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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바람이 불지않으면 노를 저어라!

작성자잔다르크|작성시간26.06.19|조회수1 목록 댓글 0

바람이 불지않으면 노를 저어라!

 

"수도선부(水到船浮)"란

"물이 가득차야 배가 뜬다." 말의 사자성어입니다.  
"자기 수양이 잘 준비돼야 

사회에 나가 성공이 가능하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1950 년 9월 15일

맥아더 장군의 인천 상륙작전은

성공율이 5000분의 1이었습니다. 
모든 연합군 참모들이 반대를 했고 

북한군도 설마했던 작전이었습니다. 
그러나 맥아더의 믿음은

반드시 밀물때가 있다는 믿음이 있었고

인천 상륙작전의 적기는 9월 15일이었습니다.

당시의 전세는 

북한군이 낙동강까지 밀고 내려와 

이승만 대통령께서 대한민국 정부를 

제주도나 하와이로 망명정부를 세우려 할때 

대한민국을 위기에서 구해준  

미국의 두 장군이 있었습니다.

그 한 주인공이 '워커장군'입니다. 

워커장군은 절망중에 있는 이승만 대통령에게 

각하 내가 이땅 대한민국에서 죽는한이 있어도 

이땅 대한민국을 지켜 내겠습니다.

그리고는 낙동강전투에서 
46일간을 '소방수 전법' 

즉 '기동방어전'을 쓰면서 낙동강을 지켜냈습니다.

마지막 인천상륙작전 15일전에 

맥아더 장군이 워커대장에게 간곡한 부탁을 합니다. 

 

"워커장군이여! 마지막 15일만 더 버텨 주세요!"

이 부탁은 인천 앞바다에 
반드시 9월15일

밀물이 있을 것이란 확신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워커는 낙동강을 지켜내었고 

맥아더는 인천상륙작전을 성공적으로 시행하여 

대한민국을 위기에서 구해 주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인천 상륙작전 성공자 맥아더 장군은 기억하지만 

낙동강 전투에서 46일간을 지켜내고 

방어해준 워커장군이 없었다면 

인천 상륙작전도 대한민국의 국토 탈환도 

안되었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는 현실입니다. 
특별히 잊지 말아야 할 장군은 '워커 장군'입니다.

6ㆍ25때 워커 장군은 
그의 외 아들 

샘 워커 대위와 함께 한국전에 참전했습니다. 
이 사실은 모르고 있는 분들이 많습니다. 

워커장군의 아들 샘워커 또한 한국전에 

전방에서 큰 공훈을 세워 미 국방성에서 

훈장을 수여해 주라하여 아버지 워커대장이 

아들 샘워커 대위 부대에 공적을 치하해 주려 

직접 차를 운전하고 가던중

1965년 12월 23일 지금의 서울 도봉역 앞에서 

한국군 이등병이 운전하는 군용 트럭이 

워커대장의 차량을 추돌하여 6시간만에 

그의 말처럼 대한민국에서 순직했습니다.

박정희 대통령께서 
그의 은공을 잊지말자며 

서울 광장동에 미군들의 휴양소를 지어주고 

이름을 '워커힐' 이라 한 것 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워커힐 호텔을 이용하면서 

그 유래를 모르고 있습니다. 
워커힐 호텔 앞 산에 
워커장군 동상이 있고 

그의 전사지인 도봉역앞에 

전사지 표지석이 있습니다.

워커장군은 1950년 7월에 
한국땅을 밢았고 

낙동강을 지켜 주었고 인천 상륙작전을

성공케한 대한민국의 영원한 은인이 

한국땅에 온지 5개월 만에 순직하신

은인중의 은인입니다.

이 글은 맥아더장군과 워커장군을

이야기하려는 것은 아닙니다.

위기의 대한민국 전쟁에 1950년

인천 앞바다에 밀물이 있었기에

인천상륙 작전이 성공했듯이 누구에게나

간절히 소망하는 자에게 밀물때가 있습니다.

문제는 
밀물때를 놓치는 것이 문제입니다.

옛 말에 
기회는 

상고머리를 잡는 것과 같다고 했습니다. 

상고머리는 앞머리는 길지만 뒷 머리는 

짧게 깍아서 잡히는 머리카락이 없습니다.

앞 머리가 
손에 닿을때 잡지 않으면 

잡을 수 없듯이 밀물때 를 놓치면 

썰물때에는 배를 띄울 수가 없습니다.

내게 다가온 밀물때를 놓치지 말고 

배를 띄어 노를 저어 목적지에 상륙하는

영광이 있으시기를 기원합니다.

- 좋은 글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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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원문 : 신천동성당 행복나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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