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 꼬르뷔지에의 빌라사보아 주택에 대한 분석
Ⅰ.사보아 저택의 평가
법과 규칙의 범위를 넘어서 운명이라고 하는 것은 단지 인간에 의해 좌우되지는 않으며, 인간이 만드는 작품의 운명 또한 우연히 만들어지는 것이다. 사보아 저택이 세워진 이래 그곳에 사람이 겨우 10년 밖에 거주하지 않았다는 것은 그러한 운명의 장난이라고 말할 수밖에 없을 것 같다. 세계 경제공황이 만연하기 시작한 1929년 보와시(poissy) 언덕 위의 헬렌 스툰덴에는 평화로운 낭만이 있었다.
그러나 1940년 6월의 프랑스에서 이 저택에서의 이러한 낭만은 완전히 없어져 버렸다. 여기에서 역사적인 측면은 배제하고 사보아 저택에 관해 일반적인 적극적 평가를 둘러싼 고찰을 하는 것이 바로 문제의 핵심에 들어가는 것이라 생각한다.
이 고찰은 다시 해 우리들의 냉철한 판단으로 볼 때 사보아 저택이 금세기 전반의 빌리라 건축으로써 다른 모든 것을 능가하는 최고의 표현이라고 하는 평가를 해도 된다는 물음인 것이다. 이와같은 평가를 인정하는 것은 1930년경에 근대적인 빌라의 정형으로써 성립한 것, 혹은 그 구체화로써 완성한 것이라고 말해도 좋은 것이지만 그것이 1980년대의 시점에 있어서도 모더니즘 최고의 빌라로써 평가된다고 하는 것이다.
그곳에는 정확히 겨울과 여름의 올림픽이 끝난 후의 최고 기록과 같이 무언가 대단히 절대적인 분위기가 감돌고 있다.
사보아 저택이 갖는 건축사의 문제와 불충분한 건축 기술상의 처리에도 불구하고 이와 같은 적극적인 이해를 얻고 있는 것은 레호르클레어 저택이 르 꼬르뷔지에르가 1922년 자신의 저술에서 말한 것처럼 "정신의 순수한 창조"로써 눈에 보이는 결점을 극복해 내는 힘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한편으로 무조건처럼 보이는 이 사보아 저택에 어떤 평가를 해도 실은 어느 정도의 제약으로부터 벗어나는 것은 아니다. 예를 들면, 빌라라고 하는 표현을 빌어 수많은 주택의 타입 속에 극히 비슷한 별장의 건축양식이 의도적으로 채용되었다. 또 이와 같은 건축상의 테마에 관계되는 제약 이외에도 시간적인 요소를 잊은 채 해석해서는 안 된다.
금세기 최고라고 하기에는 후반의 2/5가 아직 끝나있지 않지만 확실히 이 작품은 또 한번 다시 강렬한 인상을 던지며 빛나는 광채를 발하고 있다. 그 육박해오는 박력은 보는 이로부터 그 대상을 순간에 이해하고 설명하려는 여유조차 빼앗아 가버릴 정도다. 그러나 여기서 위에서 말한 평가에 관련하여, 다음을 언급해 두지 않으면 안 된다.
즉 1947년 콜린로우에 의한 사보아 저택의 파라다이스적 해석, 즉 이상적 빌라의 수학과 퓌트카우어식의 해석에 관해서이다. 그 안에서 나는 사회 비평적으로 진실한 의문이 제시되어 있는 것을 본다. 그것은 당시 "최소한 주택"이라는 건축상의 테마에 비해 부르조아적인 빌라여서 호응을 얻은 것이지, 그것이 그렇다고 현대적일까 하는 물음이 있을 수 있다.
사보아 저택에 비추어 볼 때 대부호가 건축가를 잘 선택함으로 의해 대단히 모던하게 될 수 있는 것을 인정하지 않으면 안된다. 그렇다고 특별히 헬렌 드 만드로는 이름이 꼭 지위가 높은 성주 부인일 필요는 없다.
여기에서 위의 서술에 대한 부연설명이 필요로 된다. 건축주 레토르클레어 저택은 장기의 체재를 목적으로 시골부지에 여름동안의 주거로써 계획된 것은 아니고, 우선 제일 먼저 요양과 사교의 주말을 보내기 위해 세워졌다. 건축주인 사보아시는 보험회사에 근무하고 있었지만, 주말과 손님을 위한 집을 원했다는 것으로 보아 대단한 실업가이었음에 틀림이 없다. 참고로 말한다면, 그 회사는 파리의 로이드 해상보험회사였다. 르 꼬르뷔지에르는 그가 솔직함과 편견이 없다는 것에 호감을 가지고 있었지만, 여기서 다음의 것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 즉 미래에 대한 예측을 하고 그 위험을 고려하는 것이 보험회사의 중심적인 일이라고 하는 것이다. 건축주가 건축가를 고르는 것은 어떤 종류의 위험을 가지고 도박을 하는 것과 유사함으로 그곳으로부터 손해를 입을 지도 모르는 두려움을 가지고 있다 .사보아 저택이 실현되기에는 그 전제조건으로써, 어떤 일이라도 신경 쓰지 않고 위험을 극복하는 정신인 불가결하다. 그것은 옛날에 국한되지 않고 오늘에도 대개 경제성이 나약한 작품에 어떠한 방법으로 해서 보험을 하려 한다면 무조건 100%의 보증이 어렵기 때문에, 이와 같은 보증은 자기자신으로 커버할 수 있는 능력이 필요하며, 결코 다른 사람으로부터는 주어지지 않는다.
이런 일에 사보아씨는 위험을 떠맡는다는 평소에 익숙하고 친해져 있는 역할을 특별히 가진 것 같다. 그는 유달리 아방가르드의 건축가에 관심이 있었다는 것은 아니다. 르 꼬르뷔지에르에 관해서는 다만 고개를 끄덕일 뿐이었다. 고객으로써의 구실을 대표한 것은 오히려 사보아 부인쪽이었다. 즉 이경우의 건축주는 여성형이다.
Ⅱ.장소와 어프로치
아는 바와 같이, 이 보와씨의 주택에서는 건물만이 감동을 줄 뿐만이 아니라, 그것에 당도하는 방법, 즉 어프로치의 방법, 또한 감동적이다. 여기서 처음으로 마차 대신 자동차용의 차고 문과 포트코쉬에르가 건축가의 손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다. 그러나 우선 그 문에 이르기까지의 경로에 관해 언급해 볼 필요가 있다.
보와씨시는 파리서쪽 세느강 하류의 골짜기 사이에 위치해 상세르망레이 숲을 뒤로하고, 수많은 세느강의 지류의 갈래가 하나로 접해있다. 파리로부터 보와씨에로의 길은 더 계속되고 가까이는 하레, 대서양, 캄엔베르트의 레나제, 멀리는 브레스트, 칼라도스의 브렌타뉴에로 향한다.
한편, 파리의 노틀담과 사보아 저택과는 겨우 30킬로 밖에 떨어져 있지 않다. 그러한 지리적 관계로부터 보와씨는 서구대륙의 수도, 대 파리시의 그랑방뉴 근교에 속해 있다.
많은 사람 중 10중 9까지는 파리로 부터 도정을 밟지 않았겠지만 파리의 생라자레역으로 부터는 이 방향에 vororts zuge 열차가 번번히 나와 있기도 하고, 차가 가는 쪽에는 서행 고속도로도 있다. 세느강을 건너 시의 중심부를 벗어나 언덕에 도달하는 폭넓은 길의 이름은 볼랑 드 카스틸로로이면, 빌라는 그 길의 이름은 오른쪽, 언덕꼭대기에 서 있다. 그곳에 지금부터 15년전 중학교가 건설되어 있었다. 만약 그때 모두 시 당국의 의향데로 일이 운영되었다고 하면 이 빌라는 중학교 때문에 무너졌을 것이다. 다행히 각국의 건축계와 문화장관 앙드레 말로가 보존을 위해 열심히 뛴 것이다.
결국 사보아 저택은 사람이 살지 않고, 가구도 없는 깨끗하게 손질된 기념비로 변한 것이다. 그 때문에 건물은 극진히 보호되어 방문자에게 있어서도 들어가기 쉬운 곳이 되었다. 이 장소에 도착해 중학교와 그 운동시설을 눈으로 보면서, 사보아 저택의 문지기 겸 정원사의 집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왜냐하면, 그 집을 보면서 사보아 저택을 미리 예견하는 것이 충분하기 때문이다.
Ⅲ.문
문지기의 집을 사보아 저택에 상응하여 입구의 오른쪽에 정직각으로 세워져 있다. 이 건물은 그 자체로도 흥미롭지만 또 사보아 저택과의 관계도 중요하다. 설명을 이해하기 쉽게 하기 위해 가세의 빌라 르 테라세와 비교해 보자.
보와씨와 가세에서의 문지기의 집은 각각 다른 기능과 이념을 바탕으로 디자인 되어 있고, 뿐만 아니라 본체와 다른 관계를 가지고 있다. 이 양자의 경우를 비교해 보면 그 외관과 놓여진 위치의 의미에 뚜렷한 차이가 나타난다. 가세의 문지기 집은 사고방식으로써 도로 측으로부터 그 정면이 잘 보이는 모옥에 대해 직접적인 암시의 역할을 한다. 남의 눈을 끄는 행랑방이 그 암시적인 효과를 강하게 하고 있다. 그리고 2개의 집의 볼륨은 대조적이다. 한쪽편이 종속되어 있는 것처럼 보이는데, 이는 다른 쪽의 중요성을 한층 두드러지게 하도록 의도된 것이다.
그것에 비해 보와씨는 즉, 문지기의 집은 독립한 전초와 같은 것으로 모사의 축소판, 즉 빌라의 미니어춰판이다. 담과 키 큰 울타리의 배후에 숨은 본체는 유명하다. 따라서 여기에 사는 정원사도 또한 "새로운 건축의 5요소"의 거의 모두를 향수하는 것이 된다.
옥상정원만을 제외하고, 여기에서는 큰 빌라 때문에 그 개념이 작은 론슈-포멧식 주택의 스케일에 의도적으로 바싹 줄여진 것이다. 이와같이 본체와 문지기의 집과는, 그 스케일과 신분적인 상하 관계의 명료한 차이에 근거해 이중성을 형성하고 있음과 동시에 어떤 종류의 공통성을 가지고 있다. 그것은 모두 동일의 문화 패턴에 근거해 디자인되어 있기 때문임에 틀림없다.
Ⅳ.빌라
사보아 저택의 계획에 있어서는, 그 부지와 평평한 언덕의 꼭대기라고 하는 입지를 주어진 조건으로써 건물에 방향성으르 가지게 하고 멀리 수평선을 건물내부에 수용하는 수법을 취하는 것이 처음부터 정해져 있었다. 이것은 사보아 저택과 같은 모양으로 잘 알려져 있는 어느 vicenza언덕에 세워진 빌라와 공통되는 특징이다. 또 이 종류의 상황의 절대성 즉, 언덕의 정상이라고 하는 장소의 파토스가 20년후의 론샹에서 르 꼬르뷔지에르에 의해 재현된 것을 유의해야만 한다.
그런데 사보아 저택을 이해하기에는 그 평가와 입단명이 각각 3개의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는 것을 말할 필요가 있다. 단면을 보면 대지부터 차례로 주계단, 기둥과 3개의 층이 연속해서 전개해 있다. 이것은 명료한 패턴으로 구분할 수 있다. 이 3개의 영역은 전에 말한 사보아 저택 전체의 방향성과 궤도를 하나로 해서 평면적인 확대호서 서로 얽힌 것 같은 구심적인 배치를 보이고 있는 것이다. 그 안쪽의 핵에 해당하는 부분에는 극히 긴장된 안쪽 테두리가 있고, 중앙에 위치한 경사진 길로부터 수직방향으로 전개되는 공간이 형성되어 잇다. 그리고 그 내측의 플랜과 외측의 플랜 사이, 바꾸어 말하면 수직방향에 전개하는 공간과 키 큰 수목과 관목의 숲으로 둘러싸인 부지와의 사이에 3번째의 플랜으로써 비슷한 긴장감에 넘치는 건물의 윤곽이 있다. 이 3개의 플랜에 공통되고 서로 관련된 특징은 하나하나가 완전히 닫히는 것이 없이 그리고도 어떤 명료한 경계를 가지고 있는 것이다. 입단면으로 보면 각각의 프레임이 시야를 건물내부에 수용하여 어떠한 방향에서든 자유로운 전망이 가능하도록 배려되어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런데 3개의 구분된 계단의 연속성과 평면상의 구심성에 더해 지반을 지탱하는 25개의 기둥이 리듬을 더해주고 있다. 최종적으로 완성된 사보아 저택은 한 스팬이 4.75미처 안쪽 방향 모두 4스팬으로 되어 있다. 여기서 이 주택의 구체적인 규모를 보자. 반축된 부분을 포함해 뻗은 연면적은 415평방 미터로 대단히 넉넉한 것이다. 기둥이 주는 리듬은 그 규칙성에 의해 확고한 규율을 구체적으로 보이고 있다. 이것은 "자유로운 평면"의 전제조건이다. 거기서부터 얻을 수 있는 사용상의 자유는 3개의 계단이 각각으로 유효하게 이용되며, 대단히 우수하다. 그것만으로도 인상적인 공간의 형성화에 성공했다고 할 수 있다. 즉, 일층의 주차장, 층상 정원은 각각이 차례로 3개의 다른 행동의 단계를 연결시키고 있다. 종합하면 도로상의 이동과 잠재의 장으로써 빌라, 그리고 주거와 하늘이라 할 수 있다.
Ⅴ.건축본체
사보아가 가진 단순한 사각기둥 모양의 윤곽, 각층의 분할구성, 방향성을 가진 기둥의 리듬 그리고 슬라브의 두방향에로의 반출은 그 하나하나가 건축본체 및 파사드의 입단면을 의논하기 위한 근본적인 요소인 것이 틀림없다. 그러나 이러한 기본적인 패턴을 알고 있는 것 만으로는 어느 점으로부터 먼저 진행할 수는 없다. 그곳부터 거듭 이러한 계획상 요소의 명확한 표면 그 처리부터 생겨난 형체, 그리고 결과로서의 이미지를 동반한 형상에 관해 적극적인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다. 또 사보아 저택의 경우, 그 새로운과 형상의 웅대함에 대해 생생한 감상을 가지고 있지 않으면 가장 중요한 것을 놓쳐 버린다. 이 "빛나는 빌라"가 그 표면의 외관만으로도 이미 다른 지대한 영향을 주어 왔다고 한다면 과언일까?
그 이전에는 이 빌라에 비교할 수 있을 법한 것은 하나도 없었고, 또 어떤 한사람으로써도 그것이 가능하다고는 생각하지 않았던 것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이 건축 본체의 조형처리상 가장 중요한 것은 연속적으로 전개하는 3개의 층에 보이는 대조적인 공간구성이다. 그 특징있는 단면구성에 관해서 다시 검토를 하기 전에 하나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이 있다. 그것이 이 건물을 주위의 다른 지점으로부터 볼 때에 어디에서부터 본 모습이 최상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인가이다.
가장 좋은 견해로서는 정면에 대해 직각으로 볼 경우와 각으로 향해 비스듬히 볼 경우 두가지 각이 있다. 그리고 일반적으로 모든 방향성을 가진 건물은 비스듬히 본 입면이 비교적 완전하고 외관상 뛰어나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보와씨의 경우에는 파사드의 정면, 입면도가 극히 만족할 만한 것이다.
건축본체를 실제의 풍경 안에 어떻게 놓아야만 하는가 라는 이 문제에 대해서는 이 건물에 접근할 때 실제 시점의 위치와 시각상의 관계로부터 최종적으로 결정이 내려진다. 그 사이에 파리 세브르가의 르 꼬르뷔지에르 아트리에에는 1930년 초 6주 사이에 두 개의 다른 배치도가 만들어져 있다.
최초의 배치도에는 진입로와 소로의 연장 부분이 자유로운 곡선으로 8자형을 그려, 진입로 부터는 빌라를 기울인 각도로 멀리 바라본다. 이와같이 건물을 얕은 각도로 기울여 보는 수법은 아테네의 아크로폴리스의 예에 있어서, 아우구스트 쇼와지의 지적에 힘입은 것이라고 볼 수 있고, 르 꼬르뷔지에르는 이전에 그것을 알고 있었다. 아크로폴리스 언덕 위에는 비슷한 시각상의 관계를 입구의 성문 프로필렌으로부터 파르테논 신정에 이어서 행렬의 가로를 볼 수 있다. 후에 만들어진 2소점 배치도에는 가고오는 길부터 곡선의 8자형과 경사로부터의 시각이 없어져 있다.
그것에 대신해 u자형을 한 주변회로가 피로티에서부터 똑바로 뻗고 그리고 루프를 그려 닫혀있다. 문을 들어가서 빌라로 향하는 어프로티의 입구에 서면 문으로부터 계속되는 취부도로가 건물의 파사드에 대해 확실하게 외부에 위치하고 있기 때문에, 건물에 대해 정면에 있음과 동시에 접선 방향을 향하고 있다고 하는 특수한 상황에 놓인 것이 된다.
그런데 건축본체에 관한 이해를 깊게 하기에는, 우선 주층의 긴장감에 차있는 총체로써의 내부공간과 그것을 둘러싼 단순한 각주상의 용기로부터 검토를 하는 것이 필요하다. 주층의 총체로써의 건축적인 효과는 1층의 필로티 부분의 그것에 못지 않게 인상적인 반듯한 형체에 의해 강조되고 있다. 또 상부에는 주층의 거대한 각 기둥상의 형태와, 옥상 층에 실린 원통상의 형태가 강한 콘트라스트를 만들어 건물의 프로필을 결속하고 있다. 이와같은 대범한 층 구성의 프로필을 한층 상세히 분석하기 위해서는, 그 2차적인 구성부분에 관해서 검토를 할 필요가 있다. 거기에서 다시 주층을 시작으로 보아보자.
주층의 파사드는 그 입면에서 가로길이 흉벽, 창, 마구사의 세부분으로 분할되어 있다. 마구사가 유별나게 높이 위치하고 있는 것은, 그 아래창의 개구부가 채광을 위한 플랜으로써 보다는 오히려 시야를 가르는 플랜이 되도록 배려되었기 때문이다. 거기에서부터 조망은 확고한 그 플랜과 일체가 되고 또 그 플랜을 통해 외부로부터 주거부분을 확실히 엿볼 수 있다. 이 외부로부터 내부에로의 시각적인 관계가 건축의 물질성을 보완하려는 공간적인 효과를 산출하고 있다. 주층의 주공간 같은 공간은 (층상정원) 일층의 필로티와 대응한다. "자유로운 장치"에 관해서는 "자유로운 평면"상에 있어 볼 수 있고, 또 그 자체 오브제로서의 효과를 주고 있다. 그리고 더욱 옥상에 실린 일련의 형체와 대응 관계에 있다. 이와같이 건축본체가 그 자신의 내부에 공간을 가지고 게다가 그 내부공간이 오브제적인 효과를 주는 일련의 부차적인 공간에 의해 조립되어 있는 것을, 가로로 긴 창을 통해 볼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미묘한 것을 좋아하는 사람들을 위해 슬라브의 돌출의 정도는 진입로 측과 현관 측에서 두드러져 있지만, 거기서 이 진입로의 입구와 현관이라고 하는 두 개의 요소가 보통의 방식과 달리 피차 표리관계로 상대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1층에서 우선 눈을 끄는 것은 3대의 자동차를 수용하는 차고일 것이다.
이 차고는 그 넓이와 모양으로부터 이미 극히 이례적인 것이다. 게다가 그 평면사이의 위치와 주 회 차로와의 운전조작을 고려한 위치관계는, 그때까지 없었던 새로운 것으로 사람의 상상을 초월하였으며, 사용결과로써도 성공하고 있다. 이처럼 차고가 주목을 끄는 정도로 특징을 가진 것이지만, 그것 역시 2차적인 공간이 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인접하는 사용인 방과 일체가 되어 그 닫힌 언제나 패시브한 공간은 U자형을 이루고, 중앙에 위치하는 경사로의 어귀를 둘러싸여 비슷한 U자형을 그린 주변 회차로와는 이 2차적인 공간의 서비스용 계단과 경사로도 똑같은 모양으로 U자형인 것으로 생각한다면, 1층의 평면을 해석하는 최초의 단서를 얻은 것이 된다. 사보아 저택에서의 생활에 관련하여 1층의 사용목적을 생각할 때, 이 집이 장기적인 것은 확실히 해둘 필요가 있다. 어떻든 부차적인 것으로써 승강로의 배치와 함께 오늘날에도 대단히 흥미를 끌고 또 감탄받고 있다.
그곳에서 나는 신중히 "사보아의 현관은 금세기 건축에 있어서 위대한 순간에 상응하는 것이다."라고 말할 수 있다. 이 자동차용의 주차장으로부터 직접 건물에 들어가는 수법은 아마 19세기의 프랑스 건축의 에꼴 드보자르로 전개 발전한 행진과, 의식용의 공간구성 시스템을 배경으로 생각할 수 있다. 이 시스템에 관해 샤를르 가르니에는 그의 오페라극장의 실물로 보이며 누구라도 완전히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은 실지교육을 행하고 있다. 사보아 저택 이후 차를 운전하는 사람을 위한 입구의 해결로써, 이것과 비교할 수 있는 정도로 독창적인 것을 보기까지는 다시 40년을 기다리지 않으면 안된다. 그것이 벤츄리와 로쉬에 의한 코네크컷주 그리니치의 브란트 하우스이다.
이 주택에서는 차고가 거실의 현관홀로 변해 있다.
그런데 르 꼬르뷔지에르아 삐에르 쟌느레는 보와씨에서 건축가의 일다운 문과 진입로, 주차장과 현관입구 그리고 2개의 승강로를 가진 홀에 하나의 연속성을 주고 이와같이 동선구분을 구성하는 것으로, 실용성외에 아름다움도 만들어 내고 있다. 피로티의 아래 1층 주의를 도는 주 회차로는 새겨 넣은 듯한 조형으로써 두드러지며, 주 승강로는 또 중앙의 척추의 위치에 있어 간과해서는 안된다. 그리고 현관의 입구는 그 중간의 정확히 경계에 위치해, 매 주말이 되면 가고오는 동작이 여기서 나뉘어지는 것이다. 그런데 닫힌 공용부분부터 위로 오르는 서비스용 계단의 처리가 1층의 평면계획상, 최초와 최후의 초안 사이에 생긴 가장 큰 변경이다.
이 변경에 의해 정과 부의 승강로를 1층 홀 공간안의 오브제로써 분리한 대응관계에 두는 것이 가능하게 된다. 계단과 경사로는 단지 올라가는 길의 선택지를 제공하는 것만이 아니다.
내부공간에서 볼륨의 콘트라스트를 만들어내는 효과를 주고 있는 것이다. 이 두 개의 요소는 "자유로운 장치"로써 전에 본 옥상 건조물의 외관과 같은 식의 역할을 연출하고 있다. 하나의 꺽인 경사로는 상당한 길이가 있고 그곳을 걸으면 외관상 눈앞의 공간이 크게 전개되도록 배려하고 있다. 그리고 현관의 입구는 이 승강로에 접근할 수 있는 최단거리로 직접 통하고 있다. 현관에 들어가는 사람은 전부 헤매는 일없이 그 행동의 방향에 몸을 맡길 수 있다. 이 경사로에 의한 승강로는 또 하나의 발명으로 평가해야 할 것이다. 그 이전의 빌라 건축에서 그런 예는 찾기가 힘들다.
르 꼬르뷔지에르와 피에른 쟌느레의 일 가운데 건물내의 산책로가 나타난 것은 보와시의 주택이 최초는 아니다. 그것은 라로슈 저택과 갈슈의 슈타인 저택의 에스키스 안에서, 초기의 회화적인 형채로써 나타나고 있다.
라우트 라로슈 저택에서 처음으로 경사로가 주택의 구성요소로써 이용된 것이지만, 거기에는 미술품, 콜렉션의 방으로부터 윗층의 서재로 통하는 승강로써는 최후의 부분에 사용되고 있다. 보와씨에서 새로운 것은 경사로 안에 산책로가 전개하고 있는 것과 도무지 회화적이라고는 할 수 없는 기계적인 왕복의 리드미컬 한 길이다. 이 산책로의 체험은 그곳을 걸을 때에 그곳부터 자유로히 내다볼 수 있는 풍경의 변화와 다양성으로부터 얻어지는 풍부한 시각적인 관계를 얻음으로써 비로소 성립된다.
정면, 비스듬한 측면과 시계안 모든 방향의 모노가 정교하게 배치되어 있다. 그리고 꺽인 경사로를 걸으면 보는 방향이 서로 틀리게 되어 시각적인 효과가 높아진다. 그런데 경사로는 중앙의 주심을 걸치도록 위치하고 있다. 거기서 경사로가 요구하는 실용적인 평면상의 위치와 건물 구조의 안정성이 요구하는 기둥의 위치가 함께 중앙이기 때문에 , 심각한 충돌이 일어난다. 그러나 이런 종류의 문제는 내가 아는 한 언제나 그런 것이지만 ,현장의 직인의 실천적인 방식으로 해결을 모는 것이다.
예를 들면 대들보의 위치가 굴뚝과 계단과 부딪칠 경우, 대들보를 다리 붙여 바꾸어 버린다고 하는 방식이다. 이러한 실천상의 곤란을 바꾸어 이 경사로 착상으로써 가치 있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즉 이 경사로는 단지 산책로인 것만은 아니고 교차점, 바꾸어 말하면 자유로운 평면과 자유로운 단면, 수평방향의 거주 레벨과 수직방향의 이동이 서로 관입하는 접접이 되기도 하는 것이다. 이와같은 개요에 의해 30년 후 하버드 대학의 카펜터 센터가 생기고, 그 공간의 상호관입의 결과로써 "자유로운 파사드"가 안쪽에 형성되기 시작한 것이다.
Ⅵ.주층
주층은 1층 만큼 아름답게 되지는 않았다. 그 이유는 최종적으로 완성된 사보아 저택의 결점이기도 하지만, 그 출구 위치에 기인하고 있다. 그것은 건축가가 단순한 각 기둥 모양이라고 하는 건물의 형태와 건축적인 산책이라고 하는, 건물 내. 외부의 공간구성의 양쪽을 동시에 의도한 것으로부터 오는 필연적인 결과인 것이다. 그 귀결로써 주층은 2중의 프레임을 지니게 되어 각각의 프레임이 계획상 극히 번잡한 제약조건을 주변에 만들어내고 있다. 요컨데 하나의 강렬한 설계의도 때문에 디자인 의 자유도가 영향을 받는 것이다. 따라서 하나의 통합이 있는 형태를 만들어 내는 것은 불가능하게 되고, 그 공간의 배분은 층이라고 하는 횽기의 안에 가득 밀어넣은 결과로 끝나고 있다.
보기에 과장된 액자는 때로는 그림을 헛되게 할 수 있다. 그러나 이 주층에 있어서 공간 분적상의 번거로움은 크게 열린 외부의 프레임에 원인이 있는 것은 아니고, 경사로를 가진 내부에 문제가 있는 것이다. 즉 경사로가 중앙에 수로형의 공간을 만들고 있기 때문에 , 통로 사이의 유대와 주거 공간의 중심으로 되어야 하는 공간의 조형을 곤란하게 하고 있다. 이것은 거실에서 특히 현저하게 나타난다. 이 거실은 최초의 계단으로부터 그다지 납득이 가지 않는 주변 위치에 두어져 있으며 분절화 되어 있지 않는 큰 공간에 지나지 않아 최종적으로 그곳으로부터 크게 변화하는 것은 없었다.
따라서 거실 그 자체로써는 전부로 봐야 할 것은 아니고, 오히려 "옥외의 거실"인 옥상정원의 보충적인 공간으로써, 덧붙이는 것으로 규정짓는 것이다. 그런데 옥상정원에 관해 이야기를 시작하면 갑자기 어감이 달라져 온다. 그것은 문자대로 최초부터 최후까지 무엇인가'하는 것이다.
옥상정원 또한 의미 있는 발명으로써 평가되어야 할 것이다. 여기서 지금까지 언급되어온 전체에 미치는 질서의 정합성에 대한 장래에 관해서는 제쳐두고 주층의 핵심에 관하여 살펴보자.
고대 바빌로니아의 "공중정원"과 같이 풍경을 즐기는 테라스를 보고 그 주책을 유복한 대도시 생활자의 여름과 주말용의 사치스로운 주거라고 생각하지 않을 사람은 없을 것이다. 이 체라스도 모든 방향에 재미있는 공간적인 유대를 갖도록 디자인 되어 있다. 우선 평범하지만 옥내의 거실과 옥외의 벽과의 사이에 있어 함께 상대하는 위치에 있는 것, 그리고 다음에 특징적인 것으로써 역시 상대하는 위치에 옥상으로 통하는 승강로가 보이고 또 서쪽으로 향하면 전원풍경의 조망이 전개된다. 최후에는 5면의 방향 즉 태양과 하늘로 향해 개구부가 열려 있다.
Ⅶ.옥상층
"빛나는 빌라"를 관통하는 산책로는 옥상층의 일광욕장(솔라룸)으로 끝난다. 지금까지 봐도 여러 기능을 가득 채운 용기 같은 아래층과는 달리, 이 옥상에는 한정된 사용목적에 따라서 확실한 단일성격이 주어져 있다. 즉, 옥상층에서 걸어돌아 다니면서 풍경을 즐기는 부분에 관한 단지 하나의 기능밖에 없다. 그런데 그곳에 올라가는 통로가 2개가 있음은 조금 표현이 과했음을 알 수 있지만 ,특수한 기능을 가진 일광욕장의 옥상이 모든 의미로 볼 때, 미를 상징하는 장이 되도록 의도한 채 만들어져 있음은 의심할 바가 없다. 게다가 레쥬르 구레르로부터 멀리 사방을 조망할 수 있다.
북쪽에는 햇빛에 넘친 전원풍경이 액자에 넣은 그림같이 틀지워지며, 남쪽에는 역광안에 시야가 넓게 전개하고 또 눈을 밑으로 하면 근경처럼 옥상정원이 있다. 또 사보아 저택의 지붕은 마치 하나의 독립하는 파사드처럼 곧 옆을 걸어돌아 바라보는 것만이 아니고, 떨어져서 멀리부터도 바라보기에 가치가 있다. 하늘에서 이 자동차시대의 빌라를 내려다보면 지붕이 그자신 액자에 들어있는 한쪽의 그림처럼 보인다. 또 이 지붕은 2개의 다른 레벨로 되어 있다. 요컨데 옥상의 오브제와 같은 공작물군의 모양과 주층 테라스 상부의 공간적으로 빈 모양으로 되어 있다. 다시 말해서, 포지티브한 요형 부분과 네가티브한 철형 부분이 릴리프같은 기복있는 모양을 만들어 내는 것이다. 여기서 보는 위치를 바꾸어 이코노그라피의 세계, 요컨데 사보아 저택으로부터 받는 연상적인 이미지 세계로 옯겨가 보자.
그것은 배의 데크(갑판)의 이미지 그리고 주위의 모양은 항공기의 이미지로도 느껴지고 있다. 좀더 유추해서 화성인의 지구착륙선 같기도 하나, 르 꼬르뷔지에르가 배와 비행기의 아나로지를 자신의 작품에 즐겨 도입한 것만은 대중의 의견으로 이 작품은 한한 것은 아니다.
Ⅷ.건축기술
사보아 저택의 준공후 르 꼬르뷔지에르는 그 해설기사의 서두에 그 주목할 만한 재료의 단순함에 관해 말하고 있지만, 그러한 심플한 재료로 이 정도까지 만큼 주장이 얽힌 건축작품이 만들어진 것이다.
"기르스베흐카-만프" 지상의 위리- 보지가 와는 달리 존 반드버시지는 "마론세-만프"지에 건축몸체의 사진을 표현했지만, 그것은 빛나는 외관의 뒤에 숨겨져 무미건조한 건축의 기술적 존재를 표현하고 있다. 사보아 저택의 시공기술 레벨은 그 당신 평균이상의 것은 아니고, 오히려 꽤 조잡한 시공이었다고 말 할 수 있다.
바닥 슬라브와 기둥의 주체 구조는 정평있는 특산의 콘크리트, 칸막이벽은 조적조 그리고 마무리는 플러스터와 페인트이다. 그런데 마무리를 상세히 보면 도무지 심플하다고는 말할 수 없는 부분이 있다. 예를 들면 차고를 닫기 위해 금띠로 두른 합판에 의해 끌어 교차한 경량 가동벽이 그렇다. 또 완전히 이례적인 것으로서 철제를 끌어 교차한 창이 있고, 정평있는 것은 개폐용의 그랑코핸들이 붙은 큰 유리벽으로 거실과 남쪽의 테라스를 나누고 있다. 이 거실에는 유백색의 긴 실린더 형태의 모양을 한 조명기구가 장치되어 있지만 이것과 비슷한 것은 그 후에도 예가 없다. 마지막을 호화스러운 로마풍의 타일을 붙인 욕실을 들고 이번 단락을 끝내도록 한다.
Ⅸ.주택 건축 공간의 유형
사보아 저택의 최초 에스키스를 끝낸 후, 르 꼬르뷔지에르는 후에 널리 알려진 그의 건축구성의 유형을 정리해 하나의 전망을 얻었다. 우리는 지금 여기서 사보아 저택이라고 하는 하나의 작품을 르 꼬르뷔지에르의 전 작품속에서 파악하기 위해, 그것과 비슷한 과제를 앞에 하고 있다. 여기서 하나하나의 유형에 관해서 상세히 검토를 하는 것은 이미 불가능하지만 다음 것을 유의해야 할 것이다. 요컨데 전 방향성을 가진 사보아 저택은 정면성을 갖은 것처럼 구성된 가르슈의 슈타이저택과는 명확히 다른 타입인 것이다. 브란셀의 카넬식 주택도 그 시토로안식 주택의 층구성에 의해 또 다른 유형을 대표하고 있다.
유형적으로 볼 때 사보아 저택은 도미노식 주택의 층 공간구성을 가진 건축이다. 그리고 1914년의 처음으로부터 보아씨의 도달점까지의 사이에는 다시 몇 개인가의 단계가 있다. 그 가운데 특히 중요한 것은 1925년 메이엘 저택의 계획안으로 "자유로운 평면"을 발명한 것이다. 쥬니스근교 가르타고의 부조식 주택에는 이 수법이 냉연하게 응용되어 제시되었다. 그리고 포아씨에서는 "자유로운 평면과"과 "각주체"에 3개의눈인 "산책로"가 더해진다. 르 꼬르뷔지에르와 피에르 쟌느레에 의한 20년대 일련의 하얀 주택군은 사보아 저택에서 그 종지부를 찍는다. 그 후는 건축표현상 특별한 요소에 관심을 나타내주지만, 그 바닥에 가로놓인 기본적인 패턴은 변하는 일이 없었다. 그리하여 1937년 샤루가의 주말용 별장의 계획안이 완성되었다. 이 원시인을 위한 원시 소옥같은 주택은 정상적인 크로마뇽인이 살고 있어도 어울릴 것 같고, 네안데르탈에 세워져 있어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보인다. 또 1953년에 완성된 챤디가르의 총독부에서는 개념이 난폭할 정도로 확실히 표현되었다. 여기서 산책로는 그정도 명료하게 나타나 있지 않지만, 그 대신 각주상의 본체에 5층으로 분절된 입 단면의 프로필이 보인다.
프라그 인시티와 군 조형개론의 시대인 1964년에도 드라스브르그 회의장의 계획안에서, 산책로가 건물의 모든 요소와 관계되어 그것을 관철하는 것으로서 표현되고 있다. 그것은 도미노식 주택의 준공년도로부터 꼭 50년에 걸쳐 한 채의 주택으로부터 한 채의 빌라를 통해 대 건물에로 계속되는 아득한 도정이기도 하다.
Ⅹ.어떤 별장지의 빌라
마지막 무렵은 1930년 경 건축계 최선단의 하늘에 빛나고 있던 3개의 별 이야기로부터 시작된다. 사보아 저택의 설계 건설 기간 중에 피에르 샤로와 베르나르 비즈보에의 손으로 독타그르쟈스 때문에 어떤 결정적인 도시 주택 "유리의 집"이 완성되었다. 잇따라 보와씨의 공간개념과 산트금가의 진보적인 건축기술을 전제조건으로 해서, 1936년 폴 넬슨의 공간주택이 태어난 것이다. 이 주택에서는 전에 거론한 보와씨의 3개의 포치가 교묘하게 도입되고 있다.
이것으로 이제 사보아 저택은 문화적 판도 및 건축사 안에서의 위치를 찾는 첫걸음이 시작되는 것이다. 이 광범위한 관련 영역안에는 2개의 다른 축이 있다. 하나는 알프스를 넘어 400년 정도 급한 르네상스 시대의 이탈리아적 빌라에로 향하는 길, 그리고 다른 하나는 북유럽의 지지를 통해 거기서부터 다시 헬만 므테지우스를 포함하며 영국으로 그리고 다시 북아메리카에로 향하는 길이다.
사보아 저택은 비록 습기 많은 별장지에 세워졌지만 실은 지중해적인 태양의 빛과 그림자의 건축이다. 빌라와 별장과의 차이는 그 실제의 기능에 있는 것이 아니라, 건축의 문화상이 관계된 입각성과 그 표현에 있는 것이다. 한편 1923년의 벽돌조의 별장부터 시작해서1931년 베를린 건축박람회에 출품한 모델 하우스에 이르기까지, 스스로의 유럽적인 작품에 의해 알프스 건너편의 빌라와는 대조적인 다수의 예를 제시한 것이 루드 비히 미스 반 데어 로에이다. 실로 큰 영향을 미치게 한 당시 그의 공간구성법은 르 꼬르뷔지에르가 표방한 프레임 개면에 대한 명백한 안티테제임에 틀림없다.
....참고문헌
1900년대 이후의 근대 건축(1993), Willam. J. R. Curtis, 강병근 역, 화엄사
현대건축가시리즈 미스 반 데어 로에(1990), a+u 편집부, 장동욱 임현봉 역, 집문사
G.A.(GREAT ARCHITECT), Faulhani Petery, 건우사
20세기의 주택(1995), 원구이대, 강병근 역, 화엄사
모범주택(1990), 김병대, 기문당
Ⅰ.사보아 저택의 평가
법과 규칙의 범위를 넘어서 운명이라고 하는 것은 단지 인간에 의해 좌우되지는 않으며, 인간이 만드는 작품의 운명 또한 우연히 만들어지는 것이다. 사보아 저택이 세워진 이래 그곳에 사람이 겨우 10년 밖에 거주하지 않았다는 것은 그러한 운명의 장난이라고 말할 수밖에 없을 것 같다. 세계 경제공황이 만연하기 시작한 1929년 보와시(poissy) 언덕 위의 헬렌 스툰덴에는 평화로운 낭만이 있었다.
그러나 1940년 6월의 프랑스에서 이 저택에서의 이러한 낭만은 완전히 없어져 버렸다. 여기에서 역사적인 측면은 배제하고 사보아 저택에 관해 일반적인 적극적 평가를 둘러싼 고찰을 하는 것이 바로 문제의 핵심에 들어가는 것이라 생각한다.
이 고찰은 다시 해 우리들의 냉철한 판단으로 볼 때 사보아 저택이 금세기 전반의 빌리라 건축으로써 다른 모든 것을 능가하는 최고의 표현이라고 하는 평가를 해도 된다는 물음인 것이다. 이와같은 평가를 인정하는 것은 1930년경에 근대적인 빌라의 정형으로써 성립한 것, 혹은 그 구체화로써 완성한 것이라고 말해도 좋은 것이지만 그것이 1980년대의 시점에 있어서도 모더니즘 최고의 빌라로써 평가된다고 하는 것이다.
그곳에는 정확히 겨울과 여름의 올림픽이 끝난 후의 최고 기록과 같이 무언가 대단히 절대적인 분위기가 감돌고 있다.
사보아 저택이 갖는 건축사의 문제와 불충분한 건축 기술상의 처리에도 불구하고 이와 같은 적극적인 이해를 얻고 있는 것은 레호르클레어 저택이 르 꼬르뷔지에르가 1922년 자신의 저술에서 말한 것처럼 "정신의 순수한 창조"로써 눈에 보이는 결점을 극복해 내는 힘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한편으로 무조건처럼 보이는 이 사보아 저택에 어떤 평가를 해도 실은 어느 정도의 제약으로부터 벗어나는 것은 아니다. 예를 들면, 빌라라고 하는 표현을 빌어 수많은 주택의 타입 속에 극히 비슷한 별장의 건축양식이 의도적으로 채용되었다. 또 이와 같은 건축상의 테마에 관계되는 제약 이외에도 시간적인 요소를 잊은 채 해석해서는 안 된다.
금세기 최고라고 하기에는 후반의 2/5가 아직 끝나있지 않지만 확실히 이 작품은 또 한번 다시 강렬한 인상을 던지며 빛나는 광채를 발하고 있다. 그 육박해오는 박력은 보는 이로부터 그 대상을 순간에 이해하고 설명하려는 여유조차 빼앗아 가버릴 정도다. 그러나 여기서 위에서 말한 평가에 관련하여, 다음을 언급해 두지 않으면 안 된다.
즉 1947년 콜린로우에 의한 사보아 저택의 파라다이스적 해석, 즉 이상적 빌라의 수학과 퓌트카우어식의 해석에 관해서이다. 그 안에서 나는 사회 비평적으로 진실한 의문이 제시되어 있는 것을 본다. 그것은 당시 "최소한 주택"이라는 건축상의 테마에 비해 부르조아적인 빌라여서 호응을 얻은 것이지, 그것이 그렇다고 현대적일까 하는 물음이 있을 수 있다.
사보아 저택에 비추어 볼 때 대부호가 건축가를 잘 선택함으로 의해 대단히 모던하게 될 수 있는 것을 인정하지 않으면 안된다. 그렇다고 특별히 헬렌 드 만드로는 이름이 꼭 지위가 높은 성주 부인일 필요는 없다.
여기에서 위의 서술에 대한 부연설명이 필요로 된다. 건축주 레토르클레어 저택은 장기의 체재를 목적으로 시골부지에 여름동안의 주거로써 계획된 것은 아니고, 우선 제일 먼저 요양과 사교의 주말을 보내기 위해 세워졌다. 건축주인 사보아시는 보험회사에 근무하고 있었지만, 주말과 손님을 위한 집을 원했다는 것으로 보아 대단한 실업가이었음에 틀림이 없다. 참고로 말한다면, 그 회사는 파리의 로이드 해상보험회사였다. 르 꼬르뷔지에르는 그가 솔직함과 편견이 없다는 것에 호감을 가지고 있었지만, 여기서 다음의 것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 즉 미래에 대한 예측을 하고 그 위험을 고려하는 것이 보험회사의 중심적인 일이라고 하는 것이다. 건축주가 건축가를 고르는 것은 어떤 종류의 위험을 가지고 도박을 하는 것과 유사함으로 그곳으로부터 손해를 입을 지도 모르는 두려움을 가지고 있다 .사보아 저택이 실현되기에는 그 전제조건으로써, 어떤 일이라도 신경 쓰지 않고 위험을 극복하는 정신인 불가결하다. 그것은 옛날에 국한되지 않고 오늘에도 대개 경제성이 나약한 작품에 어떠한 방법으로 해서 보험을 하려 한다면 무조건 100%의 보증이 어렵기 때문에, 이와 같은 보증은 자기자신으로 커버할 수 있는 능력이 필요하며, 결코 다른 사람으로부터는 주어지지 않는다.
이런 일에 사보아씨는 위험을 떠맡는다는 평소에 익숙하고 친해져 있는 역할을 특별히 가진 것 같다. 그는 유달리 아방가르드의 건축가에 관심이 있었다는 것은 아니다. 르 꼬르뷔지에르에 관해서는 다만 고개를 끄덕일 뿐이었다. 고객으로써의 구실을 대표한 것은 오히려 사보아 부인쪽이었다. 즉 이경우의 건축주는 여성형이다.
Ⅱ.장소와 어프로치
아는 바와 같이, 이 보와씨의 주택에서는 건물만이 감동을 줄 뿐만이 아니라, 그것에 당도하는 방법, 즉 어프로치의 방법, 또한 감동적이다. 여기서 처음으로 마차 대신 자동차용의 차고 문과 포트코쉬에르가 건축가의 손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다. 그러나 우선 그 문에 이르기까지의 경로에 관해 언급해 볼 필요가 있다.
보와씨시는 파리서쪽 세느강 하류의 골짜기 사이에 위치해 상세르망레이 숲을 뒤로하고, 수많은 세느강의 지류의 갈래가 하나로 접해있다. 파리로부터 보와씨에로의 길은 더 계속되고 가까이는 하레, 대서양, 캄엔베르트의 레나제, 멀리는 브레스트, 칼라도스의 브렌타뉴에로 향한다.
한편, 파리의 노틀담과 사보아 저택과는 겨우 30킬로 밖에 떨어져 있지 않다. 그러한 지리적 관계로부터 보와씨는 서구대륙의 수도, 대 파리시의 그랑방뉴 근교에 속해 있다.
많은 사람 중 10중 9까지는 파리로 부터 도정을 밟지 않았겠지만 파리의 생라자레역으로 부터는 이 방향에 vororts zuge 열차가 번번히 나와 있기도 하고, 차가 가는 쪽에는 서행 고속도로도 있다. 세느강을 건너 시의 중심부를 벗어나 언덕에 도달하는 폭넓은 길의 이름은 볼랑 드 카스틸로로이면, 빌라는 그 길의 이름은 오른쪽, 언덕꼭대기에 서 있다. 그곳에 지금부터 15년전 중학교가 건설되어 있었다. 만약 그때 모두 시 당국의 의향데로 일이 운영되었다고 하면 이 빌라는 중학교 때문에 무너졌을 것이다. 다행히 각국의 건축계와 문화장관 앙드레 말로가 보존을 위해 열심히 뛴 것이다.
결국 사보아 저택은 사람이 살지 않고, 가구도 없는 깨끗하게 손질된 기념비로 변한 것이다. 그 때문에 건물은 극진히 보호되어 방문자에게 있어서도 들어가기 쉬운 곳이 되었다. 이 장소에 도착해 중학교와 그 운동시설을 눈으로 보면서, 사보아 저택의 문지기 겸 정원사의 집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왜냐하면, 그 집을 보면서 사보아 저택을 미리 예견하는 것이 충분하기 때문이다.
Ⅲ.문
문지기의 집을 사보아 저택에 상응하여 입구의 오른쪽에 정직각으로 세워져 있다. 이 건물은 그 자체로도 흥미롭지만 또 사보아 저택과의 관계도 중요하다. 설명을 이해하기 쉽게 하기 위해 가세의 빌라 르 테라세와 비교해 보자.
보와씨와 가세에서의 문지기의 집은 각각 다른 기능과 이념을 바탕으로 디자인 되어 있고, 뿐만 아니라 본체와 다른 관계를 가지고 있다. 이 양자의 경우를 비교해 보면 그 외관과 놓여진 위치의 의미에 뚜렷한 차이가 나타난다. 가세의 문지기 집은 사고방식으로써 도로 측으로부터 그 정면이 잘 보이는 모옥에 대해 직접적인 암시의 역할을 한다. 남의 눈을 끄는 행랑방이 그 암시적인 효과를 강하게 하고 있다. 그리고 2개의 집의 볼륨은 대조적이다. 한쪽편이 종속되어 있는 것처럼 보이는데, 이는 다른 쪽의 중요성을 한층 두드러지게 하도록 의도된 것이다.
그것에 비해 보와씨는 즉, 문지기의 집은 독립한 전초와 같은 것으로 모사의 축소판, 즉 빌라의 미니어춰판이다. 담과 키 큰 울타리의 배후에 숨은 본체는 유명하다. 따라서 여기에 사는 정원사도 또한 "새로운 건축의 5요소"의 거의 모두를 향수하는 것이 된다.
옥상정원만을 제외하고, 여기에서는 큰 빌라 때문에 그 개념이 작은 론슈-포멧식 주택의 스케일에 의도적으로 바싹 줄여진 것이다. 이와같이 본체와 문지기의 집과는, 그 스케일과 신분적인 상하 관계의 명료한 차이에 근거해 이중성을 형성하고 있음과 동시에 어떤 종류의 공통성을 가지고 있다. 그것은 모두 동일의 문화 패턴에 근거해 디자인되어 있기 때문임에 틀림없다.
Ⅳ.빌라
사보아 저택의 계획에 있어서는, 그 부지와 평평한 언덕의 꼭대기라고 하는 입지를 주어진 조건으로써 건물에 방향성으르 가지게 하고 멀리 수평선을 건물내부에 수용하는 수법을 취하는 것이 처음부터 정해져 있었다. 이것은 사보아 저택과 같은 모양으로 잘 알려져 있는 어느 vicenza언덕에 세워진 빌라와 공통되는 특징이다. 또 이 종류의 상황의 절대성 즉, 언덕의 정상이라고 하는 장소의 파토스가 20년후의 론샹에서 르 꼬르뷔지에르에 의해 재현된 것을 유의해야만 한다.
그런데 사보아 저택을 이해하기에는 그 평가와 입단명이 각각 3개의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는 것을 말할 필요가 있다. 단면을 보면 대지부터 차례로 주계단, 기둥과 3개의 층이 연속해서 전개해 있다. 이것은 명료한 패턴으로 구분할 수 있다. 이 3개의 영역은 전에 말한 사보아 저택 전체의 방향성과 궤도를 하나로 해서 평면적인 확대호서 서로 얽힌 것 같은 구심적인 배치를 보이고 있는 것이다. 그 안쪽의 핵에 해당하는 부분에는 극히 긴장된 안쪽 테두리가 있고, 중앙에 위치한 경사진 길로부터 수직방향으로 전개되는 공간이 형성되어 잇다. 그리고 그 내측의 플랜과 외측의 플랜 사이, 바꾸어 말하면 수직방향에 전개하는 공간과 키 큰 수목과 관목의 숲으로 둘러싸인 부지와의 사이에 3번째의 플랜으로써 비슷한 긴장감에 넘치는 건물의 윤곽이 있다. 이 3개의 플랜에 공통되고 서로 관련된 특징은 하나하나가 완전히 닫히는 것이 없이 그리고도 어떤 명료한 경계를 가지고 있는 것이다. 입단면으로 보면 각각의 프레임이 시야를 건물내부에 수용하여 어떠한 방향에서든 자유로운 전망이 가능하도록 배려되어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런데 3개의 구분된 계단의 연속성과 평면상의 구심성에 더해 지반을 지탱하는 25개의 기둥이 리듬을 더해주고 있다. 최종적으로 완성된 사보아 저택은 한 스팬이 4.75미처 안쪽 방향 모두 4스팬으로 되어 있다. 여기서 이 주택의 구체적인 규모를 보자. 반축된 부분을 포함해 뻗은 연면적은 415평방 미터로 대단히 넉넉한 것이다. 기둥이 주는 리듬은 그 규칙성에 의해 확고한 규율을 구체적으로 보이고 있다. 이것은 "자유로운 평면"의 전제조건이다. 거기서부터 얻을 수 있는 사용상의 자유는 3개의 계단이 각각으로 유효하게 이용되며, 대단히 우수하다. 그것만으로도 인상적인 공간의 형성화에 성공했다고 할 수 있다. 즉, 일층의 주차장, 층상 정원은 각각이 차례로 3개의 다른 행동의 단계를 연결시키고 있다. 종합하면 도로상의 이동과 잠재의 장으로써 빌라, 그리고 주거와 하늘이라 할 수 있다.
Ⅴ.건축본체
사보아가 가진 단순한 사각기둥 모양의 윤곽, 각층의 분할구성, 방향성을 가진 기둥의 리듬 그리고 슬라브의 두방향에로의 반출은 그 하나하나가 건축본체 및 파사드의 입단면을 의논하기 위한 근본적인 요소인 것이 틀림없다. 그러나 이러한 기본적인 패턴을 알고 있는 것 만으로는 어느 점으로부터 먼저 진행할 수는 없다. 그곳부터 거듭 이러한 계획상 요소의 명확한 표면 그 처리부터 생겨난 형체, 그리고 결과로서의 이미지를 동반한 형상에 관해 적극적인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다. 또 사보아 저택의 경우, 그 새로운과 형상의 웅대함에 대해 생생한 감상을 가지고 있지 않으면 가장 중요한 것을 놓쳐 버린다. 이 "빛나는 빌라"가 그 표면의 외관만으로도 이미 다른 지대한 영향을 주어 왔다고 한다면 과언일까?
그 이전에는 이 빌라에 비교할 수 있을 법한 것은 하나도 없었고, 또 어떤 한사람으로써도 그것이 가능하다고는 생각하지 않았던 것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이 건축 본체의 조형처리상 가장 중요한 것은 연속적으로 전개하는 3개의 층에 보이는 대조적인 공간구성이다. 그 특징있는 단면구성에 관해서 다시 검토를 하기 전에 하나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이 있다. 그것이 이 건물을 주위의 다른 지점으로부터 볼 때에 어디에서부터 본 모습이 최상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인가이다.
가장 좋은 견해로서는 정면에 대해 직각으로 볼 경우와 각으로 향해 비스듬히 볼 경우 두가지 각이 있다. 그리고 일반적으로 모든 방향성을 가진 건물은 비스듬히 본 입면이 비교적 완전하고 외관상 뛰어나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보와씨의 경우에는 파사드의 정면, 입면도가 극히 만족할 만한 것이다.
건축본체를 실제의 풍경 안에 어떻게 놓아야만 하는가 라는 이 문제에 대해서는 이 건물에 접근할 때 실제 시점의 위치와 시각상의 관계로부터 최종적으로 결정이 내려진다. 그 사이에 파리 세브르가의 르 꼬르뷔지에르 아트리에에는 1930년 초 6주 사이에 두 개의 다른 배치도가 만들어져 있다.
최초의 배치도에는 진입로와 소로의 연장 부분이 자유로운 곡선으로 8자형을 그려, 진입로 부터는 빌라를 기울인 각도로 멀리 바라본다. 이와같이 건물을 얕은 각도로 기울여 보는 수법은 아테네의 아크로폴리스의 예에 있어서, 아우구스트 쇼와지의 지적에 힘입은 것이라고 볼 수 있고, 르 꼬르뷔지에르는 이전에 그것을 알고 있었다. 아크로폴리스 언덕 위에는 비슷한 시각상의 관계를 입구의 성문 프로필렌으로부터 파르테논 신정에 이어서 행렬의 가로를 볼 수 있다. 후에 만들어진 2소점 배치도에는 가고오는 길부터 곡선의 8자형과 경사로부터의 시각이 없어져 있다.
그것에 대신해 u자형을 한 주변회로가 피로티에서부터 똑바로 뻗고 그리고 루프를 그려 닫혀있다. 문을 들어가서 빌라로 향하는 어프로티의 입구에 서면 문으로부터 계속되는 취부도로가 건물의 파사드에 대해 확실하게 외부에 위치하고 있기 때문에, 건물에 대해 정면에 있음과 동시에 접선 방향을 향하고 있다고 하는 특수한 상황에 놓인 것이 된다.
그런데 건축본체에 관한 이해를 깊게 하기에는, 우선 주층의 긴장감에 차있는 총체로써의 내부공간과 그것을 둘러싼 단순한 각주상의 용기로부터 검토를 하는 것이 필요하다. 주층의 총체로써의 건축적인 효과는 1층의 필로티 부분의 그것에 못지 않게 인상적인 반듯한 형체에 의해 강조되고 있다. 또 상부에는 주층의 거대한 각 기둥상의 형태와, 옥상 층에 실린 원통상의 형태가 강한 콘트라스트를 만들어 건물의 프로필을 결속하고 있다. 이와같은 대범한 층 구성의 프로필을 한층 상세히 분석하기 위해서는, 그 2차적인 구성부분에 관해서 검토를 할 필요가 있다. 거기에서 다시 주층을 시작으로 보아보자.
주층의 파사드는 그 입면에서 가로길이 흉벽, 창, 마구사의 세부분으로 분할되어 있다. 마구사가 유별나게 높이 위치하고 있는 것은, 그 아래창의 개구부가 채광을 위한 플랜으로써 보다는 오히려 시야를 가르는 플랜이 되도록 배려되었기 때문이다. 거기에서부터 조망은 확고한 그 플랜과 일체가 되고 또 그 플랜을 통해 외부로부터 주거부분을 확실히 엿볼 수 있다. 이 외부로부터 내부에로의 시각적인 관계가 건축의 물질성을 보완하려는 공간적인 효과를 산출하고 있다. 주층의 주공간 같은 공간은 (층상정원) 일층의 필로티와 대응한다. "자유로운 장치"에 관해서는 "자유로운 평면"상에 있어 볼 수 있고, 또 그 자체 오브제로서의 효과를 주고 있다. 그리고 더욱 옥상에 실린 일련의 형체와 대응 관계에 있다. 이와같이 건축본체가 그 자신의 내부에 공간을 가지고 게다가 그 내부공간이 오브제적인 효과를 주는 일련의 부차적인 공간에 의해 조립되어 있는 것을, 가로로 긴 창을 통해 볼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미묘한 것을 좋아하는 사람들을 위해 슬라브의 돌출의 정도는 진입로 측과 현관 측에서 두드러져 있지만, 거기서 이 진입로의 입구와 현관이라고 하는 두 개의 요소가 보통의 방식과 달리 피차 표리관계로 상대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1층에서 우선 눈을 끄는 것은 3대의 자동차를 수용하는 차고일 것이다.
이 차고는 그 넓이와 모양으로부터 이미 극히 이례적인 것이다. 게다가 그 평면사이의 위치와 주 회 차로와의 운전조작을 고려한 위치관계는, 그때까지 없었던 새로운 것으로 사람의 상상을 초월하였으며, 사용결과로써도 성공하고 있다. 이처럼 차고가 주목을 끄는 정도로 특징을 가진 것이지만, 그것 역시 2차적인 공간이 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인접하는 사용인 방과 일체가 되어 그 닫힌 언제나 패시브한 공간은 U자형을 이루고, 중앙에 위치하는 경사로의 어귀를 둘러싸여 비슷한 U자형을 그린 주변 회차로와는 이 2차적인 공간의 서비스용 계단과 경사로도 똑같은 모양으로 U자형인 것으로 생각한다면, 1층의 평면을 해석하는 최초의 단서를 얻은 것이 된다. 사보아 저택에서의 생활에 관련하여 1층의 사용목적을 생각할 때, 이 집이 장기적인 것은 확실히 해둘 필요가 있다. 어떻든 부차적인 것으로써 승강로의 배치와 함께 오늘날에도 대단히 흥미를 끌고 또 감탄받고 있다.
그곳에서 나는 신중히 "사보아의 현관은 금세기 건축에 있어서 위대한 순간에 상응하는 것이다."라고 말할 수 있다. 이 자동차용의 주차장으로부터 직접 건물에 들어가는 수법은 아마 19세기의 프랑스 건축의 에꼴 드보자르로 전개 발전한 행진과, 의식용의 공간구성 시스템을 배경으로 생각할 수 있다. 이 시스템에 관해 샤를르 가르니에는 그의 오페라극장의 실물로 보이며 누구라도 완전히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은 실지교육을 행하고 있다. 사보아 저택 이후 차를 운전하는 사람을 위한 입구의 해결로써, 이것과 비교할 수 있는 정도로 독창적인 것을 보기까지는 다시 40년을 기다리지 않으면 안된다. 그것이 벤츄리와 로쉬에 의한 코네크컷주 그리니치의 브란트 하우스이다.
이 주택에서는 차고가 거실의 현관홀로 변해 있다.
그런데 르 꼬르뷔지에르아 삐에르 쟌느레는 보와씨에서 건축가의 일다운 문과 진입로, 주차장과 현관입구 그리고 2개의 승강로를 가진 홀에 하나의 연속성을 주고 이와같이 동선구분을 구성하는 것으로, 실용성외에 아름다움도 만들어 내고 있다. 피로티의 아래 1층 주의를 도는 주 회차로는 새겨 넣은 듯한 조형으로써 두드러지며, 주 승강로는 또 중앙의 척추의 위치에 있어 간과해서는 안된다. 그리고 현관의 입구는 그 중간의 정확히 경계에 위치해, 매 주말이 되면 가고오는 동작이 여기서 나뉘어지는 것이다. 그런데 닫힌 공용부분부터 위로 오르는 서비스용 계단의 처리가 1층의 평면계획상, 최초와 최후의 초안 사이에 생긴 가장 큰 변경이다.
이 변경에 의해 정과 부의 승강로를 1층 홀 공간안의 오브제로써 분리한 대응관계에 두는 것이 가능하게 된다. 계단과 경사로는 단지 올라가는 길의 선택지를 제공하는 것만이 아니다.
내부공간에서 볼륨의 콘트라스트를 만들어내는 효과를 주고 있는 것이다. 이 두 개의 요소는 "자유로운 장치"로써 전에 본 옥상 건조물의 외관과 같은 식의 역할을 연출하고 있다. 하나의 꺽인 경사로는 상당한 길이가 있고 그곳을 걸으면 외관상 눈앞의 공간이 크게 전개되도록 배려하고 있다. 그리고 현관의 입구는 이 승강로에 접근할 수 있는 최단거리로 직접 통하고 있다. 현관에 들어가는 사람은 전부 헤매는 일없이 그 행동의 방향에 몸을 맡길 수 있다. 이 경사로에 의한 승강로는 또 하나의 발명으로 평가해야 할 것이다. 그 이전의 빌라 건축에서 그런 예는 찾기가 힘들다.
르 꼬르뷔지에르와 피에른 쟌느레의 일 가운데 건물내의 산책로가 나타난 것은 보와시의 주택이 최초는 아니다. 그것은 라로슈 저택과 갈슈의 슈타인 저택의 에스키스 안에서, 초기의 회화적인 형채로써 나타나고 있다.
라우트 라로슈 저택에서 처음으로 경사로가 주택의 구성요소로써 이용된 것이지만, 거기에는 미술품, 콜렉션의 방으로부터 윗층의 서재로 통하는 승강로써는 최후의 부분에 사용되고 있다. 보와씨에서 새로운 것은 경사로 안에 산책로가 전개하고 있는 것과 도무지 회화적이라고는 할 수 없는 기계적인 왕복의 리드미컬 한 길이다. 이 산책로의 체험은 그곳을 걸을 때에 그곳부터 자유로히 내다볼 수 있는 풍경의 변화와 다양성으로부터 얻어지는 풍부한 시각적인 관계를 얻음으로써 비로소 성립된다.
정면, 비스듬한 측면과 시계안 모든 방향의 모노가 정교하게 배치되어 있다. 그리고 꺽인 경사로를 걸으면 보는 방향이 서로 틀리게 되어 시각적인 효과가 높아진다. 그런데 경사로는 중앙의 주심을 걸치도록 위치하고 있다. 거기서 경사로가 요구하는 실용적인 평면상의 위치와 건물 구조의 안정성이 요구하는 기둥의 위치가 함께 중앙이기 때문에 , 심각한 충돌이 일어난다. 그러나 이런 종류의 문제는 내가 아는 한 언제나 그런 것이지만 ,현장의 직인의 실천적인 방식으로 해결을 모는 것이다.
예를 들면 대들보의 위치가 굴뚝과 계단과 부딪칠 경우, 대들보를 다리 붙여 바꾸어 버린다고 하는 방식이다. 이러한 실천상의 곤란을 바꾸어 이 경사로 착상으로써 가치 있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즉 이 경사로는 단지 산책로인 것만은 아니고 교차점, 바꾸어 말하면 자유로운 평면과 자유로운 단면, 수평방향의 거주 레벨과 수직방향의 이동이 서로 관입하는 접접이 되기도 하는 것이다. 이와같은 개요에 의해 30년 후 하버드 대학의 카펜터 센터가 생기고, 그 공간의 상호관입의 결과로써 "자유로운 파사드"가 안쪽에 형성되기 시작한 것이다.
Ⅵ.주층
주층은 1층 만큼 아름답게 되지는 않았다. 그 이유는 최종적으로 완성된 사보아 저택의 결점이기도 하지만, 그 출구 위치에 기인하고 있다. 그것은 건축가가 단순한 각 기둥 모양이라고 하는 건물의 형태와 건축적인 산책이라고 하는, 건물 내. 외부의 공간구성의 양쪽을 동시에 의도한 것으로부터 오는 필연적인 결과인 것이다. 그 귀결로써 주층은 2중의 프레임을 지니게 되어 각각의 프레임이 계획상 극히 번잡한 제약조건을 주변에 만들어내고 있다. 요컨데 하나의 강렬한 설계의도 때문에 디자인 의 자유도가 영향을 받는 것이다. 따라서 하나의 통합이 있는 형태를 만들어 내는 것은 불가능하게 되고, 그 공간의 배분은 층이라고 하는 횽기의 안에 가득 밀어넣은 결과로 끝나고 있다.
보기에 과장된 액자는 때로는 그림을 헛되게 할 수 있다. 그러나 이 주층에 있어서 공간 분적상의 번거로움은 크게 열린 외부의 프레임에 원인이 있는 것은 아니고, 경사로를 가진 내부에 문제가 있는 것이다. 즉 경사로가 중앙에 수로형의 공간을 만들고 있기 때문에 , 통로 사이의 유대와 주거 공간의 중심으로 되어야 하는 공간의 조형을 곤란하게 하고 있다. 이것은 거실에서 특히 현저하게 나타난다. 이 거실은 최초의 계단으로부터 그다지 납득이 가지 않는 주변 위치에 두어져 있으며 분절화 되어 있지 않는 큰 공간에 지나지 않아 최종적으로 그곳으로부터 크게 변화하는 것은 없었다.
따라서 거실 그 자체로써는 전부로 봐야 할 것은 아니고, 오히려 "옥외의 거실"인 옥상정원의 보충적인 공간으로써, 덧붙이는 것으로 규정짓는 것이다. 그런데 옥상정원에 관해 이야기를 시작하면 갑자기 어감이 달라져 온다. 그것은 문자대로 최초부터 최후까지 무엇인가'하는 것이다.
옥상정원 또한 의미 있는 발명으로써 평가되어야 할 것이다. 여기서 지금까지 언급되어온 전체에 미치는 질서의 정합성에 대한 장래에 관해서는 제쳐두고 주층의 핵심에 관하여 살펴보자.
고대 바빌로니아의 "공중정원"과 같이 풍경을 즐기는 테라스를 보고 그 주책을 유복한 대도시 생활자의 여름과 주말용의 사치스로운 주거라고 생각하지 않을 사람은 없을 것이다. 이 체라스도 모든 방향에 재미있는 공간적인 유대를 갖도록 디자인 되어 있다. 우선 평범하지만 옥내의 거실과 옥외의 벽과의 사이에 있어 함께 상대하는 위치에 있는 것, 그리고 다음에 특징적인 것으로써 역시 상대하는 위치에 옥상으로 통하는 승강로가 보이고 또 서쪽으로 향하면 전원풍경의 조망이 전개된다. 최후에는 5면의 방향 즉 태양과 하늘로 향해 개구부가 열려 있다.
Ⅶ.옥상층
"빛나는 빌라"를 관통하는 산책로는 옥상층의 일광욕장(솔라룸)으로 끝난다. 지금까지 봐도 여러 기능을 가득 채운 용기 같은 아래층과는 달리, 이 옥상에는 한정된 사용목적에 따라서 확실한 단일성격이 주어져 있다. 즉, 옥상층에서 걸어돌아 다니면서 풍경을 즐기는 부분에 관한 단지 하나의 기능밖에 없다. 그런데 그곳에 올라가는 통로가 2개가 있음은 조금 표현이 과했음을 알 수 있지만 ,특수한 기능을 가진 일광욕장의 옥상이 모든 의미로 볼 때, 미를 상징하는 장이 되도록 의도한 채 만들어져 있음은 의심할 바가 없다. 게다가 레쥬르 구레르로부터 멀리 사방을 조망할 수 있다.
북쪽에는 햇빛에 넘친 전원풍경이 액자에 넣은 그림같이 틀지워지며, 남쪽에는 역광안에 시야가 넓게 전개하고 또 눈을 밑으로 하면 근경처럼 옥상정원이 있다. 또 사보아 저택의 지붕은 마치 하나의 독립하는 파사드처럼 곧 옆을 걸어돌아 바라보는 것만이 아니고, 떨어져서 멀리부터도 바라보기에 가치가 있다. 하늘에서 이 자동차시대의 빌라를 내려다보면 지붕이 그자신 액자에 들어있는 한쪽의 그림처럼 보인다. 또 이 지붕은 2개의 다른 레벨로 되어 있다. 요컨데 옥상의 오브제와 같은 공작물군의 모양과 주층 테라스 상부의 공간적으로 빈 모양으로 되어 있다. 다시 말해서, 포지티브한 요형 부분과 네가티브한 철형 부분이 릴리프같은 기복있는 모양을 만들어 내는 것이다. 여기서 보는 위치를 바꾸어 이코노그라피의 세계, 요컨데 사보아 저택으로부터 받는 연상적인 이미지 세계로 옯겨가 보자.
그것은 배의 데크(갑판)의 이미지 그리고 주위의 모양은 항공기의 이미지로도 느껴지고 있다. 좀더 유추해서 화성인의 지구착륙선 같기도 하나, 르 꼬르뷔지에르가 배와 비행기의 아나로지를 자신의 작품에 즐겨 도입한 것만은 대중의 의견으로 이 작품은 한한 것은 아니다.
Ⅷ.건축기술
사보아 저택의 준공후 르 꼬르뷔지에르는 그 해설기사의 서두에 그 주목할 만한 재료의 단순함에 관해 말하고 있지만, 그러한 심플한 재료로 이 정도까지 만큼 주장이 얽힌 건축작품이 만들어진 것이다.
"기르스베흐카-만프" 지상의 위리- 보지가 와는 달리 존 반드버시지는 "마론세-만프"지에 건축몸체의 사진을 표현했지만, 그것은 빛나는 외관의 뒤에 숨겨져 무미건조한 건축의 기술적 존재를 표현하고 있다. 사보아 저택의 시공기술 레벨은 그 당신 평균이상의 것은 아니고, 오히려 꽤 조잡한 시공이었다고 말 할 수 있다.
바닥 슬라브와 기둥의 주체 구조는 정평있는 특산의 콘크리트, 칸막이벽은 조적조 그리고 마무리는 플러스터와 페인트이다. 그런데 마무리를 상세히 보면 도무지 심플하다고는 말할 수 없는 부분이 있다. 예를 들면 차고를 닫기 위해 금띠로 두른 합판에 의해 끌어 교차한 경량 가동벽이 그렇다. 또 완전히 이례적인 것으로서 철제를 끌어 교차한 창이 있고, 정평있는 것은 개폐용의 그랑코핸들이 붙은 큰 유리벽으로 거실과 남쪽의 테라스를 나누고 있다. 이 거실에는 유백색의 긴 실린더 형태의 모양을 한 조명기구가 장치되어 있지만 이것과 비슷한 것은 그 후에도 예가 없다. 마지막을 호화스러운 로마풍의 타일을 붙인 욕실을 들고 이번 단락을 끝내도록 한다.
Ⅸ.주택 건축 공간의 유형
사보아 저택의 최초 에스키스를 끝낸 후, 르 꼬르뷔지에르는 후에 널리 알려진 그의 건축구성의 유형을 정리해 하나의 전망을 얻었다. 우리는 지금 여기서 사보아 저택이라고 하는 하나의 작품을 르 꼬르뷔지에르의 전 작품속에서 파악하기 위해, 그것과 비슷한 과제를 앞에 하고 있다. 여기서 하나하나의 유형에 관해서 상세히 검토를 하는 것은 이미 불가능하지만 다음 것을 유의해야 할 것이다. 요컨데 전 방향성을 가진 사보아 저택은 정면성을 갖은 것처럼 구성된 가르슈의 슈타이저택과는 명확히 다른 타입인 것이다. 브란셀의 카넬식 주택도 그 시토로안식 주택의 층구성에 의해 또 다른 유형을 대표하고 있다.
유형적으로 볼 때 사보아 저택은 도미노식 주택의 층 공간구성을 가진 건축이다. 그리고 1914년의 처음으로부터 보아씨의 도달점까지의 사이에는 다시 몇 개인가의 단계가 있다. 그 가운데 특히 중요한 것은 1925년 메이엘 저택의 계획안으로 "자유로운 평면"을 발명한 것이다. 쥬니스근교 가르타고의 부조식 주택에는 이 수법이 냉연하게 응용되어 제시되었다. 그리고 포아씨에서는 "자유로운 평면과"과 "각주체"에 3개의눈인 "산책로"가 더해진다. 르 꼬르뷔지에르와 피에르 쟌느레에 의한 20년대 일련의 하얀 주택군은 사보아 저택에서 그 종지부를 찍는다. 그 후는 건축표현상 특별한 요소에 관심을 나타내주지만, 그 바닥에 가로놓인 기본적인 패턴은 변하는 일이 없었다. 그리하여 1937년 샤루가의 주말용 별장의 계획안이 완성되었다. 이 원시인을 위한 원시 소옥같은 주택은 정상적인 크로마뇽인이 살고 있어도 어울릴 것 같고, 네안데르탈에 세워져 있어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보인다. 또 1953년에 완성된 챤디가르의 총독부에서는 개념이 난폭할 정도로 확실히 표현되었다. 여기서 산책로는 그정도 명료하게 나타나 있지 않지만, 그 대신 각주상의 본체에 5층으로 분절된 입 단면의 프로필이 보인다.
프라그 인시티와 군 조형개론의 시대인 1964년에도 드라스브르그 회의장의 계획안에서, 산책로가 건물의 모든 요소와 관계되어 그것을 관철하는 것으로서 표현되고 있다. 그것은 도미노식 주택의 준공년도로부터 꼭 50년에 걸쳐 한 채의 주택으로부터 한 채의 빌라를 통해 대 건물에로 계속되는 아득한 도정이기도 하다.
Ⅹ.어떤 별장지의 빌라
마지막 무렵은 1930년 경 건축계 최선단의 하늘에 빛나고 있던 3개의 별 이야기로부터 시작된다. 사보아 저택의 설계 건설 기간 중에 피에르 샤로와 베르나르 비즈보에의 손으로 독타그르쟈스 때문에 어떤 결정적인 도시 주택 "유리의 집"이 완성되었다. 잇따라 보와씨의 공간개념과 산트금가의 진보적인 건축기술을 전제조건으로 해서, 1936년 폴 넬슨의 공간주택이 태어난 것이다. 이 주택에서는 전에 거론한 보와씨의 3개의 포치가 교묘하게 도입되고 있다.
이것으로 이제 사보아 저택은 문화적 판도 및 건축사 안에서의 위치를 찾는 첫걸음이 시작되는 것이다. 이 광범위한 관련 영역안에는 2개의 다른 축이 있다. 하나는 알프스를 넘어 400년 정도 급한 르네상스 시대의 이탈리아적 빌라에로 향하는 길, 그리고 다른 하나는 북유럽의 지지를 통해 거기서부터 다시 헬만 므테지우스를 포함하며 영국으로 그리고 다시 북아메리카에로 향하는 길이다.
사보아 저택은 비록 습기 많은 별장지에 세워졌지만 실은 지중해적인 태양의 빛과 그림자의 건축이다. 빌라와 별장과의 차이는 그 실제의 기능에 있는 것이 아니라, 건축의 문화상이 관계된 입각성과 그 표현에 있는 것이다. 한편 1923년의 벽돌조의 별장부터 시작해서1931년 베를린 건축박람회에 출품한 모델 하우스에 이르기까지, 스스로의 유럽적인 작품에 의해 알프스 건너편의 빌라와는 대조적인 다수의 예를 제시한 것이 루드 비히 미스 반 데어 로에이다. 실로 큰 영향을 미치게 한 당시 그의 공간구성법은 르 꼬르뷔지에르가 표방한 프레임 개면에 대한 명백한 안티테제임에 틀림없다.
....참고문헌
1900년대 이후의 근대 건축(1993), Willam. J. R. Curtis, 강병근 역, 화엄사
현대건축가시리즈 미스 반 데어 로에(1990), a+u 편집부, 장동욱 임현봉 역, 집문사
G.A.(GREAT ARCHITECT), Faulhani Petery, 건우사
20세기의 주택(1995), 원구이대, 강병근 역, 화엄사
모범주택(1990), 김병대, 기문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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