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 중의 하나 (눅17:12~19)
눅17:14 보시고 이르시되 가서 제사장들에게 너희 몸을 보이라 하셨더니 그들이 가다가 깨끗함을 받은지라.
나병에 걸린 자신들을 불쌍히 여겨 달라며 간구하는 열 명의 기도를 들으시고 그들에게 가서 제사장에게 몸을 보이라고 말씀하셨는데 당시 나병 환자를 판단하여 판정하는 일은 제사장이 하게 되어 있기 때문인데 이는 그 병이 부정한 죄로 말미암아 발생한다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그 말씀대로 제사장에게 판단 받으러 가는 동안에 깨끗하게 치료가 되는 기적이 일어난 것입니다.
열 명이 깨끗함을 받았는데 그 중에 한 명만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감사하였고 나머지 아홉 명은 하나님과 무관하게 자신들이 치료받았다고 생각하므로 그냥 가버리고 말았는데 이들을 보시며 하신 말씀입니다.
눅17:17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열 사람이 다 깨끗함을 받지 아니하였느냐 그 아홉은 어디 있느냐.
세상을 다스리시고 모든 사람에게 공평하게 필요한 것을 공급하고 계시지만 막상 하나님께 나와 영광을 돌리는 사람은 십분의 일이라는 것입니다.
이 말은 열 명 중에 아홉은 멸망이 있는 가증한 곳으로 달려가고 있다는 말씀이기도 하지만 버리진 아홉은 하나로 인하여 구원의 기회가 주어진다는 말씀이기도 합니다.
예수님은 잃어버린 아홉을 찾으려고 보내심을 받았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마15:24]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나는 이스라엘 집의 잃어버린 양 외에는 다른 데로 보내심을 받지 아니하였노라 하시니.
하늘 보좌를 떠나 사망과 멸망이 가득한 땅에 오신 이유가 잃어버린 아홉을 찾아오셨다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그를 하나님이 보내신 구세주로 알아보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요1:10 그가 세상에 계셨으며 세상은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되 세상이 그를 알지 못하였고 요1:11 자기 땅에 오매 자기 백성이 영접하지 아니하였으나.
사람들은 자기들이 가는 길 앞에 멸망과 사망이 있다는 것을 모르고 달려가고 있는 것이 잃어버린 하나님의 양이요 자기 백성이기에 찾아오셨습니다.
그러면 누가 잃어버린 아홉이 될까요?
첫 번째로 하나님의 형상을 잃어버린 사람입니다.
창1:27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
자식이 부모의 모습을 닮아 태어나는 것과 같이 사람은 남자나 여자나 하나님을 닮았고 하나님이 주신 권능으로 생육하고 번성하는 복을 받은 사람입니다.
창1:28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하나님이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 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 리라 하시니라.
그러나 안타깝게도 우리가 정복하고 다스려야 할 세상에 마음이 빼앗겨 하나님을 떠나고 말았습니다.
창3:6 여자가 그 나무를 본즉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고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럽기도 한 나무인지라 여자가 그 열매를 따먹고 자기와 함께 있는 남편에게도 주매 그도 먹은지라.
쉽게 말하면 먹고사는 문제로 하나님의 말씀을 떠나 금과 은을 탐하다가 이것들을 하나님보다 더 중하게 여기는 음란한 범죄를 저지르고 말았습니다.
지금도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고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러운 것들을 찾아 많은 사람이 하나님을 멀리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떠난다는 것은 생명줄을 끊는다는 것이며 살기를 포기했다는 것과 같은 것이 됩니다.
살고자 택한 길이 오히려 죽음의 길이 되고 멸망의 길이 된 가슴 아픈 일이 벌어진 것입니다.
이제 잃어버린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하는 길은 예수님이 가신 골고다 언덕처럼 피와 땀을 흘리며 십자가를 지고 찾아가야 하는 험한 길이 되어 버렸습니다.
예수님께서 이 험한 저주를 친히 감당해 주시며 잃어버린 아홉을 찾고 계신 것입니다.
사53:5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도다
사53:6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며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모두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 아멘입니다.
두 번째로 사망의 고통에 앉은 사람들입니다.
나병 환자는 피부가 썩어져 들어가는 불치병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나병 환자를 상대하려고 하지 않고 동네에 들어오지 못하게 철저하게 경계합니다.
살아 있으나 죽은 자와 같은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피부병으로 얼굴이 썩어가고 손과 발의 뼈가 드러난다면 죽느니보다 못한 삶이 될 것입니다.
하나님을 잃어버린 사람들의 모습이 바로 이런 나병 환자요 중풍 병자요 앉은뱅이요 듣지 못하는 자요 말하지 못하는 자요 보지 못하는 자입니다.
가장 불행하고 슬픈 사람은 죽고 싶어도 죽지 못하는 사람일 것입니다.
그런데 이보다 더 불쌍한 사람은 바로 죽은 줄도 모르고 살아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며 자기는 절대 죽지 않는다고 자신을 과시하는 사람일 것입니다.
자신들의 율법을 내세워 십자가에 죽이라고 큰 소리로 외치는 유대인들이나 로마 왕의 권한으로 하나님의 아들을 심판하는 빌라도나 예수님을 희롱하며 비웃으며 침 뱉으며 조롱하는 군병들과 죄인을 십자가에 처형하며 신바람이 난 사람들도 잠시 후면 다 죽음의 계곡으로 들어간다는 것을 그들은 알지 못하고 있습니다.
눅23:34 이에 예수께서 이르시되 아버지 저들을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들이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 하시더라 그들이 그의 옷을 나눠 제비 뽑을 새.
멸망이 눈앞으로 밀려오는 것도 모르고 희희낙락하는 그들을 보고 예수님은 가슴이 미어지는 아픔을 느끼셨을 것입니다.
예수님은 멸망의 사망 앞에 울고 있는 잃어버린 하나님의 어린 양들을 찾아 하늘에서 내려온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세 번째로 기쁨을 잃어버린 사람입니다.
막1:1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시작이라.
복음은 사망의 어둠에 앉아 기쁨을 잃어버리고 멸망의 두려움에 떨고 있는 사람들에게 평강을 주는 광명입니다.
사41:8 그러나 나의 종 너 이스라엘아 내가 택한 야곱아 나의 벗 아브라함의 자손아
사41:9 내가 땅 끝에서부터 너를 붙들며 땅 모퉁이에서부터 너를 부르고 네게 이르기를 너는 나의 종이라 내가 너를 택하고 싫어하여 버리지 아니하였다 하였노라.
우리는 죽어서 무덤에 묻힌 단군의 자손이 아니라 영생하시는 하나님의 자녀요 아브라함의 후손이기 때문에 사망에 놓여 있을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복음으로 사망의 멸망을 몰아내시고 영생의 빛을 우리에게 비추어 주신 것입니다.
조금 가난하면 어떻고, 얼굴이 좀 못생겼으면 어떻고, 자식이 속을 좀 썩이면 어떻고, 나라가 엉망이 되고 개판이 되면 어떻습니까?
나는 예수 그리스도의 빛을 받아 영생이 되었으매 행복을 나누는 전도자요 그리스도의 향기가 된 것이 최고의 자랑이 되어 감사하고 찬송하는 복을 누리게 되었습니다.
살전5:16 항상 기뻐하라
살전5:17 쉬지 말고 기도하라
살전5:18 범사에 감사하라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
세상이 주는 부귀영화를 쫓으면 그 끝은 멸망의 흑암이 있지만 십자가를 지신 예수님을 따르는 사람이 되어 그리스도와 더불어 부활의 영광이 함께 하고 영생이 되었음을 기뻐하고 기뻐하며 감사하며 감사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 영원한 복락을 빼앗으려는 원수 마귀 귀신의 미혹에서 지켜 주기를 쉬지 않고 기도하는 우리가 바로 잃어버렸던 아홉 명 중의 한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버려졌지만 찾아주셨고 외면당했지만 품어 주셨고, 무덤에 있었지만 생명의 부활로 우리를 열 중의 하나로 택하여 주신 것입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