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백숲에서
김완하
1
칠흑 같은 오랏줄의 밤
꽁꽁 어둠이 와서
동백꽃 한 잎 피어납니다
천 길 벼랑으로 밀리다
최후의 순간,
목숨을 던져서
가까스로 꽃 한 송이 터집니다
2
그대는 아는가
이 한밤 저 대홍사
산도 물도 한몸 되어 흐르나니
낮이 가고, 풀잎들 몸을 숙이면
그저 어둠일 뿐이다
가쁜 숨결
깡마른 그림자 끌고와
몇 줌 불빛을 쓰고 서 있나니
동백 한 잎 가슴에 묻고
어둠밖에 홀로
꽃잎 지는 소릴 듣는다
3
간밤 술렁대더니
동백꽃 무더기로 쏟아내며
아침은 옵니다
이 봄 사월, 오월
아픈 기억 속에 모두 주어도
꽃은 흐드러집니다
빛나는 아침,
꽃 한 송이 져서
동백숲은 불타 오릅니다
갇혀 있던 새들 날아와
꽃잎에 녹슨 부리를 닦습니다
4
우리 가슴 향해
활시위 굳세게 당기고
꺾일수록,
시위 더 팽팽히 차오르는가
어둠 한줌과 제 몸을 바꾸며
새벽으로 기어가가는 풀잎들
남기고 간 발자국 타고
강물은 돌아오리니
그 물길 끝에서 동백꽃 열두 송이
투욱 툭, 벌지 않던가
5
떨어진 꽃잎만이
아직 숨쉬고 있습니다
그대 향해
온몸으로 열고자 한 나의 물길
여기 와 잠시 멈추어 둡니다
단단한 밤 오기 전
죽음으로 가는 꽃잎 하나
빛을 남기고 있습니다
꽃잎을 밟으며
왔던 길 다시 걸어갑니다
김완하
1987년 《문학사상》등단
시집 『길은 마을에 닿는다』 『마정리 집』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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