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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만조선 왕검성의 위치/명도전

작성자작은소나무|작성시간11.08.22|조회수197 목록 댓글 0

연(燕)나라 망명객 위만이 세운 위만조선의 도읍지 왕험성은 어디일까요?
이는 사료로만 보면 요동의 요하유역의 매우 협소한 지역까지 좁혀질 수가 있습니다.

<여기서 전제조건을 몇 가지만 붙이겠습니다.>

1. 왕검성은 사료에 매우 헷갈리게 나온다. 기본적으로 왕검성은 두 곳 이상이다.
2. 周書 이후의 사료(통전포함)는 위만의 첫도읍지 왕검성이 아닌 곳을 지칭하므로 신중한다.
3. 요사와 금사는 첫 왕검성의 위치를 알려줄 단서가 될 수도 있으므로 받아들인다.
4. 浿水와 沛水는 혼동되어 사용되고 있으므로 같기도 하고 다르기도 하다.(사료별로 다르다)
5. 浿水는 두 곳 이상이다.
6. 모든 이야기는 오직 위만의 왕험성에만 관련되는 것이며 정밀한 사료비판을 하지 않고 사료를 사용한다.

고조선 즉 위만조선의 도읍지는 어디가 되어야 할까요. 첫째 그 기준이 되는 사료입니다.
BC93년 경에는 이미 완성되었다고 보는 史記의 구절입니다. 사마천(BC145~ )은 위만조선이 멸망하던 시기(BC10?년경)에 한나라의 관리를 역임하고 있었기 때문에 당대의 기록(위만조선의 건국은 BC195년경)이며 관련자의 기록이라 매우 신빙성이 높다고 할 수 있습니다.

<朝鮮王滿者故燕人也.自始全燕時嘗略屬眞番朝鮮爲置吏築鄣塞.秦滅燕屬遼東外徼.漢興爲其遠難守復修遼東故塞,至浿水爲界,屬燕燕王盧綰反入匈奴,滿亡命聚黨千餘人魋結蠻夷服而東走出塞,渡浿水居秦故空地上下鄣,稍役屬眞番朝鮮蠻夷及故燕齊亡命者王之,都王險>
(조선왕 만은 옛 연나라 사람이다. 처음에 연나라가 온전할때 일찌기 진번과 조선을 공략해 예속시키고 관리를 두고 변경의 요새를 건설했다. 진이 연을 멸하고는 요동외요에 소속시켰다. 한이 흥할때 그곳이 멀어 지키기 어렵자 다시 요동의 옛요새를 수리했다. 그리고는 패수를 경계로 삼았다. 연에 속할때 연왕노관이 반란을 일으켜 흉노로 들어가자 만 역시 망명했는데 천여명을 끌고 상투를 틀고 만이의 옷차림으로 동쪽으로 도주 요새를 벗어났다. 그리고는 패수를 건너 진나라때의 윗 성벽과 아랫성벽 사이의 빈땅에 살았다. 점차 진번과 조선의 오랑캐와 옛 연나라, 제나라 망명자들을 복속시키고 왕이 되었다. 왕험에 도읍을 했다.)

조선은 일단 한나라와 패수를 경계로 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위만은 이 패수를 넘어왔습니다. 그리고 왕험에 도읍을 했습니다. 이모든 사실은 의심하기 힘든 사실이라고 보아야 합니다.
그런데 사기는 이후에도 패수가 여전히 경계였다고 말합니다.

<元封二年,漢使涉何譙諭右渠終不肯奉詔.何去至界上臨浿水,使御刺殺送何者朝鮮裨王長,卽渡馳入塞>(원봉2년(BC109년) 한나라 사신 섭하가 우거왕을 꾸짖어 달래려 했지만 끝내 조서를 받들지 않았다. 섭하가 경계에 있는 패수에 다다라 사람을 시켜 전송나온 조선비왕장을 살해했다. 그리고 바로 건너서 달려서 변경요새로 들어갔다)

일단 여기서 연나라 지역에서 동쪽으로 패수를 건너면 고조선(위만조선)의 영토가 나옵니다.
이 浿水는 주서,북사,수서,신당서와 삼국사기에 나오는 浿水와는 다릅니다. 후대의 패수는 주로 평양성을 설명하면서 <南臨浿水> - (평양성 남쪽에는 패수가 붙어있다.) 라는 구절로 나옵니다. 삼국사기의 패수도 거의 이 패수를 말합니다.

만약 위만조선의 도읍지가 지금의 평양이라면 사기의 구절은 매우 설명키 어려워 집니다.
고조선의 장수를 죽이고 패수를 건너 변경요새로 들어간 섭하는 어디로 갔다고 해야 하나요? 패수를 건너면 연나라의 땅과 가까워져야 하는데 평양성에서 패수를 건너면 연나라와 오히려 멀어지는 문제가 생깁니다. 또한 위만은 변경을 나와서 동으로 패수를 건너 조선에 갔다고 하는데 패수를 서에서 동으로 건너 현재의 평양성으로 갈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일부에서는 청천강을 패수로 이야기합니다만 역시 사기에 나오는 패수로 보기는 힘듭니다.

왜냐? 사기의 주석들때문에 그렇습니다. 왕험성에 대한 주석입니다.
<集解徐廣曰昌黎有險瀆縣也.索隱韋昭云古邑名.應劭注地理志遼東險瀆縣朝鮮王舊都.臣瓚云王險城在樂浪郡浿水之東也>(집해서광은 (왕험은) 창려 험독현에 있다, 색은위소는 (왕험은) 옛읍의 이름이다, 응소가 지리지에 주석하기를 요동험독현은 조선왕의 옛도읍이다. 신찬이 말하기를 왕험성은 낙랑군 패수의 동쪽에 있다)

이를 종합하면 패수동쪽에 조선의 왕험성이 있는데 험독현에 속한다. 또는 요동험독현 자체가 조선왕의 옛도읍인 왕험성이다. 문제는 끝난 셈입니다. 험독현만 찾으면 위만조선의 수도 왕검성이 발견되는 것이죠. 과연 험독현은 어디에 있을까요? 험독현 자체가 왕검성일 수도 있습니다.

바로 발견됩니다. 한서지리지에 보면 험독현이 나옵니다. 요동군에 험독이 있습니다. 여기서 번한도 나옵니다. 패수도 나오고요...
<遼東郡 秦置.屬幽州.戶五萬五千九百七十二> 襄平, 新昌,無慮,望平,房,候城,遼陽,險瀆,居就,高顯,安市,武次,平郭,西安平,文,番汗,(沛水出塞外,西南入海).沓氏


또 다른 험독입니다. 후한서지리지에 나오는 내용입니다.
<遼東屬國 낙양東北三千二百六十里.> 昌遼(故天遼屬遼西) 賓徒(故屬遼西) 徒河(故屬遼西) 無慮(有醫無慮山) 險瀆 房

이 험독은 옛 요서에 소속되었던 지명들과 유사하게 나타나고 있습니다.
대표적으로 무려 같은 곳은 지금도 의무려산이 있기때문에 쉽게 알수 있는 지명입니다.
이제 요동이나 요서인근에서 왕검성을 찾을 수 있을 것같다는 느낌이 듭니다.

과연 험독은 구체적으로 어디일까요? 이제 요사로 내려와 보겠습니다. 요사지리지에 나오는 험독입니다. <集州,古陴離郡地,漢屬險瀆縣,高麗爲霜巖縣>(집주, 옛 비리군이다. 한나라의 험독현에 속했다. 고구려는 상암현이라 했다)

광개토대왕비에 나오는 비려가 바로 왕검성일 가능성까지 보여주는 정말 재미있는 구절입니다. (소벌님께서 검토 좀...) 집주가 험독현에 속해 있었기 때문에 집주 자체도 왕검성이거나 일부일 가능성이 있습니다.

도대체 그럼 요나라의 집주는 어디일까요? 할수없이 금사까지 내려가봅니다. 금사 지리지입니다. 奉集 (遼集州懷遠軍 奉集縣,本渤海舊縣,有渾河) 금나라의 봉집현이 요나라 집주 봉집현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이곳에 혼하가 있다고 합니다. 그럼 집주는 渾河주변에서 찾아도 좋다는 이야기입니다.

금나라 시기의 혼하는 현재의 혼하입니다. 혼하주변에서 집주를 찾을 수 있으며, 집주는 한나라때의 험독현이었습니다. 또한 험독은 왕험성 그자체라고 까지 사서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일단 고조선의 왕검성의 후보지로 혼하라는 구체적인 지명이 나왔다고 칩시다.

다음, 集州가 고구려 霜巖縣이었다는 기록에 따라 상암현을 찾아보겠습니다. 요사지리지입니다. <盧州,本渤海杉盧郡,故縣五:山陽、杉盧、漢陽、白巖、霜巖,皆廢.統縣一:熊岳縣.西至海一十五里,傍海有熊岳山.>

요나라 노주에 옛상암현이 있습니다. 그러나 상암현은 사라졌고 옆에 백암현도 사라졌습니다. 백암현은 당이 백암성을 공략한후 설치했던 巖州로 여겨집니다. 하여튼 노주나 상암의 위치는 정확히 나오지 않고 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지금도 남아있는 지명하나가 등장합니다. 웅악현인데 바닷가에 웅악산이 있다고 되어 있습니다.
웅악산은 요동반도의 현 盖州市 인근의 산입니다.

일단 한나라 때의 험독현은 혼강과 개주시 부근 어느 곳에서 찾을 수 있으며, 고조선(위만조선)의 도읍지 왕험성(왕검성)도 이부근에서 찾아질 것입니다. 보다 정확한 위치를 찾기 위해서 또 다른 기록을 참조하겠습니다. 그럼 대청일통지(저는 원문을 보지 못했습니다.-구산님이 제시한 것)의 기록입니다.

<險瀆舊城在廣寧縣東南>험독의 옛성은 광녕현 동남에 있다.

광녕현은 어디일까요? 이제 청사고까지 내려갑니다. 청시기의 지명은 지금도 그대로 유지되는 경우가 많아서 다행입니다. 청사고 지리지 錦州府편입니다. 금주는 요동만에 지금도 있는 지명입니다.

< 盤山廳 雰一百七十里.明,廣寧盤山驛.光緖三十二年分廣寧縣地及盤蛇驛牧廠地置廳,隸府.南瀕海..>(반산청은 금주부의 동쪽 170리 떨어져 있다. 명나라때 광녕반산역이라했다. 광서32년(1906년)에 광녕현의 땅과 반사역 목창지를 나누어 청을 설치했다. 부에 속하고 남쪽은 바닷가이다.)

반산청이 바로 광녕현의 땅입니다. 이 반산은 지금도 지명이 그대로 유지되는데 요녕성 盤山이 그곳입니다. 금주시와 요양시의 중간정도에 위치해 있습니다. 그럼 광년현의 동남은 현지명으로 어디쯤 될까요. 요양시와 개주시 사이입니다.

사료에서 나타나는 바로는 아래로는 개주의 웅악산, 위로는 혼하사이에 험독현이 있었으며,
지금의 요양시,안산시,해성시 부근에 험독현이 있었고 그 곳이 바로 고조선의 위만조선의 도읍이었을 가능성이 높다는 것입니다. 더군다나 요사지리지는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遼陽縣.本渤海國金德縣地.漢浿水縣,高麗改爲勾麗縣>(요양현 본래 발해국 금덕현의 땅이다. 한나라의 패수현이며 고구려가 이름을 바꾸어 구려현이라 하였다.) 패수가 옛 양평, 현 요양시 인근을 지나감을 말하고 있습니다.


<결론>
-패수는 사료상 太子河입니다.
-위만조선의 도읍지 왕검성은 사료상 현 중국요녕성 海成市부근입니다.

  1 / 글쓴이 : 세 연 / 2004-11-14 오후 11:56:02

  '성경강역고' 중 일부입니다. 성경강역고는 '요해총서' 중에 들어 있습니다. 인터넷으로 국가전자도서관에서 열람가능. 문헌만 가지고 따지는 책으로는 꽤 잘된 책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글을 쓴 이는 험독현의 위치에 대하여 두가지 설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신민청 남계, 그리고 광령현 동남. 두가지 중에서 앞의 것에 무게를 두고 있습니다. 신민청 남계라고 하면 요동만 쏙 들어간 끄트머리 위쪽 정도 될 것입니다.

하여튼 험독현은 요하에서 가까운 곳에 있음은 틀림이 없습니다. 전한 요동군의 서쪽과 요서군의 동쪽을 떼어 요동군, 요서군 사이에 만든 것이 후한의 요동속국인데, 험독현은 요동속국에 속했으므로...

요사지리지 같은 것은 이용하기가 너무 까다로운 것 같습니다. 요사지리지 저자가 (움직이지 않는) 땅의 연혁과 (집단이 움직임에 따라 따라 움직이는) 행정구역명의 연혁을 구분하지 않고 무조건 짬뽕해 버리는 바람에 생긴 오류가 너무 많아서...

가령 발해오경을 비롯한 행정구역들은 백두산을 중심으로 영고탑(동경성, 영안 부근), 훈춘, 함흥, 화룡, 돈화, 서경압록부(환인현 부근?) 등지인데, 요사지리지에 따르면 마치 요양 부근에 오밀조밀하게 모인 것 같이 보입니다.

* 요동만 부근 지형도를 추가하여 올립니다.

신민청 혹은 신민부는 지도에서 심양 서북서쪽에 Xinmin이라고 표시된 곳에 있습니다. 광령현은 의무려산에 붙어 동쪽에 있었습니다. 성경통지 등에 광령현은 잘 표시되어 있습니다.

위에 신민청이 요동만 쏙 들어간 곳 위쪽이라고 했는데, 바다 바로 위가 아니라 퇴적평원인 요동평원 위쪽 끄트머리 부근인 것을 잘못 표현한 것입니다.


신동훈 (2004-10-01 00:13:02)
그런데 신민이 된다면, 누선장군이 도망간 산이 어디가 되나요?
사기에 보면 왕검성 지근거리에 높은 산지가 있었던것 같은데요.

신민에서 조금더 동쪽 어딘가 아닐까요? 저는 누선장군이 도망간 지역을 요동반도의 산지 어디로 봤었는데. 신민이 된다면 누선장군이 도망갈만한 험한 산지가.,,,


신동훈 (2004-10-01 00:16:12)
<右渠>城守, 窺知樓船軍少, 卽出城擊樓船, 樓船軍敗散走. 將軍<楊僕>失其衆, 遁山中十餘日, 稍求收散卒, 復聚. 左將軍擊<朝鮮><浿水>西軍, 未能破自前....,
누선이 산중으로 도망가 10여일 있었다고 되어 있지요.


신동훈 (2004-10-01 00:20:32)
그리고 신민은 요하줄기의 서쪽인데.,, 사기를 본다면 큰강의 동쪽에 있어야 할것 같다는 생각이.,,신민의 위치라면 대릉하까지는 큰강이 안보이는데요. 패수라고 볼만한.

<右渠>城守, 窺知樓船軍少, 卽出城擊樓船, 樓船軍敗散走. 將軍<楊僕>失其衆, 遁山中十餘日, 稍求收散卒, 復聚. 左將軍擊<朝鮮><浿水>西軍, 未能破自前.


무명 (2004-10-01 00:31:49)
신동훈님 신민이 험독이라고 보기는 힘듭니다. 성역강역고를 자세히 보시면 험독은 신민청 남쪽 경계에 있다고 되어있습니다. 그리고 광령현 동남에 있고요..광령현의 동남과 신민청의 남쪽 어딘가가 험독현의 위치로 나옵니다.위의 지도중에 Panshan이라도 되어있는 반산이 광령현에 속했던 것으로 사료에 나옵니다. 그러니까 신민 남쪽에서 반산 동쪽부근을 찾으면 될 것으로 생각됩니다. 신민이 험독현이라고 보기가 힘들어요...

사진이 흐릿해서 원문을 잘 모르겠지만 <應注蓋以險瀆卽王險城>이렇게 되어있거든요.
저는 여기에 蓋가 왜 들어갔는가 의하합니다. 혹시 개주가 험독이라고 말하는 것이 아닌가 생각되기도 합니다. 주석의 중간에 이런 말이 있거든요. 蓋卽遼瀆之異名 (蓋는 요독의 다른 이름이다)?


신동훈 (2004-10-01 00:50:18)
결국 명도전 분포한 지역과 일부 겹치게 되는군요. 지금 여기서 말하듯이 위만조선의 왕성 험독이 요동이라면요.어째 그럴것 같더라.,,
http://www.history21.org/zb41/data/discuss/1072286330/Untitled_1.jpg


신동훈 (2004-10-01 00:57:06)
위 명도전 그림 보시면 재미있는것이 이 명도전 나오는 시기가 한반도의 세형동검문화기와 겹칩니다. 그러니까 명도전이 나오는 시기에 한반도에서는 세형동검이 나오는거죠.

그런데 명도전과 세형동검은 일부 겹치기도 합니다만, 대개 청천강정도를 경계로 볼수 있습니다. 위의 그림도 그렇죠. 물론 엇나간곳도 있습니다만.,

명도전이나 세형동검의 경우처럼 전국시대에서 진한기까지 보면, 한반도의 청천강을 경계로 그 이북과 이남의 문화가 상당한 차이를 보이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렇게 보면, 여기서 떠오르는 생각이 이 부분이 아닐수가 없는데.,
결국 위만의 중심지가 요하근접지역으로 픽스되면 대동강은 준왕의 남천지?


신동훈 (2004-10-01 01:00:59)
명도전 분포를 보면 요하와 혼하의 사이가 아니라 혼하 동쪽 같지 않으세요? 혼하의 동쪽 강변을 따라 명도전유적이 길게 분포되어 있죠.

저는 이 명도전이야 말로, 조선의 이른바 "범금십조"의 범죄를 저질렀을때 돈으로 갚는 그 화폐의 실체라고 봅니다. 청천강이남에는 이런 화폐의 발굴. 거의 없거든요.



과객2 (2004-10-01 01:15:27)
예전에 수세미가 찍었던 적이 있는지 기억은 나지 않지만, 고조선의 지리에 대한 책을 낸 적이 있는 치과의사 구자일님은 신민 지역에 장당경이 있었다고 보고 있습니다. 구자일님은 험독은 신민 지역이 아니라 요하 하류에서 서쪽으로 약간 벗어난 지역에 있었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신동훈 (2004-10-01 01:21:14)
아무튼 요즘 이 부근을 지목하시는 분들이 부쩍 늘어난것 같네요. 그런데 혹 노파심에서 드리는 말씀입니다만, 이 지역 혹시 요택에 해당하지는 않나요? 요하이동에서 압록강까지 사람이 안살고 버려졌다는 이야기를 한두번 본게 아닌지라.


과객2 (2004-10-01 01:40:22)
저도 기억이 가물가물한데, 아마도 안동도호부의 위치가 대체로 요하 하류 정도로 나오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소벌가리 (2004-10-01 10:42:37)
제 생각에는 신민청 남경과 광녕현 동남이 다른 것이 아니라 같은 곳을 가르키는 듯합니다. 광녕현은 지금의 北鎭(Beizhen)입니다 뒷산이 의무려산입니다. 험독은 아마도 북진과 거의 같은 영역으로 알고 있습니다. 이 경우 패수는 대릉하가 되지 않겠는지요?

 

 

 

▶명도전

흑룡강성이 발행하는 학술지 [북방문물] 2004년 논문집

길림대 역사학 장박천 교수

 

명도전의 원절식도전은 고조선의 화폐

방절식도전은 연나라화폐라고 주장.

[명도폐연구속설(明刀幣硏究續說)]


명도전 숫자를 보면

북경 4,553개와 하북성 방면 59,245개

내몽고 218, 대릉하 684, 요하 2,601, 요동반도 857, 압록강유역 21,730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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