구녀일부는 일남구녀와 비교하여 단어의 순서만 다를 뿐 같은 내용으로 쓰였다.
동학의 포교 활동에서 일남구녀가 인용되었다는 역사적 사실은 우연한 일이 아니다. 당시의 민중들에게 『정감록』의 일남구녀는 널리 신봉된 예언이었기 때문에 가능했었다. 최시형은 동학의 포교에서 일남구녀를 인용하여 남자보다 여자가 도통을 많이 하게 된다는 자신의 주장을 폈다. 그러나 상주본 동학가사는 『정감록』의 내용을 그대로 수용하여 포교에 적용하였다. 따라서 『정감록』의 예언으로 알려진 일남구녀의 용어는 동학의 포교 활동에 수용되거나 변용되면서 아주 광범위하게 유포되었을 것이다.
3. 음양론(陰陽論)과 일남구녀
상제님께서 음양 도수를 조정하는 공사를 보실 때 언급하신 이야기가 일남구녀이다. 그렇다면 일남구녀, 즉 남녀의 관계와 음양론은 어떤 연관성을 갖고 있는 것일까? 『전경』의 「음양경(陰陽經)」에서는 “천지의 일이 모두 이 음양 가운데에서 이루어지고 만물의 이치도 모두 이 음양 속에서 이루어진다(天地之事 皆是陰陽中有成 萬物之理 皆是陰陽中有遂)”(교운 2장 42절)라고 말씀하셨다. 이러한 말씀에 따르면 천지(天地), 즉 우주에 존재하는 모든 현상과 사물이 음양이라는 두 가지 요소의 상관적인 작용을 통해 이루어진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이 음양론은 동아시아에서 오랜 과거부터 현재까지 세계를 인식하고 설명하는 데 있어 매우 중요한 개념이자 범주로 쓰이고 있다.
우주의 만물과 만사는 음양의 상호 작용으로 이루어지는데, 이러한 음양은 대대(對待)라는 관계성에 기반한다. 대대는 ‘마주 대하며(對) 기다린다(待)’라는 의미이다. 이 대대적 관계는 상반적인 타자를 적대적인 관계로 보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존재성을 확보하기 위해 필수적인 전제로서 요구하는 관계이다. 그러므로 대대는 서로 반대되면서 동시에 서로를 이루어주는 ‘상반상성(相反相成)’의 원리로 설명된다.11 음양은 천지와 만물의 근저로서 대대의 원리에 따라 서로를 필요로 하는 조화의 관계로 맺어진다. 이에 음양의 조화에 따라 우주는 질서를 이루며 인간은 화합을 이룬다고 할 수 있다.
음양론이 현실적으로 가장 강한 영향력을 발휘한 곳은 남녀관계의 문제이다. 『전경』에 따르면 선천(先天)은 상극적 이치가 지배하여 자연과 인간 사회는 대립과 갈등을 초래하여 원한을 맺게 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12 선천의 세계는 ‘음양’의 범주에 속하는 모든 사물이 상극에 지배되어 서로 균등하게 조화를 이룰 수 없는 상태이다. 이러한 선천에서 상극으로 드러나는 양상은 양의 우위적 가치가 적용된 경우라 할 수 있다.13 그러므로 선천에서 양이 갖는 일련의 이미지들은 음의 그것과 비교하면 보다 긍정적인 것으로 인식되었다. 이러한 사유적 경향은 양귀음천(陽貴陰賤: 양은 귀하고 음은 천하다)과 부양억음(扶陽抑陰: 양을 돕고 음을 억압한다) 등과 같은 음양의 관계로 드러난다. 양귀음천과 부양억음은 음양이 부조화한 상태이다. 특히 남녀관계에서 음양의 부조화는 남존여비(男尊女卑: 남자는 존귀하고 여자는 비천하다)의 사회문화적 차별과 억압으로 나타난다. 과거 우리 문화 안에서 여성이 남성보다 결핍된 이미지로 표현되거나 부정적이고 열등한 존재로 인식되는 현상들은 모두 이와 같은 맥락에서 설명될 수 있다.
상제님께서는 선천의 상극에 따른 부조리와 모순을 극복하고 상생의 이상세계인 후천을 열기 위해 천지의 도수를 조정하는 천지공사를 보셨다. 천지공사로 확정하신 음양의 도수가 일음일양과 정음정양인 것이다. 일음일양은 하나의 음과 하나의 양이 서로 대등(對等)한 관계를 맺는 것이다. 정음정양은 일음일양에 기반한 음과 양이 각각 정당(正當)한 입장에서 관계를 맺는 것이다. 일음일양은 각자의 존재 양상이 일대일(한 명-한 명)로 대응하는 양적인 조화의 관계라면 정음정양은 각자의 존재 양상이 정대정(올바름-올바름)으로 대응하는 질적인 조화의 관계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일음일양과 정음정양은 음양인 남녀가 절대적 조화와 균형을 이루고 있는 이상적인 상태를 말한다. 이러한 일음일양과 정음정양은 상제님께서 단행하셨던 천지공사의 요체인 음양합덕(陰陽合德)의 종지(宗旨)가 현실에서 실현된 내용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현실 세계에서 음양과 건곤(乾坤)을 상징하는 남녀의 관계가 음양합덕의 이상적인 조화와 균형을 이루는 구체적인 방법은 무엇인가? 이것은 상제님께서 확정하신 천지공사의 내용에서 찾을 수 있다. 『전경』에 선천의 폐단인 청춘과부의 수절을 고쳐 후천에는 “젊은 과부는 젊은 홀아비를 늙은 과부는 늙은 홀아비를 각각 가려서” 개가(改嫁)하는 공사(공사 2장 17절), “대장부(大丈夫) 대장부(大丈婦)” 공사(교법 2장 57절), “어찌 남장군만 있으랴 여장군도 있도다”라고 한 여장군(女將軍) 공사(권지 1장 17절)를 통해 이루어진다. 이러한 남녀와 관련된 공사는 선천의 현실에서 남성보다 상대적인 차별과 억압으로 소외당한 여성의 지위와 역량을 끌어올리게 하는 것으로 이해된다.
상제님의 천지공사로 확정된 음양 도수는 곧 우리가 후천에서 살아가는 현실적 삶의 양식에 그대로 반영된다. 인간 삶에서 남녀가 부부관계를 맺는 혼인의 계약은 음양합덕을 이루는 일음일양과 정음정양의 도수를 따르게 되는 것이다. 이 후천의 음양 도수를 남녀의 관계로 전환하면 일녀일남(一女一男)과 정녀정남(正女正男)으로 이해할 수 있다. 그러므로 종도들이 바라는 두 명의 아내, 세 명의 아내, 여덟 명의 아내, 열두 명의 아내는 모두 후천의 이상세계를 이루는 음양론[일음일양과 정음정양]에 맞지 않는다. 일남구녀도 이와 다르지 않다. 『정감록』과 같은 예언서에서는 말세의 현상으로 일남구녀를 주장하였는데, 일남구녀가 왜 살아남는지 또는 왜 음양의 관계를 맺는지 그것에 대한 명확한 근거나 해명은 없다. 일남구녀의 예언은 새로운 세상[또는 왕조(王祖)]을 바라는 염원에서 비롯되었지만, 선천과 같은 불평등한 남녀관계의 연장선에 불과할 뿐이다.
4. 나가는 글
지금까지 상제님의 음양 도수를 조정하는 공사에서 언급된 일남구녀에 대해 살펴보았다. 상제님께서 말씀한 일남구녀는 당시 민중들에게 널리 퍼져 있던 『정감록』의 내용 중에서 하나의 예언이다. 『정감록』에서 일남구녀는 말세에 일어나는 여러 환란으로부터 죽지 않고 살아남은 생존자를 말한다. 이러한 생존자가 사는 세상은 곧 생존자의 성(性) 비율에 따라 혼인을 이루는 상태를 맞이하는 것으로 해석된다. 전통적으로 남녀의 혼인은 음양 관계로 설명한다. 그러므로 일남구녀는 남자 한 명과 여자 아홉 명이 음양 관계, 즉 혼인이라는 부부의 관계를 맺은 상태를 의미한다.
일남구녀의 예언은 조선 말기에 『정감록』의 유행뿐만 아니라 동학과 같은 새로운 사상적 조류를 통해 널리 확산하게 되었다. 상제님께서 언급하신 일남구녀는 당시의 시대적 상황이 반영된 가르침으로 이해된다. 그러므로 “자고로 일남 구녀란 말은 알 수 없도다”라고 하여 객관적이고 합리적 근거도 없이 세간에 떠돌던 예언에 대해 단호한 평가를 내리셨다. 당시의 일남구녀는 미래의 남녀관계를 예언한 말이다. 하지만 일남구녀의 서사는 선천의 경우처럼 양의 가치가 더 중요하게 작용한 결과로 파악된다. 또 선천의 경우처럼 남성적 시선에서 이루고 싶은 욕망이 투영된 것으로 이해가 된다. 결론적으로 일남구녀는 불평등한 남녀관계로 남녀의 차별과 갈등을 조장하는 예언에 지나지 않는다. 상제님께서는 남녀관계를 지배한 선천의 양귀음천을 후천의 음양합덕으로 전환하기 위해 음양 도수를 조정하는 공사를 보셨다. 이로써 후천에서는 억압과 차별로 오랫동안 여성들의 원한을 맺게 했던 남존여비는 사라지게 되는 것이다.
상제님의 천지공사로 이루어지는 후천은 진정한 음양의 조화가 실현되는 새로운 시대이다. 음양을 대표하는 남녀는 남성과 여성의 생물학적인 차이만 있을 뿐 사회적 정치적 윤리적 주체로서 도통군자(道通君子)를 실현하는 동일한 존재이다.14 그러므로 후천은 개개인들 각자가 자신의 존재 가치를 실현하는 인존시대(人尊時代)이다. 남녀는 인존(人尊)이라는 자기실현을 통해 절대적으로 평등하고 정당한 음양의 관계로 정립되는 것이다. 후천에서 혼인이라는 남자와 여자의 결합은 개개인이 자기실현을 이룬 온전한 인격체로서 일음일양과 정음정양의 원리에 따라 이루어지게 된다.
01 공사 2장 16절.
02 『東學史(草稿本)』, 「東學史 二, 관직매매(官職賣買)의 폐해(弊害)와 관례배(官隷輩)의 작난(作亂)」. [한국사데이터베이스(https://db.history.go.kr), 동학농민혁명자료총서]. 이 책은 서문(序文)에 “포덕 65년 갑자 3월 일우일서(布德六十五年甲子三月 日于一序)”라는 문구가 있는 것으로 보아 1924년 3월 저술된 것으로 보인다.
03 박상규, 「대순사상과 『정감록』의 관계」, 『대순사상논총』 36 (2020), p.14.
04 이종필, 「『정감록』과 조선후기 하위주체들의 저항적 연대」, 『우리문학연구』 62 (2019), p.31.
05 박병훈, 「궁을가 연구」, 『종교학연구』 37 (2019), p.132.
06 안춘근 편, 『鄭鑑錄集成』 (서울: 아세아문화사, 1981). 이 책은 안춘근이 의사고본(擬似稿本)의 『祕訣輯錄』과 호소이 하지메(細井肇)의 『鄭鑑錄祕訣集錄』, 김용주(金用柱)의 『鄭鑑錄』, 현병주(玄丙周)의 『批難鄭鑑錄眞本』 등 그간의 간행본과 자신이 입수한 필사본을 모아 출간하였다.
07 『성종실록4권』, 성종 1년 8월 3일 무신(戊申), “瘟氣刀兵之災, 庚寅辛卯兩年, 人死八分, 有家無人, 有地不耕, 九女共一夫, 十家共一牛, 家斷烟火, 穀無儲食.”이 사건과 같은 소문의 내용은 ‘충청도 관찰사 김양경이 광망한 소문을 퍼뜨리는 자들을 체포하였음을 보고 하다’라는 기사(성종 1년 3월 22일)에도 나온다.
08 『해월신사법설(海月神師法說)』, 「부인수도(婦人修道)」, “問曰 吾道之內 婦人修道奬勵是何故也. 神師曰 婦人家之主也. … 婦人修道吾道之大本也. 自此以後婦人道通者多出矣. 此一男九女而比之運也. 過去之時婦人壓迫 當今此運 婦人道通 活人者亦多矣. 此人皆是母之胞胎中生長者如也.”
09 상주본 동학가사는 김주희(金周熙, 1860~1944)가 경상북도 상주에서 동학교(東學敎)라는 교단을 열고 1922년부터 1933년까지 간행한 것이다. 그중에는 수운이 지은 『용담유사』도 수록되었지만, 대부분은 교주인 김주희가 포교를 위해 창작하거나 수집 정리한 작품이라고 전한다. 김주희는 1904년에 경천교를 조직하였다가 1915년에 동학교를 조직하였다. 김상일, 「상주지역 동학교단의 활동과 동학가사」, 『동학학보』 12 (2006), pp.93-94.
10 김주희, 『춘수가』 (상주: 銀尺, 1976 ), p.16.
11 최영진, 「역학사상의 철학적 탐구」 (성균관대 박사논문, 1989), pp.34-37.
12 상제께서 “선천에서는 인간 사물이 모두 상극에 지배되어 세상이 원한이 쌓이고 맺혀 삼계를 채웠으니 천지가 상도(常道)를 잃어 갖가지의 재화가 일어나고 세상은 참혹하게 되었도다. 그러므로 내가 천지의 도수를 정리하고 신명을 조화하여 만고의 원한을 풀고 상생(相生)의 도로 후천의 선경을 세워서 세계의 민생을 건지려 하노라.”(공사 1장 3절)
13 이러한 선천은 낙서(洛書)인 역(易)의 원리를 통해서도 이해할 수 있다. 낙서는 양수가 동서남북의 사정방(四正方)에 음수가 네 모서리의 사유방(四維方)에 있는 수리(數理)로 양이 주도하고 음이 보조하는 도수를 의미한다.
14 교법 1장 68절, “후천에서는 그 닦은 바에 따라 여인도 공덕이 서게 되리니 이것으로써 예부터 내려오는 남존여비의 관습은 무너지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