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미 어워즈가 지난 1일 열렸다.
1959년 시작해 올해로 68회를 맞은, 말 그대로 세계 최대 음악 시상식이다.
'그래미'라는 이름의 어원이 궁금한 독자도 있을 것이다.
이 상의 이름은 '그라모폰(gramophone)'에서 나왔다.
그라모폰은 1887년에 밀 베를리너가 개발한 역사상 최초의 '평평한 원반형 레코드' 재생장치다.
베를리너는 1898년 음반사도 직접 설립했는데, 이것이 오늘날 클래식 음반의 명가가 되는 도이체 그라모폰이다.
올해 그래미의 뜻밖의 주인공은 미국 이민세관집행국(ICE)이었다.
올해의 앨범상을 받은 히스패닉 가수 배드 머니, 올해의 노래 부문 수상자인 빌리 아일리시를 비롯한
여러 뮤지션들이 수상 소감 자리에서 ICE를 향해 직접적인 비판을 쏟아냈다.
물론 미국에서도 논란이 없지는 않았다.
특히 공화당 지지층을 중심으로 '무슨 자격으로 그런 얘기를 하느냐'는 날 선 반응을 보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갈수록 지루해지는 국내 시상식을 떠올리면 이란 풍경이 부럽기는 하다.
한국의 시상식은 대부분 뻔한 소감투성이에 필요 이상의 겸손으로 가득 차 있다.
이는 시상식만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 사회 전반의 풍경이기도 하다.
모두가 알고 있지만 바뀌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국내에서는 많은 사람이 '골든'과 '아파트'의 '올해의 노래' '올해의 레코드' 수상 실패를 아쉬워했다.
여기저기서 인종차별을 주장하는 목소리가 폭증하기도 했다.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반응이다.
나 역시 해외에서 인종차별 아닌가 싶은 경험을 몇 번 한 적이 있다.
그럼에도 이번 결과를 인종차별이라고 단정 짓기에는 눈에 밟히는 장면도 있다.
예를 들어 배드버니의 경우 '모든 곡을 스페인어로 부른 음반'으로는 최초로 올해의 앨범부문 상을 수상했다.
히스패닉 뮤지션 중 스페인어가 아닌 영어 음반으로 올해의 앨범 부트로피를 처음 거뭐진 주인공은 그 유명한 산타나다.
2000년 42회 그레미에서 명곡 '스무드' 가 수록된 (수퍼내추럴)로 이 상을 거머쥐었다.
산타나를 비롯한 히스패닉 음악이 미국 시장에 침투한 지는 60년 정도됐다.
히스패닉 인구는 2025년 기준 미국 전체의 약 20%로 백인 다음 가는 숫자를 자랑한다.
'미국 내 히스패닉 GDP'만 따로 떼면 세계 5위 경제대국 수준과 맞먹는다는 분석도 있다.
반면 아시아계의 인구 비중을 살펴보면 8% 정도 수준에 그친다.
이 가운데 한국이 가운데 한국계는 200만명 안팎으로 추산되는데 아시아계 중 5위에 해당하는 수치다.
인구 규모는 단순한 숫자가 아니다.
어떤 문화가 보편적감각으로 스며드는데 발판이 되어주기 때문이다.
K팝이 일궈낸 성취는 위대하지만, 냉정히 말해 미국에서 히스패닉만큼 역사가 오래되었거나
일상적 문화로 자리 잡은 건 아니라고 봐야 한다.
그래미는 미국 로컬 시상식이다.
현재 그래미 투표 위원은 1만5000명 정도다.
특히 올해만 여러국가의 음악 관계자 3800명을 신규 회원으로 받았는데 40세 미만이 절반 이상, 58%는 유색인종,
35%는 여성에 해당되었다.
'그래미는 너무 하얗다'는 주장이 과거에는 사실에 가까웠을지라도 이제는 설득력을 잃을 수 밖에 없는 일이다.
희소식도 있다.
2000년대 이후 미국 내 인구가 가장 빠르게 증가한 계층이 바로 아시아계다.
이런 과정을 바탕으로 K팝이 현상을 넘어 일상으로 진입하는 순간 수상은 자연스럽게 따라올 것이다.
그날이 언제 올지는 확언할 수 없다.
그러나 근라이 조금씩 다가오고 있다는 점만큼은 분명하다. 배순탁 음악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