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혜가 있는 순간에는 번뇌가 일어나지 않습니다
수행자 : 오늘은 수행을 보고하는 것보다 궁금한 것을 여쭈어 보고 싶습니다. 대상과 마음의 성질을 알고, 대상과 마음의 관계를 알고, 일어나는 현상들을 대상으로 알아차림을 이어갈 수 있으면 탐·진·치가 일어나지 않거나 탐·진·치를 일으키지 않을 수 있습니까?
사야도 : 지혜가 있는 순간에는 일어나지 않습니다. 그냥 대상을 아는 것보다는 대상의 성질을 알고 이해했을 때 번뇌가 일어나지 않게 됩니다. 사띠는 그냥 뭐가 일어나고 있다고 아는 것이고, 지혜는 번뇌가 일어나는 것을 막아줍니다.
수행자 : 그때의 지혜는 어떤 지혜입니까?
사야도 : 많은 종류의 지혜가 있습니다. 대상을 대상으로 아는 지혜, 대상과 마음의 성질을 아는 지혜, 무상·고·무아를 이해하는 지혜 등이 있습니다. 그러한 지혜들 중에 어떠한 지혜가 나든지 지혜가 나는 그 순간에는 번뇌가 일어나지 않습니다. 계속적으로 번뇌가 안 일어나는 것은 아닙니다. 그렇게 지혜가 날 때만 그렇습니다. 번뇌는 과거의 번뇌, 현재의 번뇌, 미래의 번뇌가 있는데 그 번뇌 중 어떤 번뇌를 일어나지 않게 막을 수 있겠습니까?
수행자 : 현재의 번뇌입니다.
사야도 : 현재의 번뇌도 이미 일어났습니다. 이미 일어난 것을 안 일어나게 할 수는 없습니다. 그것을 봐야 합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번뇌를 일어나지 않게 막아야 합니까? 지혜가 있을 곳을 마련해주고 거기서 늘 지혜가 지키고 있으면 번뇌가 들어올 수 없습니다. 그래서 사띠와 지혜가 늘 계속 생겨날 수 있도록 그렇게 수행해야 합니다.
의자에 제가 앉아 있는 동안에는 아무도 앉을 수 없습니다. 번뇌가 일어나지 못합니다. 지혜가 그 의자에 탁 버티고 앉아 있으면 번뇌가 들어올 수 없습니다. 지혜가 그것이 일어날 수 없도록 하는 동안에는 번뇌가 없다고 할 수 있습니다.
수행자 : 그렇다면 이미 쌓인 업과 번뇌는 어떻게 없앨 수 있습니까?
사야도 : 그것은 없앨 수 없습니다. 과거의 업은 없앨 수 없는 것입니다. 그것은 붓다께서도 없앨 수 없습니다.
수행자 : 그러면 그 업이 다시 탐·진·치로 일어나는 순간에 알아차리고 그때 대응하지 않음으로써 소멸되게 해야 하는 것입니까?
사야도 : 그렇게 번뇌가 일어나는 그 순간에 사띠를 두고 지혜로 보아서 없앨 수는 있습니다.
수행자 : 그러면 알아차림이 이어지고 지혜가 있는 경우에는 이미 쌓여 있는 업을 한꺼번에 미리 당겨서 일정 시간 내에 빨리 없앨 수도 있습니까?
사야도 : 그럴 수는 있습니다. 그래서 늘 사띠를 두라고 하는 것입니다.
수행자 : 한꺼번에 미리 당겨서 소멸시킬 수 있다는 것을 좀 더 구체적으로 설명해 주십시오.
사야도 : 도와 과의 지혜가 생길 때에 없앨 수 있습니다. 그것은 위빠사나 지혜로는 안 되고 도와 과의 지혜에 의해서 없앨 수 있습니다. 도와 과의 지혜로 없앨 수 있어도 수다원 도와 과의 지혜로는 그 지혜로 없앨 수 있는 번뇌만 없앨 수 있습니다. 그 이상은 없앨 수 없습니다.
수행자 : 그러면 그런 번뇌가 쌓인 업이 남아 있는 채로도 아라한이 될 수 있습니까? 과거에 쌓인 업이 남아 있는 상태에서도 아라한이 될 수 있습니까?
사야도 : 그러한 업이 남아 있어도 아라한은 될 수 있습니다. 아라한이란 번뇌가 없는 것입니다. 지금 현재에 다시 일어날 번뇌가 없는 것이지, 과거의 업은 남아 있을 수 있습니다. 아라한의 도에서 모든 번뇌는 이미 제거됩니다. 어떠한 번뇌도 일어날 수 없습니다. 그렇지만 과거에 내가 지어놓은 업은 받습니다. 아라한이 되어도 받아야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