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년지우(忘年之友)
살다보면 많은 인연을 맺지만
그 가운데 벗을 얻는 것이 가장 아름답다.
보통 벗은 음악을 통해 우정을 나눈 종자기(鍾子期)와 유백아(兪伯牙)의
사례에서 유래한 지음(知音) 또는 지기(知己)라 부른다.
수행자는 진정한 자아를 찾기 위해 고행을 자처한다.
본인도 모르는 자기를 알아주는 누군가는 만나는 것보다 기쁜 일이 있겠는가?
자신을 알아주니 진정한 친구가 될 수밖에 없다.
역사에 남는 감동적인 우정은 많다.
오해를 풀고 목숨을 나눌 정도의 사귐을 ‘문경지교(刎頸之交)’라 하고,
상대의 능력과 사정을 가장 잘 이해하고 평생을 함께 나눌 수 있다면 ‘관포지교(管鮑之交)’라 하며,
섬김과 인정으로 맺은 상하의 우정을 수어지교(水魚之交)라 한다.
대개 정치가나 무인들끼리의 사귐이지만 문인들끼리의 사귐에서 가장 아름다운 것은
이옹(李邕)과 두보(杜甫)의 ‘망년지교’가 아닌가 한다.
산동성 제남의 대명호에 있는 역하정(歷下亭)이라는
정자의 뒤에는 이백(李白)과 두보의 시를 새긴 회랑이 있다.
기둥에는 청대의 서예가 하소기(何紹基)가 두보의 시에서 ‘해우차정고(海右此亭古),
제남명사다(濟南名士多)’라는 구절을 따서 쓴 대련이 걸려있다.
천보 4년인 AD745년, 두보가 두 번째 제로(齊魯)로 왔을 때
북해태수 이옹은 두보를 위해 역하정에서 풍성한 연회를 베풀었다.
두보는 이 시로 화답했다. 이옹은 두보보다 32살이나 많았다.
그는 두보의 할아버지 두심언(杜審言)을 존경했지만 낙양에서 소년 두보를
만난 이후 나이, 명성, 지위를 잊고 친구처럼 가깝게 지냈다.
제남에서 다시 만났을 때 이옹은 67세, 두보는 35세였다.
이들의 우정을 ‘망년지교’라 불렀다. 사귐(交)의 상대를 가리킬 때는 우(友)를 붙인다.
왜 붕(朋)이 아니고 우(友)일까? 왕보림(王寶琳)은 《주역 현대판》에서
붕은 동성(同性)끼리의 관계이고,
우는 이성(異性)끼리의 관계라고 했다. 그러나
그가 말한 동이(同異)는 성(Gender)보다는 속성으로 이해하는 것이 더 편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