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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특강

[스크랩] 맥주 깡통 하나 / 이동민

작성자유가형|작성시간26.06.08|조회수1 목록 댓글 0
맥주 깡통 하나

이동민



     다낭 공항에서 아내와 막내아들이 맥주 깡통 하나를 두고 실랑이를 했다. 비행기 안에 액체물을 갖고 들어갈 수 없다는 것이 원인이었다. 아들은 쓰레기통에 버리려 했다. 아내는 가방을 끌러서 안에 넣으면 괜찮다고 했다. 짐을 탁송할 준비를 끝낸 가방을 다시 풀어 안에 넣는 일은 여간 번거롭지 않다. 아들은 ‘몇 푼이나 한다고’ 라며 툴툴 거렸다. 집사람은 그런 아들이 못마땅해서 ‘이 녀석아 아직 뚜껑도 안 딴 새것이잖아’ 라며 목소리를 높였다. 며늘아이는 둘의 모습이 보기가 민망했는지 아이의 손을 잡고 저쪽으로 가버렸다. 나도 뒤돌아서 못 본 척 했다. 그래서 맥주 깡통이 가방으로 들어갔는지, 쓰레기 통으로 갔는지는 모른다.
자리를 피해버린 며늘아이는 무슨 생각을 하였을까? ‘어머님도 겨우 맥주 깡통 하나를 갖고 왜 저러실까.’ 라고 했으리라. 며느리는 아들과 같은 시대를 살아왔기 때문이다. 사실은 나도 그런 생각을 하였으나 입 밖으로 꺼내지는 않았다. 나는 아내와 같은 세월을 살아 왔으므로 아내가 잘못이라고는 눈꼽만치도 생각하지 않는다. 다만 며느리가 보고 있는데 어른이 양보를 하지 라고 생각했다. 따져본다면 돈이 훨씬 더 많은 엄마는 챙겨가자 하고, 아직 신접살림을 하는 아들녀석은 버리자고 하니 앞 뒤가 맞지 않는다.


    몇 년 전에 큰 아들이 외삼촌 병원에서 일을 했다. 큰 아들은 학교를 다닐 적에도, 학교를 졸업하고 나서도 생활이 무척 검소했다. 사귀는 친구들도 씀씀이가 전혀 헤프지 않는 평범한 가정의 아이들이었다. 그래서 나는 내 아이는 사치라고는 모르고, 생활력도 강하다고 믿었다. 나를 만난 처남이 이렇게 말했다.

“자형요. **는 헝그리 정신이 없어요.”

전혀 뜻밖의 말이었다. 나는 그 말이 쉽게 수긍되지 않았다.

“아니, 그 녀석이 얼마나 검소한데.”

처남이 하는 설명을 들으니까 고개가 끄덕여 졌다. 우리는 학교에 다닐 때 등록금 때문에 마음고생을 많이 했다. 돈이 없어서 하고 싶은 일이 있어도 참아야 했다. 요즘 아이들은 등록금 때문에 마음을 앓지 않았다.

“요즘 아이들이 싸구려 옷을 입고 다니는 것은 검소라기보다는 자기 취향입니다. 그래도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은 모두 합니다. 하고 싶은 데도 못 하는 일은 없어요.”

그 말이 조금은 충격이었다. 내 아들이라서 올바르게 보지 못하였나 보다. 처남이 한 미디 더 했다.

“우리는 가난한 집에서 태어났고 **는 부잣집에서 태어났잖아요. 우리와 생각이 달라요.”

출생의 배경이 다르고, 살아온 시대가 다르니 우리 세대와 아들 세대는 삶의 문화가 다르다는 것을 깨우쳐 주었다.


    그러고 보니 몇 푼 하지 않는다는 맥주 깡통 하나가 엄마의 삶과 아이의 삶이 만든 상징물이 되어서 충돌을 일으키게 했다. 깡통 하나 때문에 일어난 작은 실랑이가 아니고 세대와 세대 간에 거대한 문화 전쟁을 치루고 있었다. 우리가 살아 온 칠십 평생을 뒤 돌아보면 다람쥐가 저장을 목적으로 도토리를 모우듯이, 우리도 버릴 줄 모르고 살아왔다. 하고 싶은 일도 참으면서 살았다. 우리의 지난날은 어른이 되어서도 쉽게 버릴 수 없는 문화를 만들었다. 맥주 깡통 하나는 돈 몇 푼이 아니고 우리가 수십 년 동안 만들어 온 문화의 응고물이다. 깡통 맥주를 음료수처럼 마시다 마음대로 버리는 젊은이에게는 또 그렇게 그들의 문화가 되어 있다. 아들이 엄마를 이해 할 수 없는 것은 당연하다. 그렇다면 며늘아이가 자리를 피했어도 아들의 편에 섰으리라고 믿어진다. 나는 아내가 양보하기를 바랐어도 아내를 백 번도 더 이해한다. 그러고 보니 우리 네 사람은 가장 가까운 가족이면서도 서로 다른 생각을 하면서 오늘이라는 같은 시대 속을 살아간다.


    공항 대합실을 한 바퀴 돌고 아내와 아들이 있는 곳으로 되돌아 왔다. 며느리도 그곳에 와서 셋이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아내와 며느리는 까르르 웃고 아들도 희죽거리고 있었다. 몇 푼과 새 것이라는 두 개의 문화가 충돌하면서 폭발음이 터질 줄 알았는데 어느 사이에 훈풍이 불고 있었다.
그렇지, 우리는 가족이지...(2016. 9. 20)


<2016년, 수필과 비평 12월호 발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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