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재신( 財神)2■
* 범여 : 재물을 모으는 도를 깨우친 도주공
범여의 자는 소백少伯으로, 춘추시대 월왕 구천句踐을 보좌하여 吳王 부차夫差에게 원수를 갚도록 하였다.
그 후 벼슬을 버리고 은퇴하여 아들과 함께 배를 타고 동해로 나아가 제齊나라에 도착하였다.
이곳에서 해변에 땅을 일구어 농사를 지어서 수십만 금을 모았다.
현명함이 알려져 제나라에 재상으로 초빙되었다. 다시 재산을 주위 사람들에게 모두 나누어주고 도지역으로 은거하였다.
이곳에서 도주공(陶朱公-'도'는 도지역을 가리키지만 '도망하다逃'라는 설이 있으며,
'주朱' 는 부옹의 상징이라고도 하며 자신이 고관을 지냈음을 빗댔다고도 한다.
'공公'은 존장에 대한 경어라고도 하며 자신이 공작을 지냈음을 빗댔다고도 한다.)으로 자칭하며 농사를 짓고 가축을 기르며 장사를 하여
수만금을 모았다.
훗날 다시 재물을 백성들에게 나누어주었으므로 천하에서 찬미하여 재신으로 받들게 되었다.
특별히 지혜로웠으므로 '지혜재신'이라고도 한다.
* 편재신
문무재신은 민간에서 말하는 정재신正財神이며, 이 밖에 편재신偏財神도 있는데, 편재신은 재신이 소재한 신상의 위치에 따라 불리어지는 이름이다.
<봉신연의>에서 오로재신五路財神은 중앙의 현단원수玄壇元帥 조공명, 동로재신 초보천존招寶天尊 소승蕭升, 서로재신 납진천존納珍天尊 조보曹寶, 남로재신 초재사자招財使者 진구공陳九公, 북로재신 이시선관 姚少司이다.
오로五路는 동서남북과 중앙을 가리키며, 오로재신은 모두 길상신으로 연화年畵에 자주 나타난다. 강남일대에서 가장 유행하였으며, 정월 초닷새는 오로재신의 생일이라 한다.
오로신은 또 노두신路頭神, 행신行神이라고도 한다. 사람들이 문을 나서 동서남북과 중앙에서 각각 재부를 얻기를 기원하였으므로 오로신을 로신路神이라고도 한다.
민간에서 받들어 지는 재신 가운데, 조공명이나 사복천관賜福天官을 막론하고 신변에 항상 이시선관利市仙官을 수반한다.
이시선관은 편재신으로 본명은 요소사이며 조공명의 도제로, <봉신연의>에서 강태공에 의해 길상과 복을 맞이하는 신령에 봉해졌다.
'이시利市'에는 세 가지의 의미가 함축되어 있다. 첫째, 장사하여 얻는 이익. 둘째, 길함 이로움 및 행운. 셋째, 경사스러운 날이나 명절에 주는 축하금으로 압세전壓歲錢(세배돈) 등을 가리킨다.
근대에는 새해가 되면 상인들은 이시선관의 도상을 문 위에 붙이고 초재동자를 배치하였으며 '초재동자가 들어오고(招財童子至)' '이시선관이 오신다(利市仙官來)'라는 대련을 써 붙여서, 재원이 활짝 열리고 상서로우며 뜻대로 되기를 기원하였다.
* 유해섬劉海蟾 : 돈을 풀어 빈자를 구제하는 준재신準財神
준재신은 재신의 봉호를 얻지 못한 신령이지만 인간에게 일정한 재운을 가져올 수 있으며 재신의 일부 직책을 담당하고 있으므로 재신으로 간주되었다. 유해섬은 그 가운데 대표이다.
유해섬은 전진교全眞敎 오조五祖의 하나로 이름은 조操, 자는 소원昭遠, 또는 종성宗成. 혹 이름은 철哲, 자는 원영元英 또는 현영鉉英. 혹 은 유해劉海. 오대五代시기의 사람으로 연산燕山(현재 북경) 출신이며, 요나라에서 진사가 되어 훗날 승상으로 연나라의 왕 유수광劉守光을 보좌하였다.
이후 여동빈呂洞賓 을 만나 관직의 위태로움을 깨달아 재상의 지위를 버리고 도사가 외었다. 도호를 '해섬자海蟾子'라 하며 수도하여 신선이 되어 종남산終南山과 태화산太華山에서 노닐었다.
원세조元世祖 쿠빌라이(忽必烈)가 '해섬명오홍도진군海蟾明悟弘道眞君'으로 봉하였으며, 무종武宗은 '해섬명오홍도순우제군海蟾明悟弘道純佑帝君'으로 봉하였다.
이처럼 유해는 깨달음을 얻은 도사로서 본래 재물과 무관하였으나, 재신이 된 것은 아마 그의 도호인 '해섬자'로 말미암았을 것이다.
두꺼비는 용모가 괴이하고 분비물에 독을 품고 있어 사람에게 해로워
오독五毒(전갈蝎, 뱀蛇, 지네蜈蚣, 도마뱀壁虎, 두꺼비蟾)의 하나로 여겨졌다.
그러나 또한 약재로도 사용되어 병을 피하고 사마를 진압하며 장생에 유익하고 부귀를 주관하는 상서로운 동물로 여기게 되었다.
이러한 두꺼비와 연계되어, 유해는 '섬蟾'자가 들어간 도호로 유명하였으며,
또한 '유해희금섬 劉海戱金蟾'이라는 전설로 말미암아 재신의 지위로 격상되었다.
유해희금섬은
민간의 연화와 전지剪紙에 많이 나타나며, 역대화가들도 많은 작품을 남겼다.
이들 작품의 유해는 춤을 추며 웃고 있는 개구쟁이이며, 손에 돈 꾸러미를 들고 그 한 끝을 세 발 두꺼비가 물고 뛰어오르는 형상으로 경사스럽고 상서로운 분위기가 충만하다.
유해가 희롱하고 있는 금섬金蟾은 영물로서 일반 두꺼비가 아니라 세 발을 가진 커다란 금섬이며, 세상에 매우 드물어 이것을 얻으면 부자가 된다고 한다.
유해는 금섬을 희롱하고 금섬은 돈을 토해내었으며, 유해가 이르는 곳마다 돈을 풀어 수많은 빈자를 구제하였으므로 사람들이 그를 존경하여
'살아있는 신선(活神仙)'이라 하였다고 한다.
그리하여 유해묘를 짓고 이러한 이야기는 희곡으로 편집되어 도처에서 공연되었다.
* 소재신小財神
주로 이시선관, 초재동자, 유해, 화합이선(한산寒山과 습득拾得) 등이다.
이들은 동자의 모습으로 나타나며 늘 손에 보반寶盤이나 원보元寶나 여의如意 등을 들고 있으며, 문무재신의 곁에서 시종을 들고 있다.
* 지방재신
- 금원칠총관金元七總管 : 명청이래로 강절江浙일대에서 받들었던 현지의 재신이다.
전설에 따르면 왜구를 격파한 영웅이라 한다.
백성들은 그 지역을 안정시킨 영웅이 죽어서도 '남은 충정'을 발휘하여 계속하여 현지의 백성들을 보호해주기를 기원하며 사당을 세워 받들었다.
매월 2일과16일에 제사를 지내는 제사를 '배리시拜利市'라 한다.
또, 일반적으로 ‘唐宋八大家, 金元七總管'이라는 대련에 많이 나타나지만, 전혀 관계가 없는 듯한 내용이 함께 써 있으므로, 여러 주장이 분분하다.
<금이상판차金二相販茶>라는 책에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다.
한나라 황실의 한 후손이 왕망王莽의 난을 피하여 쑤조우蘇州 정산호로 피난하여 정착하였으며, ‘유劉'씨서 ‘묘卯'자와 ‘도刀'자를 제거하여 ‘금金'씨로 성을 고쳤다. 소금 장사를 하려고 하였으나, 부인이 백방으로 말리므로, 차茶 장사를 하여 커다란 부자가 되었다.
칠형제를 낳았으며, 죽은 뒤에 모두 금총관에 봉해졌으니, 바로 ‘금원칠총관'이라는 재신이다.
- 심만삼沈万三
전설에 따르면 명대초기 심만삼이 청개구리를 구해 방생을 하다가 연못가에서 그릇을 하나 얻었다.
그의 아내가 우연히 동전 한 닢을 그 안에 놓았더니 갑자기 그릇에 가득하게 되었다.
금은으로 시험하였더니 모두 효험이 있어 이로부터 천하의 갑부가 되었으며 이 그릇을 취보분이라 하였다. 심만삼에게 이러한 취보분聚寶盆이 있었으므로 재신으로 받들어졌다.
- 오현재신五顯財神
오현재신에 대한 신앙은 강서江西 덕흥德興과 무원?源 일대에서 유행하였다.
오형제의 봉호의 첫 글자가 모두 '현顯'이었으므로 '오현재신'이라 한다. 생전에 빈자를 구제하고 사후에도 권선징악에 힘써 궁핍한 백성을 보호하였다고 한다.
북경 안정문安定門 밖에 오현재신묘가 있다.
-- 퍼온 글 --
▶ 진해 연화궁의 연화연선공주 올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