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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운탕을 끓이다

작성자김준한|작성시간26.06.07|조회수24 목록 댓글 0

매운탕을 끓이다/김준한 

 

한 번에 삼킨 입처럼

어떤 형상도 선명히 떠오르지 않는다

사유의 바늘 끝에 걸린 희미한 기억들

어둠이 깊어질수록 조금씩 날을 세우며

깊은 바다로 가라앉는다

 

월척을 기다리는 동안

갈매기에게 떠난 인연의 안부를 묻고

곤한 바람이 내려놓은 무게를

손끝으로 헤아려 본다

 

오늘이 수평선에 닿아야만

지난 풍랑의 세월도 잠잠해질까

 

빛나는 하늘을 올려다보다

끝내 고개를 떨군다

 

낚아 올린 문장들

싱싱함이 가시기 전에

백지 위에 눕혀 둔다

 

대어를 건져 올리면

파닥이는 지느러미는 덜어 내고

두툼한 살점만 발라

행과 행 사이 칼집을 넣고

연과 연 사이로 토막 낸다

 

볕 좋은 날

슬픔을 널어 말리면

국물은 더욱 깊어진다

 

준비되면 뜨거운 가슴에 올린다

욕심에 넘쳐 흘러가 버린 것들까지

밑이 타지 않게 저어 가며 끓인다

 

짠내 밴 슬픔 하나 없는

싱거운 생이 아니어서

천만다행이다

 

인공 조미료 같은 아포리즘으로

애써 간을 맞출 필요는 없다

 

충전율/김준한 

 

언제부턴가 아침은 시작이 아니라

남은 것을 확인하는 일이 되었다

 

충전율을 확인하는 방법은 어깨의 결림과 

새벽을 일으키는 허리의 탄력이다

 

젊은 날엔 충전기를 찾지 않았다

햇빛 한 줌 바람 한 줄기

누군가의 웃음소리만으로도

며칠은 거뜬히 켜져 있었다

 

이제는 밤새 몸을 꽂아 두어도

배터리는 끝까지 차오르지 않는다

 

시장은 벌써 전원을 켠 얼굴들로 붐비고

나는 사람들 틈에서 절전 모드로 걷는다

 

말을 아끼고 웃음을 줄이고

쓸데없는 기대는 끈다

 

오전쯤은 버틸 수 있겠지만

매시간 쉬어야 한다는 이유로

시간의 끄트머리를

몇 분씩 떼어 갈 수는 없다

 

시장통 골목 모퉁이를 돌아서면 밤새

방전된 달이 전깃줄에 축 처진채 걸려있다

 

오후가 되면

몸은 자꾸 서글픔 쪽으로 기운다

해야 할 일은 예전과 다르지 않은데

손은 더디고 하루는 빠르게 닳아간다

 

수많은 인연을 떠나보낸 것도 아마

내가 보내는 전류가 약해

그들이 원하는 전압에

끝내 닿지 못했기 때문일 것이다

 

점점 희미해지는 불빛 앞에

자신의 밤을 맡길 수는 없었을 테니까

 

하루를 다 쓴 사람들의 그림자가

길게 늘어질 무렵

새로 충전된 달이 떠오른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방전된 다리가 찍는 발자국은

아침보다 깊었다

 

슬픔의 등마루/김준한 

 

바다에 나간 사람들은 알았다

지도에는 없지만

분명 어딘가에 있다는 곳

 

파도가 돛대를 꺾고

별빛마저 길을 잃는 밤이면

먼 수평선 끝으로

낯선 불빛 하나 떠오르곤 했다

 

그 불빛을 따라간 사람들 가운데

돌아온 이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돌아오지 못한 이는

오래 그리움으로 남았다

 

그래서 사람들은

폭풍이 몰아칠수록

더 깊이 그 이름을 품었다

 

가라앉은 노래들과

끝내 전하지 못한 말들이

물결 아래서 숨을 쉬고

잊었다고 생각한 것들이

산호처럼 자라나는 곳

 

해수면처럼 높이 출렁이던 욕망을 걷어내면

얕아진 수면 위로 잠깐 드러나는

오래 잠겨 있던 슬픔의 등마루

 

손을 뻗으면 다시 가라앉고

이름을 부르면

파문만 오래 남는다

 

그래서 사람은

끝내 닿지 못할 것을 알면서도

한 생을 노 젓는다

 

이어도는

어딘가에 있는 섬이 아니라

사라진 것들을 잊지 않으려는

마음의 방향이다

 

뼈보다 먼저 걸리는 것/김준한 

 

닭뼈는 목에 걸릴 수 있다는 것을 안다

 

통닭을 먹는 동안

아롱이와 다롱이가 다가오면

나는 늘 먼저 뼈를 치웠다

살을 발라 주기 위해서였다

 

어느 날 다 먹은 통닭 곁에서

아롱이가 닭뼈 하나를 물고

그 조그만 다리가 보이지 않게 달아났다

 

나는 뒤쫓지 않았다

내 손이 따라붙으면 뺏기지 않으려

더 급히 삼킬까 봐

 

내 발자국 소리만 들어도

덜컥 목으로 넘길까 봐

 

그 조그만 목에

내 조바심이 먼저 걸릴까 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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