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례]
제1부 왕따에서 하버드 입학까지
1. 왕따의세계
2. 매력적인, 너무나 매력적인 전교 1등
3. J와 일곱 난쟁이
4. 왕땨의 족쇄를 벗고
5. 악바리, 필기의 여왕 그리고 전교 1등 굳히기
6. 수학을 못하는 아이, 혼자 공부하는 아이
7. 토플에 헤딩하고 민족사관고등학교로!
9. 원희의 영어 읽기 프로젝트
10. 아이비리그로의 수학여행
11. The Dooms S.A.T. 최후의 심판일
12. 숨가쁜 조기 졸업자, 달걀 귀신을 보다
13. 미국 명문대가 내게로 왔다.
제2부 꽃보다 아름다운 시절
1. 학생법정에 서다.
2. 한밤중, 변기 위의 그녀들
3. 감시 카메라? 사랑의 카메라!
4. 즐거운 추억, 시체 놀이를 아시나요?
5. 성인식, 그리고 댄스 댄스 댄스
6. 사람이 꽃보다 아름다운 봉사 체험
7. 인생은 한 편의 드라마
8. 잊을 수 없는 사람, 사람들
제3부 나의 피눈물 영어정복기
1. Slow and steady wins the race
2. 영어단어를 외우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 세 가지
3. 영어 소설 속에 기꺼이 파묻혀라.
4. 단어의 뜻은 문맥으로 유추하라.
5. 영어책, 목적에 따라 읽는 방법이 달라진다.
6. 피 말리는 영어 독서시험
7. 혼자 공부하는 '자립형' 인간이 돼라
제4부 공부에 왕도는 없지만 정도는 있다.
1. 노트 정리의 제왕이 돼라
2. 복습은 빠를수록 좋다.
3. 시간 경영의 선수가 돼라.
4. 안 되는 공부에 태클을 걸어라
5. 눈에 쏙쏙 들어오는 쪽지 퍼레이드
6. 목표는 항상 높게 잡아라
7. 수학, 끈기 앞에 장사 없다
8. 공부의 기초는 '공부하고자 하는 의지'이다.
9. 생활 속에서 학습을 우선 순위에 둬라.
10. 교과서도 만화책만큼 재미있다.
제5부 한국 토종의 미국 대학 공략법
1. SAT I은 내신만큼 중요하다.
2. 진짜 실력은 SAT II에서 판가름난다.
3. 토플, 섹션별 공략이 열쇠다.
4. AP로 가산점을 노려라
5. 내신성적 잘 받는 비결은 역시 성실함과 부지런함
6. 특별활동과 봉사활동으로 돋보이기
7. 내게 맞는 대학 고르기
8. 장학금을 확보하는 인터뷰 만들기
9. 입학 원서 쓰기와 추천서 받기
10. 좋은 에세이는 합격의 '화룡점정'
특별기고)
원희 엄마 이가희씨의 '우리 아이 공부 잘하게 만드는 법'
1. 아이의 호기심을 빠짐없이 충족시켜줘라.
2. 아이의 능력과 무관하게 양껏 공부시켜라.
3. 영어는 일찍 시작해서 꾸준히 가르쳐라.
4. 책만 읽어줘도 한글은 통째로 뗄 수 있다.
5. 책 읽어주는 엄마의 노하우 몇 가지
6. 아이가 쓰는 일기에 코멘트를 달아줘라.
7. 독서와 글쓰기는 모든 공부의 기본!
8. 암기력, 훈련으로 좋아질 수 있다.
9. 교과서 진도에 맞춘 현장학습을 시켜라.
10. 자기 일은 자기가 알아서 하게 하라.
특별부록)
하버드, 프린스턴 대학 입학 원서에 첨부한 에세이
(본문)
제1부 왕따에서 하버드 입학까지
7. 토플에 헤딩하고 민족사관고등학교로!
중학교 3학년 여름방학이 될 때까지 내 꿈은 국제 변호사였다.
나름대로 정해둔 진로가 있다면, 집에서 멀지 않은 대전외고 일본어과를 거쳐 서울대 법대를 졸업하고 사법고시를 치르는 것이었다.
일본어과를 가려던 이유는 영어 외에 다른 외국어 한 정도는 확실히 다져두어야겠다는 생각에서였다.
그런데 인생의 진로가 완전히 뒤비뀌는 사건이 생기고 말았다.
언제나 나보다 앞서서 목표를 높게 잡아주시던 어머니가 새로운 목표를 제시하신 것이다.
"원희야, 너 민족사관고등학교에서 공부해보면 어떨까?"
"거기가 어떤 학교인데요?"
그 때까지 나는 민족사관고등학교에 대해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었다.
처음 들어보는 학교가 이름마저도 참 독특하다고 생각했다.
"강원도에 있는 고등학교인데, '한국의 이튼스쿨'이라고 하더라.
거기서 공부하면 바로 외국 유학도 갈 수 있대."
"유학이요?"
특이한 이름의 학교에 들어가라는 것보다 '유학'이라는 단어가 더 충격적이었다.
그 때까지 내가 이 나라를 떠나 공부하는 모습은 상상조차 해본 일이 없었다.
강원도 횡성에 있는 민족사관고등학교(이하 민사고)는 전국의 수재들을 뽑아 영어로만 수업을 한다고 했다.
그런데 신입생 정원이 겨우 70명이란다.
내 생각에 이 학교는 들어가기도 쉽지 않고, 들어간다 해도 영어로 하는 수업을 따라가기가 보통 일이 아닐 것 같았다.
왠지 딴나라 얘기 같아서 나는 고개를 저었다.
"엄마, 제가 우리 학교 전교 1등이긴 하지만 전국 1등은 아니잖아요.
서울에서 쟁쟁한 전교 1등들은 다 모여들 텐데, 괜히 지원했다 떨어지면 어떡해요?
난 무조건 대전외고로 갈 거야."
하지만 어머니도 뜻을 굽히지 않았다.
"엄마는 원희가 좀 더 꿈을 크게 가졌음 좋겠어.
민사고에 가보니까 정말 커리큘럼도 좋고 기숙사며 학교시설도 마음에 들더라.
그런 곳에서 공부하다가 기회가 된다면 더 넓은 세계로 나가 공부하는 것도 괜찮지 않겠니?"
어머니는 아버지와 함께 벌써 그 학교 견학까지 다녀왔다고 했다.
그리고 내가 더 고민할 틈도 없이 두 권의 책을 내미셨다.
<서울대보다 하버드를 겨냥하라>와 <민사고 천재들은 하버드가 꿈이 아니다>하는 책이었다.
두 책 모두 민사고에서 어떤 방식으로 학생들을 가르치는지, 학생들은 어떻게 생활하는지, 유학은 어떻게 가는지 자세히 보여 주고 있었다.
책을 다 읽고 나니 민사고가 생각보다 꽤 괜찮은 학교라는 생각이 들기는 했다.
또, '민사고 천재들은 하버드가 꿈이 아니다'라는 제목이 '하버드가 꿈이 아닌 현실' 이란 뜻을 담고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하지만 이 대단한 학교에 과연 내가 들어갈 수 있을까?
괜히 지원했다가 떨어지면, 그보다 더한 망신이 어디 있을까?
며칠 동안 끙끙대다 생각해낸 핑계가 바로 '민사고 교복'이었다.
"근데 엄마, 고등학생들이 한복 입고 공부하는 것이 왠지 엽기적으로 보이지 않아요?
이상한 종교 집단 같아.
난 그런 옷 입고 학교 다니는 거 싫어요."
그러자 옆에서 신문을 읽고 계시던 아버지가 기발한 제안을 하셨다.
"원희야, 네가 민사고에 지원하면 아빠가 병원에서 일주일에 한 번씩은 갓 쓰고 한복 입고 진료할게. 어때? 재밌을 것 같지 않니?"
"네?"
아버지는 청주에서 안과를 운영하고 계셨다.
외모로 보나 평소 행동으로 보나 전형적인 모범생 스타일인 아버지가 조선시대 양반처럼 갓쓰고 하얀 도포자락을 휘날리며 환자를 보신다고?
그러다 환자들까지 예복을 갖춰입고 병원에 나타나면 어떻게 한다지?
"귀 환자는 난시가 심하니, 흔들리는 차안에서는 절대로 책을 보지 마십시오."
"예이! 분부대로 하겠사옵니다."
상상의 나래를 펴니 마구 웃음이 났다.
아버지까지 이렇게 밀어주시는데 더 이상 고집부릴 여지가 없었다.
민사고 특별 전형에 보내야 할 서류로는 중학교 성적표, 선생님들의 추천서, 토플 성적, 그리고 영어로 쓴 자기소개서(에세이)가 있었다.
그 중 가장 자신 없던 것이 '토플 성적'이었다.
특별전형에 지원할 수 있는 자격은 CBT(Computer-based Test, 300점 만점) 토플213점 이상이면서 내신성적이 전교 3퍼센트(지방은 1퍼센트) 안에 들거나, CBT 토플 260점 이상이었다.
여태까지 한 번도 토플 시험을 준비해본 적 없는 내게 '213점'이라는 숫자는 그야말로 무시무시해 보였다.
서류 마감 전까지 남은 기간은 두 달여.
시간이 없었다.
서점으로 달려가 롱맨(Longman)에서 나오는 실전 문제 시리즈 열 권을 다 사왔다.
내게 주어진 시간이 겨우 두 달이라면, 학원에서 이론을 배우기보다 나 혼자 실전 문제를 많이 풀어보는 편이 훨씬 나았다.
문제의 유형이나 출제 경향을 파악하고 미리 시험에 대한 적응력도 키울 수 있기 때문이다.
"하루에 한 회분씩! 토플아 기다려라, 원희가 간다!"
책상 앞에 이렇게 쪽지를 적어 붙여놓고 문제집 풀기에 돌입했다.
문제를 풀고 나서 채점을 할 때, 내가 왜 틀렸는지 반드시 체크했다.
내가 구입한 문제집은 예전 시험 방식인 PBT(Paper-based Test, 677점 만점) 방식이었는데, 문제집을 여덟 권째 풀었을 때 600점대 초반이 나왔다.
이 점수면 CBT 토플 점수로 환산해도 충분히 안정권이었다.
이제 문제는 에세이.
100개의 토픽과 모범답안이 나와 있는 책을 사서 에세이 쓰는 연습을 했다.
서론, 본론, 결론에 맞춰서 써본 다음 모범답안과 비교하며 내게 부족한 점을 메웠다.
내가 쓴 에세이가 좋은 점수를 받을 만한 건지 아닌지 봐줄 사람도 없었지만, 일단은 정해진 시간 30분 안에 에세이를 마칠 수 있는 데 주력했다.
"엄마, 저 263점이에요!"
토플 성적표가 배달되던 날, 나는 뜻밖의 점수에 너무 기쁜 나머지 집안이 떠나가라 토플 점수를 외쳤다.
에세이 5.5점에 총점 263점.
어떻게 공부해야 고득점을 올릴 수 있는지 아무도 알려주지 않았지만, 이 정도 점수가 나올 수 있었던 건 결국 내가 했던 공부 방법이 옳았다는 얘기가 아닐까?
서류 전형은 의외로 쉽게 통과됐다.
2차 전형은 심층면접이었는데 영어와 수학, 그리고 선택과목을 하나 정한 후 면접관들 앞에서 테스트를 받는 형식이었다
나는 선택과목으로 수학-A(advanced)를 선택했다.
심층면접이 있던 날의 풍경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대기실에서 차례를 기다리고 있는데, 뒷자리에 앉아 있던 아이가 말을 붙였다.
"너는 어디에서 왔니? 토플 점수는 얼마나 받았어?"
"대전에서 왔어. 토플 점수는 별로 안 높아."
"난 280점인데."
서울에서 왔다는 그 아이의 토플 점수는 내가 받은 점수보다 한참 위였다.
보아하니 심층면접 대기실에는 쟁쟁한 아이들만 모인 것 같았다.
자기만의 영어공부법을 책으로 낸 아이, 각종 경시대회에서 수상한 아이, 특별활동으로 여러 번 신문지상에 오른 아이 등등.
약간 기가 죽어 있는 찰나 내 차례가 됐다.
"Hello!"
수학 심층면접실에 들어간 나는 첫인사부터 씩씩하게 영어로 했다.
여긴 영오로만 공부하는 학교니까 수학 면접도 당연히 영어로 치르는 줄 알았던 것이다.
조금 전 기죽은 모습은 창밖으로 날려버리고, 어떻게든 좋은 인상을 남겨야겠다는 마음뿐이었다.
수학 문제가 들어 잇는 기다란 통에서 문제의 번호가 적힌 종이를 뽑았다.
"Which number(몇 번 문제지)?"
면접관이 물었다.
"Question number 3, please (3번 문제예요)."
면접관에게 해당 번호의 문제가 적힌 종이를 받아 칠판에 풀기 시작했다.
내가 뽑은 문제는 집합, 소수와 합성수, 그리고 쉬운 기하 문제, 수학경시 공부를 한 덕분인지 문제가 술술 풀렸다.
"How do you transform the equation (어떻게 하면 그 식을 바꿀 수 있지)?"
"If you add 2 times x and substract it, you'll be able to transform the given equation (2x를 양변에 더하고 빼면 주어진 방정식을 바꿀 수 있습니다)."
면접관이 영어로 물어보면 나도 영어로 대답하면서 세 문제를 다 풀었다.
내 영어가 유창한 건 아니었다.
'빼다"는 말이 'subtract'인데 순간적으로 헷갈리는 바람에 'substract'라고 말할 정도였다.
하지만 단어가 틀리건 말건 내 목소리는 경쾌한 톤을 유지했고, 내 표정도 끝까지 싱글벙글 미소를 잃지 않았다.
문제를 다 풀고 나자 면접관 한 분이 이렇게 물었다.
"박원희 양, 미국에서는 얼마나 살다왔죠?"
"네? 저는 미국에서 살다온 적이 없습니다."
그러자 면접관들 모두 당황한 기색을 보였다.
나중에야 알게 된 사실인데, 그 날 수학 심층면접실에서 영어로 문제를 푼 사람은 나밖에 없었다.
다른 지원자들에 비해 토플 점수도 낮고 해외 거주 경험도 없으면서 씩씩하게 영어로 수학 문제를 풀다니 그 알량한 영어 실력으로 하룻강아지 범 무서운 줄 모르고 덤빈 셈이었다.
자신감이 하늘을 찔렀다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었다.
다음 심층면접은 영어였다.
이번에는 진짜로 영어만 사용해야 했다.
수학 면접을 워낙 자신감 있게 치른 터라 여전히 얼굴은 생글거렸지만, 면접관 중 한 분이 아주 무섭게 쳐다봐서 나도 모르게 바짝 긴장했다.
면접관은 미리 나눠준 지문 중 한 문장을 가리키며 물었다.
"Do you know what it means?"
지문은 항공기 추락에 관한 기사였는데, 하필 잘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이었다.
머릿속이 하얘졌다.
"I think it's ...."
그 때 내가 뭐라고 대답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나름대로 추측을 했던 것 같다.
"Good guess."
면접관은 무표정한 얼굴이었다.
진땀이 났다. 내가 추측한 게 맞았다는 말일까, 틀렸다는 말일까?
잔뜩 긴장을 해서인지, 마지막 심층면접인 수학 A에서 두어 번 실수를 범했다.
뻔히 알고 있던 풀이과정을 적으면서도 중간에 막히는 부분이 있었다.
"아이, 난 몰라! 분명히 떨어졌을 거야."
집에 돌아와 생각하니 무척 속이 상했다.
내가 민사고에 가지 못하게 된다면 그건 아마도 영어 때문일 것이었다.
다른 지원자들에 비해 낮은 토플 점수와 여엉 면접실에서의 긴장감이 또올라 며칠 동안 잠을 이루지 못했다.
마침내 최종 합격자 발표가 나던 날.
아침부터 거의 10분 간격으로 민사고 홈페이지에 접속했다.
오후가 되어 게시판에 합격자 명단이 뜨는 순간 난 정신을 잃을 뻔했다.
'대전 전민중 박원희'
그건 분명 내 이름이었다.
난 환호성을 지를 기운도 없이 침대 위로 쓰러지듯 누웠다.
모든 긴장이 한꺼번에 풀어지면서 정신이 몰롱해졌다.
그러다가 잠이 들었던 것 같다.
'그럼 이제 나에게도 하버드는 꿈이 아니라 현실이 될까?"
미국으로 유학 가는 내 모습을 그려보았다.
막연한 설렘으로 가슴이 부플어올랐다.
8. 원희의 영어 읽기 프로젝트
"&&%%$$##&&!"
"Pardon(뭐라고요)?"
선생님 얘기를 못 알아듣고 다섯 번째 'pardon' 을 외치자 급기야 반 아이들의 웃음보가 터졌다.
"하하하하...."
내 하얀 얼굴은 점점 더 빨개지고, 영어작문 선생님은 한숨을 쉬셨다.
선생님은 나를 자리에서 일으켜세운 채 무슨 말을 하시는 것일까?
결국 한 번 더 'pardon?'을 한 뒤에야 말뜻을 알아들을 수 있었다.
"글을 참 잘 썼구나!"
이런 뜻인 줄 알았으면 진작에 'Thank you'라 말하고 자리에 앉았을 텐데.
선생님의 뉴질랜드 억양은 정말 알아듣기 힘들었다.
나는 2001년 10월 15일부터 민사고 생활을 시작했다.
미국의 학제와 맞추기 위해 신설된 '예비과정'에 입학한 것이다.
재학생들과 똑같이 기숙사 생활을 하며 영어로만 진행되는 수업을 들었다.
'설마 나 정도면...'
학교에 처음 발을 들여놓는 순간까지도 나는 '영어로 진행되는 수업'에 자신이 있었다.
중학교 내내 영어는 만점이었고, 교외 영어경시대회나 영어 말하기대회에 나가서도 항상 1, 2등을 다퉜기 때문이다.
그런데 수업을 들으면서 '설마' 하던 자만심은 산산이 부서졌다.
선생님의 말이 조금만 빨라져도 중요한 단어들을 놓치기 일쑤였고, 뉴질랜드나 영국식 발음은 더더욱 귓전에서 맴돌다 날아가버렸다.
'pardon?' 도 한두 번이지, 비슷한 상황이 반복되자 우럽사를 가르치던 간제(Ganse) 선생님은 심지어 나에게 이런 충고까지 했다.
"원희, 네가 계속 내 수업을 들어도 좋은지 다시 생각해라."
영어로 진행하는 수업을 따라올 만한 실력이 되는지, 냉정하게 판단해보라는 얘기였다.
만약 선생님 말씀대로 내가 그런 실력이 안된다면 결국 민사고 수업을 포기하라는 말인가?
생전 처음으로 집 떠나 공부하는 것도 낯선데, 선생님한테 그런 소리까지 듣고 나니 자존심이 한꺼번에 무너져내렸다.
영어로 인한 서러움을 수업시간에만 겪는 게 아니었다.
한 학년 위의 선배들과 함께 일주일에 한 번씩 보는 영어단어 쪽지시험이 너무 어려웠다.
시험용 영어단어 리스트에는 온통 처음 보는 단어들뿐이었다.
" 'redolent'는 'exuding fragrance, aromatic' 이란 뜻인데, 'exude'는 또 무슨 뜻일까?"
하나의 단어에 대한 영어 뜻풀이를 읽다보면 뜻풀이 속의 영어단어를 모르겠고, 그래서 그 영어단어를 찾아보면 또 뜻풀이 안에 있는 영어단어 때문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혼자서 책상 앞에 앉아 단어 리스트를 외우다 보면 하염없이 머리가 아팠다.
게다가 학교에서 선정한 '독서 리스트' 대로 영어 원서까지 읽어야 했다.
<해리포터와 비밀의 방>을 원서로 읽어본 게 전부인 나에게, 두껍디두꺼운 영어 원서들은 마치 거대한 산처럼 가슴을 짓눌렀다.
'엄마, 아빠는 정말 너무하신 거 아냐. 어쩌자고 나를 이런 학교에 더려다놓으셨지?'
갑자기 부모님이 원망스러워졌다.
영어로 하는 수업뿐만 아니라, 일상생활에서도 반드시 영어를 써야 하는 게 민사고의 교칙(EOP, English Only Policy)이었다.
함께 입학한 친구들은 대부분 해외에서 살다왔거나 1년 이상 어학연수 경험이 있었다. 이런 친구들과 함께 공부하려면 나도 어학연수쯤은 다녀왔어야 하는 것 아닌가?
부모님은 왜 내게 해외 어학연수를 시켜주지 않았을까?
저렇게 영어를 잘하는 아이들 속에서 나더러 어쩌란 말인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원망의 종착역은 '내가 지방 도시의 평범한 가정 출신'이라는 것이었다.
학교에서 정해준 자습시간에는 책상 앞에 꼼짝없이 앉아 공부를 하면서도, 자려고 침대에 누우면 어김없이 눈물이 흘렀다.
나 혼자 감당하기엔 이곳 생활이 너무 힘들다는 생각과 두려움으로 인해 부모님에 대한 원망이 커져갔고 울다 잠드는 날이 많아졌다.
그 날 아침도 어깨를 축 늘어뜨린 채 아침운동을 가는 길이었다.
민사고에서는 모든 학생이 아침 6시 30분부터 7시 10분까지 의무적으로 아침운동(태권도나 검도)을 해야 했다.
"Won Hee! Did you finish <The Hobbit> (원희야, <호빗> 다 읽었니)?"
내 어개를 툭 치며 다가온 아이는 같은 반의 B였다.
"not yet(아직 안 읽었어)."
"I've finished it. It was very interesting (난 다 읽었어. 정말 재미있더라)!"
책을 함께 구입한 지 이틀밖에 안 됐는데 그 애는 벌써 다 읽었다고 했다.
나는 이제 겨우 10분의 1을 읽었을 뿐이었다.
퍼뜩 정신이 들었다.
내가 영어단어 시험을 핑계로 독서를 미루고 있는 동안 다른 친구들은 벌써 그 책을 다 읽고 다른 책을 읽기 시작한 것이다.
그 애가 미국에서 살다왔기 때문에 나보다 영어로 된 책을 빨리 읽는 건 당연했다.
하지만 내가 외국 체류 경험이 없는 토종이어서 계속 뒤처진다는 건 마음에 들지 않는 핑계였다.
그 날 저녁부터 영어 원서 읽기에 돌입했다.
일명 '원희의 영어 읽기 프로젝트'.
매일 2시간씩 무조건 책을 읽기로 한 것이다.
제1, 제2 자습시간 중에 10시부터 12시까지는 원서를 읽는 시간으로 정해놓았다.
숙제를 하다가도 그 시간이 되면 어김없이 원서를 손에 잡았다.
학과별 숙제나 예습, 복습보다도 원서 읽기가 우선 순위였다.
"원희야, 안 자니?"
"나 아직 숙제를 못 했어."
영어를 잘하는 룸메이트는 일찌감치 숙제를 마치고 잠자리에 들었지만, 나는 원서를 읽느라 숙제는 아직 반도 하지 못했다.
책을 읽고 나서 다시 숙제를 하다 시계를 보면 새벽 두세 시가 훌쩍 넘어 있곤 했다.
농익은 가을밤, 새벽 두 시 무렵이면 울기 시작하는 풀벌레의 노랫소리를 들은 적 있는가?
기숙사 담벼락을 타고 '찌르르 찌르르' 울리는 풀벌레 소리.
싸늘한 어둠을 가르는 그 섬세한 소리가 지금도 귀에 쟁쟁하다.
어느 시인은 귀뚜라미 울음소리를 가위로 가을밤을 쓰륵쓰륵 써는 것 같다고 비유했는데 나는 그렇게 느꼈다.
그 노랫소리는 때로 섬뜩하게 들렸지만 나는 가을밤 풍경에 취해 더듬거릴 시간이 없었다.
처량하게 외로움을 느낄 여유도 없었다.
가을밤을 썰고 있는 저 풀벌레처럼 나도 영어의 세계를 썰어야 했다.
반드시 영어의 장애물을 썰어 없애야만 했던 기숙사에서의 첫 가을밤.
나는 그렇게 기숙사 705호에서 새벽까지 울고 있는 한 마리 풀벌레였다.
예비과정에 들어와 처음 읽은 <The Hobit>.
쉽고 재미있는 판타지 소설인데도 다 읽는 데 2주일이나 걸렸다.
그 다음에 읽은 간디의 <We are all brothers>는 내용이 너무 지루하고 어려운 단어가 많아서 그보다 훨씬 더 걸렸다.
헤르만 헤세의 <Siddhartha(싯다르타)>도 3주 이상 읽었던 것 같다.
모르는 단어를 사전에서 찾다보면 몇 페이지 못 읽었는데도 금세 2시간이 지나가버리곤 했다.
"Won Hee, you look terribly tired.
What's the problem(원희, 너 무척 피곤해 보이는구나. 무슨 일 있니)?"
"No, nothing. I'm just ....(아무 일도 아니에요. 그냥 좀...)."
늘어나는 공부량과 과목별 숙제 때문에 결국 수면 시간이 부족해지자, 수업에 들어가면 졸기 일쑤였다.
처음엔 걱정의 눈길을 보내던 선생님들도 자꾸만 조는 나를 그냥 두고볼 수는 없었던 모양이다.
"Won Hee, Wake up(원희, 일어나)!"
세상 모르고 졸다가 호명되면 창피해서 몸둘 바를 몰랐다.
하지만 세상에서 가장 무거운 것이 바로 '눈꺼풀'이라고 하지 않던가.
중학교 때 졸음 참는 방법으로 사용했던 샤프펜슬 고문을 나는 이곳에서 또 시작했다.
수업시간에 졸음을 참기 위해 샤프펜슬로 손톱 위를 찍어댔다.
주말에 나를 보러온 어머니는 손톱 주위에 피멍이 든 걸 보시고 매우 걱정하셨다.
하지만 수업시간마다 무겁게 감기는 눈꺼풀을 어떻게 해볼 도리가 없어서, 나중에는 볼펜으로 허벅지를 찌르기에 이르렀다.
예비과정을 다 마치도록 내 허벅지에는 여기저기 멍자국이 사라질 날이 없었다.
나의 영어 읽기 프로젝트는 겨울방학까지 이어졌다.
예비과정이 끝나고 겨울방학이 되었을때, 나는 대전에 있는 집으로 돌아가지 않았다.
민사고의 학사과정 중 조기 졸업자를 위한 프로젝트를 계속 해야 했던 것이다.
"원희야, 너희는 겨울방학이 없어서 어떡하니? 아직은 중학생인데 쉬지도 못하고...."
하나밖에 없는 딸을 강원도로 보내놓고 겨울방학이 오기만을 기다렸던 부모님의 실망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하지만 나는 마음을 독하게 먹었다.
"여기에서 공부하는 게 훨씬 편해요.
참, 엄마 예날에 듣던 CNN 방송 테이프나 좀 보내주세요."
"그건 왜?"
"기숙사에서 한 달 동안 어학연수 하려고 그러죠."
돈 안 드는 어학연수.
어차피 겨울방학 동안 기숙사라는 한정된 공간에서 지낼 거라면 하루 종일 영어만 듣고, 영어 원서만 읽고, 또 영어로 생각하는 능력을 키운다면 충분히 어학연수 효과를 볼 수 있었다.
이끌어주는 사람 없이 혼자 한다는 어려움이 있었지만 그건 극복할 수 있을 듯싶었다.
'영어 읽기 프로젝트'에 양념처럼 '영어 듣기 프로젝트'도 첨가했다.
어머니가 보내준 CNN 방송 테이프를 매일 들었다.
밥을 먹을 때나 화장실에 갈 때도 귀에 이어폰을 꽂고 다녔다.
확실히 이런 수준의 영어는 초등학교 때 배운 회화와는 비교도 안 될 만큼 어렵고, 말하는 속도도 빨랐다.
원어민의 목소리로 녹음된 뉴스를 매일 들으면서 받아쓰기도 해보고, 앵커의 목소리를 쫓아 섀도잉(shadowing, 따라하기)을 시도하기도 했다.
이렇게 하다 보니 그동안 내가 얼마나 쉬운 영어만 구사해왔는지 새삼 느낄 수 있었다.
테이프를 듣는 시간을 제외하고는 거의 하루 종일 책을 읽었다.
방학이 겨우 한 달 정도라 제인 오스틴의 <Pride and Prejudice(오만과 편견)>를 읽는 것만도 버거웠지만, 조금씩 속도가 붙는 것 같았다.
처음에는 모르는 영어단어를 하나하나 찾는 데 시간을 많이 보냈는데, 점점 모르는 단어를 추측하고 넘어가는 요령이 생겼다.
처음 보는 단어라도 문맥 속에서 의미를 파악하다 보면 대충 들어맞았다.
이제는 영어 원서를 읽을 때 사전을 찾아봐야 한다는 조바심은 사라졌다.
영어 원서가 거대한 산처럼 느껴지지도 않았다.
하지만 여전히 영어에 대한 부담감을 안은 채 1학년에 올라갔다.
9. 한국 토종 거북이의 영어 따라잡기
"아이 참, 이번엔 내가 꼴찌인가 봐. 11개나 틀렸어."
"아니야, 내가 꼴찌인 것 같은데? 난 12개 틀렸거든!"
봄기운이 완연한 민사고 교정에서 두 명의 친구들과 아는 서로 '꼴찌' 임을 주장하고 잇었다.
1학년에 올라와 치른 두 번의 모의 SAT I 시험에서 우리는 연속 '꼴찌 3인방'을 기록한 것이다.
SAT I 은 미국 고등학생들이 대학에 가기 위해 치르는 수학능력시험 같은 것이다.
언어 영역 (Verbal part)과 수학 영역 (Math part)으로 나뉘어 있는데, 각각 800 점씩 총 1600점 만점이다.
미국의 거의 모든 대학에서 SAT I 점수를 요구하기 때문에 유학을 준비하는 학생에게는 아주 중요한 시험이다.
나는 수학은 자신 있었지만, 언어(영어) 영역만은 시험지를 받아볼 때마다 모르는 문제가 너무 많았다.
겨울 방학 내내 헌신적으로 영어레 매달렸는데 반에서 꼴찌라니!
'하늘도 정말 무심하다'는 소리가 입에서 절로 새어나왔다.
"엄마, 이상해요. 점수가 왜 이렇게 안 나올까요?"
속이 상해 집으로 전화를 하면 어머니는 이렇게 위로를 해주셨다.
"원희가 친구들한테 항상 '공부를 해야 점수가 잘 나온다'고 말했던 거, 기억나니?
원희는 중학교 때도 문제집을 수십 권씩 풀고 나서야 시험을 봤잖아.
영어도 '공부를 정말 많이 했다'고 자부할 수 있는 시점이 있을 거야.
지금은 아직 그 시점이 안 됐기 때문에 점수가 안 나오는 것 아닐까?"
듣고 보니 어머니 말씀이 맞는 것 같았다.
아직 내 공부가 부족하기 때문에 점수가 안 나오는 것이리라.
학교에서는 모의시험을 치른 다음에 점수만 알려줄 뿐, 어떤 문제를 틀렸는지는 알려주지 않았다.
더더욱 SAT I 의 미궁 속으로 빠져드는 기분이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실제 SAT I 시험은 2학년 때 본다는 사실이었다.
그 때까지는 모든 교과목과 자습을 통해 영어 실력을 다져야 했다.
예비과정을 마치고 1학년이 돼서도 나의 불쌍한 영어 행진은 계속 됐다.
특히 유럽사 수업이 그랬다.
독일에서 오신 간제 선생님이 가르쳤는데, 기본적으로 알아야 할 지식뿐만 아니라 이해하고 분석하는 능력까지 겸비해야만 들을 수 있는 과목이었다.
그런데 나는 그 분의 영국식 발음이 귀에 익숙지 않은 데다 말조차 빨라 수업 내용을 이해하기 힘들었다.
"너는 영어를 잘 이해하지 못하는구나, 계속 유학반에 있어도 좋은지 잘 생각해봐라."
간제 선생님의 이 말 한 마디에 나는 말할 수 없이 큰 상처를 받았다.
선생님에게 '박원희' 라는 아이가 형편없는 학생으로 비쳐지는 게 너무 싫었다.
'My enemy No.1 is European History! '
유럽사를 '반드시 무찔러야 할 적' 으로 규정하고, 이렇게 쓴 글귀를 책상 앞에 붙여두었다.
뭘가 풀리지 않는 문제나 어려움이 있으면 책상 앞에 크게 써서 붙여놓고 스스로 자극하며 마음을 다잡는 것이 나의 버릇이었다. 열심히 공부해서 선생님에게 더 나은 모습을 보여줘야만 했다.
어디서 이런 오기가 생기는지는 모르겠지만, 누군가 내게 실망하는 모습을 보면 정말 견딜 수 없었다.
하루에 2시간씩 영어 원서를 읽느라 늘 잠이 모자랐지만 유럽사 시간만큼은 절대로 조는 일이 없었다.
잔뜩 긴장한 눈빛으로 선생님을 바라보며, 선생님이 하는 말은 토씨 하나 빠뜨리지 않고 노트에 적었다.
매일 자습시간에 다시 유럽사 노트를 정리하고 유럽사 숙제만큼은 온갖 정성을 들였다.
글 결과 수업 중간에 치르는 쪽지시험에서 좋은 성적을 거뒀다.
"원희, 시험을 아주 잘 봤구나. 잘했어."
어느 날 선생님의 칭찬에 우쭐해졌다.
'이쯤 되면 선생님도 나를 다시 보시겠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유럽사 공부의 길은 그렇게 만만한 게 아니었다.
방심하는 순간 간제 선생님은 또다시 직격탄을 날렸다.
어느 날 수업시간에 'ambush quiz(예고 없이 보는 쪽지시험)' 를 보게 되었는데, 내 성적은 형편없이 나왔다.
"너에게 실망했다.
너는 단시간에 공부해서 성적을 올리는 전형적인 한국 학생에 지나지 않아.
네가 미국에 가서 공부를 잘할 거라는 생각이 들지 않는구나."
선생님의 말 한마디 한 마디가 가슴을 후벼팠다.
한 번 칭찬을 들은 후로 예습, 복습을 게을리한 탓이었다.
그 날은 하필 한 달에 한 번 집에 가는 날이었다.
나는 '엉엉' 소리까지 내가며 서럽게 울었다.
"원희야, 울지 마. 선생님이 더 잘하라고 하신 말씀일 거야."
기숙사 방에서 통곡을 하고 잇는 내게 단짝 친구 신재가 다가와 어깨를 토닥여주었다.
하지만 학교를 출발하기 전 20분 동안 무너진 자존심과 서러움을 참지 못해 목놓아 울고 말았다.
집으로 가는 버스 안에서도 내내 우울했다.
내가 한동안 유럽사 공부를 그렇게 열심히 했다는 걸 알아주지 않는 선생님이 야속하고 미웠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었다.
주말을 이용해 집에 다녀오고 나자 다시 도전해서 유럽사를 정복하고야 말겠다는 새로운 오기가 생겼다.
선생님 말이 하나도 틀린 게 없었다.
억울하면 최선을 다해서 좋은 결과를 보여주면 되지 않은가.
새로운 마음으로 유럽사 공부를 다시 시작했다.
로마시대 의상에 대한 리포트를 쓰면서 콧노래를 부르며 직접 일러스트를 그릴 정도로 의욕이 솟았다.
내가 얼마나 열심히 했는지는 에세이 숙제 점수로 판명이 났다. 9점 만점에 늘 3, 4점을 맞던 내가 8점을 맞은 것이다.
"Get your essay published (네 에세이를 발표해라)!"
간제 선생님은 친구들 앞에서 나를 일으켜세우고는 이렇게 칭찬을 해주셨다.
갑자기 간제 선생님에 대한 미움이 눈녹듯 사라지기 시작했다.
못랄 때는 못한다고 직설적으로 말해주고, 잘하면 또 그에 걸맞게 칭찬을 해주는 것.
간제 선생님은 학생에게 진정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아는 분이었다.
다음 학기에도, 또 그 다음 학기에도 나는 선생님의 유럽사 수업을 들었다.
내가 나태해지지않고 끊임없이 스스로를 채찍질할 수 있었던 것은 어쩌면 간제 선생님의 덕분이 아니었을까.
1학년 1학기가 지나가면서 나의 영어 실력은 눈에 띄게 향상됐다.
영어로 하는 발표(presentation), 토론(debate) 수업 등을 하다 보니 말하기와 듣기 실력이 자연스럽게 좋아졌다.
어느 순간부터는 영어로 말하는 게 오히려 더 편해져서 기숙사에 친구와 단 둘이 있을 때조차 영어로 이야기할 정도였다.
민사고에 처음 들어왔을 때, 나는 영어에 관한 한 해외파 토끼들 사이에서 느릿느릿 기어가는 토종 거북이에 불과했다.
그러나 비록 느린 거북이지만, 천천히 꾸준히 하다보면 언젠가는 경주에서 이길 거라는 희망이 보이기 시작했다.
제3부 나의 피눈물 영어정복기
1. Slow and steady wins the race
(자기 실력 파악하기)
민사고에 처음 입학했을 때, 무엇보다 나를 힘들게 한 것은 영어였다.
그 때까지 읽어본 영어 원서라고는 <해리포터와 비밀의 방>이 전부였던 내게, 영어로 씌어진 교과서들과 각종 참고 서적들, 영어 독서 리스트, 영어단어 시험은 그야말고 가도 가도 끝이 없는 오르막길 같았다.
화학이나 수학 등 이학 분야의 책들은 그나마 사정이 나았다.
문학쪽으로 넘어오면 책을 읽을수록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단순한 의미뿐만 아니라 문장 속에 숨겨진 뉘앙스까지 찾아내기엔 내 영어가 너무 '소박'했다.
그동안 지나치게 쉬운 영어에만 길들여져 있었던 탓이다.
난 영영사전을 펼쳐놓고 모르는 단어를 찾고 또 찾았다. 그런데 옆에서 공부하는 친구들은 '어, 이거 이런 뜻이잖아'라고 쉽게 맞히는 걸 보면서 허탈감에 휩싸였다.
나를 더욱 압박한 것은 영어 에세이 쓰기였다.
한국어를 잘하는 한국 사람도 막상 글을 쓰려면 막막할 때가 있다.
영어 에세이를 잘 쓰려면 그 전에 영어를 수단으로 한 '듣기'와 '읽기'가 충분히 채워져야 했다.
그런데 영어 원서를 펼쳐놓고 한 시간에 겨우 10페이지 읽는 수준이었으니, 민사고라는 '영어 특구'에서 나는 졸지네 미아가 된 꼴이었다.
영어를 모국어처럼 사용하는 친구들이 부럽기만 했다.
그런데 어느 날인가, 문들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내가 만약 이 영어 특구에 들어오지 않았다면 나의 영어 실력은 어떻게 되었을까?
영원히 소박하고 짧은 영어에 만족하며 살지 않았을까?
자각이라는 건 참 무서운 것이다.
나는 영어에 관한 한 혹독할 만큼 깨졌고, 그 덕분에 영어에 도전할 새로운 의욕이 솟구쳤다.
'내가 정말 영어를 못하는구나!'
이런 자각이야말로 영어 공부의 출발점이 아닌가 싶다.
대충 머릿속으로 생각하는 자각이 아니라, 가슴을 세차게 파고드는 엄청난 자각말이다.
영어를 '외국어'로 생각하는 그룹 안에서 아무리 1등을 한다고 해도, 영어를 모국어로 쓰는 사람들 속에 섞이면 초등학교 수준밖에 되지 않는다.
아마 올 여름 하버드에 가면 또 한 번 큰 자각을 하게 될 것 같다.
한국에서 영어로 공부했던 것과, 진짜 원어민들 사이에서 공부하는 것은 천지차이일 테니까.
미국이라는 땅에서 영어로 공부할 것이 걱정은 되지만, 이것만은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영어를 모국어처럼 잘하고 싶다면 지금 내 영어 실력이 어느 지점에 와 있는지 냉정히 파악하라는 것이다.
자기 점검을 확실히 되면 앞으로 해야 할 공부의 양이 얼마 만큼인지 보이며, 공부의 양이 정해진 다음에는 열심히 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영어의 처음은 재미있게 시작하자)
(Phonics & Pattern English)
(자신감이 밥 먹여준다)
(꾸준히 오래오래, 성실하게)
우리 어머니의 교육철학 중 하나는 '어떤 공부든 한번 시작했으면 꾸준히 투자하라'는 것이다.
덕분에 초등학교 입학 전부터 초등학교 4학년 때까지 꾸준히 영어회화학원을 다닐 수 있었다.
어머니는 내게 영어 공부를 꾸준히 하라고 강조하셨다. 그래서 나는 학원을 그만둔 다음에도 영어 일기를 꾸준히 썼고, 학교 숙제와 상관없이 영어 동화책을 읽었다.
중학교 때는 교과서 한도 내에서 시험 점수가 잘 나오는 것에 만족했기 때문에 실력이 그다지 향상되지 않았다.
다행인 것은 꾸준히 영어 경시대회에 참가했다는 것이다.
영어경시대회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발음이 많이 좋아졌고, 영어 문장력도 어느 정도 기르게 되었다.
고등학교에 올라와서는 어려운 영어 공부를 포기하지 않았다는 점이 스스로 대견하다.
민사고의 다른 친구들만큼 잘 되지 않는 영어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으면서도 매일 2시간씩 영어로 된 책을 읽었다. 수업과 숙제, 토론, 발표 등 모든 커리큘럼이 영어로 진행되는 고등학교를 다녔다는 사실이 내게 행운이라면 행운일까?
매일 영어로 얘기하고, 영어로 수업 듣고, 숙제하고, 발표하고..., 그렇게 하다 보면 누구든 영어 실력이 좋아지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영어는 정말 꾸준히 하는 게 바람직하다.
단 하루라도 영어 공부를 미루다 보면 그것이 이틀, 사흘, 일주일, 한 달이 된다.
우리말도 오랬동안 안 쓰면 잊어버리는데, 하물며 외국어는 더하지 않을까?
'Slow and steady wins the race (천천히, 꾸준히 하는 사람이 결국 승자가 된다)'라는 말처럼, 영어는 그런 마음으로 해야 한다.
단, 꾸준히 영어 공부를 하라는 것이 영어학원을 계속 다니라는 얘기는 아니다.
사람마다 경제적인 여건이 다르기 때문이다.
하지만 관심만 있으면 돈 안 들이고 영어를 배울 수 잇는 매체가 많다.
특히 EBS방송에는 어린이를 위한 영어 동화나 영어 드라마는 물론, 성인들을 위한 초급 회화나 중급 회화, 영어쇼에 이르기까지 좋은 프로그램들이 많다.
자기 형편과 입맛에 맞는 프로그램을 골라 꾸준히 그리고 열심히 하면 그게 바로 영어로 가는 지름길이 아닐까?
2. 영어단어를 외우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 세가지
유학을 가려면 SAT와 토플을 봐야 한다.
이런 시험의 기본은 많은 단어를 외우는 것이다.
영어단어를 많이 알고 있으면 시험뿐만 아니라 영어 원서를 보며 공부하는 데도 큰 도움이 된다.
영어단어, 일단 많이 외우자.
그런데 그 많은 영어단어들을 어떻게 하면 쉽게 외울 수 있을까?
<접두어(a prefix)와 어근(a radix)을 활용한 단어 외우기
<연상법으로 외우기>
<주변 사람들과 함께 외우기>
<짧은 시간 안에 최대한 많이 외우기>
3. 영어 소설 속에 기꺼이 파묻혀라.
민사고에서 영어로 된 문학 작품을 들이대며 읽으라고 했을 때, 거의 절망에 가까운 한숨을 내쉬었던 기억이 난다.
처음에 영어로 된 작품을 읽을 때 친구들과 나의 속도 차이는 '약 2주' 였다.
어떤 친구들은 <The Hobbit>이라는 작품을 이틀 만에 다 읽고 다른 책을 보고 있는데, 나는 그 책 한 권을 2주일이면 꼬박 걸려서야 다 읽었다.
그 속도의 차이를 느껴보지 않은 사람은 그 심정을 이해하지 못한다.
속도가 뒤처지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얼마나 조바심이 나는지 말이다.
민사고 예비과정에 입학했을 때 나는 무조건 제2 자습시간인 밤 10시부터 12시까지는 영어로 된 작품들을 읽는 데 할애했다.
책마다 다르지만, 그 때는 1시간에 평균 10페이지 정도밖에 읽지 못했다.
그런데 매일 정해진 시간 동안 책을 읽어나갔더니, 3개월 후에는 시간당 15페이지의 속도로 읽고 있었다.
1학년 1학기가 끝날 무렵에는 시간당 20페이지쯤 읽게 되엇따.
물론 이 속도도 다른 친구들에 비하면 무척 느린 것이었지만, 입학 초기보다는 2배 빨라진 셈이다.
갑자기 책 읽는 속도가 빨라진 건 2학년 1학기가 끝나갈 무렵부터였다.
찰스 디킨스의 <Great Expectations(위대한 유산)>은 문장이 복잡한데도 1시간에 30페이지 정도로 읽어나갔다.
책 읽는 속도가 부쩍 늘었다는 사실을 발견하고는 날아갈 듯이 기분이 좋았다.
그 후로는 속도가 더 많이 붙어서 문장이 간결한 책들은 1시간에 50페이지까지도 읽을 수 있었다.
헤밍웨이의 <The Old Man and the Sea(노인과 바다)>를 2시간 만에 다 읽게 되었을 때, 그 감격은 말로 다할 수 없었다.
영어 독서 리스트가 필요한 분들을 위해 고교 시절 읽엇던 책들을 조금만 소개해보겠다.
처음 읽었던 책은 간디가 지은 < We are all brothers>.
간디가 자신이 겪었던 일들을 나열하며 독지들에게 충고하는 글이었다.
책을 읽다가 'brothel'이라는 단어가 여러 번 나오기에 사전을 찾아봤더니, '매춘소'라는 뜻이어서 무척 당황했었다.
그 단어가 들어간 부분의 내용은 '매춘소에 들어간 뒤 후회했다'는 것이었다. 매우 도덕적인 내용만 잔뜩 늘어놓은 탓에 흥미는 느끼지 못했지만, 그래도 인도인들의 추앙을 받고 있는 사람의 글을 읽을 수 있어서 좋았다.
학교에서 정해준 독서 리스트 중에 헤르만 헤세의 <Siddbartba>와 마크 트웨인의 <The Adventures of Huckleverry Finn(허클베리 핀의 모험)> 도 빼놓을 수 없다.
이 작품들은 수업시간에 토론을 벌일 예정이어서 꼼꼼히 읽었다.
<Siddbartba>의 주요 내용은 청년 '싯다르타'가 깨달음을 얻기 위해 친구 고빈다(Govinda)와 함께 고행길을 떠난다는 것이었다.
자아의 근본인 '아트만(Atman)'과 우주의 본질인 '브라만(Brahman)'의 일치 운운하는 부분에서는 개념이 무척 어려워 오랫동안 책을 들여다 보았다.
이 소설 속에 등장하는 강은 '속세와 정신세계를 구분하는 경계'라고 했다.
한 번도 그런 종류의 강에 대해 생각해본 적이 없기 때문에 무척 신기했다.
철학적인 메시지가 많아서 이해하기 어려웠던 반면, 다 읽은 후에 뿌듯해지는 책이었다.
<The Adventures of Huckleberry Finn>에서는 유독 허클베리 핀이 "I shut the door to"라고 말하는 문장이 떠오른다.
선생님은 수업시간 내내 이 문장에 왜 'to'가 들어갔는지를 설명하셨다.
문법적으로는 틀린 문장이지만, 허클베리 핀이 교육을 많이 못 받았다는 걸 표현하기 위해 작가가 일부러 'to'를 넣었다고 햇다.
책 중간중간 흑인들이 쓰는 표현들이 많았기 때문에 표준영어(Standard English)에 익숙해 있던 나는 읽기가 수월치 않았다.
피츠 제럴드의 <The Great Gatsby(위대한 개츠비)>는 너무 어려워서 세 번이나 읽었다.
처음 시작할 때부터 'vnlnerable(상처받기 쉬운)'이라는 단어가 등장하더니, 다 읽고 나서도 상당히 암울한 느낌을 갖게 만든 작풍이었다.
빈농의 아들로 태어난 개츠비는 일찍부터 성공에 대한 야심을 품고 있었다.
제2차 세계대전 중 미국 육군장교가 된 그는 상류계급의 아가씨 데이지와 사랑하는 사이가 된다.
그러나 그가 유럽 전선으로 떠난 뒤 그녀는 돈 많은 다른 남자와 결혼해 버린다.
전쟁이 끝나고 돌아온 개츠비는 술을 밀수하면서 엄청난 부를 쌓고, 데이지 부부의 뒤를 따라 뉴욕으로 가서 롱아일랜드에 호화저택을 마련한다.
개츠비는 그녀와의 사랑에 미련을 버리지 못하다가 결국 데이지 대신 죄를 뒤집어쓰고 죽을을 맞이하게 된다.
개츠비의 차를 몰던 데이지가 사고를 냈는데, 그 사고로 죽은 여자의 남편이 개츠비를 총으로 쏴 죽였던 것이다.
미 모든 이야기를 독자에게 전해주는 것은 닉이라는 남자다.
소설의 마지막에서 닉이 만난 데이지 부부는 마치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행동한다.
그들의 기억 속에 개츠비란 사람은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그 장면에서 나는 가슴 찡한 감동과 충격을 받았다.
이 소설에서는 완전한 선이나 완전한 악은 없었던 것 같다.
자신의 삶을 오로지 한 여자를 위해 바친 개츠비와 1920년대 미국 상류층을 대표하는 듯한 데이지.
돈과 성공을좇던 그 시대의 허상을 비판하는 내용과 서정적인 문체가 돋보였던 작품이었다.
처음엔 이해되지 않는 부분들이 많았는데, 세 번째 읽을 때에야 비로소 내용이 완벽하게 이해되었다.
이 책을 읽고 나서 1920년대 시대상을 보여주는 단어들에 대한 짧은 에세이를 썼다.
재미있게 읽은 책 중의 하나가 <The Hobbit>이다.
이 책은 영화로도 제작된 소설 <반지의 제왕>의 전편 격이 되는 소설이다.
빌보 배긴스(Bilbo Baggins)가 간달프(Gandalf)를 따라 난쟁이(dwarf)들과 함께 보물을 찾아 여행을 떠나는 것이 주요 내용이다.
이 소설만큼은 아주 가벼운 마음으로 읽었다.
판타지여서 내용이 재미있고 읽기도 쉬웠기 때문이다.
결말이 날 때꺄지 책에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이 소설의 주인공 빌보 배긴스는 모험심 없는 소심한 한 개인이었는데, 소심한 개인이 여행을 통해서 또 다른 자아를 찾아가는 과정을 그린 것 같다.
감명 깊게 읽은 책으로는 찰스 디킨스의 <A Tale of Two Cities(두 도시 이야기)>가 있다.
프랑스 혁명 당시 파리와 런던, 두 도시에서 일어나는 일을 다룬 내용이었다.
처음에는 악한 캐릭터였던 남자가 나중에는 자기가 사랑했던, 하지만 이미 다른 남자와 결혼해버린 여자를 위해 단두대로 향하는 대목에서 얼마나 눈물을 흘렸는지 모른다.
찰스 디킨스의 또 다른 작품인 <Great Expectations>.
예전에 한국어 번역판을 읽어보았기 때문에 대충 내용을 기억하고 있었는데, 막상 원서로 접하고 보니 이야기 전개보다는 찰스 디킨스의 표현력에 여러번 감탄했따.
지금 정확한 문구는 기억할 수 없지만, 주인공이 고향을 떠나면서 눈물 흘리는 장면을 마치 풍경 자체가 흐려지는 것처럼 표현했던 부분은 참으로 아름다운 모사였다.
"아! 어쩜 이런 문장을 구사했을까!"
읽는 내내 감탄이 흘러나왔던 작품이다.
토머스 하디의 <Tess of D'Urbervlle(테스)>는 여성주의적 관점에서 나를 몹시 흥분시켰다.
테스의 약혼자(엔절 클레어)가 테스의 과거 얘기를 듣고 용서할 수 없다며 파혼하는 대목에서는 분노가 치밀었다.
자신의 과거는 괜찮고 왜 여자의 과거는 용서할 수 없다는 말인가?
테스의 이야기가 어쩌면 지금의 한국 사회와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기들은 문란한 생활을 하면서도 자신이 만나는 여자는 모두 처녀이기를 바라는 한국 남자들, 그들의 이중성에 대해 이미 들은 바가 있었기 때문이다.
이 소설은 테스가 자신을 속였던 남자를 죽이고 사형을 당하는 것으로 결말을 맺는다.
읽는 내내 마치 내 일처럼 억울한 기분이 들었다.
책을 읽다가 책상을 치며 분개하기도 했다.
나는 남자와 여자가 좀 더 평등한 위치에서 만나는 이야기가 좋다.
최근에 씌어진 책 중에서는 조셉 헬러(Joseph Heller)의 <Catch-22>를 읽었다.
이 소설의 배경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지중해의 미국 공군 기지다.
주인공은 조종사 요사리언(Yossarian)대위, 연일 계속되는 출격으로 조종사 가운데 죽는 사람이 늘어난다.
요사리언 대위는 할당된 출격 임무(주어진 임무 횟수를 채워야 집에 돌아갈 수 있다)에 최선을 다하려 하지만, 출격 목표 횟수를 채울 만하면 꼭 사령관이 횟수를 상향조정했다.
결국 요사리언은 군의관을 찾아가 자신은 '정신이상'에 해당되니 출격에서 제외시켜달라고 요구한다.
제정신이 아닌데도 계속 출격하고 있으므로, 의학적으로 '정신이상'에 해당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군의관은 출격임무에서 자신을 빼달라고 공식 요청하는 행위는 스스로 '정상'임을 나타내므로, 출격에서 제외시킬 수 없다고 잘라 말한다.
군 당국에서 내세우는 논리가 너무 기가 막혀 한참이나 웃었다.
이 작품은 베트남전 당시 반전을 지지하던 많은 젊은이들로부터 폭발적인 인기를 모았다고 한다.
이 소설 제목인 'Catch-22'는 '앞뒤가 맞지 않는 모순된 상황' 이나 '진퇴양난의 곤경 혹은 딜레마'를 나타내는 용어로도 사용된다.
'나는 지금 진퇴양난에 처해 있다' 라고 할 때 'I'm in a catch 22 situation now' 라고 표현한다.
많은 양의 책을 읽다보면 '속도'가 붙는 장점이 있지만, 시대상을 나타내는 다양한 단어들을 접할 수 있다는 점에서도 유익하다.
작품이 씌어진 시대에 유행하던 자동차 이름, 패션 스타일, 요리 등의 단어들을 만날 수 있다.
독서를 통해 특정 분야의 배경지식을 얻는 것도 대단한 수확이다.
나는 전쟁을 배경으로 한 소설 <Catch-22>를 읽고 나서야 군대와 전쟁에 대한 상식들을 구체적으로 접하게 되었다.
이 책을 읽기 전까지는, 군인이 미션을 끝내야만 고향에 돌아갈 수 있다는 사실을 전혀 몰랐다.
이렇게 영어 독서을 꾸준히 한 결과는 여러 군데에서 빛을 발했다.
SAT I 시험의 'Reading' 섹션의 긴 지문들을 속독하는 것이 가능해졌으며, 책 속에 나오는 단어들 중 모르는 단어의 의미를 문맥 속에서 유추해낼 수 있게 되었다.
무엇보다 영어 에세이 쓰는 것이 수얼해졌다는 점을 꼽을 수 있다.
그건 아마도 영어에 대한 독서를 통해 '언어적 감각'을 터득했기 때문이 아닐까.
진짜로 여어를 잘하고 싶은 사람들이라면 영어 독서는 필수다.
'input' 이 많을 수록 'output' 은 좋아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4. 단어의 뜻은 문맥으로 유추하라.
5. 영어책, 목적에 따라 읽는 방법이 달라진다.
6. 피 말리는 영어 독서시험
7. 혼자 공부하는 '자립형' 인간이 돼라.
고등학교 2학년 여름방학 때 SAT I 시험을 준비하면서 속을 태웠다.
여름방학 전에 모의시험을 봤는데, 그 전 시험에 비해 점수가 전혀 안오른 것이다.
이 시험에 대비해 학교에서 따로 보충수업을 해주는 것도 아니고, 앞으로 어떻게 준비해야 할지 막막하기만 했다.
그래서 방학이 시작되자마자 SAT 전문학원에 다니려고 했다.
주변 친구들의 경우 방학 동안 서울에 있는 SAT 전문학원에 다녀오면 점수가 100점씩 오르곤 했다.
다른 친구들은 그렇게 점수가 오르는데 나만 늘 제자리인 것 같아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다.
그러나 나는 서울로 가는 기차 한 번 타보지 못하고 방학을 맞아야 했다.
서울에는 하룻밤 기거하며 학원 수업을 들을 만한 친척집조차 없었다.
상황이 이렇게 된 데다 논문 준비 사건까지 터지는 바람에 결국 혼자서 공부를 계속할 수밖에 없었다.
나의 SAT I 목표 점수는 1500점 이상이었다.
여름방학 동안 혼자 영어 소설책을 읽거나 단어 암기를 하면서 시간을 보냈고, 2학기가 시작되면서부터 본격적으로 실전 문제집을 풀었다.
10월 11일에 SAT I 시험을 본 결과, 나는 1560점을 맞았다.
'내가 과연 공부를 잘하고 있는걸까?'
항상 이런 의문이 들어 안개 속을 헤매는 기분이었는데, 어떻게 점수가 잘 나온 것일까?
나중에야 드는 생각은 여름방학 때 SAT 전문학원에 가지 못한 것이 오히려 잘된 건지도 모른다는 것이었다.
만약 내가 학원을 다녔다면 어떤 내용에 주안점을 두고 어떤 식으로 공부해야 할지 '쉽게' 배웠을 것이다.
학원에서 제시하는 스케줄대로 공부하다 보면 괜히 시간 낭비하는 일도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SAT I 시험 준비를 하면서 공부의 범위나 공부 방법을 혼자 힘으로 정했다.
매일 내가 정한 분량만큼은 무슨 일이 있어도 공부를 했다.
어떤 문제를 틀렸을 때, 왜 틀렸는지 바로바로 알지는 못했지만 오히려 끈기 있게 그 이우를 추적해가는 능력을 길렀다.
영어단어를 외우는 방법도 혼자 터득했고, 영어책을 읽으며 단어를 우추해내는 법이나 영어 에세이 쓰는 법도 오랜 시간 혼자 부딪치며 깨달았다.
누군가가 쉽게 던져주는 지식을 받아먹는 공부보다는 조금 돌아가더라도 스스로 해법을 찾아내는 방법을 택한 것이다.
이게 바로 공부의 '생존력'이 아닐까?
물론 과외나 학원 강습이 좋을 때도 있다.
원어민에게 영어를 배울 수 잇는 학원이나 중요한 문법을 배울 수 있는 학원은 영어를 공부하는 과정에서 반드시 거치게 되는 곳이다.
그러나 언어를 배우는 가장 큰 원동력은 '호기심'이라고 생각한다.
자신의 내면에서 뿜어져나오는 호기심을 다른 사람이 쉽게 던져주는 지식으로 채우다 보면 어느 순간부터는 그 호기심마저 사라지고, '해야 한다'는 강박관념만 남게 된다.
조금 시간이 더 걸리더라도 영어에 대한 실마리를 스스로 찾아가는 것.
그것이 장기적인 안목에서 훨씬 효율적인 방법이 아닐까?
제4부 공부에는 왕도는 없지만 정도는 있다
1. 노트 정리의 제왕이 되라.
공부하기가 갑자기 까다로워지는 것은 중학교 때부터다.
상식 수준에서 배우는 초등학교 때와 달리 중학교에 들어가면 과목별로 깊이 있는 공부를 시작하기 때문이다.
중학교 공부에 빨리 적응하지 않으면 점점 학습이 뒤처지게 된다.
중학교 공부야말로 대학 공부까지 이어지는 기본이다.
곰곰이 생각해보면 내가 중학교 시절에 가장 열심히 햇던 것은 노트 정리가 아닐까 싶다.
나의 노트는 여느 참고서 못지않게 정리가 잘 되어 있었다.
수업시간에 선생님이 칠판에 적은 내용은 물론 말로 짚어주신 내용까지 빠짐없이 연습노트에 적었다.
그리고 쉬는 시간이나 점심시간을 이용해 깨끗하게 다시 정리했다.
집에 돌아가면 각종 참고서나 문제집에 나와 있는 내용까지 첨가해서 완벽한 나만의 노트를 만들곤 했다.
"와! 네 노트, 정말 예술이다!"
반 아이들은 내 노트를 보면 다들 감탄사를 연발했다.
내용이 꼼꼼한 것은 물론 글씨체까지 마치 책을 인쇄한 것처럼 깔끔했기 때문이다.
낙서 하나 없이 깨끗하게 정리된 내 노트는 시험 때만 되면 친구들사이에서 인기였다.
여러 명이 내 노트를 빌려가서 나중에는 내 글씨체가 유행하기도 했다.
노트 정리를 할 때는 대단원의 제목을 네임펜으로 크게 쓰고, 소제목은 빨간색이나 파란색 펜을 이용해서 썼다.
본문 내용은 검은색 펜을, 아주 세세한 내용들은 0.3밀리미터 짜리 가는 펜을 사용했다.
그리고 중요한 부분에는 빨간 색연필로 밑줄을 긋거나 별표를 쳐놓았다.
공부를 하다가 모르는 부분이 있으면 '포스트잇'에 메모를 해서 노트에 붙여두엇다.
머릿속으로만 '내일 학교에 가서 질문해야지' 하는 것보다 질문할 내용을 따로 정리해 붙여두는 것이 훨씬 좋다.
고등학교 때 내 노트는 더욱 화려해졌다.
특히 생물은 'Won Hee'sBiology Notes (self-study version)' 이라고 이름까지 붙여두었다.
이 노트를 정리할 때면 생물책 세 권과 수업시간에 필기한 메모들이 책상위에 잔뜩 펼쳐져 있었다.
사람의 소화기계(digestive system)나 호흡기계(respiratiry system), 세포의 구조, 신경세포(nerve cell) 등 온갖 중요한 그림들이 그려져 있던 나의 생물 노트.
갖가지 색연필로 색칠까지 해두었더니, 시험 때는 생물 교과서를 보는 것보다 내 노트를 보는 것이 더 효과적일 정도엿다.
시험 기간이 되면 친구들은 내 생물 노트를 스캔해서 서로 이메일로 주고받느라 법석을 떨었다.
내 노트가 나보다 훨씬 인기가 좋았던 게 틀림없다.
노트 필기는 단순히 '적는다'는 의미 그 이상이다.
예습한 내용, 수업시간에 들은 내용, 복습하면서 참고하게 된 내용, 새롭게 알게 된 내용들과 잘 모르는 의문 사항 등이 모두 노트에 기록될 수 있다.
수업시간에 적은 노트 필기로만 만족하지 말고, 이제부터 자기만의 노트를 만들어보라.
자신의 정성이 들어간 노트를 만들다 보면 금세 공부에 재미를 붙일 수 있다.
2. 복습은 빠를수록 좋다.
지금도 기억나는 일화는 내가 중학교 2학년 때 식탁에 앉아 동생에게 공부법을 '강의' 했던 일이다.
"누나, 도대체 공부는 어떻게 하는 거야?"
어릴 때부터 개구쟁이여서 공부에는 별로 취미가 없는 동생이었는데, 중학생이 되자 생각이 달라진 모양이었다.
그때 나는 동생에게 이렇게 설면해주었다.
"잘 봐.
우리가 수업시간에 배운 지식은 우리의 머리 표면에 붙어 있게 돼.
수학시간에 배운 공식, 영어단더, 시의 주제 등이 그냥 표면세 붙어 있는 거야.
그런데 우리가 복습을 하는 순간, 머리 표면에 붙어 잇던 지식들이 머릿속으로 쏙쏙 들어오게 된단다.
복습을 하지 않으면 머리 표면에 붙어 잇는 지식들이 다 날아가버려.
그러니까 복습은 빠를면 빠를수록 좋지.
공부는 그렇게 하는 거야."
나는 연습장에 사람의 얼굴과 화살표를 그려가며 설명을 해주었다.
내가 어떻게 그런 생각을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어머니마저도 나의 '복습효과 일러스트' 에 대해 감탄하셨다.
이미 중학교 때 터득한 이 이론을 나는 나름대로 잘 실천하고 있었다.
그 날 수업에서 배운 내용은 쉬는 시간이나 점심시간을 이용해 반드시 노트 정리를 했고, 저녁이면 학원 자습실에서 혼자 복습하는 시간을 가졌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내 머리에 붙어 있던 온갖 지식들이 다 날아가버릴 것 같은 조바심을 느꼈기 때문이다.
중학생이든 고등학생이든, 공부하는 사람이라면 매일 복습하는 습관이 중요하다.
"다음에 시간 날 때 해야지."
이렇게 한두 번 미루다보면, 결국 중요한 지식들은 다 머리 위로 날아가버리고 말 것이다.
3. 시간 경영의 선수가 돼라
나의 아버지는 메모의 귀재시다.
매일 아침 작은 종이에다 '오늘의 할 일'이라고 제목을 쓰고 그 날 해야 할 일들을 빠짐없이 적으셨다.
저녁에 퇴근하신 아버지의 셔츠 윗주머니에는 항상 그 메모지가 들어 있었다.
그런 아버지의 영향을 받아서일까?
나도 어릴 때부터 '그 날의 할 일'을 계획하는 데는 일가견이 있었다.
학창시절 쓰던 다이어리를 펼쳐보면 하루하루가 수많은 계획들로 빽빽이 채워져 있을 정도다.
계획을 세운다는 것은 바로 '앞으로 내 시간은 내 마음대로 쓴다'는 의미다.
계획이란 시간을 제대로 활용하기 위한 기초 작업인 셈이다.
모든 사람들에게 하루 24시간이 주어지지만, 그 시간을 알차게 보내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무의미하게 흘려보내는 사람도 있다.
공부를 잘하는 방법뿐만 아니라 인생에서 성공하는 비법도 바로 '시간의 효과적인 경영'이 아닐까?
나처럼 학생의 신분이라면 일분 일초도 빈틈없이 잘게 쪼개서 쓸 필요가 있다.
나는 계획성이 철저하다는 이야기를 많이 듣는 편이다.
고등학교에 다닐 때에는 내가 해야 할 일을 철저하고도 세세하게 다이어리에 기록했다.
내일까지 해야 하는 숙제가 있다면, 그 숙제하는 데 걸릴 시간을 계산하고 남는 시간에 해야 할 일까지도 미리 계획을 세워 놓았다.
계획을 세워놓으면 정해놓은 양을 어떻게든 그 시간 안에 마치려고 노력하게 된다.
만약 그 시간을 넘어버리면 그 이후에 해야 할 일을 못하게 되기 때문이다.
인터넷에서 자료를 검색해서 해야 하는 숙제는 꼭 시간이 길어지곤 했다.
그럴 때는 계획표대로 일과를 마칠 때까지 잠을 자지 않는 것이 내 철칙이었다.
새벽 2시가 되든 3시가 되든 할 일을 다 마쳐야 직성이 풀렸다.
계획표 상으로 시간이 촉박한데도 스트레스 때문에 더 이상 공부가 안 될때는 '딴짓'을 허용하는 여유를 부리기도 했다.
연습장에 만화를 그린다든지, 인터넷에서 뮤직비디오를 다운받아 보면서 시간을 보내는 것이다.
그러다 보면 문득 이런 생각이 든다.
'이러고 있느니 차라리 할 일을 일찍 끝내고 자는 게 낮지.'
그 때부터는 다시 긴장감을 가지고 공부에 빠져들 수 있었다.
시험기간 계획표를 짜기 시작한 것은 중학교 때부터다.
중간고사는 2주 전부터, 기말고사는 3주 전부터 계획을 세웠는데, 계획표의 주요 내용은 어떤 과목을 언제, 몇 시간 동안 공부할 것인가에 관한 것이었다.
예를 들어 시험기간 중간에 일요일이 끼어 있고 월요일에 암기 과목 시험이 잇는 경우, 일요일에 그 암기 과목 공부를 많이 할 수 있으므로 그 전까지는 그 과목 공부를 조금 덜 해두는 식이었다.
그때는 주로 학원 자습실에서 공부를 했는데, 45분 수업을 하고 나면 10분 휴식을 알리는 종이 울렸다.
나는 읽어야 할 교과서의 범위나 풀어야 할 문제집 범위를 정하고, 종이 울림과 동시에 집중해서 공부를 했다.
분 안에 내가 정한 분량을 모두 소화할 수 있게 전력을 다했다.
다소 빡빡하다 싶을 정도로 계획을 세워서 공부하다 보면, 마음내키는 대로 하는 것보다 훨씬 시간 활용도가 높았다.
시간 경영에는 '자트리 시간 활용'도 포함된다.
나의 대포적인 자트리 시간 활용의 예로는 중학교 급식 시간에 줄서서 영어단어 외우기, 길에서 학원 차를 기다리며 줄넘기 연습하기, 고등학교 점심시간에 도시락 싸가지고 다니기 등이었다.
'그까짓 5분'이라고 생각하면 큰 오산이다.
단 5분이라도 1년이면 '1835분', 즉 남들보다 30시간을 더 공부하는셈이 된다.
하루에 10분이면 1년에 60시간, 하루에 20분이면 1년에 120시간.
과연 이것이 무시할 만한 숫자인가?
어릴 때의 습관이 평생을 간다고 한다.
내가 고등학교에 들어가서 맞닥뜨린 엄청난 양의 공부에도 기죽지 않고 그것을 거뜬히 해낼 수 있었던 것은 어릴 때부터 계획을 짜는 습관이 있었기 때문이다.
공부를 잘하고 싶은 사람이라면 시간 경영의 선수가 돼야 한다.
그래야만 시간에 쫓기거나 끌려다니지 않고, 내가 그 시간을 리드할 수 있기 때문이다.
5. 눈에 쏙쏙 들어오는 쪽지 퍼레이드
6. 목표는 항상 높게 잡아라
8. 공부의 기초는 '공부하고자 하는 의지' 이다.
9. 생활 속에서 학습을 우선 순위에 둬라
10. 교과서도 만화책만큼 재미있다.
제5부 한국 토종의 미국 대학 공략법
1. SAT I 은 내신만큼 중요하다.
2. 진짜 실력은 SAT II 에서 판가름난다.
3. 토플, 섹션별 공략이 열쇠다.
내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미국 대학교에 들어가기 위해 보는 시험 중에서 가장 영향력이 없는 것이 토플이 아닐까 싶다.
물론 대부분의 대학교가 외국인에게는 토플 점수를 요구하지만, 토플에만 매달리기보다는 SAT I 시험에 더 비중을 두는 것이 좋을 것 같다.
코넬 대학교의 경우 SAT I 언어 영역 점수가 700 이상이면 토플 점수를 내지 않아도 된다고 원서에 기재되어 있었다.
민사고 친구 중 하나는 CBT 토플 300 점 만점을 받아 신문에 났었다.
그에 비하면 나는 280점밖에 맞지 못했으니 토플에 대한 특별한 노하우도 소개할 만한 것이 없다.
토플은 2000년 10월부터 PBT(Paper-Based Testing) 방식에서 CBT(Computer Based Testing) 방식으로 바뀌었다.
PBT는 677점 만점이었지만, CBT는 300점 만점이다.
CBT의 특징은 모든 수험생이 똑같은 수준의 문제를 푸는 게 아니라 수험생의 수준에 따라 문제의 난이도가 달라진다는 것이다.
컴퓨터로 시험을 보기에 가능한 일이다.
문제 구성은 Listening 과 Structure, Reading, 그리고 Writing으로 되어 있는데, 서점에 가면 이론 정리가 잘 되어 있는 각종 서적들이 즐비하므로 문제집 추천은 생략하겠다.
다만 어떤 문제집을 구입하든 이론과 실전문제를 완전히 자기 것으로 소화하는 것이 중요하다.
SAT I 의 언어 영역 시험과 마찬가지로, 토플 시험 역시 단어를 많이 외우는 것이 중요하다.
Listening 셕션을 공부할 때는 '듣기' 에만 집착하기보다 지문을 소리내어 읽는 편이 도움이 된다.
지문을 이해하는 능력이 있어야 문제를 풀 수 있기 때문이다.
또 문제를 내는 사람의 속도와 비슷하게 읽는 연습을 함으로써 청취 능력을 향상시킬 수 있다.
Structure 섹션에서는 어디까지가 주어이고 어디까지가 서술어인지만 알아도 많은 문제를 맞힐 수 있다.
문법에 배달리지 않아도 풀 수 있는 상식적인 문제들이 많기는 하지만, 그래도 문제를 푸는 데 필요한 주요 문법 지식을 꼼꼼히 이해해두는 편이 좋겠다.
Reading 섹션에서는 단어와 독해력이 중요하다.
평소에 단어를 외울 때, 표면적인 뜻만 대충 알고 넘어가기보다 다양한 활용 예를 공부하는 것이 좋다.
문맥에 따라 단어의 의미가 달라지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독해력이라는 것은 역시 문맥의 의미를 파악하는 능력일 텐데, 공부할 때 해석을 먼저 보지 말고 어떻게든 자기 힘으로 해석하는 습관을 키우도록 한다.
한국말로 한 문장 한 문장 해석하다보면 그만큼 읽는 속도가 더디므로, 모든 지문은 영어로 읽고 영어로 이해하는 것이 좋다.
마지막으로 Writing 섹션, 주어진 코픽에 대해 놀리적으로 자신의 생각을 정리하면 된다.
시험 시간은 30분이며, '서론, 본론, 결론' 형식으로 쓰되 본론을 두 문단 정도 쓰는 것이 적당하다.
반드시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은 토픽과 관련 없는 이야기를 쓰면 안된다는 사실이다.
또 다른 채점 기준은 자신의 생각을 얼마나 유창하게 영어로 표현할 줄 아느냐이다.
시종일관 구어체를 남발하는 것보다는 세련된 단어와 문장구조를 다양하게 구사하는 것이 유리하다.
작문 점수는 6.0이 만점.
시험을 모두 마치고 나면 작문 점수를 포함한 토플 총점이 화면에 뜬다.
작문을 컴퓨터로 작성했을 경우에는 2주후, 연필로 작성했을 경우엔 4주 후에 점수를 확인할 수 있다.
4. AP로 가산점을 노려라
AP(Advanced Placement, 대학학점 사전취득제)는 고등학생이 대학 1학년 수준의 교과 과정을 배우고 시험을 봐서 미리 학점을 얻는 제도이다.
각 과목 시험 점수가 3.0 에서 5.0 사이면 대학에 입학했을 때 학점으로 인정된다.
고등학생이 AP 시험에서 좋은 점수를 얻으면 미국 대학에 지원할 때 약간의 가산점을 받을 수 있다.
하지만 배우는 동안 과제물도 많고 내용도 어렵기 때문에 공부하기가 만만치 않다.
나는 중학교 3학견 10월, 민사고 예비과정에 입학하자마자 AP 과목을 이수하게 되었다.
고등학생이 대학교 교양 과목을 한국말로 공부하는 것도 쉽지는 않을 텐데, 그걸 영어로 공부하다 보니 이건 맨땅에 헤딩하기나 다름없었다.
특히 2학년 때 시험봤던 AP 과목들은 과목 수가 많았기 때문에 날 아주 힘들게 했다.
1학년 때는 세 과목뿐이어서 시험에 집중할 수 있었지만, 2학년에 올라가서는 내신과 SAT 등 챙길 것이 너무 많은 데다 AP 공부까지 하느라 잠 잘 시간이 모자랄 정도였다.
다행히 필사적으로 공부한 끝에 AP 생물학을 비롯한 11과목에서 모두 5.0 만점을 받았다.
AP 시험을 잘 보는 방법에 대해서는 나도 알 수가 없다.
다만 내가 민사고에서 어떤 AP 과목을 어떤 식으로 공부했는지 정도만 간단하게 써볼까 한다.
* AP 미시경제학 - 내 손으로 직접 그래프를 그리며 공부
* AP 거시경제학 - 사회문제를 경제학적 관점에서 이해하기
* AP 화학 - 주관식 문제를 중심으로 준비
* AP 미적분학 BC - 문제는 혼자 힘으로 풀고 오답노트 활용
중학교 때 수학경시 공부를 한 덕분에 미적분할(Calculus)은 수월하게 공부할 수 있었다.
이 시험 역시 객관식과 주관식으로 나뉜다.
그래프를 보고 해석하는 문제나, 주어진 식을 미분, 적분을 이용해 푸는 유형이 많았다.
미적분학에서 어렵게 느꼈던 것은 미적분을 이용해서 부피를 구하는 문제였는데, 이 문제는 Barron's에서 나온 문제집을 가지고 이해가 될 때까지 풀어봤기 때문에 시험 때는 쉽게 풀 수 있었다.
수학 공부를 잘하는 비법을 내 식으로 소개하자면, 많은 양의 새로운 문제를 푸는 것보다는 단 하나의 문제라도 제대로 이해하고 혼자 힘으로 풀 수 잇을 때까지 몇 번이고 다시 풀어보는 것이다.
문제 푸는 과정을 깨끗한 공책에 적어둔 다음 나중에 그 문제를 틀렸을 때 다시 공책을 보며, 어느 부분에서 왜 틀렸는지 체크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그렇게 하면 비슷한 유형의 문제와 맞닥뜨렸을 때 절대 틀리지 않는다.
* AP 통계학 - 공식을 적용해 풀이과정을 영어로 쓰는 연습 필요
* AP 컴퓨터학 A - 프로그래밍 언어 익히고 직접 프로그램 짜보기
컴퓨터학(Computer Science)의 경우 2003년까지는 C++를 토대로 시험을 보았는데, 2004년부터는 JAVA라고 하는 프로그래밍 언어를 이용해서 시험을 본다고 한다.
이 과목 수업 때 교과서에 나오는 컴퓨터 프로그램을 처음 만들어봤다.
제일 처음 배웠던 프로그래밍은 컴퓨터 화면에 'Hello!' 라는 말이 뜨도록 하는 것이었는데, C++언어로 몇 줄을 쓰면 컴퓨터가 내 명령을 따르는 것이 정말 놀랍고 신기했다.
몇 가지 숫자를 입력하면 컴퓨터가 그 숫자들의 평균을 구하는 프로그램을 배우기도 햇다.
선생님께서는 수업시간에 교과서에 있는 것보다 조금 어렵게 프로그램을 짜보라고 하셨는데, 누군가 '됐다!' 고 환성을 지르면 일제히 몰려가 구경하곤 했다.
나중에 AP 시험을 볼 때에는 'Marine Biology'라고 하는 프로그램 구조를 알고 잇어야 풀 수 있는 문제가 나왔다.
일정한 넓이의 2차원 수조에 물고기 몇 마리가 돌아다니는데, 한 번 프로그램을 실행할 때마다 물고기가 한 단위씩 위아래와 좌우로 움직이는 프로그램이었다.
주관식에는 물고기를 대각선으로 움직일 수 있도록 해보라는 문제가 나왔다.
이 문제는 프로그램에 이미 짜여 있는 함수를 불러내 응용하는 방법으로 간단하게 풀 수 있었다.
* AP 물리학 - 어려운 물리 공식 내것으로 만들기
* AP 생물학 - 꼼꼼한 노트 필기의 덕을 톡톡히 본 과목
* AP 유럽사 - 알고 있는 지식을 취합해서 에세이 쓰는 능력 기르기
내가 제일 공부하기 어려웠던 과목이 AP 유럽사(European History) 였다.
유럽사를 담당했던 간제 선생님은 수업시간에 따로 교과서를 사용하지 않고 강의하는 스타일이었다.
그래서 쉴새없이 강의 내용을 노트에 받아적었다.
미처 받아적지 못할 때는 단어 대신 부호를 사용하기도 했다.
예를 들어 'increase' 는 위를 향한 화살표로, 'decrease' 는 아래를 향한 화살표로 나타내는 것이다.
솔직히 유럽사는 선생님의 수업을 잘 듣는다고 끝나는 게 절대 아니었다.
생물보다도 더 세세하게 알아야 하는 내용이 많았다.
또 생물과는 달리 책 몇 권을 더 본다고 해서 반드시 시험 문제에 나오는 내용을 다 알았다고 하기도 애매했다.
그래서 유럽사를 공부하는 내내 얼마나 스트레스를 받았는지 모른다.
다행히 좋은 책 한 권을 알게 되어 유럽사 공부에 큰 도움이 되었다.
<Modern European History>라는 책이었는데, 난 이 책을 두 번쯤 읽고 중요한 내용들을 내 노트에 정리했다.
유럽사의 대략적인 사건들과 인물들, 시대의 분위기에 대해서는 명확히 파악하게 되었다.
AP 유럽사 시험을 준비할 때 중요한 것은 어떤 종류의 지식을 단순히 알고 잇는 것보다, 여러 자료를 취합해서 에세이 쓰는 능력을 길러야 한다는 것이다.
아무리 많은 지식을 알고 있어도 어떤 식으로 에세이를 써야 하는지 모르면 좋은 점수를 받을 수 없다.
도입부터 결론에 이르기까지, 제시된 인용구를 적절히 활용하면서 점차 자기 생각을 추론하는 형식으로 써야 한다.
AP 유럽사 시험을 보던 날, 1시간 반 동안 객관식 문제를 풀고 20분을 쉰 다음 90분 동안 에세이 세 편을 썼다.
이 중 가장 비중이 높은 에세이는 'Document-based essay' 다.
시험지에 제시된 15개 가량의 글, 사진, 그림 등을 보고 토픽에 맞게 글을 쓰는 것이다.
토픽은 '이 시대의 종교와 정치의 관계에 대해 써라' 하는 식으로 나온다.
그러면 예시된 글과 사진, 그림 등을 분석해서 자기가 판단한 바를 논리적으로 써야 한다.
보통은 90분 중 분량이 많은 Document-based essay에 45분을 할애하고 나머지 45분 동안 두 편의 짧은 에세이를 쓰도록 권장한다.
그런데 나는 Document-based essay를 쓰는데 1시간이나 써버려서, 겨우 30분 동안 나머지 두 개의 에세이를 쓰느라 진땀을 흘렸다.
그래서 유럽사 점수는 별로 기대를 하지 않았다.
드디어 AP 점수를 확인하던 날, 해당 기관에 전화를 걸고 내 AP ID 를 입력했다.
"Your AP European History score is .... five."
컴퓨터에 녹음된 음성이 과목마다 3초쯤 뜸을 들인 후에 점수를 알려주었는데, 망쳤다고 생각한 유럽사가 5점 만점이었다.
유럽사뿐만 아니라 모든 과목이 다 만점이었다.
마지막으로 통계학 점수를 듣고 나서야 꾹꾹 눌렀던 환호성이 터져나왔다.
"와아!"
조기 졸업 때문에 이리 뛰고 저리 뛰며 힘들게 공부했던 일들이 주마등처럼 스쳐가서, 괜한 서러움에 눈물까지 흘려버렸다.
AP 시험은 공부할 때도 집요하게 해야 하지만, 시험 볼 때에는 체력 싸움까지 겹친다.
모든 과목이 다 그렇다.
한국의 일반 고등학교에서 AP를 공부할 수 있는 여건이 아직은 제대로 마련되어 있지 않다.
언젠가 그런 환경이 조성된다면 내가 AP를 공부했던 방법이 후배들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다.
5. 내신성적 잘 받는 비결은 역시 성실함과 부지런함
내신성적(GPA)은 대학에서 학습할 수 있는 능력에 대한 척도이며 미국 대학 입시에서 SAT I 점수만큼이나 중요한 항목이다.
평소 성적 관리를 잘해야 진학할 때 우리하다.
학교 성적에 충실한 학생이 기본적으로 공부할 자세가 되어 있다고 판단하기 때문에, SAT 점수가 아무리 좋아도 내신성적이 형편없으면 입학 관리처에 좋은 인상을 주기 힘들다.
민사고에서의 내신은 노력하면 얼마든지 좋은 점수를 받을 수 있는 과목이 많았지만, 물리와 영어 작문(English Language), 유럽사의 정말 성적 관리가 힘들었다.
물리의 경우, 분명히 공부는 열심히 했는데 시험을 보면 몇 문제씩 틀려서 속상했었다.
앞에서 쓴 것처럼 AP 물리학 공부를 하면서 내신성적도 조금씩 좋아지게 되었다.
내신성적을 잘 받기 위해 많은 노력을 했는데, 그 중 영어 작문 과목이 기억난다.
이 과목은 숙제로 학생을 평가하는 'Assignment'가 30퍼센트, 'Critical Reading' 시험이 20퍼센트, 중간고사와 기말고사가 나머지 0ㅍ센트의 비중을 차지했었다.
다른 과목들에 비해 수행평가 비중이 상당히 높은 편이었다.
나는 이 과목 점수를 90점 이상을 유지하기 위해 'Assignment'에 엄청난 공을 들였다.
'Assignment'는 주로 에세이를 쓰는 숙제였는데, 기껏 열심히 써가도 10점 만점 중 6~8점이 고작이었다.
선생님이 워낙 점수를 짜게 주시는 분이었기 때문이다.
에세이를 일찌감치 냈던 사람이 수정을 해서 다시 제출하면 점수를 조금씩 높여주는 게 그나마 다행이었다.
아니, 나에겐 유일한 희망이었다.
난 숙제를 무조건 일찍 써낸 후, 몇 번이고 고쳐서 10점 만점을 맞을 때까지 다시 내곤 했다.
"원희가 숙제를 네 번이나 내더니 결국은 10점을 맞았다."
선생님께서 나중엔 기가 막힌 듯 이렇게 말씀하시기도 했지만, 나로서는 어쩔 수가 없었다.
그렇게 부지런을 떨고 선생님을 괴롭혀서라도 최대한 좋은 점수를 맞고 싶었기 때문이다.
유럽사는 더 이상 얘기하지 않아도 될 것 같다.
내신성적을 잘 받는 비결은 역시 '성실함'과 '부지런함' 인 것 같다.
'웃는 얼굴에 침 못 뱉는다'는 속담이 여기서도 증명된다.
열심히 하는 학생에게 좋은 점수 안 줄 수 없을 테니까 말이다.
9. 입학 원서 쓰기와 추천서 받기
10. 좋은 에세이는 합격의 '화룡점정'
특별기고)
원희 엄마 이가희씨의 '우리 아이 공부 잘하게 만드는 법'
1. 아이의 호기심을 빠짐없이 충족시켜줘라.
2. 아이의 능력과 무관하게 양껏 공부시켜라.
일본 교육핮자 시치다 선생의 교육이론에 의하면 '모든 아기는 다 천재'다.
아기의 두뇌는 무한한 가능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얼마나 자극을 주느냐에 따라서 지능은 무한대로 올라갈 수도 있고 보통에 머무를 수도 잇다는 것이다.
나도 어린 원희를 바라볼 때 항상 그런 마음을 가지고 잇었다.
천재를 만들기 위해 기를 쓰고 영재학원에 보내거나 고액 과외를 시킨 적은 없었지만 딱 한 가지, 원희가 지적인 호기심을 느낄 수 있도록 자극을 주는 것만은 잊지 않았다.
원희가 나이는 어려도 뭐든지 잘 알아듣는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원희가 기어다니기 시작하면서부터 우리 집 벽에는 '오늘의 시간표'가 붙어 있었다.
큰 종이에 월요일부터 일요일까지 칸을 만들어 매일 할 일을 적어놓은 것이었다.
월요일 3시부터 4시까지 '그림 그리기', 화요일 3시부터 4시까지 '종이접기', 수요일 3시부터 4시까지 '만들기--수수깡' 등 유치원처럼 놀이 프로그램을 정해두었다.
연년생 아이 둘을 둔 나로서는 뭐든 가르쳐야겠다는 생각에서 시작한 일이었는데, 스케줄대로 하루를 보내다 보니 시간이 금방 잘 지나갔다.
원희가 4살이 되었을 때에는 실험 시간까지 보탰다.
요오드가 녹말에 닿으면 보라색이 되는 실험을 하자 어린 원희가 색깔이 변하는 걸 보고 아주 좋아했던 기억이 난다.
원희는 색칠공책을 한 번 사주면 앉은자리에서 다 칠해버리는 아이였다.
매번 색칠공책을 사줄 수가 없어서, 나중에는 색칠하지 않은 걸 미리 복사를 해두었다가 주기도 햇다.
학습지는 딱 한 번 시켜봤는데, 며칠 하다 싫증을 내기에 억지로 시키지는 않았다.
5살 때부터는 피아노를 배우고 싶다고 해 같은 아파트 이웃에게 레슨을 받게 했고, 유치원에 다닐 때는 그림을 그리고 싶다고 해서 미술학원에도 잠깐 보냈다.
원희가 '하고 싶어' 라고 할 때가 아니면 억지로 시키지 않앗다.
원희 아버지가 병원 인턴과 레지던트, 공중보건의를 거치는 내내 형편이 여의치 않아 사교육비에 돈을 쓸 여유가 없었다.
그래서 이리저리 지출을 줄여야 했는데 그 부분을 담당했던 게 바로 의상 구입비였다.
원희가 초등학교 다닐 때까지도 옷을 사준 일이 거의 없다.
늘상 사촌언니들 옷을 물려받아 입히거나 키가 큰 또래 친구들의 옷을 얻어다 입혔다.
그 옷을 입고 친구와 마주칠 때면 자존심이 상할 법도 한데, 싫은 내색 한 번 하지 않고 입어준 원희가 지금도 참 고맙다.
형편껏 아이 뒷바라지를 하자니 내가 부지런히 발품을 팔아야 했다.
어린이용 동화책 전집은 반드시 30~40퍼센트 할인 기회를 노려서 구입하거나 헌책을 샀다.
새로 나온 책들을 주변 엄마들과 돌려보는 건 기본이었다.
아이에게 꼭 필요한 교재가 너무 비싸다면 복사본이라도 어떻게든 구해서 썼다.
내가 시를 쓰기 시작하면서부터 원희에게 컴퓨터에 입력하는 일을 부탁하곤 했는데, 그게 아마 초등학교 1학년 때였던 것 같다.
엄마가 쓴 시를 타이핑하면서 자기도 모르게 시어(詩語)를 읽고 쓰는 연습이 되어, 나중에 전국 백일장에서 어린 아이답지 않은 성숙한 시로 대상을 타게 되었다.
영어 파닉스, 매일 일기쓰기, 시 베껴쓰기, 아빠의 해부학 책, 공룡과 화석 책...
나는 아무리 원희가 어릴지라도 공부할 수 있는 범위에 대해 '제한' 또는 '한계'를 두지 않았다.
어떤 교육 자료든 원희가 많이 접할 수 있게 해주었고, 무엇이든 원하는 만큼 공부하도록 했다.
아이가 의대생이나 읽는 의학 서적을 볼 때 '애가 뭘 알겠어?'라는 반응을 보이는 것은 정말 좋지 않다.
어린 아이의 수준에맞춘다며 교육 자료를 차단하는 경우가 많은데, 절대 그럴 필요가 없다.
어차피 아이는 모든 것을 자기 눈높이에서 받아들이기 때문이다.
어른이 아이의 교육 환경에 미리부터 한계를 두는 것은 아이의 가능성을 미리 차단하는 것과 같다.
아이의 가능성은 무한하다.
최대한 많은 걸 보여주고 들려주고 모든 질문에 성실하게 대답해주어야 가능성이 확장된다.
지금 생각하면 큰 돈 들이지 않고도 아이의 두뇌 자극을 위해 여러모로 애를 썼던 것 같다.
아이는 항상 엄마가 준비해주는 여건만큼 공부를 하기 때문에 한시도 게으름을 피울 수가 없었다.
아이의 잠재력을 무한대로 키워주려면 역시 돈보다 더 중요한 게 '관심'이요, '부지런함'이 아닐까 싶다.
3. 영어는 일찍 시작해서 꾸준히 가르쳐라.
원희가 돌이 되기 전의 일이다.
동네 아파트를 지나는데 갑자기 등에 업힌 원희가 어떤 집 창문을 올려다보며 이렇게 말했다.
"호.랑.이. A.B.C.D."
이 곳을 지나갈 때마다 그 집 창문에 붙어 있는 스티커를 원희에게 읽어주기는 했지만, 며칠 만에 글자를 외우다니!
너무 놀라서 속으로 '혹시 우리 아이가 신동 아닐까?" 하고 생각할 정도 였다.
지적인 흡수가 빠른 아이임에 틀림없다는 판단이 들어서 당장 알파벳과 간단한 단어가 그려진 포스터를 사서 벽에 붙여두었다.
원희는 포스터에 있는 알파벳을 몇 번 따라 읽더니 금세 외워버렸다.
영어에 관심을 보이는 원희에게 무엇이라도 해줘야 할 것 같아서, 영어 동요 카세트 테이프를 들려주거나 '세서미 스트리트' 같은 비디오를 보여주었다.
영어 비디오는 무작정 오래 보여주기보다 하루에 2시간으로 제한해서 보여주면서 나도 항상 옆에서 같이 봤다.
아이가 신이 나서 춤을 추며 영어 노래를 따라 부르는데 엄마가 전혀 관심을 보이지 않으면, 아이도 덩달아 심드렁해질 것이라는 생각에서였다.
원희가 정식으로 영어를 배운 것은 6살 때부터였다.
마침 미국에서 공부하고 온 친구가 아이들에게 영어를 가르치고 싶다고 하기에 맡겼는데, 원희가 무척 재미있어 했다.
"엄마, 오늘 쿠키 만들었어요. 이렇게 생긴 건 트라이앵글이고, 이렇게 생긴 건 스퀘어예요."
원희는 종이에다 삼각형, 사각형을 그리며 영어 배운 얘기를 조잘조잘 늘어놓았다.
생활 속에서 요리나 놀이를 통해 영어를 배우다 보니 원희는 매일 그 집에 가는 날을 손꼽아 기다렸다.
그러더니 금세 'Hello!' 나 'How're you?' 라는 인사를 집에서 써먹곤 했다.
그런 수업을 1년 가까이 하다가, 초등학교 입학 즈음부터는 집 근처의 영어회화학월에 보냈다.
그 곳에서 패턴 잉글리시와 생활영어를 배우면서 영어가 많이 느는 듯했다.
다른 엄마들은 영어학원에 일주일에 두 번이나 세 번 정도 보내면 된다는 생각이었지만, 나는 좀 달랐다.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매일 보냈다.
언어라는 건 단 하루라도 안 쓰면 퇴보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초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영어회화학원만큼은 꾸준히 다닐 수 있게 해주었다.
덕분에 원희는 중학교에 올라가서도 문법에 대한 이해가 빨랐고, 같은반 친구들에 비해 영어를 잘했다.
그래서 나는 원희가 영어를 아주 잘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민사고에 들어가면서 이런 환상을 와장창 깨졌다.
그때부터 원희의 피눈물 나는 영어전쟁이 시작되었다.
그만큼 어렵고 시간이 많이 필요한 게 언어다.
영어는 빨리 시작할수록 좋다.
외국어레 대한 두려움이 없는 상테에서 배울 때 습득 속도가 빠르기 때문이다.
거기다 놀이를 통해 영어를 재미있게 시작하면 더욱 좋다.
단, 어린 아이에게 너무 영어를 배우라고 강요하다 보면 아이가 심리적인 압박감에 못 이겨 영어를 싫어하게 될 수도 잇으므로 조심할 것.
국어 교육을 먼저 확실히 시킨 다음에 영어를 병행하는 것도 중요하다.
원희의 경우는 초등학교 때까지 국어와 영어를 7대3의 비율로 공부하게 했다.
그러다 민사고에서 들어가 영어로 공부를 해야 하는 단계에 이르러서는 그 비울이 반대가 되었다.
요즘은 초등학교 3학년부터 학교 교과에 영어 과목이 있어서 원희 때와는 상황이 많이 다르지만, 영어를 일찍 시작해서 꾸준히 공부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것만은 그 때나 지금이나 변함 없는 진리라고 생각한다.
4. 책만 읽어줘도 한글은 통째로 뗄 수 있다.
보통 아이들이 한글을 처음 공부할 때는 자음과 모음을 따로 써가면서 익히게 마련인데, 원희는 희한하게도 한글을 글자 단위로 익혀서 저 혼자 뗐다.
그건 아마도 내가 책을 읽어줄 때 글자를 하나하나 짚어 가며 읽어주었기 때문인 것 같다.
나는 원희가 돌도 채 되기 전부터 손으로 글자를 짚어가면서 그림책을 읽어줬다.
"오리는 꽥꽥, 병아리는 삐약삐약."
이렇게 읽어준다고 해서 아이가 바로 한글을 깨치는 건 아니지만, 앞에서 말한 것처럼 아이가 알아듣든 못 알아듣든 상관없이 'input'을 최대한 많이 해주자는 생각에서 한 일이었다.
어느 순간부터 원희는 내가 책을 펼치자마자 '오리는 꽥꽥' 하고 글씨 읽는 흉내를 냈다.
그러다 두세 살 쯤 되어서는 평소 엄마가 읽어주던 동화책을 꺼내 글자를 한 자씩 손으로 가리키면서 읽었다.
"12시를 알리는 종이 울리자, 신데렐라는 허겁지겁 궁전을 빠져나왔어요."
가까이 가서 보면 원희의 손가락이 입으로 읽고 있는 부분보다 아래쪽을 가리킬 때도 있었지만, 한글이 한 글자 한 글자로 이루어져 있으며 대충 어떻게 읽는다는 원리를 감지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어느날인가는 동화책에 있는 '릉'을 가리키며 "엄마, 이거 '으르릉' 할 때 '릉' 이지?" 하고 묻기도 했다.
4살이 된 원희는 책 베껴쓰는 걸 아주 좋아했다. <신데렐라>, <피노키오>등 동화책을 잔뜩 펼쳐놓고 엄마가 사준 열 칸 짜리 국어공책에 한 글자 한 글자 베껴썼다.
글자를 쓸 때는 획순이 종종 바르지 못할때도 있었지만, 어린 아이가 앉은자리에서 2시간씩 글씨를 쓰는 집념에는 나조차 놀랄 때가 많았다.
그렇게 베껴쓴 공책이 원희에게는 새로운 읽을 거리였다.
이웃집 아이들이 놀러오면 자기가 베껴쓴 공책을 펼쳐들고 읽어주기도 했다.
"조용히 해. 책 읽을 때는 집중을 해야지, 집중을!"
아직 유치원도 안 들어간 아이가 또래 친구들을 앉혀놓고 그림도 없는 공책을 들고 동화를 읽어주는 모습이라니!
자기가 선생님이라도 된 양 행동하던 원희 모습은 지금도 떠올려도 웃음이 난다.
원희가 한글을 완전히 뗀 것은 5살 때였다.
아이가 얼마나 한글을 아는지 궁금해서 한글 교재를 사준 것인데 모르는 글자 하나 없이 술술 다 읽었다.
아이들마다 언어를 습득하는 방식이 다 다르겠지만, 'ㄱ, ㄴ, ㄷ'부터 익히는 것보다는 원희처럼 동화책을 통해 글자를 통째로 기억하는 방법도 꽤 괜찮은 것 같다.
그렇게 하면 단순히 글자만 아는 게 아니라 책 읽는 즐거움도 일찍 알게 되고, 자기 책을 소중하게 여기는 습관도 생기니까 말이다.
5. 책 읽어주는 엄마의 노하우 몇 가지
모든 일에는 노하우가 필요한 법인데, 특히 책을 읽어줄 때는 세 가지 점에 비중을 두었다.
첫째는 아이가 아직 한글을 모를 때 글자를 하나하나 짚어가면서 읽어주는 방법이고, 둘째는 엄마가 동화구연가처럼 감정을 듬뿍 실어 읽어주는 것이며, 셋째는 책과 관련된 각종 교구를 준비해주는 것이다.
글자를 짚어가면서 읽어주면 앞에서 얘기했듯이 아이가 글자를 통째로 기억해서 한글을 깨치게 하는 데 좋다.
그리고 엄마가 동화구연가 역할을 해야 하는 이유는 '재미' 때문이다. 아무리 훌륭한 교재를 샀다 해도 아이가 흥미를 느끼지 못하면 말짱 헛것이다.
아이가 처음 책을 접할 때 '책 읽는 건 참 재미나는 거구나' 하고 느끼게 만들어야 한다.
즐겁거나 슬픈 장면에서 감정을 풍부하게 살려 책을 읽어주면 아이들은 무척 좋아한다.
원희는 초등학교 입학 전까지만 해도 책을 몇 권 뽑아가지고 와서는 꼭 "엄마가 읽어줘"라고 했다.
책 읽어주는 엄마가 반드시 해야 할 일은 아이가 읽는 책과 관련된 교구를 준비해는 것이다.
나는 책과 관련된 만들기나 그리기 재료를 준비했다.
원희가 책을 읽고 나서 느끼는 여운을 만들기나 그리기를 통해 한껏 누리게 해주었다.
그런 과정을 통해 원희의 상상력이나 표현력이 더 풍부해졌을 거라고 믿는다.
6. 아이가 쓰는 일기에 코멘트를 달아줘라.
"엄마, 어떻게 해요? 일기가 밀렸는데 날씨를 알 수가 없어요."
초등학교 1학년 여름방학이 끝나갈 무렵, 원희는 잔뜩 울상을 지었다.
학교에 들어와 처음 맞는 방학이라 몹시 들뜬 탓에 일기가 많이 밀렸던 것이다.
개학 전날 그걸 다 쓰는 것도 힘들거니와 날씨를 알 수가 없어서 저 혼자 발을 동동 굴렀다.
"그건 원희 일이니까 원희가 알아서 해."
날씨를 추측하는 일에 내가 동참해서 원희의 수고를 덜어줄 수도 있었지만 그렇게 하지 않았다.
한번 고생을 하고 자기 힘으로 해결해봐야 똑같은 실수를 하지 않는 법이니까.
그 날 원희에게 일기 쓰기의 중요성에 대해 다시 한번 주지시켰다.
"일기는 매일매일 쓰는 거야. 어떻게 며칠 전 일을 오늘 지어내서 쓸 수 있겠니?
이제부터라도 일기는 절대 미루면 안 된다. 알았지?"
원희는 밤을 꼬박 새서 일기 숙제를 마치고는, 그 다음부터 정말 하루도 빠지지 않고 일기를 썼다.
그렇게 6학년 때까지 쓴 일기장이 수십 권에 이른다.
나는 숙제와 공부만큼이나 일기 쓰기를 강조하는 편이다.
특히 초등학생들이 일기를 쓰면 좋은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첫째, 글쓰기의 다양한 패턴을 익힐 수 있다.
보통 어린 아이들은 '나는', '오늘은' 으로 일기를 시작하는데, 그 외에 더 다양한 방식의 도입부가 가능하다는 걸 배우게 되는 것이다.
일기의 처음을 다른 사람과의 '대화'로 시작하는 방법, 시간으로 시작하는 방법, 장소에 대한 묘사로 시작하는 방법, 날씨에 대한 이야기로 시작하는 방법 등을 생각해볼 수 있다.
< 내가 피아노 연습을 막 끝냈을 때, 전화벨이 울렸다.
친구 제은이에게서 온 전화였다. >
이런 식으로 마치 소설을 쓰듯 일기를 쓸 수 있다고 가르쳐주면 아이들은 금세 따라한다.
아이들 눈높이에서는 이런 식의 일기가 창작 활동의 일환이 될 수도 있다.
어느 날 원희 일기장을 보니 '앤아!' 라고 부르며, 누군가에게 편지를 쓴 듯한 일기가 있었다.
그 날 하루 겪었던 이야기, 독후감 등을 '앤'에게 들려주듯 일기를 쓴 것이었다.
아마도 그 즈음에 읽은 <안네의 일기>에서 감명을 받고 상상의 소녀 '앤(Anne)' 을 설정해둔 모양이었다.
어찌나 다정다감하게 글을 썼는지, 내가 '앤'이라면 행복하겠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일기에 날씨를 표시할 때에도 단순히 '맑음', '흐림' 으로 끝내는 것보다는 '털장갑이 그리운 날', '두 손이 꽁꽁 언 날', '부채가 필요한 날' 등 섬세한 표현법을 쓰도록 유도할 수 있다.
원희에게 그런 연습을 시켰더니, 어느 쌀쌀한 날의 원희 일기는 '마치 살갗에 소름이 돋아나듯 나뭇잎 위에도 작은 소름이 돋아나는 것처럼 보였다'는 묘사로 시작되고 잇었다.
묘사와 의인법의 개념을 스스로 파악해냈던 셈이다.
묘사란 어떤 사물이나 관념을 그림을 그리듯 언어로 표현하는 것이다.
글을 쓸 때 묘사가 풍부해지면 어떤 글을 써도 시적인 감수성이 묻어나오게 마련이다.
일기를 쓰면 좋은 점 또하나.
일찍부터 정확한 문법을 익힐 수 있다.
주어와 서술어, 문장의 호응 등 문법적인 오류를 고쳐가면서 점차 국어 문법에 익숙해진다.
원희는 일기를 쓰면서 원고지 사용법까지 익혔다.
그래서 초등학교 고학년이 되면서부터는 일반 줄 노트에 글을 써도 반드시 들여쓰기를 했다.
뭐니뭐니 해도 일기가 주는 가장 큰 선물은 '구성력'이 아닐까 한다.
한 페이지,혹은 두 페이지 분량의 일기를 쓸 때에도 나름대로 기승전결의 구조가 필요하므로, 일기를 열심히 쓰다 보면 나중에 글짓기나 논술을 수월하게 할 수 있다.
일기 쓰기로 이와 같은 효과를 얻으려면 엄마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
문법적으로 옳고 감수성도 풍부하며 구성력을 갖춘 일기를 쓸 수 있도록 앞에서 유도해조고 뒤에서 챙겨주는 역할이 분명 필요하기 때문이다.
나는 원희가 쓰는 일기장에 하루도 빠지지 않고 코멘트를 달아주었다.
"그래, 오늘은 원희가 숙제를 하느라 힘드렀구나, 하지만 분명히 보람을 찾을 수 있을 거야."
"소풍 가서 본 풍경이 어땟는지 구체적인 묘사가 더 들어가면 좋겠구나."
아이가 적어 놓은 글의 내용뿐만 아니라 표현기술에 대한 지도까지 다양한 코멘트를 달아주었다.
원희가 동물을 관찰하고 써놓은 일기가 실제와 다르거나 어떤 지식을 잘못 알고 있을 때 명확히 짚어주는 것도 잊지 않았다.
그렇게 코멘트를 달아주다 보니 결국 원희의 일기장은 엄마와의 대화 창구가 되었다.
그런데 일기는 하루 중 언제 쓰는 것이 가장 좋을까?
아이가 잠자기 직전에 일기를 쓰게 하는 건 별로 좋지 않다.
아이가 대충 끝내고 자고 싶어하기 때문이다.
나는 원희에게 저녁식사 전에 숙제를 다 하게 하고, 저녁을 먹은 후에 바로 일기를 쓰게 했다.
그러면 원희는 최대한 집중해서 일기를 썼다.
주어진 시간 안에 일기를 다 써야함 남는 시간에 책을 읽거나 게임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일기는 하루의 반성이라는 의미도 있지만, '평생의 기록' 이라는 차원에서 꾸준히 쓸 만한 가치가 있는 것이다.
그 당시 자신의 마음과 느낌을 담아놓은 기록은 사진이나 비디오 테이프에서는 절대로 찾아볼 수가 없다.
내 마음을 기록하는 일기.
아이들이 열심히, 정성껏 쓰도록 만들자.
7. 독서와 글쓰기는 모든 공부의 기본!
원희가 어렸을 때 남편은 병원에서 지내는 시간이 많았다.
두 아이를 혼자 돌봐야 했기 때문에, 그 시간을 최대한 교육적으로 보내려고 여러 아이디어를 짜냈다.
그 가운데 하나가 방안 가득 책을 채우는 일이었다.
우리 집에서 가장 큰방을 서재로 삼기로 했다.
그 방의 3개 벽면에 책장을 들여놓고 방 한가운데에는 커다란 탁자를 놓았다.
어디선가 책세일을 한다는 소리만 들리면 달려가서 아이들이 읽을 만한 책들을 사다 날랐다.
거기다 남편 전공서적까지 꽂아놓으니 모양새가 작은 도서관이나 다름없었다.
아이 둘과 함께 탁자 앞에 앉아 책을 읽으면 학구적인 분위기가 물씬 풍겼다.
그런 분위기에서 자란 탓인지 원희는 책 읽는 걸 무척 좋아했다.
초등학교 때부터 중학교를 마칠 때까지 일주일에 평균 서너 권씩은 읽은 것 같다.
물론 처음에는 내가 '독서 리스트'를 짜주며 독후감 쓰기 숙제를 시켰기 때문에 어느 정도 의무감으로 책을 읽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중학교에 올라가면서부터는 어찌나 책을 좋아하는지 다음날 학교 수업이 있는 것도 잊고 밤새 책을 보곤 했다.
"원희야, 그만 자라."
내가 참견이라도 할라치면, 원희는 '위장전술'을 쓰면서까지 손에서 책을 놓지 않았다.
자기 방문 밖으로 불빛이 새어나가지 않도록 이불 속에 스탠드를 숨겨놓고 그 안에서 책을 읽을 정도였다.
"지금 그걸 꼭 읽어야겠니?"
내가 걱정스럽게 물어보면 원희의 뾰루퉁한 대답이 이어진다.
"결말이 궁금해서 잠이 안 온단 말이에요."
원희가 이불 속에서 스탠드까지 동원해가며 읽은 책이 아마도 <해리포터와 비밀의 방>이었을 것이다.
성장기의 아이들은 모든 지식을 스펀지처럼 빨아들인다.
그래서 독서가 중요한 것이다.
이왕이면 엄마가 교과서나 각종 정보를 취합해 추천 도서 목록을 짜주고, 아이가 그 목록을 중심으로 다양한 독서를 할 수 있게 도와주는 것이 좋다.
아이가 어느 정도 독서량이 채워지면 내면의 무언가를 표현하고 싶어한다.
그런 욕구는 학교나 집에서 자극을 받을 때 더 강렬하게 표출된다.
나는 원희가 책을 읽는 족족 독후감을 쓰게 했고, 정기적으로 글쓰기를 시켰다.
문장을 문법에 맞게 쓰고 글을 기승전결에 맞게 구성하는 연습은 물론, 묘사하는 글과 논리를 갖춘 글 등 다양한 형태의 글쓰기를 체험하게 했다.
감성적인 글이든 논리적인 글이든 어릴 때부터 꾸준히 써보지 않으면 '글을 쓴다는 것' 자체가 낯설어질 수 잇다.
원희가 민사고에 들어가서 그 많은 양의 시험공부와 어려운 영어 에세이도 잘해낸 걸 보면, 어릴 때부터 많은 책을 읽고 많은 글을 쓰면서 다져왔던 내면의 자신감이 상당한 영향력을 발뤼한 것 같다.
8. 암기력, 훈련으로 좋아질 수 있다.
언젠가 텔레비젼에서 일본의 한 초등학교 교장 선생님이 기적의 공부법으로 화제를 불러일으킨다는 사연을 본 적이 있다.
매일 학생들에게 똑같은 수학 문제를 풀게 하고 많은 양의 한자와 과학 상식을 외우도록 훈련시켜서, 결국 전교생이 다 공부를 잘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나도 그 교장 선생님만큼은 아니지만 원희에게 외우기 공부를 좀 시킨 적이 있다.
원희가 4학년 때 한자로 씌어진 고사성어 카드와 영어 낱말 카드를 매일 10개씩 외우게 했다.
카드는 내 손으로 직접 만들었다.
두꺼운 도화지를 적당한 크기로 자른 후 <Vocabulary 2200>에 나오는 영어단어들과 고사성어집에 나오는 한자성어들을 적었다.
와이셔츠 상자로 5상자 분량쯤 만들었으니, 내 욕심도 여느 엄마들 못지않았던 셈이다.
원희에게 한자성어 10개, 영어단어 10개를 주고 10분 동안 외우게 했다.
그러고 나서 내가 카드를 하나씩 들고 확인을 했다.
"자, 이 고사성어는 어떻게 읽지?"
"사필귀정이오. 일 사(事), 반드시 필(必), 돌아올 귀(歸), 바를 정(正)."
" 이 단어는 어떻게 읽지? 뜻은?"
"Surprise! 놀라다!"
다음날에는 어제 외운 10개의 영어단어와 10개의 한자성어를 복습하고 새로운 카드를 10개씩 외우게 했다.
또 그 다음 날에는 그 전까지 배운 20개의 영어단어와 20개의 한자성어를 복습하고 새로운 카드를 10개씩 외우게 했다.
열흘쯤 지나 그간 외운 영어단어와 한자성어가 각각 100개씩 되면 아이들이 지겨워하지 않도록 새로운 카드를 꺼내 보여주었다.
솔직히 혼자 카드를 수백 장씩 만들 때는 팔도 아프고 너무 힘들었다.
그러나 초롱초롱한 눈을 빛내며 쉼 없이 단어를 외워대는 원희를 보면 뿌듯한 마음에 힘이 절로 났다.
그런 훈련을 한 덕분인지 원희의 기억력과 암기력은 다른 아이들에 비해 상당히 좋은 편이다.
"난 머리가 나빠서 안 돼."
내 아이가 나중에 이런 핑계를 대지 않게 만들자.
세상에 나쁜 머리는 없다.
내 아이의 두뇌를 잘 훈련시켜서 어떤 공부든 한계는 없다고 믿게 만들어보자.
9. 교과서 진도에 맞춘 현장학습을 시켜라.
초등학교 4학년이 되면 사회과목이 부쩍 어려워진다.
전주의 부채니, 안성의 칠기니, 담양의 죽제품이니 하는 낯선 도시와 특산물과 함께 포항제철소나 광양제철소처럼 도시별 산업에 대한 내용이나 역사 유적지까지 등장한다.
"원희가 사회과목을 너무 어려워하면 어쩌나..."
슬슬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좋은 방법이 없을까 고민하다 생각해낸 것이 '선행 현장학습'이었다.
교과서에 나오는 지역에 미리 답사를 가는 것이다.
수려한 볼거리는 물론 맛있는 먹거리까지 널려 있으니, 아이들이 교과서에 등장하는 낯선 도시와 유적지를 부담 없이 인식하게 되었다.
그 해 여름방학 휴가는 온 가족이 동해안 일대를 돌아다녔다.
강원도 속초에 가서 회도 먹고 바다 구경도 한 다음 강릉, 삼척을 거쳐 포항까지 내려갔다.
원희가 6학년이 될 때까지 여름 휴가 때면 이런 식으로 답사 여행을 다녔다.
우리 식구가 답사여행을 다닐 때 꼭 지켜야 할 규칙이 있었다.
바로 안내 팻말을 소리내어 읽는 것이다.
"자, 분황사 석탑 팻말을 누가 읽어볼까? 원희가 읽어볼까?"
남편이 넌지시 시키면 원희는 '분황사 석탑, 국보 30호 ... ' 하면서 끝까지 읽었다.
이렇게 읽은 것은 메모를 해두었다가 반드시 그 날의 일기장에 쓰도록 했다.
아이들이 학년이 올라갈수록 교과서 진도에 밎춘 선행 현장학습이 필요하다.
단순히 놀러다니는 것과는 다른 얘기인데, 부모가 교고서에 나오는 내용을 토대로 답사 여정을 짜고 아이들은 그 답사에서 뭔가 배우는 것이 있어야 한다.
여행 한 번 을 가더라도 아이의 교과과정에 맞게 가는 것.
조금은 귀찮은 일이지만, 가끔씩이라도 아이를 위해 시간을 내보는 건 어떨까?
10. 자기 일은 자기가 알아서 하게 하라.
"엄마, 저 <허클베리 핀의 모험> 원서 좀 사서 보내주세요.
'톰 소여' 가 아니라 '허클베리 핀' 이에요."
원희가 민사고 예비과정에 들어가자마자 내게 책을 보내달라고 부탁했다.
'영어 독서 리스트'에 있던 책이었다.
엄마가 평소 자주 헷갈리는 걸 잘 알기 때문에 '톰 소여가 아니라 허클베리 핀'이라고 강조를 했던 모양이다.
그러나 나는 여지없이 <톰 소여의 모험>을 보내고 말았다.
원희의 예상이 딱 들어맞은 것이다.
원희 아버지는 '오늘의 할 일 1, 2, 3, 4'를 메모해서 꼭 실천하는 사람이지만, 나는 건망증이 심해서 오늘의 할 일을 적어둔 쪽지를 어디에 두었는지 찾는 사람이다.
그러다 보니 간혹 원희가 부탁한 내용을 전혀 엉뚱한 쪽으로 기억할 때가 많았다.
엉뚱한 책을 보낸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나중에야 드는 생각은 이런 엄마의 성격이 오히려 원희에게 도움이 된 건 아닐까 하는 것이다.
엄마의 기억력을 믿을 수 없게 된 원희는 스스로 자기 일을 챙기는 데 도사가 되어버렸다.
사실 어릴 때부터 원희는 독립심이 강해서 '원희가 할래' 라는 말을 자주 하곤 했다.
초등학교 입학 초기에 원희는 '바른글씨 쓰기'라는 쓰기 숙제를 밀린 적이 있었다.
선생님이 3월에만 숙제 검사를 하고는 몇 달 동안 안 하다, 여름방학 직전에 갑자기 쓰기 공책을 가져오라고 한 모양이다.
그 날 원희는 밤새 울면서 쓰기 숙제를 했다.
내가 좀 도와주고 싶어서 몇 줄 써줬더니 그걸 지우개로 다 지우고 눈물을 뚝뚝 흘리며 자기가 새로 썼다.
"원희가 쓸 거야..."
다음 날 학교에서는 그냥 넘어갈 수도 있는 일이었는데 원희만 숙제를 해오는 바람에 단체기합을 받았다고 한다.
원희는 중학교 때부터 직접 문제집을 사다 풀면서 스스로 성적 체크를 했다.
매번 시험을 치르는 과정에서 엄마가 한 일은 별로 없다.
그렇게 독립심이 강한 아이도 민사고에 다니면서 엄마의 지원이 필요한 경우가 많이 있었는데, 그 때마다 나는 별 도움이 못 됐다.
영어 원서 구해주는 일은 늘 제목이 헷갈렸고, 대입 원서를 쓸 때도 그다지 해줄 수 있는 일이 없었다.
그래서 내심 걱정했는데, 내 딸 원희는 공부의 정글 속에서 이미 생존력이 강한 아이로 변신해 있었다.
원서 쓰는 것도, 추천서 받는 것도, 그리고 에세이 쓰는 것도 혼자 알아서 해냈다.
그래서 원희가 10개 대학 입학 자격을 얻었을 때, 내 마음은 기쁘면서도 한편으로 놀라웠다.
많은 어머니들이 자식을 사랑하는 마음에 너무 많은 걸 해주려고 애쓴다.
하지만 부모가 해줄 수 있는 일은 아이가 한창 성장기에 있을 때 공부하는 분위기를 만들어주는 것, 그 이상도 아닌 것 같다.
아이를 사랑한다면 아이가 어려움을 겪는 과정도 여유를 가지고 지켜볼 필요가 있다.
그렇게 해야 공부뿐만 아니라 인생이라는 긴 마라톤에서 혼자 결승점까지 뛰어가는 힘을 기를 수 있으니까.
제1부 왕따에서 하버드 입학까지
1. 왕따의세계
2. 매력적인, 너무나 매력적인 전교 1등
3. J와 일곱 난쟁이
4. 왕땨의 족쇄를 벗고
5. 악바리, 필기의 여왕 그리고 전교 1등 굳히기
6. 수학을 못하는 아이, 혼자 공부하는 아이
7. 토플에 헤딩하고 민족사관고등학교로!
9. 원희의 영어 읽기 프로젝트
10. 아이비리그로의 수학여행
11. The Dooms S.A.T. 최후의 심판일
12. 숨가쁜 조기 졸업자, 달걀 귀신을 보다
13. 미국 명문대가 내게로 왔다.
제2부 꽃보다 아름다운 시절
1. 학생법정에 서다.
2. 한밤중, 변기 위의 그녀들
3. 감시 카메라? 사랑의 카메라!
4. 즐거운 추억, 시체 놀이를 아시나요?
5. 성인식, 그리고 댄스 댄스 댄스
6. 사람이 꽃보다 아름다운 봉사 체험
7. 인생은 한 편의 드라마
8. 잊을 수 없는 사람, 사람들
제3부 나의 피눈물 영어정복기
1. Slow and steady wins the race
2. 영어단어를 외우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 세 가지
3. 영어 소설 속에 기꺼이 파묻혀라.
4. 단어의 뜻은 문맥으로 유추하라.
5. 영어책, 목적에 따라 읽는 방법이 달라진다.
6. 피 말리는 영어 독서시험
7. 혼자 공부하는 '자립형' 인간이 돼라
제4부 공부에 왕도는 없지만 정도는 있다.
1. 노트 정리의 제왕이 돼라
2. 복습은 빠를수록 좋다.
3. 시간 경영의 선수가 돼라.
4. 안 되는 공부에 태클을 걸어라
5. 눈에 쏙쏙 들어오는 쪽지 퍼레이드
6. 목표는 항상 높게 잡아라
7. 수학, 끈기 앞에 장사 없다
8. 공부의 기초는 '공부하고자 하는 의지'이다.
9. 생활 속에서 학습을 우선 순위에 둬라.
10. 교과서도 만화책만큼 재미있다.
제5부 한국 토종의 미국 대학 공략법
1. SAT I은 내신만큼 중요하다.
2. 진짜 실력은 SAT II에서 판가름난다.
3. 토플, 섹션별 공략이 열쇠다.
4. AP로 가산점을 노려라
5. 내신성적 잘 받는 비결은 역시 성실함과 부지런함
6. 특별활동과 봉사활동으로 돋보이기
7. 내게 맞는 대학 고르기
8. 장학금을 확보하는 인터뷰 만들기
9. 입학 원서 쓰기와 추천서 받기
10. 좋은 에세이는 합격의 '화룡점정'
특별기고)
원희 엄마 이가희씨의 '우리 아이 공부 잘하게 만드는 법'
1. 아이의 호기심을 빠짐없이 충족시켜줘라.
2. 아이의 능력과 무관하게 양껏 공부시켜라.
3. 영어는 일찍 시작해서 꾸준히 가르쳐라.
4. 책만 읽어줘도 한글은 통째로 뗄 수 있다.
5. 책 읽어주는 엄마의 노하우 몇 가지
6. 아이가 쓰는 일기에 코멘트를 달아줘라.
7. 독서와 글쓰기는 모든 공부의 기본!
8. 암기력, 훈련으로 좋아질 수 있다.
9. 교과서 진도에 맞춘 현장학습을 시켜라.
10. 자기 일은 자기가 알아서 하게 하라.
특별부록)
하버드, 프린스턴 대학 입학 원서에 첨부한 에세이
(본문)
제1부 왕따에서 하버드 입학까지
7. 토플에 헤딩하고 민족사관고등학교로!
중학교 3학년 여름방학이 될 때까지 내 꿈은 국제 변호사였다.
나름대로 정해둔 진로가 있다면, 집에서 멀지 않은 대전외고 일본어과를 거쳐 서울대 법대를 졸업하고 사법고시를 치르는 것이었다.
일본어과를 가려던 이유는 영어 외에 다른 외국어 한 정도는 확실히 다져두어야겠다는 생각에서였다.
그런데 인생의 진로가 완전히 뒤비뀌는 사건이 생기고 말았다.
언제나 나보다 앞서서 목표를 높게 잡아주시던 어머니가 새로운 목표를 제시하신 것이다.
"원희야, 너 민족사관고등학교에서 공부해보면 어떨까?"
"거기가 어떤 학교인데요?"
그 때까지 나는 민족사관고등학교에 대해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었다.
처음 들어보는 학교가 이름마저도 참 독특하다고 생각했다.
"강원도에 있는 고등학교인데, '한국의 이튼스쿨'이라고 하더라.
거기서 공부하면 바로 외국 유학도 갈 수 있대."
"유학이요?"
특이한 이름의 학교에 들어가라는 것보다 '유학'이라는 단어가 더 충격적이었다.
그 때까지 내가 이 나라를 떠나 공부하는 모습은 상상조차 해본 일이 없었다.
강원도 횡성에 있는 민족사관고등학교(이하 민사고)는 전국의 수재들을 뽑아 영어로만 수업을 한다고 했다.
그런데 신입생 정원이 겨우 70명이란다.
내 생각에 이 학교는 들어가기도 쉽지 않고, 들어간다 해도 영어로 하는 수업을 따라가기가 보통 일이 아닐 것 같았다.
왠지 딴나라 얘기 같아서 나는 고개를 저었다.
"엄마, 제가 우리 학교 전교 1등이긴 하지만 전국 1등은 아니잖아요.
서울에서 쟁쟁한 전교 1등들은 다 모여들 텐데, 괜히 지원했다 떨어지면 어떡해요?
난 무조건 대전외고로 갈 거야."
하지만 어머니도 뜻을 굽히지 않았다.
"엄마는 원희가 좀 더 꿈을 크게 가졌음 좋겠어.
민사고에 가보니까 정말 커리큘럼도 좋고 기숙사며 학교시설도 마음에 들더라.
그런 곳에서 공부하다가 기회가 된다면 더 넓은 세계로 나가 공부하는 것도 괜찮지 않겠니?"
어머니는 아버지와 함께 벌써 그 학교 견학까지 다녀왔다고 했다.
그리고 내가 더 고민할 틈도 없이 두 권의 책을 내미셨다.
<서울대보다 하버드를 겨냥하라>와 <민사고 천재들은 하버드가 꿈이 아니다>하는 책이었다.
두 책 모두 민사고에서 어떤 방식으로 학생들을 가르치는지, 학생들은 어떻게 생활하는지, 유학은 어떻게 가는지 자세히 보여 주고 있었다.
책을 다 읽고 나니 민사고가 생각보다 꽤 괜찮은 학교라는 생각이 들기는 했다.
또, '민사고 천재들은 하버드가 꿈이 아니다'라는 제목이 '하버드가 꿈이 아닌 현실' 이란 뜻을 담고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하지만 이 대단한 학교에 과연 내가 들어갈 수 있을까?
괜히 지원했다가 떨어지면, 그보다 더한 망신이 어디 있을까?
며칠 동안 끙끙대다 생각해낸 핑계가 바로 '민사고 교복'이었다.
"근데 엄마, 고등학생들이 한복 입고 공부하는 것이 왠지 엽기적으로 보이지 않아요?
이상한 종교 집단 같아.
난 그런 옷 입고 학교 다니는 거 싫어요."
그러자 옆에서 신문을 읽고 계시던 아버지가 기발한 제안을 하셨다.
"원희야, 네가 민사고에 지원하면 아빠가 병원에서 일주일에 한 번씩은 갓 쓰고 한복 입고 진료할게. 어때? 재밌을 것 같지 않니?"
"네?"
아버지는 청주에서 안과를 운영하고 계셨다.
외모로 보나 평소 행동으로 보나 전형적인 모범생 스타일인 아버지가 조선시대 양반처럼 갓쓰고 하얀 도포자락을 휘날리며 환자를 보신다고?
그러다 환자들까지 예복을 갖춰입고 병원에 나타나면 어떻게 한다지?
"귀 환자는 난시가 심하니, 흔들리는 차안에서는 절대로 책을 보지 마십시오."
"예이! 분부대로 하겠사옵니다."
상상의 나래를 펴니 마구 웃음이 났다.
아버지까지 이렇게 밀어주시는데 더 이상 고집부릴 여지가 없었다.
민사고 특별 전형에 보내야 할 서류로는 중학교 성적표, 선생님들의 추천서, 토플 성적, 그리고 영어로 쓴 자기소개서(에세이)가 있었다.
그 중 가장 자신 없던 것이 '토플 성적'이었다.
특별전형에 지원할 수 있는 자격은 CBT(Computer-based Test, 300점 만점) 토플213점 이상이면서 내신성적이 전교 3퍼센트(지방은 1퍼센트) 안에 들거나, CBT 토플 260점 이상이었다.
여태까지 한 번도 토플 시험을 준비해본 적 없는 내게 '213점'이라는 숫자는 그야말로 무시무시해 보였다.
서류 마감 전까지 남은 기간은 두 달여.
시간이 없었다.
서점으로 달려가 롱맨(Longman)에서 나오는 실전 문제 시리즈 열 권을 다 사왔다.
내게 주어진 시간이 겨우 두 달이라면, 학원에서 이론을 배우기보다 나 혼자 실전 문제를 많이 풀어보는 편이 훨씬 나았다.
문제의 유형이나 출제 경향을 파악하고 미리 시험에 대한 적응력도 키울 수 있기 때문이다.
"하루에 한 회분씩! 토플아 기다려라, 원희가 간다!"
책상 앞에 이렇게 쪽지를 적어 붙여놓고 문제집 풀기에 돌입했다.
문제를 풀고 나서 채점을 할 때, 내가 왜 틀렸는지 반드시 체크했다.
내가 구입한 문제집은 예전 시험 방식인 PBT(Paper-based Test, 677점 만점) 방식이었는데, 문제집을 여덟 권째 풀었을 때 600점대 초반이 나왔다.
이 점수면 CBT 토플 점수로 환산해도 충분히 안정권이었다.
이제 문제는 에세이.
100개의 토픽과 모범답안이 나와 있는 책을 사서 에세이 쓰는 연습을 했다.
서론, 본론, 결론에 맞춰서 써본 다음 모범답안과 비교하며 내게 부족한 점을 메웠다.
내가 쓴 에세이가 좋은 점수를 받을 만한 건지 아닌지 봐줄 사람도 없었지만, 일단은 정해진 시간 30분 안에 에세이를 마칠 수 있는 데 주력했다.
"엄마, 저 263점이에요!"
토플 성적표가 배달되던 날, 나는 뜻밖의 점수에 너무 기쁜 나머지 집안이 떠나가라 토플 점수를 외쳤다.
에세이 5.5점에 총점 263점.
어떻게 공부해야 고득점을 올릴 수 있는지 아무도 알려주지 않았지만, 이 정도 점수가 나올 수 있었던 건 결국 내가 했던 공부 방법이 옳았다는 얘기가 아닐까?
서류 전형은 의외로 쉽게 통과됐다.
2차 전형은 심층면접이었는데 영어와 수학, 그리고 선택과목을 하나 정한 후 면접관들 앞에서 테스트를 받는 형식이었다
나는 선택과목으로 수학-A(advanced)를 선택했다.
심층면접이 있던 날의 풍경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대기실에서 차례를 기다리고 있는데, 뒷자리에 앉아 있던 아이가 말을 붙였다.
"너는 어디에서 왔니? 토플 점수는 얼마나 받았어?"
"대전에서 왔어. 토플 점수는 별로 안 높아."
"난 280점인데."
서울에서 왔다는 그 아이의 토플 점수는 내가 받은 점수보다 한참 위였다.
보아하니 심층면접 대기실에는 쟁쟁한 아이들만 모인 것 같았다.
자기만의 영어공부법을 책으로 낸 아이, 각종 경시대회에서 수상한 아이, 특별활동으로 여러 번 신문지상에 오른 아이 등등.
약간 기가 죽어 있는 찰나 내 차례가 됐다.
"Hello!"
수학 심층면접실에 들어간 나는 첫인사부터 씩씩하게 영어로 했다.
여긴 영오로만 공부하는 학교니까 수학 면접도 당연히 영어로 치르는 줄 알았던 것이다.
조금 전 기죽은 모습은 창밖으로 날려버리고, 어떻게든 좋은 인상을 남겨야겠다는 마음뿐이었다.
수학 문제가 들어 잇는 기다란 통에서 문제의 번호가 적힌 종이를 뽑았다.
"Which number(몇 번 문제지)?"
면접관이 물었다.
"Question number 3, please (3번 문제예요)."
면접관에게 해당 번호의 문제가 적힌 종이를 받아 칠판에 풀기 시작했다.
내가 뽑은 문제는 집합, 소수와 합성수, 그리고 쉬운 기하 문제, 수학경시 공부를 한 덕분인지 문제가 술술 풀렸다.
"How do you transform the equation (어떻게 하면 그 식을 바꿀 수 있지)?"
"If you add 2 times x and substract it, you'll be able to transform the given equation (2x를 양변에 더하고 빼면 주어진 방정식을 바꿀 수 있습니다)."
면접관이 영어로 물어보면 나도 영어로 대답하면서 세 문제를 다 풀었다.
내 영어가 유창한 건 아니었다.
'빼다"는 말이 'subtract'인데 순간적으로 헷갈리는 바람에 'substract'라고 말할 정도였다.
하지만 단어가 틀리건 말건 내 목소리는 경쾌한 톤을 유지했고, 내 표정도 끝까지 싱글벙글 미소를 잃지 않았다.
문제를 다 풀고 나자 면접관 한 분이 이렇게 물었다.
"박원희 양, 미국에서는 얼마나 살다왔죠?"
"네? 저는 미국에서 살다온 적이 없습니다."
그러자 면접관들 모두 당황한 기색을 보였다.
나중에야 알게 된 사실인데, 그 날 수학 심층면접실에서 영어로 문제를 푼 사람은 나밖에 없었다.
다른 지원자들에 비해 토플 점수도 낮고 해외 거주 경험도 없으면서 씩씩하게 영어로 수학 문제를 풀다니 그 알량한 영어 실력으로 하룻강아지 범 무서운 줄 모르고 덤빈 셈이었다.
자신감이 하늘을 찔렀다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었다.
다음 심층면접은 영어였다.
이번에는 진짜로 영어만 사용해야 했다.
수학 면접을 워낙 자신감 있게 치른 터라 여전히 얼굴은 생글거렸지만, 면접관 중 한 분이 아주 무섭게 쳐다봐서 나도 모르게 바짝 긴장했다.
면접관은 미리 나눠준 지문 중 한 문장을 가리키며 물었다.
"Do you know what it means?"
지문은 항공기 추락에 관한 기사였는데, 하필 잘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이었다.
머릿속이 하얘졌다.
"I think it's ...."
그 때 내가 뭐라고 대답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나름대로 추측을 했던 것 같다.
"Good guess."
면접관은 무표정한 얼굴이었다.
진땀이 났다. 내가 추측한 게 맞았다는 말일까, 틀렸다는 말일까?
잔뜩 긴장을 해서인지, 마지막 심층면접인 수학 A에서 두어 번 실수를 범했다.
뻔히 알고 있던 풀이과정을 적으면서도 중간에 막히는 부분이 있었다.
"아이, 난 몰라! 분명히 떨어졌을 거야."
집에 돌아와 생각하니 무척 속이 상했다.
내가 민사고에 가지 못하게 된다면 그건 아마도 영어 때문일 것이었다.
다른 지원자들에 비해 낮은 토플 점수와 여엉 면접실에서의 긴장감이 또올라 며칠 동안 잠을 이루지 못했다.
마침내 최종 합격자 발표가 나던 날.
아침부터 거의 10분 간격으로 민사고 홈페이지에 접속했다.
오후가 되어 게시판에 합격자 명단이 뜨는 순간 난 정신을 잃을 뻔했다.
'대전 전민중 박원희'
그건 분명 내 이름이었다.
난 환호성을 지를 기운도 없이 침대 위로 쓰러지듯 누웠다.
모든 긴장이 한꺼번에 풀어지면서 정신이 몰롱해졌다.
그러다가 잠이 들었던 것 같다.
'그럼 이제 나에게도 하버드는 꿈이 아니라 현실이 될까?"
미국으로 유학 가는 내 모습을 그려보았다.
막연한 설렘으로 가슴이 부플어올랐다.
8. 원희의 영어 읽기 프로젝트
"&&%%$$##&&!"
"Pardon(뭐라고요)?"
선생님 얘기를 못 알아듣고 다섯 번째 'pardon' 을 외치자 급기야 반 아이들의 웃음보가 터졌다.
"하하하하...."
내 하얀 얼굴은 점점 더 빨개지고, 영어작문 선생님은 한숨을 쉬셨다.
선생님은 나를 자리에서 일으켜세운 채 무슨 말을 하시는 것일까?
결국 한 번 더 'pardon?'을 한 뒤에야 말뜻을 알아들을 수 있었다.
"글을 참 잘 썼구나!"
이런 뜻인 줄 알았으면 진작에 'Thank you'라 말하고 자리에 앉았을 텐데.
선생님의 뉴질랜드 억양은 정말 알아듣기 힘들었다.
나는 2001년 10월 15일부터 민사고 생활을 시작했다.
미국의 학제와 맞추기 위해 신설된 '예비과정'에 입학한 것이다.
재학생들과 똑같이 기숙사 생활을 하며 영어로만 진행되는 수업을 들었다.
'설마 나 정도면...'
학교에 처음 발을 들여놓는 순간까지도 나는 '영어로 진행되는 수업'에 자신이 있었다.
중학교 내내 영어는 만점이었고, 교외 영어경시대회나 영어 말하기대회에 나가서도 항상 1, 2등을 다퉜기 때문이다.
그런데 수업을 들으면서 '설마' 하던 자만심은 산산이 부서졌다.
선생님의 말이 조금만 빨라져도 중요한 단어들을 놓치기 일쑤였고, 뉴질랜드나 영국식 발음은 더더욱 귓전에서 맴돌다 날아가버렸다.
'pardon?' 도 한두 번이지, 비슷한 상황이 반복되자 우럽사를 가르치던 간제(Ganse) 선생님은 심지어 나에게 이런 충고까지 했다.
"원희, 네가 계속 내 수업을 들어도 좋은지 다시 생각해라."
영어로 진행하는 수업을 따라올 만한 실력이 되는지, 냉정하게 판단해보라는 얘기였다.
만약 선생님 말씀대로 내가 그런 실력이 안된다면 결국 민사고 수업을 포기하라는 말인가?
생전 처음으로 집 떠나 공부하는 것도 낯선데, 선생님한테 그런 소리까지 듣고 나니 자존심이 한꺼번에 무너져내렸다.
영어로 인한 서러움을 수업시간에만 겪는 게 아니었다.
한 학년 위의 선배들과 함께 일주일에 한 번씩 보는 영어단어 쪽지시험이 너무 어려웠다.
시험용 영어단어 리스트에는 온통 처음 보는 단어들뿐이었다.
" 'redolent'는 'exuding fragrance, aromatic' 이란 뜻인데, 'exude'는 또 무슨 뜻일까?"
하나의 단어에 대한 영어 뜻풀이를 읽다보면 뜻풀이 속의 영어단어를 모르겠고, 그래서 그 영어단어를 찾아보면 또 뜻풀이 안에 있는 영어단어 때문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혼자서 책상 앞에 앉아 단어 리스트를 외우다 보면 하염없이 머리가 아팠다.
게다가 학교에서 선정한 '독서 리스트' 대로 영어 원서까지 읽어야 했다.
<해리포터와 비밀의 방>을 원서로 읽어본 게 전부인 나에게, 두껍디두꺼운 영어 원서들은 마치 거대한 산처럼 가슴을 짓눌렀다.
'엄마, 아빠는 정말 너무하신 거 아냐. 어쩌자고 나를 이런 학교에 더려다놓으셨지?'
갑자기 부모님이 원망스러워졌다.
영어로 하는 수업뿐만 아니라, 일상생활에서도 반드시 영어를 써야 하는 게 민사고의 교칙(EOP, English Only Policy)이었다.
함께 입학한 친구들은 대부분 해외에서 살다왔거나 1년 이상 어학연수 경험이 있었다. 이런 친구들과 함께 공부하려면 나도 어학연수쯤은 다녀왔어야 하는 것 아닌가?
부모님은 왜 내게 해외 어학연수를 시켜주지 않았을까?
저렇게 영어를 잘하는 아이들 속에서 나더러 어쩌란 말인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원망의 종착역은 '내가 지방 도시의 평범한 가정 출신'이라는 것이었다.
학교에서 정해준 자습시간에는 책상 앞에 꼼짝없이 앉아 공부를 하면서도, 자려고 침대에 누우면 어김없이 눈물이 흘렀다.
나 혼자 감당하기엔 이곳 생활이 너무 힘들다는 생각과 두려움으로 인해 부모님에 대한 원망이 커져갔고 울다 잠드는 날이 많아졌다.
그 날 아침도 어깨를 축 늘어뜨린 채 아침운동을 가는 길이었다.
민사고에서는 모든 학생이 아침 6시 30분부터 7시 10분까지 의무적으로 아침운동(태권도나 검도)을 해야 했다.
"Won Hee! Did you finish <The Hobbit> (원희야, <호빗> 다 읽었니)?"
내 어개를 툭 치며 다가온 아이는 같은 반의 B였다.
"not yet(아직 안 읽었어)."
"I've finished it. It was very interesting (난 다 읽었어. 정말 재미있더라)!"
책을 함께 구입한 지 이틀밖에 안 됐는데 그 애는 벌써 다 읽었다고 했다.
나는 이제 겨우 10분의 1을 읽었을 뿐이었다.
퍼뜩 정신이 들었다.
내가 영어단어 시험을 핑계로 독서를 미루고 있는 동안 다른 친구들은 벌써 그 책을 다 읽고 다른 책을 읽기 시작한 것이다.
그 애가 미국에서 살다왔기 때문에 나보다 영어로 된 책을 빨리 읽는 건 당연했다.
하지만 내가 외국 체류 경험이 없는 토종이어서 계속 뒤처진다는 건 마음에 들지 않는 핑계였다.
그 날 저녁부터 영어 원서 읽기에 돌입했다.
일명 '원희의 영어 읽기 프로젝트'.
매일 2시간씩 무조건 책을 읽기로 한 것이다.
제1, 제2 자습시간 중에 10시부터 12시까지는 원서를 읽는 시간으로 정해놓았다.
숙제를 하다가도 그 시간이 되면 어김없이 원서를 손에 잡았다.
학과별 숙제나 예습, 복습보다도 원서 읽기가 우선 순위였다.
"원희야, 안 자니?"
"나 아직 숙제를 못 했어."
영어를 잘하는 룸메이트는 일찌감치 숙제를 마치고 잠자리에 들었지만, 나는 원서를 읽느라 숙제는 아직 반도 하지 못했다.
책을 읽고 나서 다시 숙제를 하다 시계를 보면 새벽 두세 시가 훌쩍 넘어 있곤 했다.
농익은 가을밤, 새벽 두 시 무렵이면 울기 시작하는 풀벌레의 노랫소리를 들은 적 있는가?
기숙사 담벼락을 타고 '찌르르 찌르르' 울리는 풀벌레 소리.
싸늘한 어둠을 가르는 그 섬세한 소리가 지금도 귀에 쟁쟁하다.
어느 시인은 귀뚜라미 울음소리를 가위로 가을밤을 쓰륵쓰륵 써는 것 같다고 비유했는데 나는 그렇게 느꼈다.
그 노랫소리는 때로 섬뜩하게 들렸지만 나는 가을밤 풍경에 취해 더듬거릴 시간이 없었다.
처량하게 외로움을 느낄 여유도 없었다.
가을밤을 썰고 있는 저 풀벌레처럼 나도 영어의 세계를 썰어야 했다.
반드시 영어의 장애물을 썰어 없애야만 했던 기숙사에서의 첫 가을밤.
나는 그렇게 기숙사 705호에서 새벽까지 울고 있는 한 마리 풀벌레였다.
예비과정에 들어와 처음 읽은 <The Hobit>.
쉽고 재미있는 판타지 소설인데도 다 읽는 데 2주일이나 걸렸다.
그 다음에 읽은 간디의 <We are all brothers>는 내용이 너무 지루하고 어려운 단어가 많아서 그보다 훨씬 더 걸렸다.
헤르만 헤세의 <Siddhartha(싯다르타)>도 3주 이상 읽었던 것 같다.
모르는 단어를 사전에서 찾다보면 몇 페이지 못 읽었는데도 금세 2시간이 지나가버리곤 했다.
"Won Hee, you look terribly tired.
What's the problem(원희, 너 무척 피곤해 보이는구나. 무슨 일 있니)?"
"No, nothing. I'm just ....(아무 일도 아니에요. 그냥 좀...)."
늘어나는 공부량과 과목별 숙제 때문에 결국 수면 시간이 부족해지자, 수업에 들어가면 졸기 일쑤였다.
처음엔 걱정의 눈길을 보내던 선생님들도 자꾸만 조는 나를 그냥 두고볼 수는 없었던 모양이다.
"Won Hee, Wake up(원희, 일어나)!"
세상 모르고 졸다가 호명되면 창피해서 몸둘 바를 몰랐다.
하지만 세상에서 가장 무거운 것이 바로 '눈꺼풀'이라고 하지 않던가.
중학교 때 졸음 참는 방법으로 사용했던 샤프펜슬 고문을 나는 이곳에서 또 시작했다.
수업시간에 졸음을 참기 위해 샤프펜슬로 손톱 위를 찍어댔다.
주말에 나를 보러온 어머니는 손톱 주위에 피멍이 든 걸 보시고 매우 걱정하셨다.
하지만 수업시간마다 무겁게 감기는 눈꺼풀을 어떻게 해볼 도리가 없어서, 나중에는 볼펜으로 허벅지를 찌르기에 이르렀다.
예비과정을 다 마치도록 내 허벅지에는 여기저기 멍자국이 사라질 날이 없었다.
나의 영어 읽기 프로젝트는 겨울방학까지 이어졌다.
예비과정이 끝나고 겨울방학이 되었을때, 나는 대전에 있는 집으로 돌아가지 않았다.
민사고의 학사과정 중 조기 졸업자를 위한 프로젝트를 계속 해야 했던 것이다.
"원희야, 너희는 겨울방학이 없어서 어떡하니? 아직은 중학생인데 쉬지도 못하고...."
하나밖에 없는 딸을 강원도로 보내놓고 겨울방학이 오기만을 기다렸던 부모님의 실망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하지만 나는 마음을 독하게 먹었다.
"여기에서 공부하는 게 훨씬 편해요.
참, 엄마 예날에 듣던 CNN 방송 테이프나 좀 보내주세요."
"그건 왜?"
"기숙사에서 한 달 동안 어학연수 하려고 그러죠."
돈 안 드는 어학연수.
어차피 겨울방학 동안 기숙사라는 한정된 공간에서 지낼 거라면 하루 종일 영어만 듣고, 영어 원서만 읽고, 또 영어로 생각하는 능력을 키운다면 충분히 어학연수 효과를 볼 수 있었다.
이끌어주는 사람 없이 혼자 한다는 어려움이 있었지만 그건 극복할 수 있을 듯싶었다.
'영어 읽기 프로젝트'에 양념처럼 '영어 듣기 프로젝트'도 첨가했다.
어머니가 보내준 CNN 방송 테이프를 매일 들었다.
밥을 먹을 때나 화장실에 갈 때도 귀에 이어폰을 꽂고 다녔다.
확실히 이런 수준의 영어는 초등학교 때 배운 회화와는 비교도 안 될 만큼 어렵고, 말하는 속도도 빨랐다.
원어민의 목소리로 녹음된 뉴스를 매일 들으면서 받아쓰기도 해보고, 앵커의 목소리를 쫓아 섀도잉(shadowing, 따라하기)을 시도하기도 했다.
이렇게 하다 보니 그동안 내가 얼마나 쉬운 영어만 구사해왔는지 새삼 느낄 수 있었다.
테이프를 듣는 시간을 제외하고는 거의 하루 종일 책을 읽었다.
방학이 겨우 한 달 정도라 제인 오스틴의 <Pride and Prejudice(오만과 편견)>를 읽는 것만도 버거웠지만, 조금씩 속도가 붙는 것 같았다.
처음에는 모르는 영어단어를 하나하나 찾는 데 시간을 많이 보냈는데, 점점 모르는 단어를 추측하고 넘어가는 요령이 생겼다.
처음 보는 단어라도 문맥 속에서 의미를 파악하다 보면 대충 들어맞았다.
이제는 영어 원서를 읽을 때 사전을 찾아봐야 한다는 조바심은 사라졌다.
영어 원서가 거대한 산처럼 느껴지지도 않았다.
하지만 여전히 영어에 대한 부담감을 안은 채 1학년에 올라갔다.
9. 한국 토종 거북이의 영어 따라잡기
"아이 참, 이번엔 내가 꼴찌인가 봐. 11개나 틀렸어."
"아니야, 내가 꼴찌인 것 같은데? 난 12개 틀렸거든!"
봄기운이 완연한 민사고 교정에서 두 명의 친구들과 아는 서로 '꼴찌' 임을 주장하고 잇었다.
1학년에 올라와 치른 두 번의 모의 SAT I 시험에서 우리는 연속 '꼴찌 3인방'을 기록한 것이다.
SAT I 은 미국 고등학생들이 대학에 가기 위해 치르는 수학능력시험 같은 것이다.
언어 영역 (Verbal part)과 수학 영역 (Math part)으로 나뉘어 있는데, 각각 800 점씩 총 1600점 만점이다.
미국의 거의 모든 대학에서 SAT I 점수를 요구하기 때문에 유학을 준비하는 학생에게는 아주 중요한 시험이다.
나는 수학은 자신 있었지만, 언어(영어) 영역만은 시험지를 받아볼 때마다 모르는 문제가 너무 많았다.
겨울 방학 내내 헌신적으로 영어레 매달렸는데 반에서 꼴찌라니!
'하늘도 정말 무심하다'는 소리가 입에서 절로 새어나왔다.
"엄마, 이상해요. 점수가 왜 이렇게 안 나올까요?"
속이 상해 집으로 전화를 하면 어머니는 이렇게 위로를 해주셨다.
"원희가 친구들한테 항상 '공부를 해야 점수가 잘 나온다'고 말했던 거, 기억나니?
원희는 중학교 때도 문제집을 수십 권씩 풀고 나서야 시험을 봤잖아.
영어도 '공부를 정말 많이 했다'고 자부할 수 있는 시점이 있을 거야.
지금은 아직 그 시점이 안 됐기 때문에 점수가 안 나오는 것 아닐까?"
듣고 보니 어머니 말씀이 맞는 것 같았다.
아직 내 공부가 부족하기 때문에 점수가 안 나오는 것이리라.
학교에서는 모의시험을 치른 다음에 점수만 알려줄 뿐, 어떤 문제를 틀렸는지는 알려주지 않았다.
더더욱 SAT I 의 미궁 속으로 빠져드는 기분이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실제 SAT I 시험은 2학년 때 본다는 사실이었다.
그 때까지는 모든 교과목과 자습을 통해 영어 실력을 다져야 했다.
예비과정을 마치고 1학년이 돼서도 나의 불쌍한 영어 행진은 계속 됐다.
특히 유럽사 수업이 그랬다.
독일에서 오신 간제 선생님이 가르쳤는데, 기본적으로 알아야 할 지식뿐만 아니라 이해하고 분석하는 능력까지 겸비해야만 들을 수 있는 과목이었다.
그런데 나는 그 분의 영국식 발음이 귀에 익숙지 않은 데다 말조차 빨라 수업 내용을 이해하기 힘들었다.
"너는 영어를 잘 이해하지 못하는구나, 계속 유학반에 있어도 좋은지 잘 생각해봐라."
간제 선생님의 이 말 한 마디에 나는 말할 수 없이 큰 상처를 받았다.
선생님에게 '박원희' 라는 아이가 형편없는 학생으로 비쳐지는 게 너무 싫었다.
'My enemy No.1 is European History! '
유럽사를 '반드시 무찔러야 할 적' 으로 규정하고, 이렇게 쓴 글귀를 책상 앞에 붙여두었다.
뭘가 풀리지 않는 문제나 어려움이 있으면 책상 앞에 크게 써서 붙여놓고 스스로 자극하며 마음을 다잡는 것이 나의 버릇이었다. 열심히 공부해서 선생님에게 더 나은 모습을 보여줘야만 했다.
어디서 이런 오기가 생기는지는 모르겠지만, 누군가 내게 실망하는 모습을 보면 정말 견딜 수 없었다.
하루에 2시간씩 영어 원서를 읽느라 늘 잠이 모자랐지만 유럽사 시간만큼은 절대로 조는 일이 없었다.
잔뜩 긴장한 눈빛으로 선생님을 바라보며, 선생님이 하는 말은 토씨 하나 빠뜨리지 않고 노트에 적었다.
매일 자습시간에 다시 유럽사 노트를 정리하고 유럽사 숙제만큼은 온갖 정성을 들였다.
글 결과 수업 중간에 치르는 쪽지시험에서 좋은 성적을 거뒀다.
"원희, 시험을 아주 잘 봤구나. 잘했어."
어느 날 선생님의 칭찬에 우쭐해졌다.
'이쯤 되면 선생님도 나를 다시 보시겠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유럽사 공부의 길은 그렇게 만만한 게 아니었다.
방심하는 순간 간제 선생님은 또다시 직격탄을 날렸다.
어느 날 수업시간에 'ambush quiz(예고 없이 보는 쪽지시험)' 를 보게 되었는데, 내 성적은 형편없이 나왔다.
"너에게 실망했다.
너는 단시간에 공부해서 성적을 올리는 전형적인 한국 학생에 지나지 않아.
네가 미국에 가서 공부를 잘할 거라는 생각이 들지 않는구나."
선생님의 말 한마디 한 마디가 가슴을 후벼팠다.
한 번 칭찬을 들은 후로 예습, 복습을 게을리한 탓이었다.
그 날은 하필 한 달에 한 번 집에 가는 날이었다.
나는 '엉엉' 소리까지 내가며 서럽게 울었다.
"원희야, 울지 마. 선생님이 더 잘하라고 하신 말씀일 거야."
기숙사 방에서 통곡을 하고 잇는 내게 단짝 친구 신재가 다가와 어깨를 토닥여주었다.
하지만 학교를 출발하기 전 20분 동안 무너진 자존심과 서러움을 참지 못해 목놓아 울고 말았다.
집으로 가는 버스 안에서도 내내 우울했다.
내가 한동안 유럽사 공부를 그렇게 열심히 했다는 걸 알아주지 않는 선생님이 야속하고 미웠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었다.
주말을 이용해 집에 다녀오고 나자 다시 도전해서 유럽사를 정복하고야 말겠다는 새로운 오기가 생겼다.
선생님 말이 하나도 틀린 게 없었다.
억울하면 최선을 다해서 좋은 결과를 보여주면 되지 않은가.
새로운 마음으로 유럽사 공부를 다시 시작했다.
로마시대 의상에 대한 리포트를 쓰면서 콧노래를 부르며 직접 일러스트를 그릴 정도로 의욕이 솟았다.
내가 얼마나 열심히 했는지는 에세이 숙제 점수로 판명이 났다. 9점 만점에 늘 3, 4점을 맞던 내가 8점을 맞은 것이다.
"Get your essay published (네 에세이를 발표해라)!"
간제 선생님은 친구들 앞에서 나를 일으켜세우고는 이렇게 칭찬을 해주셨다.
갑자기 간제 선생님에 대한 미움이 눈녹듯 사라지기 시작했다.
못랄 때는 못한다고 직설적으로 말해주고, 잘하면 또 그에 걸맞게 칭찬을 해주는 것.
간제 선생님은 학생에게 진정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아는 분이었다.
다음 학기에도, 또 그 다음 학기에도 나는 선생님의 유럽사 수업을 들었다.
내가 나태해지지않고 끊임없이 스스로를 채찍질할 수 있었던 것은 어쩌면 간제 선생님의 덕분이 아니었을까.
1학년 1학기가 지나가면서 나의 영어 실력은 눈에 띄게 향상됐다.
영어로 하는 발표(presentation), 토론(debate) 수업 등을 하다 보니 말하기와 듣기 실력이 자연스럽게 좋아졌다.
어느 순간부터는 영어로 말하는 게 오히려 더 편해져서 기숙사에 친구와 단 둘이 있을 때조차 영어로 이야기할 정도였다.
민사고에 처음 들어왔을 때, 나는 영어에 관한 한 해외파 토끼들 사이에서 느릿느릿 기어가는 토종 거북이에 불과했다.
그러나 비록 느린 거북이지만, 천천히 꾸준히 하다보면 언젠가는 경주에서 이길 거라는 희망이 보이기 시작했다.
제3부 나의 피눈물 영어정복기
1. Slow and steady wins the race
(자기 실력 파악하기)
민사고에 처음 입학했을 때, 무엇보다 나를 힘들게 한 것은 영어였다.
그 때까지 읽어본 영어 원서라고는 <해리포터와 비밀의 방>이 전부였던 내게, 영어로 씌어진 교과서들과 각종 참고 서적들, 영어 독서 리스트, 영어단어 시험은 그야말고 가도 가도 끝이 없는 오르막길 같았다.
화학이나 수학 등 이학 분야의 책들은 그나마 사정이 나았다.
문학쪽으로 넘어오면 책을 읽을수록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단순한 의미뿐만 아니라 문장 속에 숨겨진 뉘앙스까지 찾아내기엔 내 영어가 너무 '소박'했다.
그동안 지나치게 쉬운 영어에만 길들여져 있었던 탓이다.
난 영영사전을 펼쳐놓고 모르는 단어를 찾고 또 찾았다. 그런데 옆에서 공부하는 친구들은 '어, 이거 이런 뜻이잖아'라고 쉽게 맞히는 걸 보면서 허탈감에 휩싸였다.
나를 더욱 압박한 것은 영어 에세이 쓰기였다.
한국어를 잘하는 한국 사람도 막상 글을 쓰려면 막막할 때가 있다.
영어 에세이를 잘 쓰려면 그 전에 영어를 수단으로 한 '듣기'와 '읽기'가 충분히 채워져야 했다.
그런데 영어 원서를 펼쳐놓고 한 시간에 겨우 10페이지 읽는 수준이었으니, 민사고라는 '영어 특구'에서 나는 졸지네 미아가 된 꼴이었다.
영어를 모국어처럼 사용하는 친구들이 부럽기만 했다.
그런데 어느 날인가, 문들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내가 만약 이 영어 특구에 들어오지 않았다면 나의 영어 실력은 어떻게 되었을까?
영원히 소박하고 짧은 영어에 만족하며 살지 않았을까?
자각이라는 건 참 무서운 것이다.
나는 영어에 관한 한 혹독할 만큼 깨졌고, 그 덕분에 영어에 도전할 새로운 의욕이 솟구쳤다.
'내가 정말 영어를 못하는구나!'
이런 자각이야말로 영어 공부의 출발점이 아닌가 싶다.
대충 머릿속으로 생각하는 자각이 아니라, 가슴을 세차게 파고드는 엄청난 자각말이다.
영어를 '외국어'로 생각하는 그룹 안에서 아무리 1등을 한다고 해도, 영어를 모국어로 쓰는 사람들 속에 섞이면 초등학교 수준밖에 되지 않는다.
아마 올 여름 하버드에 가면 또 한 번 큰 자각을 하게 될 것 같다.
한국에서 영어로 공부했던 것과, 진짜 원어민들 사이에서 공부하는 것은 천지차이일 테니까.
미국이라는 땅에서 영어로 공부할 것이 걱정은 되지만, 이것만은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영어를 모국어처럼 잘하고 싶다면 지금 내 영어 실력이 어느 지점에 와 있는지 냉정히 파악하라는 것이다.
자기 점검을 확실히 되면 앞으로 해야 할 공부의 양이 얼마 만큼인지 보이며, 공부의 양이 정해진 다음에는 열심히 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영어의 처음은 재미있게 시작하자)
(Phonics & Pattern English)
(자신감이 밥 먹여준다)
(꾸준히 오래오래, 성실하게)
우리 어머니의 교육철학 중 하나는 '어떤 공부든 한번 시작했으면 꾸준히 투자하라'는 것이다.
덕분에 초등학교 입학 전부터 초등학교 4학년 때까지 꾸준히 영어회화학원을 다닐 수 있었다.
어머니는 내게 영어 공부를 꾸준히 하라고 강조하셨다. 그래서 나는 학원을 그만둔 다음에도 영어 일기를 꾸준히 썼고, 학교 숙제와 상관없이 영어 동화책을 읽었다.
중학교 때는 교과서 한도 내에서 시험 점수가 잘 나오는 것에 만족했기 때문에 실력이 그다지 향상되지 않았다.
다행인 것은 꾸준히 영어 경시대회에 참가했다는 것이다.
영어경시대회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발음이 많이 좋아졌고, 영어 문장력도 어느 정도 기르게 되었다.
고등학교에 올라와서는 어려운 영어 공부를 포기하지 않았다는 점이 스스로 대견하다.
민사고의 다른 친구들만큼 잘 되지 않는 영어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으면서도 매일 2시간씩 영어로 된 책을 읽었다. 수업과 숙제, 토론, 발표 등 모든 커리큘럼이 영어로 진행되는 고등학교를 다녔다는 사실이 내게 행운이라면 행운일까?
매일 영어로 얘기하고, 영어로 수업 듣고, 숙제하고, 발표하고..., 그렇게 하다 보면 누구든 영어 실력이 좋아지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영어는 정말 꾸준히 하는 게 바람직하다.
단 하루라도 영어 공부를 미루다 보면 그것이 이틀, 사흘, 일주일, 한 달이 된다.
우리말도 오랬동안 안 쓰면 잊어버리는데, 하물며 외국어는 더하지 않을까?
'Slow and steady wins the race (천천히, 꾸준히 하는 사람이 결국 승자가 된다)'라는 말처럼, 영어는 그런 마음으로 해야 한다.
단, 꾸준히 영어 공부를 하라는 것이 영어학원을 계속 다니라는 얘기는 아니다.
사람마다 경제적인 여건이 다르기 때문이다.
하지만 관심만 있으면 돈 안 들이고 영어를 배울 수 잇는 매체가 많다.
특히 EBS방송에는 어린이를 위한 영어 동화나 영어 드라마는 물론, 성인들을 위한 초급 회화나 중급 회화, 영어쇼에 이르기까지 좋은 프로그램들이 많다.
자기 형편과 입맛에 맞는 프로그램을 골라 꾸준히 그리고 열심히 하면 그게 바로 영어로 가는 지름길이 아닐까?
2. 영어단어를 외우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 세가지
유학을 가려면 SAT와 토플을 봐야 한다.
이런 시험의 기본은 많은 단어를 외우는 것이다.
영어단어를 많이 알고 있으면 시험뿐만 아니라 영어 원서를 보며 공부하는 데도 큰 도움이 된다.
영어단어, 일단 많이 외우자.
그런데 그 많은 영어단어들을 어떻게 하면 쉽게 외울 수 있을까?
<접두어(a prefix)와 어근(a radix)을 활용한 단어 외우기
<연상법으로 외우기>
<주변 사람들과 함께 외우기>
<짧은 시간 안에 최대한 많이 외우기>
3. 영어 소설 속에 기꺼이 파묻혀라.
민사고에서 영어로 된 문학 작품을 들이대며 읽으라고 했을 때, 거의 절망에 가까운 한숨을 내쉬었던 기억이 난다.
처음에 영어로 된 작품을 읽을 때 친구들과 나의 속도 차이는 '약 2주' 였다.
어떤 친구들은 <The Hobbit>이라는 작품을 이틀 만에 다 읽고 다른 책을 보고 있는데, 나는 그 책 한 권을 2주일이면 꼬박 걸려서야 다 읽었다.
그 속도의 차이를 느껴보지 않은 사람은 그 심정을 이해하지 못한다.
속도가 뒤처지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얼마나 조바심이 나는지 말이다.
민사고 예비과정에 입학했을 때 나는 무조건 제2 자습시간인 밤 10시부터 12시까지는 영어로 된 작품들을 읽는 데 할애했다.
책마다 다르지만, 그 때는 1시간에 평균 10페이지 정도밖에 읽지 못했다.
그런데 매일 정해진 시간 동안 책을 읽어나갔더니, 3개월 후에는 시간당 15페이지의 속도로 읽고 있었다.
1학년 1학기가 끝날 무렵에는 시간당 20페이지쯤 읽게 되엇따.
물론 이 속도도 다른 친구들에 비하면 무척 느린 것이었지만, 입학 초기보다는 2배 빨라진 셈이다.
갑자기 책 읽는 속도가 빨라진 건 2학년 1학기가 끝나갈 무렵부터였다.
찰스 디킨스의 <Great Expectations(위대한 유산)>은 문장이 복잡한데도 1시간에 30페이지 정도로 읽어나갔다.
책 읽는 속도가 부쩍 늘었다는 사실을 발견하고는 날아갈 듯이 기분이 좋았다.
그 후로는 속도가 더 많이 붙어서 문장이 간결한 책들은 1시간에 50페이지까지도 읽을 수 있었다.
헤밍웨이의 <The Old Man and the Sea(노인과 바다)>를 2시간 만에 다 읽게 되었을 때, 그 감격은 말로 다할 수 없었다.
영어 독서 리스트가 필요한 분들을 위해 고교 시절 읽엇던 책들을 조금만 소개해보겠다.
처음 읽었던 책은 간디가 지은 < We are all brothers>.
간디가 자신이 겪었던 일들을 나열하며 독지들에게 충고하는 글이었다.
책을 읽다가 'brothel'이라는 단어가 여러 번 나오기에 사전을 찾아봤더니, '매춘소'라는 뜻이어서 무척 당황했었다.
그 단어가 들어간 부분의 내용은 '매춘소에 들어간 뒤 후회했다'는 것이었다. 매우 도덕적인 내용만 잔뜩 늘어놓은 탓에 흥미는 느끼지 못했지만, 그래도 인도인들의 추앙을 받고 있는 사람의 글을 읽을 수 있어서 좋았다.
학교에서 정해준 독서 리스트 중에 헤르만 헤세의 <Siddbartba>와 마크 트웨인의 <The Adventures of Huckleverry Finn(허클베리 핀의 모험)> 도 빼놓을 수 없다.
이 작품들은 수업시간에 토론을 벌일 예정이어서 꼼꼼히 읽었다.
<Siddbartba>의 주요 내용은 청년 '싯다르타'가 깨달음을 얻기 위해 친구 고빈다(Govinda)와 함께 고행길을 떠난다는 것이었다.
자아의 근본인 '아트만(Atman)'과 우주의 본질인 '브라만(Brahman)'의 일치 운운하는 부분에서는 개념이 무척 어려워 오랫동안 책을 들여다 보았다.
이 소설 속에 등장하는 강은 '속세와 정신세계를 구분하는 경계'라고 했다.
한 번도 그런 종류의 강에 대해 생각해본 적이 없기 때문에 무척 신기했다.
철학적인 메시지가 많아서 이해하기 어려웠던 반면, 다 읽은 후에 뿌듯해지는 책이었다.
<The Adventures of Huckleberry Finn>에서는 유독 허클베리 핀이 "I shut the door to"라고 말하는 문장이 떠오른다.
선생님은 수업시간 내내 이 문장에 왜 'to'가 들어갔는지를 설명하셨다.
문법적으로는 틀린 문장이지만, 허클베리 핀이 교육을 많이 못 받았다는 걸 표현하기 위해 작가가 일부러 'to'를 넣었다고 햇다.
책 중간중간 흑인들이 쓰는 표현들이 많았기 때문에 표준영어(Standard English)에 익숙해 있던 나는 읽기가 수월치 않았다.
피츠 제럴드의 <The Great Gatsby(위대한 개츠비)>는 너무 어려워서 세 번이나 읽었다.
처음 시작할 때부터 'vnlnerable(상처받기 쉬운)'이라는 단어가 등장하더니, 다 읽고 나서도 상당히 암울한 느낌을 갖게 만든 작풍이었다.
빈농의 아들로 태어난 개츠비는 일찍부터 성공에 대한 야심을 품고 있었다.
제2차 세계대전 중 미국 육군장교가 된 그는 상류계급의 아가씨 데이지와 사랑하는 사이가 된다.
그러나 그가 유럽 전선으로 떠난 뒤 그녀는 돈 많은 다른 남자와 결혼해 버린다.
전쟁이 끝나고 돌아온 개츠비는 술을 밀수하면서 엄청난 부를 쌓고, 데이지 부부의 뒤를 따라 뉴욕으로 가서 롱아일랜드에 호화저택을 마련한다.
개츠비는 그녀와의 사랑에 미련을 버리지 못하다가 결국 데이지 대신 죄를 뒤집어쓰고 죽을을 맞이하게 된다.
개츠비의 차를 몰던 데이지가 사고를 냈는데, 그 사고로 죽은 여자의 남편이 개츠비를 총으로 쏴 죽였던 것이다.
미 모든 이야기를 독자에게 전해주는 것은 닉이라는 남자다.
소설의 마지막에서 닉이 만난 데이지 부부는 마치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행동한다.
그들의 기억 속에 개츠비란 사람은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그 장면에서 나는 가슴 찡한 감동과 충격을 받았다.
이 소설에서는 완전한 선이나 완전한 악은 없었던 것 같다.
자신의 삶을 오로지 한 여자를 위해 바친 개츠비와 1920년대 미국 상류층을 대표하는 듯한 데이지.
돈과 성공을좇던 그 시대의 허상을 비판하는 내용과 서정적인 문체가 돋보였던 작품이었다.
처음엔 이해되지 않는 부분들이 많았는데, 세 번째 읽을 때에야 비로소 내용이 완벽하게 이해되었다.
이 책을 읽고 나서 1920년대 시대상을 보여주는 단어들에 대한 짧은 에세이를 썼다.
재미있게 읽은 책 중의 하나가 <The Hobbit>이다.
이 책은 영화로도 제작된 소설 <반지의 제왕>의 전편 격이 되는 소설이다.
빌보 배긴스(Bilbo Baggins)가 간달프(Gandalf)를 따라 난쟁이(dwarf)들과 함께 보물을 찾아 여행을 떠나는 것이 주요 내용이다.
이 소설만큼은 아주 가벼운 마음으로 읽었다.
판타지여서 내용이 재미있고 읽기도 쉬웠기 때문이다.
결말이 날 때꺄지 책에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이 소설의 주인공 빌보 배긴스는 모험심 없는 소심한 한 개인이었는데, 소심한 개인이 여행을 통해서 또 다른 자아를 찾아가는 과정을 그린 것 같다.
감명 깊게 읽은 책으로는 찰스 디킨스의 <A Tale of Two Cities(두 도시 이야기)>가 있다.
프랑스 혁명 당시 파리와 런던, 두 도시에서 일어나는 일을 다룬 내용이었다.
처음에는 악한 캐릭터였던 남자가 나중에는 자기가 사랑했던, 하지만 이미 다른 남자와 결혼해버린 여자를 위해 단두대로 향하는 대목에서 얼마나 눈물을 흘렸는지 모른다.
찰스 디킨스의 또 다른 작품인 <Great Expectations>.
예전에 한국어 번역판을 읽어보았기 때문에 대충 내용을 기억하고 있었는데, 막상 원서로 접하고 보니 이야기 전개보다는 찰스 디킨스의 표현력에 여러번 감탄했따.
지금 정확한 문구는 기억할 수 없지만, 주인공이 고향을 떠나면서 눈물 흘리는 장면을 마치 풍경 자체가 흐려지는 것처럼 표현했던 부분은 참으로 아름다운 모사였다.
"아! 어쩜 이런 문장을 구사했을까!"
읽는 내내 감탄이 흘러나왔던 작품이다.
토머스 하디의 <Tess of D'Urbervlle(테스)>는 여성주의적 관점에서 나를 몹시 흥분시켰다.
테스의 약혼자(엔절 클레어)가 테스의 과거 얘기를 듣고 용서할 수 없다며 파혼하는 대목에서는 분노가 치밀었다.
자신의 과거는 괜찮고 왜 여자의 과거는 용서할 수 없다는 말인가?
테스의 이야기가 어쩌면 지금의 한국 사회와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기들은 문란한 생활을 하면서도 자신이 만나는 여자는 모두 처녀이기를 바라는 한국 남자들, 그들의 이중성에 대해 이미 들은 바가 있었기 때문이다.
이 소설은 테스가 자신을 속였던 남자를 죽이고 사형을 당하는 것으로 결말을 맺는다.
읽는 내내 마치 내 일처럼 억울한 기분이 들었다.
책을 읽다가 책상을 치며 분개하기도 했다.
나는 남자와 여자가 좀 더 평등한 위치에서 만나는 이야기가 좋다.
최근에 씌어진 책 중에서는 조셉 헬러(Joseph Heller)의 <Catch-22>를 읽었다.
이 소설의 배경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지중해의 미국 공군 기지다.
주인공은 조종사 요사리언(Yossarian)대위, 연일 계속되는 출격으로 조종사 가운데 죽는 사람이 늘어난다.
요사리언 대위는 할당된 출격 임무(주어진 임무 횟수를 채워야 집에 돌아갈 수 있다)에 최선을 다하려 하지만, 출격 목표 횟수를 채울 만하면 꼭 사령관이 횟수를 상향조정했다.
결국 요사리언은 군의관을 찾아가 자신은 '정신이상'에 해당되니 출격에서 제외시켜달라고 요구한다.
제정신이 아닌데도 계속 출격하고 있으므로, 의학적으로 '정신이상'에 해당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군의관은 출격임무에서 자신을 빼달라고 공식 요청하는 행위는 스스로 '정상'임을 나타내므로, 출격에서 제외시킬 수 없다고 잘라 말한다.
군 당국에서 내세우는 논리가 너무 기가 막혀 한참이나 웃었다.
이 작품은 베트남전 당시 반전을 지지하던 많은 젊은이들로부터 폭발적인 인기를 모았다고 한다.
이 소설 제목인 'Catch-22'는 '앞뒤가 맞지 않는 모순된 상황' 이나 '진퇴양난의 곤경 혹은 딜레마'를 나타내는 용어로도 사용된다.
'나는 지금 진퇴양난에 처해 있다' 라고 할 때 'I'm in a catch 22 situation now' 라고 표현한다.
많은 양의 책을 읽다보면 '속도'가 붙는 장점이 있지만, 시대상을 나타내는 다양한 단어들을 접할 수 있다는 점에서도 유익하다.
작품이 씌어진 시대에 유행하던 자동차 이름, 패션 스타일, 요리 등의 단어들을 만날 수 있다.
독서를 통해 특정 분야의 배경지식을 얻는 것도 대단한 수확이다.
나는 전쟁을 배경으로 한 소설 <Catch-22>를 읽고 나서야 군대와 전쟁에 대한 상식들을 구체적으로 접하게 되었다.
이 책을 읽기 전까지는, 군인이 미션을 끝내야만 고향에 돌아갈 수 있다는 사실을 전혀 몰랐다.
이렇게 영어 독서을 꾸준히 한 결과는 여러 군데에서 빛을 발했다.
SAT I 시험의 'Reading' 섹션의 긴 지문들을 속독하는 것이 가능해졌으며, 책 속에 나오는 단어들 중 모르는 단어의 의미를 문맥 속에서 유추해낼 수 있게 되었다.
무엇보다 영어 에세이 쓰는 것이 수얼해졌다는 점을 꼽을 수 있다.
그건 아마도 영어에 대한 독서를 통해 '언어적 감각'을 터득했기 때문이 아닐까.
진짜로 여어를 잘하고 싶은 사람들이라면 영어 독서는 필수다.
'input' 이 많을 수록 'output' 은 좋아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4. 단어의 뜻은 문맥으로 유추하라.
5. 영어책, 목적에 따라 읽는 방법이 달라진다.
6. 피 말리는 영어 독서시험
7. 혼자 공부하는 '자립형' 인간이 돼라.
고등학교 2학년 여름방학 때 SAT I 시험을 준비하면서 속을 태웠다.
여름방학 전에 모의시험을 봤는데, 그 전 시험에 비해 점수가 전혀 안오른 것이다.
이 시험에 대비해 학교에서 따로 보충수업을 해주는 것도 아니고, 앞으로 어떻게 준비해야 할지 막막하기만 했다.
그래서 방학이 시작되자마자 SAT 전문학원에 다니려고 했다.
주변 친구들의 경우 방학 동안 서울에 있는 SAT 전문학원에 다녀오면 점수가 100점씩 오르곤 했다.
다른 친구들은 그렇게 점수가 오르는데 나만 늘 제자리인 것 같아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다.
그러나 나는 서울로 가는 기차 한 번 타보지 못하고 방학을 맞아야 했다.
서울에는 하룻밤 기거하며 학원 수업을 들을 만한 친척집조차 없었다.
상황이 이렇게 된 데다 논문 준비 사건까지 터지는 바람에 결국 혼자서 공부를 계속할 수밖에 없었다.
나의 SAT I 목표 점수는 1500점 이상이었다.
여름방학 동안 혼자 영어 소설책을 읽거나 단어 암기를 하면서 시간을 보냈고, 2학기가 시작되면서부터 본격적으로 실전 문제집을 풀었다.
10월 11일에 SAT I 시험을 본 결과, 나는 1560점을 맞았다.
'내가 과연 공부를 잘하고 있는걸까?'
항상 이런 의문이 들어 안개 속을 헤매는 기분이었는데, 어떻게 점수가 잘 나온 것일까?
나중에야 드는 생각은 여름방학 때 SAT 전문학원에 가지 못한 것이 오히려 잘된 건지도 모른다는 것이었다.
만약 내가 학원을 다녔다면 어떤 내용에 주안점을 두고 어떤 식으로 공부해야 할지 '쉽게' 배웠을 것이다.
학원에서 제시하는 스케줄대로 공부하다 보면 괜히 시간 낭비하는 일도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SAT I 시험 준비를 하면서 공부의 범위나 공부 방법을 혼자 힘으로 정했다.
매일 내가 정한 분량만큼은 무슨 일이 있어도 공부를 했다.
어떤 문제를 틀렸을 때, 왜 틀렸는지 바로바로 알지는 못했지만 오히려 끈기 있게 그 이우를 추적해가는 능력을 길렀다.
영어단어를 외우는 방법도 혼자 터득했고, 영어책을 읽으며 단어를 우추해내는 법이나 영어 에세이 쓰는 법도 오랜 시간 혼자 부딪치며 깨달았다.
누군가가 쉽게 던져주는 지식을 받아먹는 공부보다는 조금 돌아가더라도 스스로 해법을 찾아내는 방법을 택한 것이다.
이게 바로 공부의 '생존력'이 아닐까?
물론 과외나 학원 강습이 좋을 때도 있다.
원어민에게 영어를 배울 수 잇는 학원이나 중요한 문법을 배울 수 있는 학원은 영어를 공부하는 과정에서 반드시 거치게 되는 곳이다.
그러나 언어를 배우는 가장 큰 원동력은 '호기심'이라고 생각한다.
자신의 내면에서 뿜어져나오는 호기심을 다른 사람이 쉽게 던져주는 지식으로 채우다 보면 어느 순간부터는 그 호기심마저 사라지고, '해야 한다'는 강박관념만 남게 된다.
조금 시간이 더 걸리더라도 영어에 대한 실마리를 스스로 찾아가는 것.
그것이 장기적인 안목에서 훨씬 효율적인 방법이 아닐까?
제4부 공부에는 왕도는 없지만 정도는 있다
1. 노트 정리의 제왕이 되라.
공부하기가 갑자기 까다로워지는 것은 중학교 때부터다.
상식 수준에서 배우는 초등학교 때와 달리 중학교에 들어가면 과목별로 깊이 있는 공부를 시작하기 때문이다.
중학교 공부에 빨리 적응하지 않으면 점점 학습이 뒤처지게 된다.
중학교 공부야말로 대학 공부까지 이어지는 기본이다.
곰곰이 생각해보면 내가 중학교 시절에 가장 열심히 햇던 것은 노트 정리가 아닐까 싶다.
나의 노트는 여느 참고서 못지않게 정리가 잘 되어 있었다.
수업시간에 선생님이 칠판에 적은 내용은 물론 말로 짚어주신 내용까지 빠짐없이 연습노트에 적었다.
그리고 쉬는 시간이나 점심시간을 이용해 깨끗하게 다시 정리했다.
집에 돌아가면 각종 참고서나 문제집에 나와 있는 내용까지 첨가해서 완벽한 나만의 노트를 만들곤 했다.
"와! 네 노트, 정말 예술이다!"
반 아이들은 내 노트를 보면 다들 감탄사를 연발했다.
내용이 꼼꼼한 것은 물론 글씨체까지 마치 책을 인쇄한 것처럼 깔끔했기 때문이다.
낙서 하나 없이 깨끗하게 정리된 내 노트는 시험 때만 되면 친구들사이에서 인기였다.
여러 명이 내 노트를 빌려가서 나중에는 내 글씨체가 유행하기도 했다.
노트 정리를 할 때는 대단원의 제목을 네임펜으로 크게 쓰고, 소제목은 빨간색이나 파란색 펜을 이용해서 썼다.
본문 내용은 검은색 펜을, 아주 세세한 내용들은 0.3밀리미터 짜리 가는 펜을 사용했다.
그리고 중요한 부분에는 빨간 색연필로 밑줄을 긋거나 별표를 쳐놓았다.
공부를 하다가 모르는 부분이 있으면 '포스트잇'에 메모를 해서 노트에 붙여두엇다.
머릿속으로만 '내일 학교에 가서 질문해야지' 하는 것보다 질문할 내용을 따로 정리해 붙여두는 것이 훨씬 좋다.
고등학교 때 내 노트는 더욱 화려해졌다.
특히 생물은 'Won Hee'sBiology Notes (self-study version)' 이라고 이름까지 붙여두었다.
이 노트를 정리할 때면 생물책 세 권과 수업시간에 필기한 메모들이 책상위에 잔뜩 펼쳐져 있었다.
사람의 소화기계(digestive system)나 호흡기계(respiratiry system), 세포의 구조, 신경세포(nerve cell) 등 온갖 중요한 그림들이 그려져 있던 나의 생물 노트.
갖가지 색연필로 색칠까지 해두었더니, 시험 때는 생물 교과서를 보는 것보다 내 노트를 보는 것이 더 효과적일 정도엿다.
시험 기간이 되면 친구들은 내 생물 노트를 스캔해서 서로 이메일로 주고받느라 법석을 떨었다.
내 노트가 나보다 훨씬 인기가 좋았던 게 틀림없다.
노트 필기는 단순히 '적는다'는 의미 그 이상이다.
예습한 내용, 수업시간에 들은 내용, 복습하면서 참고하게 된 내용, 새롭게 알게 된 내용들과 잘 모르는 의문 사항 등이 모두 노트에 기록될 수 있다.
수업시간에 적은 노트 필기로만 만족하지 말고, 이제부터 자기만의 노트를 만들어보라.
자신의 정성이 들어간 노트를 만들다 보면 금세 공부에 재미를 붙일 수 있다.
2. 복습은 빠를수록 좋다.
지금도 기억나는 일화는 내가 중학교 2학년 때 식탁에 앉아 동생에게 공부법을 '강의' 했던 일이다.
"누나, 도대체 공부는 어떻게 하는 거야?"
어릴 때부터 개구쟁이여서 공부에는 별로 취미가 없는 동생이었는데, 중학생이 되자 생각이 달라진 모양이었다.
그때 나는 동생에게 이렇게 설면해주었다.
"잘 봐.
우리가 수업시간에 배운 지식은 우리의 머리 표면에 붙어 있게 돼.
수학시간에 배운 공식, 영어단더, 시의 주제 등이 그냥 표면세 붙어 있는 거야.
그런데 우리가 복습을 하는 순간, 머리 표면에 붙어 잇던 지식들이 머릿속으로 쏙쏙 들어오게 된단다.
복습을 하지 않으면 머리 표면에 붙어 잇는 지식들이 다 날아가버려.
그러니까 복습은 빠를면 빠를수록 좋지.
공부는 그렇게 하는 거야."
나는 연습장에 사람의 얼굴과 화살표를 그려가며 설명을 해주었다.
내가 어떻게 그런 생각을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어머니마저도 나의 '복습효과 일러스트' 에 대해 감탄하셨다.
이미 중학교 때 터득한 이 이론을 나는 나름대로 잘 실천하고 있었다.
그 날 수업에서 배운 내용은 쉬는 시간이나 점심시간을 이용해 반드시 노트 정리를 했고, 저녁이면 학원 자습실에서 혼자 복습하는 시간을 가졌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내 머리에 붙어 있던 온갖 지식들이 다 날아가버릴 것 같은 조바심을 느꼈기 때문이다.
중학생이든 고등학생이든, 공부하는 사람이라면 매일 복습하는 습관이 중요하다.
"다음에 시간 날 때 해야지."
이렇게 한두 번 미루다보면, 결국 중요한 지식들은 다 머리 위로 날아가버리고 말 것이다.
3. 시간 경영의 선수가 돼라
나의 아버지는 메모의 귀재시다.
매일 아침 작은 종이에다 '오늘의 할 일'이라고 제목을 쓰고 그 날 해야 할 일들을 빠짐없이 적으셨다.
저녁에 퇴근하신 아버지의 셔츠 윗주머니에는 항상 그 메모지가 들어 있었다.
그런 아버지의 영향을 받아서일까?
나도 어릴 때부터 '그 날의 할 일'을 계획하는 데는 일가견이 있었다.
학창시절 쓰던 다이어리를 펼쳐보면 하루하루가 수많은 계획들로 빽빽이 채워져 있을 정도다.
계획을 세운다는 것은 바로 '앞으로 내 시간은 내 마음대로 쓴다'는 의미다.
계획이란 시간을 제대로 활용하기 위한 기초 작업인 셈이다.
모든 사람들에게 하루 24시간이 주어지지만, 그 시간을 알차게 보내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무의미하게 흘려보내는 사람도 있다.
공부를 잘하는 방법뿐만 아니라 인생에서 성공하는 비법도 바로 '시간의 효과적인 경영'이 아닐까?
나처럼 학생의 신분이라면 일분 일초도 빈틈없이 잘게 쪼개서 쓸 필요가 있다.
나는 계획성이 철저하다는 이야기를 많이 듣는 편이다.
고등학교에 다닐 때에는 내가 해야 할 일을 철저하고도 세세하게 다이어리에 기록했다.
내일까지 해야 하는 숙제가 있다면, 그 숙제하는 데 걸릴 시간을 계산하고 남는 시간에 해야 할 일까지도 미리 계획을 세워 놓았다.
계획을 세워놓으면 정해놓은 양을 어떻게든 그 시간 안에 마치려고 노력하게 된다.
만약 그 시간을 넘어버리면 그 이후에 해야 할 일을 못하게 되기 때문이다.
인터넷에서 자료를 검색해서 해야 하는 숙제는 꼭 시간이 길어지곤 했다.
그럴 때는 계획표대로 일과를 마칠 때까지 잠을 자지 않는 것이 내 철칙이었다.
새벽 2시가 되든 3시가 되든 할 일을 다 마쳐야 직성이 풀렸다.
계획표 상으로 시간이 촉박한데도 스트레스 때문에 더 이상 공부가 안 될때는 '딴짓'을 허용하는 여유를 부리기도 했다.
연습장에 만화를 그린다든지, 인터넷에서 뮤직비디오를 다운받아 보면서 시간을 보내는 것이다.
그러다 보면 문득 이런 생각이 든다.
'이러고 있느니 차라리 할 일을 일찍 끝내고 자는 게 낮지.'
그 때부터는 다시 긴장감을 가지고 공부에 빠져들 수 있었다.
시험기간 계획표를 짜기 시작한 것은 중학교 때부터다.
중간고사는 2주 전부터, 기말고사는 3주 전부터 계획을 세웠는데, 계획표의 주요 내용은 어떤 과목을 언제, 몇 시간 동안 공부할 것인가에 관한 것이었다.
예를 들어 시험기간 중간에 일요일이 끼어 있고 월요일에 암기 과목 시험이 잇는 경우, 일요일에 그 암기 과목 공부를 많이 할 수 있으므로 그 전까지는 그 과목 공부를 조금 덜 해두는 식이었다.
그때는 주로 학원 자습실에서 공부를 했는데, 45분 수업을 하고 나면 10분 휴식을 알리는 종이 울렸다.
나는 읽어야 할 교과서의 범위나 풀어야 할 문제집 범위를 정하고, 종이 울림과 동시에 집중해서 공부를 했다.
분 안에 내가 정한 분량을 모두 소화할 수 있게 전력을 다했다.
다소 빡빡하다 싶을 정도로 계획을 세워서 공부하다 보면, 마음내키는 대로 하는 것보다 훨씬 시간 활용도가 높았다.
시간 경영에는 '자트리 시간 활용'도 포함된다.
나의 대포적인 자트리 시간 활용의 예로는 중학교 급식 시간에 줄서서 영어단어 외우기, 길에서 학원 차를 기다리며 줄넘기 연습하기, 고등학교 점심시간에 도시락 싸가지고 다니기 등이었다.
'그까짓 5분'이라고 생각하면 큰 오산이다.
단 5분이라도 1년이면 '1835분', 즉 남들보다 30시간을 더 공부하는셈이 된다.
하루에 10분이면 1년에 60시간, 하루에 20분이면 1년에 120시간.
과연 이것이 무시할 만한 숫자인가?
어릴 때의 습관이 평생을 간다고 한다.
내가 고등학교에 들어가서 맞닥뜨린 엄청난 양의 공부에도 기죽지 않고 그것을 거뜬히 해낼 수 있었던 것은 어릴 때부터 계획을 짜는 습관이 있었기 때문이다.
공부를 잘하고 싶은 사람이라면 시간 경영의 선수가 돼야 한다.
그래야만 시간에 쫓기거나 끌려다니지 않고, 내가 그 시간을 리드할 수 있기 때문이다.
5. 눈에 쏙쏙 들어오는 쪽지 퍼레이드
6. 목표는 항상 높게 잡아라
8. 공부의 기초는 '공부하고자 하는 의지' 이다.
9. 생활 속에서 학습을 우선 순위에 둬라
10. 교과서도 만화책만큼 재미있다.
제5부 한국 토종의 미국 대학 공략법
1. SAT I 은 내신만큼 중요하다.
2. 진짜 실력은 SAT II 에서 판가름난다.
3. 토플, 섹션별 공략이 열쇠다.
내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미국 대학교에 들어가기 위해 보는 시험 중에서 가장 영향력이 없는 것이 토플이 아닐까 싶다.
물론 대부분의 대학교가 외국인에게는 토플 점수를 요구하지만, 토플에만 매달리기보다는 SAT I 시험에 더 비중을 두는 것이 좋을 것 같다.
코넬 대학교의 경우 SAT I 언어 영역 점수가 700 이상이면 토플 점수를 내지 않아도 된다고 원서에 기재되어 있었다.
민사고 친구 중 하나는 CBT 토플 300 점 만점을 받아 신문에 났었다.
그에 비하면 나는 280점밖에 맞지 못했으니 토플에 대한 특별한 노하우도 소개할 만한 것이 없다.
토플은 2000년 10월부터 PBT(Paper-Based Testing) 방식에서 CBT(Computer Based Testing) 방식으로 바뀌었다.
PBT는 677점 만점이었지만, CBT는 300점 만점이다.
CBT의 특징은 모든 수험생이 똑같은 수준의 문제를 푸는 게 아니라 수험생의 수준에 따라 문제의 난이도가 달라진다는 것이다.
컴퓨터로 시험을 보기에 가능한 일이다.
문제 구성은 Listening 과 Structure, Reading, 그리고 Writing으로 되어 있는데, 서점에 가면 이론 정리가 잘 되어 있는 각종 서적들이 즐비하므로 문제집 추천은 생략하겠다.
다만 어떤 문제집을 구입하든 이론과 실전문제를 완전히 자기 것으로 소화하는 것이 중요하다.
SAT I 의 언어 영역 시험과 마찬가지로, 토플 시험 역시 단어를 많이 외우는 것이 중요하다.
Listening 셕션을 공부할 때는 '듣기' 에만 집착하기보다 지문을 소리내어 읽는 편이 도움이 된다.
지문을 이해하는 능력이 있어야 문제를 풀 수 있기 때문이다.
또 문제를 내는 사람의 속도와 비슷하게 읽는 연습을 함으로써 청취 능력을 향상시킬 수 있다.
Structure 섹션에서는 어디까지가 주어이고 어디까지가 서술어인지만 알아도 많은 문제를 맞힐 수 있다.
문법에 배달리지 않아도 풀 수 있는 상식적인 문제들이 많기는 하지만, 그래도 문제를 푸는 데 필요한 주요 문법 지식을 꼼꼼히 이해해두는 편이 좋겠다.
Reading 섹션에서는 단어와 독해력이 중요하다.
평소에 단어를 외울 때, 표면적인 뜻만 대충 알고 넘어가기보다 다양한 활용 예를 공부하는 것이 좋다.
문맥에 따라 단어의 의미가 달라지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독해력이라는 것은 역시 문맥의 의미를 파악하는 능력일 텐데, 공부할 때 해석을 먼저 보지 말고 어떻게든 자기 힘으로 해석하는 습관을 키우도록 한다.
한국말로 한 문장 한 문장 해석하다보면 그만큼 읽는 속도가 더디므로, 모든 지문은 영어로 읽고 영어로 이해하는 것이 좋다.
마지막으로 Writing 섹션, 주어진 코픽에 대해 놀리적으로 자신의 생각을 정리하면 된다.
시험 시간은 30분이며, '서론, 본론, 결론' 형식으로 쓰되 본론을 두 문단 정도 쓰는 것이 적당하다.
반드시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은 토픽과 관련 없는 이야기를 쓰면 안된다는 사실이다.
또 다른 채점 기준은 자신의 생각을 얼마나 유창하게 영어로 표현할 줄 아느냐이다.
시종일관 구어체를 남발하는 것보다는 세련된 단어와 문장구조를 다양하게 구사하는 것이 유리하다.
작문 점수는 6.0이 만점.
시험을 모두 마치고 나면 작문 점수를 포함한 토플 총점이 화면에 뜬다.
작문을 컴퓨터로 작성했을 경우에는 2주후, 연필로 작성했을 경우엔 4주 후에 점수를 확인할 수 있다.
4. AP로 가산점을 노려라
AP(Advanced Placement, 대학학점 사전취득제)는 고등학생이 대학 1학년 수준의 교과 과정을 배우고 시험을 봐서 미리 학점을 얻는 제도이다.
각 과목 시험 점수가 3.0 에서 5.0 사이면 대학에 입학했을 때 학점으로 인정된다.
고등학생이 AP 시험에서 좋은 점수를 얻으면 미국 대학에 지원할 때 약간의 가산점을 받을 수 있다.
하지만 배우는 동안 과제물도 많고 내용도 어렵기 때문에 공부하기가 만만치 않다.
나는 중학교 3학견 10월, 민사고 예비과정에 입학하자마자 AP 과목을 이수하게 되었다.
고등학생이 대학교 교양 과목을 한국말로 공부하는 것도 쉽지는 않을 텐데, 그걸 영어로 공부하다 보니 이건 맨땅에 헤딩하기나 다름없었다.
특히 2학년 때 시험봤던 AP 과목들은 과목 수가 많았기 때문에 날 아주 힘들게 했다.
1학년 때는 세 과목뿐이어서 시험에 집중할 수 있었지만, 2학년에 올라가서는 내신과 SAT 등 챙길 것이 너무 많은 데다 AP 공부까지 하느라 잠 잘 시간이 모자랄 정도였다.
다행히 필사적으로 공부한 끝에 AP 생물학을 비롯한 11과목에서 모두 5.0 만점을 받았다.
AP 시험을 잘 보는 방법에 대해서는 나도 알 수가 없다.
다만 내가 민사고에서 어떤 AP 과목을 어떤 식으로 공부했는지 정도만 간단하게 써볼까 한다.
* AP 미시경제학 - 내 손으로 직접 그래프를 그리며 공부
* AP 거시경제학 - 사회문제를 경제학적 관점에서 이해하기
* AP 화학 - 주관식 문제를 중심으로 준비
* AP 미적분학 BC - 문제는 혼자 힘으로 풀고 오답노트 활용
중학교 때 수학경시 공부를 한 덕분에 미적분할(Calculus)은 수월하게 공부할 수 있었다.
이 시험 역시 객관식과 주관식으로 나뉜다.
그래프를 보고 해석하는 문제나, 주어진 식을 미분, 적분을 이용해 푸는 유형이 많았다.
미적분학에서 어렵게 느꼈던 것은 미적분을 이용해서 부피를 구하는 문제였는데, 이 문제는 Barron's에서 나온 문제집을 가지고 이해가 될 때까지 풀어봤기 때문에 시험 때는 쉽게 풀 수 있었다.
수학 공부를 잘하는 비법을 내 식으로 소개하자면, 많은 양의 새로운 문제를 푸는 것보다는 단 하나의 문제라도 제대로 이해하고 혼자 힘으로 풀 수 잇을 때까지 몇 번이고 다시 풀어보는 것이다.
문제 푸는 과정을 깨끗한 공책에 적어둔 다음 나중에 그 문제를 틀렸을 때 다시 공책을 보며, 어느 부분에서 왜 틀렸는지 체크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그렇게 하면 비슷한 유형의 문제와 맞닥뜨렸을 때 절대 틀리지 않는다.
* AP 통계학 - 공식을 적용해 풀이과정을 영어로 쓰는 연습 필요
* AP 컴퓨터학 A - 프로그래밍 언어 익히고 직접 프로그램 짜보기
컴퓨터학(Computer Science)의 경우 2003년까지는 C++를 토대로 시험을 보았는데, 2004년부터는 JAVA라고 하는 프로그래밍 언어를 이용해서 시험을 본다고 한다.
이 과목 수업 때 교과서에 나오는 컴퓨터 프로그램을 처음 만들어봤다.
제일 처음 배웠던 프로그래밍은 컴퓨터 화면에 'Hello!' 라는 말이 뜨도록 하는 것이었는데, C++언어로 몇 줄을 쓰면 컴퓨터가 내 명령을 따르는 것이 정말 놀랍고 신기했다.
몇 가지 숫자를 입력하면 컴퓨터가 그 숫자들의 평균을 구하는 프로그램을 배우기도 햇다.
선생님께서는 수업시간에 교과서에 있는 것보다 조금 어렵게 프로그램을 짜보라고 하셨는데, 누군가 '됐다!' 고 환성을 지르면 일제히 몰려가 구경하곤 했다.
나중에 AP 시험을 볼 때에는 'Marine Biology'라고 하는 프로그램 구조를 알고 잇어야 풀 수 있는 문제가 나왔다.
일정한 넓이의 2차원 수조에 물고기 몇 마리가 돌아다니는데, 한 번 프로그램을 실행할 때마다 물고기가 한 단위씩 위아래와 좌우로 움직이는 프로그램이었다.
주관식에는 물고기를 대각선으로 움직일 수 있도록 해보라는 문제가 나왔다.
이 문제는 프로그램에 이미 짜여 있는 함수를 불러내 응용하는 방법으로 간단하게 풀 수 있었다.
* AP 물리학 - 어려운 물리 공식 내것으로 만들기
* AP 생물학 - 꼼꼼한 노트 필기의 덕을 톡톡히 본 과목
* AP 유럽사 - 알고 있는 지식을 취합해서 에세이 쓰는 능력 기르기
내가 제일 공부하기 어려웠던 과목이 AP 유럽사(European History) 였다.
유럽사를 담당했던 간제 선생님은 수업시간에 따로 교과서를 사용하지 않고 강의하는 스타일이었다.
그래서 쉴새없이 강의 내용을 노트에 받아적었다.
미처 받아적지 못할 때는 단어 대신 부호를 사용하기도 했다.
예를 들어 'increase' 는 위를 향한 화살표로, 'decrease' 는 아래를 향한 화살표로 나타내는 것이다.
솔직히 유럽사는 선생님의 수업을 잘 듣는다고 끝나는 게 절대 아니었다.
생물보다도 더 세세하게 알아야 하는 내용이 많았다.
또 생물과는 달리 책 몇 권을 더 본다고 해서 반드시 시험 문제에 나오는 내용을 다 알았다고 하기도 애매했다.
그래서 유럽사를 공부하는 내내 얼마나 스트레스를 받았는지 모른다.
다행히 좋은 책 한 권을 알게 되어 유럽사 공부에 큰 도움이 되었다.
<Modern European History>라는 책이었는데, 난 이 책을 두 번쯤 읽고 중요한 내용들을 내 노트에 정리했다.
유럽사의 대략적인 사건들과 인물들, 시대의 분위기에 대해서는 명확히 파악하게 되었다.
AP 유럽사 시험을 준비할 때 중요한 것은 어떤 종류의 지식을 단순히 알고 잇는 것보다, 여러 자료를 취합해서 에세이 쓰는 능력을 길러야 한다는 것이다.
아무리 많은 지식을 알고 있어도 어떤 식으로 에세이를 써야 하는지 모르면 좋은 점수를 받을 수 없다.
도입부터 결론에 이르기까지, 제시된 인용구를 적절히 활용하면서 점차 자기 생각을 추론하는 형식으로 써야 한다.
AP 유럽사 시험을 보던 날, 1시간 반 동안 객관식 문제를 풀고 20분을 쉰 다음 90분 동안 에세이 세 편을 썼다.
이 중 가장 비중이 높은 에세이는 'Document-based essay' 다.
시험지에 제시된 15개 가량의 글, 사진, 그림 등을 보고 토픽에 맞게 글을 쓰는 것이다.
토픽은 '이 시대의 종교와 정치의 관계에 대해 써라' 하는 식으로 나온다.
그러면 예시된 글과 사진, 그림 등을 분석해서 자기가 판단한 바를 논리적으로 써야 한다.
보통은 90분 중 분량이 많은 Document-based essay에 45분을 할애하고 나머지 45분 동안 두 편의 짧은 에세이를 쓰도록 권장한다.
그런데 나는 Document-based essay를 쓰는데 1시간이나 써버려서, 겨우 30분 동안 나머지 두 개의 에세이를 쓰느라 진땀을 흘렸다.
그래서 유럽사 점수는 별로 기대를 하지 않았다.
드디어 AP 점수를 확인하던 날, 해당 기관에 전화를 걸고 내 AP ID 를 입력했다.
"Your AP European History score is .... five."
컴퓨터에 녹음된 음성이 과목마다 3초쯤 뜸을 들인 후에 점수를 알려주었는데, 망쳤다고 생각한 유럽사가 5점 만점이었다.
유럽사뿐만 아니라 모든 과목이 다 만점이었다.
마지막으로 통계학 점수를 듣고 나서야 꾹꾹 눌렀던 환호성이 터져나왔다.
"와아!"
조기 졸업 때문에 이리 뛰고 저리 뛰며 힘들게 공부했던 일들이 주마등처럼 스쳐가서, 괜한 서러움에 눈물까지 흘려버렸다.
AP 시험은 공부할 때도 집요하게 해야 하지만, 시험 볼 때에는 체력 싸움까지 겹친다.
모든 과목이 다 그렇다.
한국의 일반 고등학교에서 AP를 공부할 수 있는 여건이 아직은 제대로 마련되어 있지 않다.
언젠가 그런 환경이 조성된다면 내가 AP를 공부했던 방법이 후배들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다.
5. 내신성적 잘 받는 비결은 역시 성실함과 부지런함
내신성적(GPA)은 대학에서 학습할 수 있는 능력에 대한 척도이며 미국 대학 입시에서 SAT I 점수만큼이나 중요한 항목이다.
평소 성적 관리를 잘해야 진학할 때 우리하다.
학교 성적에 충실한 학생이 기본적으로 공부할 자세가 되어 있다고 판단하기 때문에, SAT 점수가 아무리 좋아도 내신성적이 형편없으면 입학 관리처에 좋은 인상을 주기 힘들다.
민사고에서의 내신은 노력하면 얼마든지 좋은 점수를 받을 수 있는 과목이 많았지만, 물리와 영어 작문(English Language), 유럽사의 정말 성적 관리가 힘들었다.
물리의 경우, 분명히 공부는 열심히 했는데 시험을 보면 몇 문제씩 틀려서 속상했었다.
앞에서 쓴 것처럼 AP 물리학 공부를 하면서 내신성적도 조금씩 좋아지게 되었다.
내신성적을 잘 받기 위해 많은 노력을 했는데, 그 중 영어 작문 과목이 기억난다.
이 과목은 숙제로 학생을 평가하는 'Assignment'가 30퍼센트, 'Critical Reading' 시험이 20퍼센트, 중간고사와 기말고사가 나머지 0ㅍ센트의 비중을 차지했었다.
다른 과목들에 비해 수행평가 비중이 상당히 높은 편이었다.
나는 이 과목 점수를 90점 이상을 유지하기 위해 'Assignment'에 엄청난 공을 들였다.
'Assignment'는 주로 에세이를 쓰는 숙제였는데, 기껏 열심히 써가도 10점 만점 중 6~8점이 고작이었다.
선생님이 워낙 점수를 짜게 주시는 분이었기 때문이다.
에세이를 일찌감치 냈던 사람이 수정을 해서 다시 제출하면 점수를 조금씩 높여주는 게 그나마 다행이었다.
아니, 나에겐 유일한 희망이었다.
난 숙제를 무조건 일찍 써낸 후, 몇 번이고 고쳐서 10점 만점을 맞을 때까지 다시 내곤 했다.
"원희가 숙제를 네 번이나 내더니 결국은 10점을 맞았다."
선생님께서 나중엔 기가 막힌 듯 이렇게 말씀하시기도 했지만, 나로서는 어쩔 수가 없었다.
그렇게 부지런을 떨고 선생님을 괴롭혀서라도 최대한 좋은 점수를 맞고 싶었기 때문이다.
유럽사는 더 이상 얘기하지 않아도 될 것 같다.
내신성적을 잘 받는 비결은 역시 '성실함'과 '부지런함' 인 것 같다.
'웃는 얼굴에 침 못 뱉는다'는 속담이 여기서도 증명된다.
열심히 하는 학생에게 좋은 점수 안 줄 수 없을 테니까 말이다.
9. 입학 원서 쓰기와 추천서 받기
10. 좋은 에세이는 합격의 '화룡점정'
특별기고)
원희 엄마 이가희씨의 '우리 아이 공부 잘하게 만드는 법'
1. 아이의 호기심을 빠짐없이 충족시켜줘라.
2. 아이의 능력과 무관하게 양껏 공부시켜라.
일본 교육핮자 시치다 선생의 교육이론에 의하면 '모든 아기는 다 천재'다.
아기의 두뇌는 무한한 가능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얼마나 자극을 주느냐에 따라서 지능은 무한대로 올라갈 수도 있고 보통에 머무를 수도 잇다는 것이다.
나도 어린 원희를 바라볼 때 항상 그런 마음을 가지고 잇었다.
천재를 만들기 위해 기를 쓰고 영재학원에 보내거나 고액 과외를 시킨 적은 없었지만 딱 한 가지, 원희가 지적인 호기심을 느낄 수 있도록 자극을 주는 것만은 잊지 않았다.
원희가 나이는 어려도 뭐든지 잘 알아듣는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원희가 기어다니기 시작하면서부터 우리 집 벽에는 '오늘의 시간표'가 붙어 있었다.
큰 종이에 월요일부터 일요일까지 칸을 만들어 매일 할 일을 적어놓은 것이었다.
월요일 3시부터 4시까지 '그림 그리기', 화요일 3시부터 4시까지 '종이접기', 수요일 3시부터 4시까지 '만들기--수수깡' 등 유치원처럼 놀이 프로그램을 정해두었다.
연년생 아이 둘을 둔 나로서는 뭐든 가르쳐야겠다는 생각에서 시작한 일이었는데, 스케줄대로 하루를 보내다 보니 시간이 금방 잘 지나갔다.
원희가 4살이 되었을 때에는 실험 시간까지 보탰다.
요오드가 녹말에 닿으면 보라색이 되는 실험을 하자 어린 원희가 색깔이 변하는 걸 보고 아주 좋아했던 기억이 난다.
원희는 색칠공책을 한 번 사주면 앉은자리에서 다 칠해버리는 아이였다.
매번 색칠공책을 사줄 수가 없어서, 나중에는 색칠하지 않은 걸 미리 복사를 해두었다가 주기도 햇다.
학습지는 딱 한 번 시켜봤는데, 며칠 하다 싫증을 내기에 억지로 시키지는 않았다.
5살 때부터는 피아노를 배우고 싶다고 해 같은 아파트 이웃에게 레슨을 받게 했고, 유치원에 다닐 때는 그림을 그리고 싶다고 해서 미술학원에도 잠깐 보냈다.
원희가 '하고 싶어' 라고 할 때가 아니면 억지로 시키지 않앗다.
원희 아버지가 병원 인턴과 레지던트, 공중보건의를 거치는 내내 형편이 여의치 않아 사교육비에 돈을 쓸 여유가 없었다.
그래서 이리저리 지출을 줄여야 했는데 그 부분을 담당했던 게 바로 의상 구입비였다.
원희가 초등학교 다닐 때까지도 옷을 사준 일이 거의 없다.
늘상 사촌언니들 옷을 물려받아 입히거나 키가 큰 또래 친구들의 옷을 얻어다 입혔다.
그 옷을 입고 친구와 마주칠 때면 자존심이 상할 법도 한데, 싫은 내색 한 번 하지 않고 입어준 원희가 지금도 참 고맙다.
형편껏 아이 뒷바라지를 하자니 내가 부지런히 발품을 팔아야 했다.
어린이용 동화책 전집은 반드시 30~40퍼센트 할인 기회를 노려서 구입하거나 헌책을 샀다.
새로 나온 책들을 주변 엄마들과 돌려보는 건 기본이었다.
아이에게 꼭 필요한 교재가 너무 비싸다면 복사본이라도 어떻게든 구해서 썼다.
내가 시를 쓰기 시작하면서부터 원희에게 컴퓨터에 입력하는 일을 부탁하곤 했는데, 그게 아마 초등학교 1학년 때였던 것 같다.
엄마가 쓴 시를 타이핑하면서 자기도 모르게 시어(詩語)를 읽고 쓰는 연습이 되어, 나중에 전국 백일장에서 어린 아이답지 않은 성숙한 시로 대상을 타게 되었다.
영어 파닉스, 매일 일기쓰기, 시 베껴쓰기, 아빠의 해부학 책, 공룡과 화석 책...
나는 아무리 원희가 어릴지라도 공부할 수 있는 범위에 대해 '제한' 또는 '한계'를 두지 않았다.
어떤 교육 자료든 원희가 많이 접할 수 있게 해주었고, 무엇이든 원하는 만큼 공부하도록 했다.
아이가 의대생이나 읽는 의학 서적을 볼 때 '애가 뭘 알겠어?'라는 반응을 보이는 것은 정말 좋지 않다.
어린 아이의 수준에맞춘다며 교육 자료를 차단하는 경우가 많은데, 절대 그럴 필요가 없다.
어차피 아이는 모든 것을 자기 눈높이에서 받아들이기 때문이다.
어른이 아이의 교육 환경에 미리부터 한계를 두는 것은 아이의 가능성을 미리 차단하는 것과 같다.
아이의 가능성은 무한하다.
최대한 많은 걸 보여주고 들려주고 모든 질문에 성실하게 대답해주어야 가능성이 확장된다.
지금 생각하면 큰 돈 들이지 않고도 아이의 두뇌 자극을 위해 여러모로 애를 썼던 것 같다.
아이는 항상 엄마가 준비해주는 여건만큼 공부를 하기 때문에 한시도 게으름을 피울 수가 없었다.
아이의 잠재력을 무한대로 키워주려면 역시 돈보다 더 중요한 게 '관심'이요, '부지런함'이 아닐까 싶다.
3. 영어는 일찍 시작해서 꾸준히 가르쳐라.
원희가 돌이 되기 전의 일이다.
동네 아파트를 지나는데 갑자기 등에 업힌 원희가 어떤 집 창문을 올려다보며 이렇게 말했다.
"호.랑.이. A.B.C.D."
이 곳을 지나갈 때마다 그 집 창문에 붙어 있는 스티커를 원희에게 읽어주기는 했지만, 며칠 만에 글자를 외우다니!
너무 놀라서 속으로 '혹시 우리 아이가 신동 아닐까?" 하고 생각할 정도 였다.
지적인 흡수가 빠른 아이임에 틀림없다는 판단이 들어서 당장 알파벳과 간단한 단어가 그려진 포스터를 사서 벽에 붙여두었다.
원희는 포스터에 있는 알파벳을 몇 번 따라 읽더니 금세 외워버렸다.
영어에 관심을 보이는 원희에게 무엇이라도 해줘야 할 것 같아서, 영어 동요 카세트 테이프를 들려주거나 '세서미 스트리트' 같은 비디오를 보여주었다.
영어 비디오는 무작정 오래 보여주기보다 하루에 2시간으로 제한해서 보여주면서 나도 항상 옆에서 같이 봤다.
아이가 신이 나서 춤을 추며 영어 노래를 따라 부르는데 엄마가 전혀 관심을 보이지 않으면, 아이도 덩달아 심드렁해질 것이라는 생각에서였다.
원희가 정식으로 영어를 배운 것은 6살 때부터였다.
마침 미국에서 공부하고 온 친구가 아이들에게 영어를 가르치고 싶다고 하기에 맡겼는데, 원희가 무척 재미있어 했다.
"엄마, 오늘 쿠키 만들었어요. 이렇게 생긴 건 트라이앵글이고, 이렇게 생긴 건 스퀘어예요."
원희는 종이에다 삼각형, 사각형을 그리며 영어 배운 얘기를 조잘조잘 늘어놓았다.
생활 속에서 요리나 놀이를 통해 영어를 배우다 보니 원희는 매일 그 집에 가는 날을 손꼽아 기다렸다.
그러더니 금세 'Hello!' 나 'How're you?' 라는 인사를 집에서 써먹곤 했다.
그런 수업을 1년 가까이 하다가, 초등학교 입학 즈음부터는 집 근처의 영어회화학월에 보냈다.
그 곳에서 패턴 잉글리시와 생활영어를 배우면서 영어가 많이 느는 듯했다.
다른 엄마들은 영어학원에 일주일에 두 번이나 세 번 정도 보내면 된다는 생각이었지만, 나는 좀 달랐다.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매일 보냈다.
언어라는 건 단 하루라도 안 쓰면 퇴보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초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영어회화학원만큼은 꾸준히 다닐 수 있게 해주었다.
덕분에 원희는 중학교에 올라가서도 문법에 대한 이해가 빨랐고, 같은반 친구들에 비해 영어를 잘했다.
그래서 나는 원희가 영어를 아주 잘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민사고에 들어가면서 이런 환상을 와장창 깨졌다.
그때부터 원희의 피눈물 나는 영어전쟁이 시작되었다.
그만큼 어렵고 시간이 많이 필요한 게 언어다.
영어는 빨리 시작할수록 좋다.
외국어레 대한 두려움이 없는 상테에서 배울 때 습득 속도가 빠르기 때문이다.
거기다 놀이를 통해 영어를 재미있게 시작하면 더욱 좋다.
단, 어린 아이에게 너무 영어를 배우라고 강요하다 보면 아이가 심리적인 압박감에 못 이겨 영어를 싫어하게 될 수도 잇으므로 조심할 것.
국어 교육을 먼저 확실히 시킨 다음에 영어를 병행하는 것도 중요하다.
원희의 경우는 초등학교 때까지 국어와 영어를 7대3의 비율로 공부하게 했다.
그러다 민사고에서 들어가 영어로 공부를 해야 하는 단계에 이르러서는 그 비울이 반대가 되었다.
요즘은 초등학교 3학년부터 학교 교과에 영어 과목이 있어서 원희 때와는 상황이 많이 다르지만, 영어를 일찍 시작해서 꾸준히 공부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것만은 그 때나 지금이나 변함 없는 진리라고 생각한다.
4. 책만 읽어줘도 한글은 통째로 뗄 수 있다.
보통 아이들이 한글을 처음 공부할 때는 자음과 모음을 따로 써가면서 익히게 마련인데, 원희는 희한하게도 한글을 글자 단위로 익혀서 저 혼자 뗐다.
그건 아마도 내가 책을 읽어줄 때 글자를 하나하나 짚어 가며 읽어주었기 때문인 것 같다.
나는 원희가 돌도 채 되기 전부터 손으로 글자를 짚어가면서 그림책을 읽어줬다.
"오리는 꽥꽥, 병아리는 삐약삐약."
이렇게 읽어준다고 해서 아이가 바로 한글을 깨치는 건 아니지만, 앞에서 말한 것처럼 아이가 알아듣든 못 알아듣든 상관없이 'input'을 최대한 많이 해주자는 생각에서 한 일이었다.
어느 순간부터 원희는 내가 책을 펼치자마자 '오리는 꽥꽥' 하고 글씨 읽는 흉내를 냈다.
그러다 두세 살 쯤 되어서는 평소 엄마가 읽어주던 동화책을 꺼내 글자를 한 자씩 손으로 가리키면서 읽었다.
"12시를 알리는 종이 울리자, 신데렐라는 허겁지겁 궁전을 빠져나왔어요."
가까이 가서 보면 원희의 손가락이 입으로 읽고 있는 부분보다 아래쪽을 가리킬 때도 있었지만, 한글이 한 글자 한 글자로 이루어져 있으며 대충 어떻게 읽는다는 원리를 감지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어느날인가는 동화책에 있는 '릉'을 가리키며 "엄마, 이거 '으르릉' 할 때 '릉' 이지?" 하고 묻기도 했다.
4살이 된 원희는 책 베껴쓰는 걸 아주 좋아했다. <신데렐라>, <피노키오>등 동화책을 잔뜩 펼쳐놓고 엄마가 사준 열 칸 짜리 국어공책에 한 글자 한 글자 베껴썼다.
글자를 쓸 때는 획순이 종종 바르지 못할때도 있었지만, 어린 아이가 앉은자리에서 2시간씩 글씨를 쓰는 집념에는 나조차 놀랄 때가 많았다.
그렇게 베껴쓴 공책이 원희에게는 새로운 읽을 거리였다.
이웃집 아이들이 놀러오면 자기가 베껴쓴 공책을 펼쳐들고 읽어주기도 했다.
"조용히 해. 책 읽을 때는 집중을 해야지, 집중을!"
아직 유치원도 안 들어간 아이가 또래 친구들을 앉혀놓고 그림도 없는 공책을 들고 동화를 읽어주는 모습이라니!
자기가 선생님이라도 된 양 행동하던 원희 모습은 지금도 떠올려도 웃음이 난다.
원희가 한글을 완전히 뗀 것은 5살 때였다.
아이가 얼마나 한글을 아는지 궁금해서 한글 교재를 사준 것인데 모르는 글자 하나 없이 술술 다 읽었다.
아이들마다 언어를 습득하는 방식이 다 다르겠지만, 'ㄱ, ㄴ, ㄷ'부터 익히는 것보다는 원희처럼 동화책을 통해 글자를 통째로 기억하는 방법도 꽤 괜찮은 것 같다.
그렇게 하면 단순히 글자만 아는 게 아니라 책 읽는 즐거움도 일찍 알게 되고, 자기 책을 소중하게 여기는 습관도 생기니까 말이다.
5. 책 읽어주는 엄마의 노하우 몇 가지
모든 일에는 노하우가 필요한 법인데, 특히 책을 읽어줄 때는 세 가지 점에 비중을 두었다.
첫째는 아이가 아직 한글을 모를 때 글자를 하나하나 짚어가면서 읽어주는 방법이고, 둘째는 엄마가 동화구연가처럼 감정을 듬뿍 실어 읽어주는 것이며, 셋째는 책과 관련된 각종 교구를 준비해주는 것이다.
글자를 짚어가면서 읽어주면 앞에서 얘기했듯이 아이가 글자를 통째로 기억해서 한글을 깨치게 하는 데 좋다.
그리고 엄마가 동화구연가 역할을 해야 하는 이유는 '재미' 때문이다. 아무리 훌륭한 교재를 샀다 해도 아이가 흥미를 느끼지 못하면 말짱 헛것이다.
아이가 처음 책을 접할 때 '책 읽는 건 참 재미나는 거구나' 하고 느끼게 만들어야 한다.
즐겁거나 슬픈 장면에서 감정을 풍부하게 살려 책을 읽어주면 아이들은 무척 좋아한다.
원희는 초등학교 입학 전까지만 해도 책을 몇 권 뽑아가지고 와서는 꼭 "엄마가 읽어줘"라고 했다.
책 읽어주는 엄마가 반드시 해야 할 일은 아이가 읽는 책과 관련된 교구를 준비해는 것이다.
나는 책과 관련된 만들기나 그리기 재료를 준비했다.
원희가 책을 읽고 나서 느끼는 여운을 만들기나 그리기를 통해 한껏 누리게 해주었다.
그런 과정을 통해 원희의 상상력이나 표현력이 더 풍부해졌을 거라고 믿는다.
6. 아이가 쓰는 일기에 코멘트를 달아줘라.
"엄마, 어떻게 해요? 일기가 밀렸는데 날씨를 알 수가 없어요."
초등학교 1학년 여름방학이 끝나갈 무렵, 원희는 잔뜩 울상을 지었다.
학교에 들어와 처음 맞는 방학이라 몹시 들뜬 탓에 일기가 많이 밀렸던 것이다.
개학 전날 그걸 다 쓰는 것도 힘들거니와 날씨를 알 수가 없어서 저 혼자 발을 동동 굴렀다.
"그건 원희 일이니까 원희가 알아서 해."
날씨를 추측하는 일에 내가 동참해서 원희의 수고를 덜어줄 수도 있었지만 그렇게 하지 않았다.
한번 고생을 하고 자기 힘으로 해결해봐야 똑같은 실수를 하지 않는 법이니까.
그 날 원희에게 일기 쓰기의 중요성에 대해 다시 한번 주지시켰다.
"일기는 매일매일 쓰는 거야. 어떻게 며칠 전 일을 오늘 지어내서 쓸 수 있겠니?
이제부터라도 일기는 절대 미루면 안 된다. 알았지?"
원희는 밤을 꼬박 새서 일기 숙제를 마치고는, 그 다음부터 정말 하루도 빠지지 않고 일기를 썼다.
그렇게 6학년 때까지 쓴 일기장이 수십 권에 이른다.
나는 숙제와 공부만큼이나 일기 쓰기를 강조하는 편이다.
특히 초등학생들이 일기를 쓰면 좋은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첫째, 글쓰기의 다양한 패턴을 익힐 수 있다.
보통 어린 아이들은 '나는', '오늘은' 으로 일기를 시작하는데, 그 외에 더 다양한 방식의 도입부가 가능하다는 걸 배우게 되는 것이다.
일기의 처음을 다른 사람과의 '대화'로 시작하는 방법, 시간으로 시작하는 방법, 장소에 대한 묘사로 시작하는 방법, 날씨에 대한 이야기로 시작하는 방법 등을 생각해볼 수 있다.
< 내가 피아노 연습을 막 끝냈을 때, 전화벨이 울렸다.
친구 제은이에게서 온 전화였다. >
이런 식으로 마치 소설을 쓰듯 일기를 쓸 수 있다고 가르쳐주면 아이들은 금세 따라한다.
아이들 눈높이에서는 이런 식의 일기가 창작 활동의 일환이 될 수도 있다.
어느 날 원희 일기장을 보니 '앤아!' 라고 부르며, 누군가에게 편지를 쓴 듯한 일기가 있었다.
그 날 하루 겪었던 이야기, 독후감 등을 '앤'에게 들려주듯 일기를 쓴 것이었다.
아마도 그 즈음에 읽은 <안네의 일기>에서 감명을 받고 상상의 소녀 '앤(Anne)' 을 설정해둔 모양이었다.
어찌나 다정다감하게 글을 썼는지, 내가 '앤'이라면 행복하겠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일기에 날씨를 표시할 때에도 단순히 '맑음', '흐림' 으로 끝내는 것보다는 '털장갑이 그리운 날', '두 손이 꽁꽁 언 날', '부채가 필요한 날' 등 섬세한 표현법을 쓰도록 유도할 수 있다.
원희에게 그런 연습을 시켰더니, 어느 쌀쌀한 날의 원희 일기는 '마치 살갗에 소름이 돋아나듯 나뭇잎 위에도 작은 소름이 돋아나는 것처럼 보였다'는 묘사로 시작되고 잇었다.
묘사와 의인법의 개념을 스스로 파악해냈던 셈이다.
묘사란 어떤 사물이나 관념을 그림을 그리듯 언어로 표현하는 것이다.
글을 쓸 때 묘사가 풍부해지면 어떤 글을 써도 시적인 감수성이 묻어나오게 마련이다.
일기를 쓰면 좋은 점 또하나.
일찍부터 정확한 문법을 익힐 수 있다.
주어와 서술어, 문장의 호응 등 문법적인 오류를 고쳐가면서 점차 국어 문법에 익숙해진다.
원희는 일기를 쓰면서 원고지 사용법까지 익혔다.
그래서 초등학교 고학년이 되면서부터는 일반 줄 노트에 글을 써도 반드시 들여쓰기를 했다.
뭐니뭐니 해도 일기가 주는 가장 큰 선물은 '구성력'이 아닐까 한다.
한 페이지,혹은 두 페이지 분량의 일기를 쓸 때에도 나름대로 기승전결의 구조가 필요하므로, 일기를 열심히 쓰다 보면 나중에 글짓기나 논술을 수월하게 할 수 있다.
일기 쓰기로 이와 같은 효과를 얻으려면 엄마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
문법적으로 옳고 감수성도 풍부하며 구성력을 갖춘 일기를 쓸 수 있도록 앞에서 유도해조고 뒤에서 챙겨주는 역할이 분명 필요하기 때문이다.
나는 원희가 쓰는 일기장에 하루도 빠지지 않고 코멘트를 달아주었다.
"그래, 오늘은 원희가 숙제를 하느라 힘드렀구나, 하지만 분명히 보람을 찾을 수 있을 거야."
"소풍 가서 본 풍경이 어땟는지 구체적인 묘사가 더 들어가면 좋겠구나."
아이가 적어 놓은 글의 내용뿐만 아니라 표현기술에 대한 지도까지 다양한 코멘트를 달아주었다.
원희가 동물을 관찰하고 써놓은 일기가 실제와 다르거나 어떤 지식을 잘못 알고 있을 때 명확히 짚어주는 것도 잊지 않았다.
그렇게 코멘트를 달아주다 보니 결국 원희의 일기장은 엄마와의 대화 창구가 되었다.
그런데 일기는 하루 중 언제 쓰는 것이 가장 좋을까?
아이가 잠자기 직전에 일기를 쓰게 하는 건 별로 좋지 않다.
아이가 대충 끝내고 자고 싶어하기 때문이다.
나는 원희에게 저녁식사 전에 숙제를 다 하게 하고, 저녁을 먹은 후에 바로 일기를 쓰게 했다.
그러면 원희는 최대한 집중해서 일기를 썼다.
주어진 시간 안에 일기를 다 써야함 남는 시간에 책을 읽거나 게임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일기는 하루의 반성이라는 의미도 있지만, '평생의 기록' 이라는 차원에서 꾸준히 쓸 만한 가치가 있는 것이다.
그 당시 자신의 마음과 느낌을 담아놓은 기록은 사진이나 비디오 테이프에서는 절대로 찾아볼 수가 없다.
내 마음을 기록하는 일기.
아이들이 열심히, 정성껏 쓰도록 만들자.
7. 독서와 글쓰기는 모든 공부의 기본!
원희가 어렸을 때 남편은 병원에서 지내는 시간이 많았다.
두 아이를 혼자 돌봐야 했기 때문에, 그 시간을 최대한 교육적으로 보내려고 여러 아이디어를 짜냈다.
그 가운데 하나가 방안 가득 책을 채우는 일이었다.
우리 집에서 가장 큰방을 서재로 삼기로 했다.
그 방의 3개 벽면에 책장을 들여놓고 방 한가운데에는 커다란 탁자를 놓았다.
어디선가 책세일을 한다는 소리만 들리면 달려가서 아이들이 읽을 만한 책들을 사다 날랐다.
거기다 남편 전공서적까지 꽂아놓으니 모양새가 작은 도서관이나 다름없었다.
아이 둘과 함께 탁자 앞에 앉아 책을 읽으면 학구적인 분위기가 물씬 풍겼다.
그런 분위기에서 자란 탓인지 원희는 책 읽는 걸 무척 좋아했다.
초등학교 때부터 중학교를 마칠 때까지 일주일에 평균 서너 권씩은 읽은 것 같다.
물론 처음에는 내가 '독서 리스트'를 짜주며 독후감 쓰기 숙제를 시켰기 때문에 어느 정도 의무감으로 책을 읽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중학교에 올라가면서부터는 어찌나 책을 좋아하는지 다음날 학교 수업이 있는 것도 잊고 밤새 책을 보곤 했다.
"원희야, 그만 자라."
내가 참견이라도 할라치면, 원희는 '위장전술'을 쓰면서까지 손에서 책을 놓지 않았다.
자기 방문 밖으로 불빛이 새어나가지 않도록 이불 속에 스탠드를 숨겨놓고 그 안에서 책을 읽을 정도였다.
"지금 그걸 꼭 읽어야겠니?"
내가 걱정스럽게 물어보면 원희의 뾰루퉁한 대답이 이어진다.
"결말이 궁금해서 잠이 안 온단 말이에요."
원희가 이불 속에서 스탠드까지 동원해가며 읽은 책이 아마도 <해리포터와 비밀의 방>이었을 것이다.
성장기의 아이들은 모든 지식을 스펀지처럼 빨아들인다.
그래서 독서가 중요한 것이다.
이왕이면 엄마가 교과서나 각종 정보를 취합해 추천 도서 목록을 짜주고, 아이가 그 목록을 중심으로 다양한 독서를 할 수 있게 도와주는 것이 좋다.
아이가 어느 정도 독서량이 채워지면 내면의 무언가를 표현하고 싶어한다.
그런 욕구는 학교나 집에서 자극을 받을 때 더 강렬하게 표출된다.
나는 원희가 책을 읽는 족족 독후감을 쓰게 했고, 정기적으로 글쓰기를 시켰다.
문장을 문법에 맞게 쓰고 글을 기승전결에 맞게 구성하는 연습은 물론, 묘사하는 글과 논리를 갖춘 글 등 다양한 형태의 글쓰기를 체험하게 했다.
감성적인 글이든 논리적인 글이든 어릴 때부터 꾸준히 써보지 않으면 '글을 쓴다는 것' 자체가 낯설어질 수 잇다.
원희가 민사고에 들어가서 그 많은 양의 시험공부와 어려운 영어 에세이도 잘해낸 걸 보면, 어릴 때부터 많은 책을 읽고 많은 글을 쓰면서 다져왔던 내면의 자신감이 상당한 영향력을 발뤼한 것 같다.
8. 암기력, 훈련으로 좋아질 수 있다.
언젠가 텔레비젼에서 일본의 한 초등학교 교장 선생님이 기적의 공부법으로 화제를 불러일으킨다는 사연을 본 적이 있다.
매일 학생들에게 똑같은 수학 문제를 풀게 하고 많은 양의 한자와 과학 상식을 외우도록 훈련시켜서, 결국 전교생이 다 공부를 잘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나도 그 교장 선생님만큼은 아니지만 원희에게 외우기 공부를 좀 시킨 적이 있다.
원희가 4학년 때 한자로 씌어진 고사성어 카드와 영어 낱말 카드를 매일 10개씩 외우게 했다.
카드는 내 손으로 직접 만들었다.
두꺼운 도화지를 적당한 크기로 자른 후 <Vocabulary 2200>에 나오는 영어단어들과 고사성어집에 나오는 한자성어들을 적었다.
와이셔츠 상자로 5상자 분량쯤 만들었으니, 내 욕심도 여느 엄마들 못지않았던 셈이다.
원희에게 한자성어 10개, 영어단어 10개를 주고 10분 동안 외우게 했다.
그러고 나서 내가 카드를 하나씩 들고 확인을 했다.
"자, 이 고사성어는 어떻게 읽지?"
"사필귀정이오. 일 사(事), 반드시 필(必), 돌아올 귀(歸), 바를 정(正)."
" 이 단어는 어떻게 읽지? 뜻은?"
"Surprise! 놀라다!"
다음날에는 어제 외운 10개의 영어단어와 10개의 한자성어를 복습하고 새로운 카드를 10개씩 외우게 했다.
또 그 다음 날에는 그 전까지 배운 20개의 영어단어와 20개의 한자성어를 복습하고 새로운 카드를 10개씩 외우게 했다.
열흘쯤 지나 그간 외운 영어단어와 한자성어가 각각 100개씩 되면 아이들이 지겨워하지 않도록 새로운 카드를 꺼내 보여주었다.
솔직히 혼자 카드를 수백 장씩 만들 때는 팔도 아프고 너무 힘들었다.
그러나 초롱초롱한 눈을 빛내며 쉼 없이 단어를 외워대는 원희를 보면 뿌듯한 마음에 힘이 절로 났다.
그런 훈련을 한 덕분인지 원희의 기억력과 암기력은 다른 아이들에 비해 상당히 좋은 편이다.
"난 머리가 나빠서 안 돼."
내 아이가 나중에 이런 핑계를 대지 않게 만들자.
세상에 나쁜 머리는 없다.
내 아이의 두뇌를 잘 훈련시켜서 어떤 공부든 한계는 없다고 믿게 만들어보자.
9. 교과서 진도에 맞춘 현장학습을 시켜라.
초등학교 4학년이 되면 사회과목이 부쩍 어려워진다.
전주의 부채니, 안성의 칠기니, 담양의 죽제품이니 하는 낯선 도시와 특산물과 함께 포항제철소나 광양제철소처럼 도시별 산업에 대한 내용이나 역사 유적지까지 등장한다.
"원희가 사회과목을 너무 어려워하면 어쩌나..."
슬슬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좋은 방법이 없을까 고민하다 생각해낸 것이 '선행 현장학습'이었다.
교과서에 나오는 지역에 미리 답사를 가는 것이다.
수려한 볼거리는 물론 맛있는 먹거리까지 널려 있으니, 아이들이 교과서에 등장하는 낯선 도시와 유적지를 부담 없이 인식하게 되었다.
그 해 여름방학 휴가는 온 가족이 동해안 일대를 돌아다녔다.
강원도 속초에 가서 회도 먹고 바다 구경도 한 다음 강릉, 삼척을 거쳐 포항까지 내려갔다.
원희가 6학년이 될 때까지 여름 휴가 때면 이런 식으로 답사 여행을 다녔다.
우리 식구가 답사여행을 다닐 때 꼭 지켜야 할 규칙이 있었다.
바로 안내 팻말을 소리내어 읽는 것이다.
"자, 분황사 석탑 팻말을 누가 읽어볼까? 원희가 읽어볼까?"
남편이 넌지시 시키면 원희는 '분황사 석탑, 국보 30호 ... ' 하면서 끝까지 읽었다.
이렇게 읽은 것은 메모를 해두었다가 반드시 그 날의 일기장에 쓰도록 했다.
아이들이 학년이 올라갈수록 교과서 진도에 밎춘 선행 현장학습이 필요하다.
단순히 놀러다니는 것과는 다른 얘기인데, 부모가 교고서에 나오는 내용을 토대로 답사 여정을 짜고 아이들은 그 답사에서 뭔가 배우는 것이 있어야 한다.
여행 한 번 을 가더라도 아이의 교과과정에 맞게 가는 것.
조금은 귀찮은 일이지만, 가끔씩이라도 아이를 위해 시간을 내보는 건 어떨까?
10. 자기 일은 자기가 알아서 하게 하라.
"엄마, 저 <허클베리 핀의 모험> 원서 좀 사서 보내주세요.
'톰 소여' 가 아니라 '허클베리 핀' 이에요."
원희가 민사고 예비과정에 들어가자마자 내게 책을 보내달라고 부탁했다.
'영어 독서 리스트'에 있던 책이었다.
엄마가 평소 자주 헷갈리는 걸 잘 알기 때문에 '톰 소여가 아니라 허클베리 핀'이라고 강조를 했던 모양이다.
그러나 나는 여지없이 <톰 소여의 모험>을 보내고 말았다.
원희의 예상이 딱 들어맞은 것이다.
원희 아버지는 '오늘의 할 일 1, 2, 3, 4'를 메모해서 꼭 실천하는 사람이지만, 나는 건망증이 심해서 오늘의 할 일을 적어둔 쪽지를 어디에 두었는지 찾는 사람이다.
그러다 보니 간혹 원희가 부탁한 내용을 전혀 엉뚱한 쪽으로 기억할 때가 많았다.
엉뚱한 책을 보낸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나중에야 드는 생각은 이런 엄마의 성격이 오히려 원희에게 도움이 된 건 아닐까 하는 것이다.
엄마의 기억력을 믿을 수 없게 된 원희는 스스로 자기 일을 챙기는 데 도사가 되어버렸다.
사실 어릴 때부터 원희는 독립심이 강해서 '원희가 할래' 라는 말을 자주 하곤 했다.
초등학교 입학 초기에 원희는 '바른글씨 쓰기'라는 쓰기 숙제를 밀린 적이 있었다.
선생님이 3월에만 숙제 검사를 하고는 몇 달 동안 안 하다, 여름방학 직전에 갑자기 쓰기 공책을 가져오라고 한 모양이다.
그 날 원희는 밤새 울면서 쓰기 숙제를 했다.
내가 좀 도와주고 싶어서 몇 줄 써줬더니 그걸 지우개로 다 지우고 눈물을 뚝뚝 흘리며 자기가 새로 썼다.
"원희가 쓸 거야..."
다음 날 학교에서는 그냥 넘어갈 수도 있는 일이었는데 원희만 숙제를 해오는 바람에 단체기합을 받았다고 한다.
원희는 중학교 때부터 직접 문제집을 사다 풀면서 스스로 성적 체크를 했다.
매번 시험을 치르는 과정에서 엄마가 한 일은 별로 없다.
그렇게 독립심이 강한 아이도 민사고에 다니면서 엄마의 지원이 필요한 경우가 많이 있었는데, 그 때마다 나는 별 도움이 못 됐다.
영어 원서 구해주는 일은 늘 제목이 헷갈렸고, 대입 원서를 쓸 때도 그다지 해줄 수 있는 일이 없었다.
그래서 내심 걱정했는데, 내 딸 원희는 공부의 정글 속에서 이미 생존력이 강한 아이로 변신해 있었다.
원서 쓰는 것도, 추천서 받는 것도, 그리고 에세이 쓰는 것도 혼자 알아서 해냈다.
그래서 원희가 10개 대학 입학 자격을 얻었을 때, 내 마음은 기쁘면서도 한편으로 놀라웠다.
많은 어머니들이 자식을 사랑하는 마음에 너무 많은 걸 해주려고 애쓴다.
하지만 부모가 해줄 수 있는 일은 아이가 한창 성장기에 있을 때 공부하는 분위기를 만들어주는 것, 그 이상도 아닌 것 같다.
아이를 사랑한다면 아이가 어려움을 겪는 과정도 여유를 가지고 지켜볼 필요가 있다.
그렇게 해야 공부뿐만 아니라 인생이라는 긴 마라톤에서 혼자 결승점까지 뛰어가는 힘을 기를 수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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