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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물상에서

작성자김준한|작성시간26.06.07|조회수26 목록 댓글 0

고물상에서/김준한

 

한겨울 외진 길가

 

지난날을 기억하기에도 버거운 듯

사라지는 빛을 놓치지 않으려

깜박이는 가로등 하나

 

나는 네가 떠난 뒤

오랫동안 고개 숙인 채 살아왔다

 

네 가슴에서 뽑혀

어디에도 박히지 못한 못처럼

바닥을 떠돌던 시절

 

잊히지 않는 기억들은 밤마다

녹슨 쇳가루가 되어 내 안을 긁었고

청춘의 푸름 위로 번진 녹빛 하루들

아무리 벗겨 내어도

세월은 자꾸만 덧입혀졌다

 

계량대 위 고철들을 바라보며

버려진 나도 한 번 더 뜨거워질 수 있다면

녹슨 시절과 상처를 녹여

다시 태어날 수 있을까

 

번쩍이는 자동차로 달려도 좋고

노동판의 망치가 되어

한낮의 더위를 두드려도 좋으리

 

어차피 어떤 형체였는가가

무엇 그리 중요하랴

 

내 삶 모두 녹여 내면

몇 근의 무게로 남을까

 

낡은 매트리스

김준한

 

내게 주어졌던 청춘의 원금은 얼마였을까

 

인생이라는 적금의 만기는 늙음,

이마의 주름과 허리의 통증은

이자처럼 덧붙는다

 

내게 사랑은 너무 비싼 것이었을까

너의 뜨거운 숨결

하루치도 구매해 쓰지 못했는데

세월은 원금을 야금야금 갉아먹었다

 

푼돈 같은 하루를 출금해 쓰고 나면

줄어든 수명의 잔고를 들여다본다

 

탄성 좋던 시절에는

몇 분 전 얻어먹은 욕쯤

가볍게 튕겨낼 수 있었는데

 

이제는

며칠 전 저지른 실수 하나가

녹슨 스프링처럼 삐걱거린다

 

잔뇨감에 잠이 깨어 일어나면

내가 누웠던 자리엔

움푹 팬 어둠만 출렁이고

 

화장실에서 나와 불을 끄면

몇 발짝 앞서간 적막이

내 자리를 차지하고 누워

먼저 잠든 척한다

 

뼈다귀 해장국을 먹으며/김준한

 

제일 맛있는 살은 뼈 깊숙이 붙어 있다

이빨도 손톱도 닿지 않는 자리

 

젓가락 끝으로 한 점씩 발라내듯

가장 깊은 상처도 시간의 골짜기에서 꺼내야 한다

 

밤 하나 통째로 뒤척인 기억이 문드러져야

겨우 한 줄 나오는 문장 

 

손에 양념 묻을까 국물 튈까

겉살만 뜯다 밀려나는 뼈들

 

뼛속까지 밴 국물 맛을 아는 사람은 안다

누구의 입에서도 흘러나올 수 있는 말과

누구나 한 번쯤 느꼈을 감정이

문장이 되기는 쉬워도, 시는 되기 어렵다는 것을

 

오늘도 가슴 한복판을 저미는 몇 줄

끝내 맛보지 못한 말들이 귀와 귀 사이에 쌓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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