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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이야기

용산, 호국용사를 만나다 06301115 용산구소식

작성자HyunKy|작성시간25.11.15|조회수29 목록 댓글 0

6.25 참전 국가유공자의 희생과 헌신

서울 용산보훈회관에서 만난 피태용(89) 어르신은 또렷한 목소리로 74년 전의 기억을 들려주었습니다.

'1950년 6월 25일, 전쟁이 커졌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나는 열여섯 살 중학생이었습니다.

책가방을 메고 학교에 다니던 나의 일상은 하루아침에 뒤바뀌었지요.

전쟁이라는 게 그렇게 무서운 줄 몰랐습니다.

 전쟁 당시 형은 강원도 평창에서 인민군과 싸우다가 다리에 총상을 입고 후송되었는데,

이틀 동안 형의 곁을 지키면서 참 많은 생각을 했습니다.

총상으로 고통스러워하는 형의 모습을 보며 '나도 군에 들어가 나라를 위해 뭔가 해야겠다'는 마음이 들더군요'

피태용 어르신은 학도병으로 지원했지만 나이가 어려 바로 참전하지 못하고 두 해를 기다려 18세 되던 해,

나이를 스무 살이라고 속여 자원입대를 하셨다고 합니다.

이후 피태용 어르신은 제주에서 8주간 군사훈련을 마치고 29사단 창설 멤버가 되어 강원도 인제에 배치된 후

헌병(군사경찰) 병과를 부여받게 됩니다.

전투병은 아니지만 전시에 내부 질서를 유지하고. 기밀을 보호하며. 주요 시설과 지휘부 경호, 병력과

물자의 이동을 통제하는 임무를 수행하던 어느 날, '1953년 7월 27일, 정전협정이 체결됐다는 소식이 들려왔습니다.

말로 다 표현하기 어려운 복잡한 마음이 들더군요.

안도감도 있었고, 하망함도 있었습니다.

돌아오지 못한 전우들과 희생된 민간인들이 생각났습니다.

그래도 평화가 찾아왔다는 건 큰 축복이지요.

나는 이제 아흔을 바라보는 나이가 되었고, 국가 유공자로서 제복을 입고 나서면 많은 사람들이 알아봐 주십니다.

묵묵히 조국을 위햐 청춘을 바친 사람들이 너무 많았어요.

그 덕분에 오늘의 대한민국이 있지 않나 생각합니다.

젊은 세대에게 남기고 싶은 말을 묻자, 어르신은 잠시 숨을 고르고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지금 우리가 누리는 자유와 평화는 절대 당연한 것이 아니라 수많은 희생과 헌신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입니다.

그 사실을 잊지 않고, 감사하는 마음으로 살아간다면 그것이 진짜 보훈이 아닐까 합니다.'

피태용 어르신의 마지막 말은 짧았지만, 오랜 세월이 응축된 울림이 있었습니다.

그 눈빛 속에서, 조국을 향한 깊고도 진한 사랑을 본 듯해 인터뷰 도중 잠시 말을 잇지 못했습니다.

대한민국의 오늘을 만든 국가 유공자께 깊은 감사와 존경을 전합니다.                                  박상근 용산구명예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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