越女一笑三年留
춘추 시대 월(越)나라에는 특히 미인이 많았기 때문에 월녀는 곧 서시(西施)를 비롯한 모든 월나라의 미인을 범칭한 말로, 한유(韓愈)의 고시(古詩) 〈유생시(劉生詩)〉에 “월녀의 웃음 한번 보려고 삼 년을 머물렀고, 남으로 횡령을 넘어 염주에도 들어갔었네.[越女一笑三年留 南逾橫嶺入炎州]”라고 한 데서 온 말이다. 간담이 서늘해졌다는 것은 곧 미인을 경계하는 뜻으로 한 말이다. 《韓昌黎集 卷4》
한창려(韓昌黎 한유(韓愈))가 후희(侯喜)에게 지어 준 시에, “월녀일소 삼년류(越女一笑三年留)”라는 구(句)가 있었다. 그때에 후희가 월(越)나라 지방에 가서 여인에게 혹하여 3년 동안 돌아오지 않았으므로 한유가 경계한 것이다.
한유(韓愈)가 유사명(劉師命)에게 지어준 시에, “월 나라 계집이 한 번 웃으매 3년 동안 머물렀다.[越女一笑三年留]”는 구절이 있는데, 그것은 그 사람이 월(越)의 지방에서 여자에게 빠져서 3년간 지체하였던 때문이라 한다.
창려는 창려백(昌黎伯)에 봉해진 한유(韓愈)를 가리키고, 월녀(越女)는 월 나라의 미인을 가리킨 것으로, 한유의 고시(古詩)에, “월녀의 한 번 웃음에 삼 년 동안 체류했다가, 남으로 횡령을 넘어 염주에 들어왔도다.〔越女一笑三年留 南逾橫嶺入炎州〕”라고 한 데서 온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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