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백숲에서 / 김완하

작성자유가형|작성시간26.06.07|조회수0 목록 댓글 0

동백숲에서

 

김완하

 

 

칠흑 같은 오랏줄의 밤

꽁꽁 어둠이 와서

동백꽃 한 잎 피어납니다

천 길 벼랑으로 밀리다

최후의 순간,

목숨을 던져서

가까스로 꽃 한 송이 터집니다

 

그대는 아는가

이 한밤 저 대홍사

산도 물도 한몸 되어 흐르나니

낮이 가고, 풀잎들 몸을 숙이면

그저 어둠일 뿐이다

가쁜 숨결

깡마른 그림자 끌고와

몇 줌 불빛을 쓰고 서 있나니

동백 한 잎 가슴에 묻고

어둠밖에 홀로

꽃잎 지는 소릴 듣는다

 

간밤 술렁대더니

동백꽃 무더기로 쏟아내며

아침은 옵니다

이 봄 사월, 오월

아픈 기억 속에 모두 주어도

꽃은 흐드러집니다

빛나는 아침,

꽃 한 송이 져서

동백숲은 불타 오릅니다

갇혀 있던 새들 날아와

꽃잎에 녹슨 부리를 닦습니다

 

우리 가슴 향해

활시위 굳세게 당기고

꺾일수록,

시위 더 팽팽히 차오르는가

어둠 한줌과 제 몸을 바꾸며

새벽으로 기어가가는 풀잎들

남기고 간 발자국 타고

강물은 돌아오리니

그 물길 끝에서 동백꽃 열두 송이

투욱 툭, 벌지 않던가

  

떨어진 꽃잎만이

아직 숨쉬고 있습니다

그대 향해

온몸으로 열고자 한 나의 물길

여기 와 잠시 멈추어 둡니다

단단한 밤 오기 전

죽음으로 가는 꽃잎 하나

빛을 남기고 있습니다

꽃잎을 밟으며

왔던 길 다시 걸어갑니다

 

 

김완하

1987년 《문학사상》등단 

시집 『길은 마을에 닿는다』 『마정리 집』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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