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지교회 / 20150920 주일오전예배 / 정광수목사님 | |
분류 | 주일오전예배 |
제목 | 부활의 소망을 가진 자 |
성경 | 누가복음 24:36~49 |
정리 | 성지교회 청년부 |
성경말씀(누가복음 24:36~49)
36.이 말을 할 때에 예수께서 친히 그들 가운데 서서 이르시되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하시니
37.그들이 놀라고 무서워하여 그 보는 것을 영으로 생각하는지라
38.예수께서 이르시되 어찌하여 두려워하며 어찌하여 마음에 의심이 일어나느냐
39.내 손과 발을 보고 나인 줄 알라 또 나를 만져 보라 영은 살과 뼈가 없으되 너희 보는 바와 같이 나는 있느니라
40.이 말씀을 하시고 손과 발을 보이시나
41.그들이 너무 기쁘므로 아직도 믿지 못하고 놀랍게 여길 때에 이르시되 여기 무슨 먹을 것이 있느냐 하시니
42.이에 구운 생선 한 토막을 드리니
43.받으사 그 앞에서 잡수시더라
44.또 이르시되 내가 너희와 함께 있을 때에 너희에게 말한 바 곧 모세의 율법과 선지자의 글과 시편에 나를 가리켜 기록된 모든 것이 이루어져야 하리라 한 말이 이것이라 하시고
45.이에 그들의 마음을 열어 성경을 깨닫게 하시고
46.또 이르시되 이같이 그리스도가 고난을 받고 제삼일에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날 것과
47.또 그의 이름으로 죄 사함을 받게 하는 회개가 예루살렘에서 시작하여 모든 족속에게 전파될 것이 기록되었으니
48.너희는 이 모든 일의 증인이라
49.볼지어다 내가 내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것을 너희에게 보내리니 너희는 위로부터 능력으로 입혀질 때까지 이 성에 머물라 하시니라
녹취자료 |
우리가 예수를 영접하는 그 순간 모든 것이 변화됩니다. 우리의 신분은 마귀의 자식에서 하나님의 자녀로 바뀌어지고 잃어버렸던 하나님의 형상이 회복되었습니다. 지금 내 안에 나와 함께하시는 예수 그리스도 되신 그분이 모든 문제의 해답되신 것입니다. 우리는 창세기 1장 27절의 잃어버렸던 하나님의 형상이 회복되었고 1장 28절에 나오는 축복을 누릴 신분으로, 새로운 피조물로 거듭난 것입니다.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다고 우리에게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축복을 누리도록 성령께서 내 속에 내주하시며 나의 갈 길을 인도하시며 능력으로 역사하시는, 그래서 나를 가장 축복된 길로 인도하실 뿐 아니라 하나님의 계획을 이루는 곳에 내 인생이 쓰임 받도록 이끄시는.. 내 힘으로 안 될 때는 그 분이 능력으로 역사하시겠다는 약속받은 신분으로 우리를 불러주신 것입니다.
우리의 시민권은 어디에 있죠? 하나님 나라에 있습니다. 천국시민권을 가진 자로서 영생을 맛보며 살아가도록 우리가 부름을 받은 것입니다. 해답되신 그리스도가 나와 함께 하시기 때문에 문제가 와도 전혀 염려할 것 없습니다. 왜요? 해답되신 그리스도가 나와 함께 하시기 때문입니다. 그 이름으로 기도할 때 흑암이 결박당하고 하나님의 천사를 파송해서라도 응답하시겠다고 약속하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하나님이 주신 형상이 회복되었기 때문에 생육하고 땅을 정복하고 다스릴 수 있는 권세가 이미 내게 주어졌습니다. 이미 다 이루신 그리스도께서 나와 함께하시는 신분인겁니다. 그래서 우리는 모든 문제와 사건을 복음으로 보는 눈이 열려져야 하는 것입니다. 새롭게 재해석을 해야 합니다. 과거에 내가 살았던 삶의 방식을 뛰어넘어야 하는 겁니다. 옛날에는 문제생기면 누가 해결하죠? 내가 해결하고 사람을 의지했어요. 그러나 이제는 문제를 그분에게 맡기라고 우리에게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너희 염려를 다 주께 맡겨 버리라.” 라고 말씀하시고 있는 겁니다. 내게 임한 모든 문제와 사건들을 이미 하나님께서 다 알고 계시고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것입니다. 반드시 그 속에는 축복된 계획이 들어있는 겁니다. 그러므로 문제를 복음의 눈으로 재해석하라고 말씀하고 있는 겁니다. 문제 속에 하나님이 뭘 요구하고 있는지, 무엇을 갱신하기를 요구하고 계신지, 반드시 하나님이 주신 모든 문제 속에는 이유가 있어요. 이걸 우리가 찾아야 하는 겁니다.
다니엘이 조서에 어인이 찍힌 것을 알고도 예루살렘을 향하여 문을 열어두고 하루 세 번씩 기도했어요. 왜? 걸리면 사자굴에 던져지는데.. 다니엘이 뭘 본거죠? 하나님의 계획을 봤다는 얘기예요. 사울왕이 계속 다윗을 죽이려고 했을 때 다윗이 뭘 본 것 인가하면 ‘아.. 사울왕이 귀신들렸구나!’ 시각자체가 달라지는 겁니다. 이 눈이 열려지게 되면 정말 복음 가진 자는 이 세상이 끝이 아니잖아요. 우린 뭐가 기다리고 있죠? 영원한 하나님나라가 기다리고 있어요. 정말 복음을 누리게 되면 죽어도 좋다고 하게 되요. 우리가 문제를 보면 바른 해석이 나오게 되어야 하는 겁니다. 우리가 왜 기도하는 것인가? 문제 속에 담겨있는 하나님의 뜻을 찾기 위해서입니다. 우리는 모든 사람을 볼 때도 복음의 눈으로 보고 재해석해야 합니다. 교회안의 잘나고 똑똑한 사람들이 어지럽게 합니다. 왜? 옳은 말만하니까, 그리고 똑똑한 사람들은 영향력을 교회에 많이 미치니까... 아주 합리적으로 말합니다. 근데 안에 뭐가 없죠? 복음이 없어요. 맞는 말, 바른 말을 한다고 해서 다 맞는 말은 아닙니다. 12명의 정탐꾼이 가나안을 정탐하고 돌아왔어요. 10명은 정확하게 보고했어요.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요, 너무 좋은 땅인데 어마어마하게 큰 아낙 자손들을 보았고, 어마어마한 성벽을 보았다고.. 올라가면 죽는다고 했어요. 틀린 말 한 거 아닙니다. 맞는 말, 그것이 망치는 거라구요. 그 말한 자들을 하나님이 어떻게 했다고요? 다 죽였어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불신앙을 심었어요. 중직들이 교회 안에서 아무리 맞는 말이라도 복음으로 재해석하고서 말을 해야지 맞는 말하고도 성도들의 믿음을 떨어뜨리는 말을 하면 그건 틀린 말이거든요.
다윗이 사울왕을 보면서 어떻게 보았다고요? 귀신들린 자로 불쌍하게 보는 겁니다. 복음으로 문제를 재해석하고 봐야하는 겁니다. 서울에 제가 잘 아는 모 교회, 청년사역을 정말 열심히 했고, 수천명이 모였어요. 많은 책도 지었어요. 이 분이 여자를 잘못 건드려서 칠계(7번째 계명)를 범했어요. 들통 나자마자 교회에서 쫓겨났어요. 온 한국교회가 매도하고 매장시켰어요. 여러분 어떻게 해야 할까요? 만약 정 목사가 칠계를 범하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그럴리는 없겠지만 뭐로 보란 얘깁니까? 복음으로 해석할 수 있는 눈이 열려져야 하는 겁니다. 다윗도 뭐했죠? 그것보다 더하죠. 밧세바를 취하고 들통 날까 싶어 그 남편을 죽인 겁니다. 다윗에게 있었던 깊은 영적문제입니다. 다른 사람이 정말 말도 안 되는 잘못을 범하게 되었을 때도 무슨 눈으로 보는 겁니까? 복음의 눈으로 보아야 하는 겁니다. 율법은 정죄의 기능이어서 율법의 잣대로 보면 다 죽여야 되요. 다윗도 돌로 쳐죽여야 되요. 예수님이 뭐라고 얘기하셨나요? 죄 없는 사람이 돌로 쳐죽여라! 남을 정죄 할 수 있는 권한 자체도 없어요. 뭐로 보라고요? 복음의 눈으로 볼 수 있는 눈이 열려져야 하는 겁니다. 오히려 불쌍히 여기고 기도해줘야 하는 겁니다. 우리는 새로운 피조물입니다. 지금까지 살아온 삶의 방식 자체를 바꿔야 되는 겁니다. 우리에게는 뭐가 기다리고 있습니까? 영원한 하나님 나라가 기다리고 있습니다. 이 땅이 끝이 아니잖아요. 이제는 삶의 방법 자체가 달라져야 하는 겁니다.
1.그리스도가 해를 받고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야 할 것을 증언함.
예수님께서 해를 받으시고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야 할 것을 증거하셨다고 말씀하죠. 갈릴리 계실 때에 “너희에게 어떻게 말씀한지를 기억하라 인자가 죄인의 손에 넘겨져 십자가에 못 박히고 제 삼일에 다시 살아나야 하리라 하셨느니라.” 예수님은 분명히 약속하셨습니다. 내가 다시 살아난다고.. 부활의 당연성입니다. 부활의 필연성입니다. 그래야 죄 문제 해결 할 수 있기 때문에.. 부활의 절대성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부활, 인간의 근본문제의 핵심이 뭔가? 십자가와 부활입니다. 사단에 속고, 죄를 범해, 하나님 떠난 인간의 근본문제, 이 문제를 주님이 어떻게 해결하셨죠? 하나님 만나는 길을 어떻게 여셨습니까? 죄와 사단의 문제를 해결하시고 하나님 만나는 길을 열어 주신 것입니다. 바로 십자가 부활로 인간의 근본 문제가 해결된 것입니다. 예수님이 부활하셨다는 것은 “내 인생의 모든 문제를 끝냈다.” 라는 선포가 바로 구원입니다. 만약에 예수님의 부활이 없으면 우리가 예수님을 믿는 것이 다 헛것이요. 예수 부활이 없으면 우리 죄의 문제 해결되지 않아요. 예수 부활이 없으면 사단의 대가리가 꺾어지지 않아요. 예수가 부활하심을 인하여 그리스도 되심을 확정한 사건입니다. 그분이 생명의 주인으로 사단의 대가리를 박살 낸 그분이 지금 나와 함께 하시는 겁니다.
예수님 부활하신 것은 부활의 첫 열매가 되셨다고 말씀하십니다. 고린도전서 15장 20절 말씀 보면 “이제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사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셨도다.” 했습니다. 우리의 부활의 모델이 누가 되었다고요? 예수님의 부활이 모델이 된 겁니다. 그러면 예수님 부활 후 어떤 몸이었을까요? 문을 닫고 있는 제자들에게 그 안에 예수님께서 나타나셨어요. 제자들이 깜짝 놀라 예수님을 무엇으로 보았어요? 영으로 보았어요. 그래서 예수님이 말씀합니다. 내가 영도 가졌지만 육신도 있다고 하시면서 내 손과 발을 보고 만져보라. 영은 살과 뼈가 없다고 말씀하시면서 부활체의 모습을 보여주셨습니다. 그리고 음식도 먹었습니다. 내가 부활체면 어떤 부활체인 것인가?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는 지금 우리가 가지고 있는 육체와는 다른 육체로 예수님께서 부활체를 입고 제자들이 있는 장소에 나타나신 겁니다. 바로 그 육체가 우리가 장차 예수님 재림 때의 부활체를 우리에게 보여주시는 겁니다. 이 몸 가지고는 우리가 천국을 갈 수 없어요. 가까운 달나라를 가도 이 몸 가지고는 달나라 못갑니다. 우주복 입어야 살잖아요. 이 몸 가지고 천국 가고 싶어도 못 갑니다. 그래서 우리는 죽어서 예수님이 입으신 부활체를 우리도 입어야 되는 것입니다.
장차 우리가 가야될 그 나라, 영광된 그 나라에 우리는 이 부활체를 입고서 갈 것입니다. 바로 예수님의 부활은 우리가 입을 부활의 모형입니다. 바로 예수님께서 다시는 썩지 않을 죽지 않을 몸으로 예수님의 몸이 변하게 된 것처럼 장차 우리도 썩어 없어지거나 죽지 않을 신령한 몸으로 변화 받아서 영원토록 그 나라에서 왕 노릇하게 되지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 땅에 살면서 복음 누리며 살아야 합니다. 영생을 맛보며 멋있게 복음을 누리면서 복음을 증거하며 전도자의 삶을 살다가 어디까지 가야 되는 겁니까? 천국 가야 되는 겁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그동안 우리는 메시지의 핵심이 이 땅에서 잘 사는 쪽으로 이 땅에서 복 받는 쪽을 자꾸 강조해 왔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예수를 왜 믿나요? 궁극적인 예수 믿는 목적 자체는 천국 가는 겁니다. 그 나라 가는 겁니다. 영원한 그 나라에 상급을 위하여서 이 땅에서 준비하는 삶을 사는 겁니다.
2.죽은 자들이 어떻게 다시 살아나며 어떠한 몸을 입는가(고전15:35~49)?
문제는 그럼 난 죽고 나면 어떻게 다시 삽니까? 초대교회에 어떤 문제가 있었던가 하면, 부활한다는 이야기를 천국 이야기를 하게 되니까 초대교회 성도들이 하는 말이 예수님께서 빨리 오셔야지 죽고나면은 어떻게 다시 살겠냐? 이게 의문이 되었어요. 이 문제 때문에 데살로니가교회에, 고린도교회에 많은 문제들이 생겨났을 때에 바울이 이 부분에 대해서 명쾌하게 설명을 합니다. 사실 우리가 죽으면 영혼과 육체가 분리 돼서 영은 하나님께로 올라가고 육체는 흙으로 돌아가게 되는 겁니다. 제가 오래된 무덤을 공사 중에 파보게 되니까 아무것도 없어요. 다 녹아버려서 시커먼 것만 남지 아무것도 없어요. 머리카락 빼고 피부는 다 없어질 거고, 요새 화장들 많이 하는데 안 남아요. 그러면 우리는 생각하길, 아무것도 없는데 우리가 어떻게 다시 살아나는 것인가? 그래서 바울이 설명하기를 모든 생물에는 씨앗이 있지 않느냐? 그 씨앗 안에 호박이나 참외나 형체가 있는 것이 아니지 않느냐 수박씨를 심게 되면 수박씨 안에 눈에 보이지 않는 조그마한 “눈” 이것이 계속적으로 분화가 되어서 거기에 줄기가 나고 가지를 붙이고 그리고 잎이 나고 꽃이 피고 열매 맺기까지 그 안에 다 들었어요. 우리에게 뭐가 있게 되면? 예수의 생명의 씨가 있게 되면 그 씨로 인하여서 나를 부활시켜주겠다고 약속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게 현실적으로 지금 증명되고 있잖아요. 우리에 갖고 있는 수 조억개가 넘는 우리 몸에 각 세포 세포들마다 우리 몸에 모든 정보가 그 세포 안에 100% 다 들어있어요. 그 세포 하나를 복제해서 증식 시키면, 사람을 만들 수 있는 모든 능력들이 세포하나 마다 다 들어있어요. 생명의 씨가 있게 되면 하나님께서 마지막 때에 우리를 살려 주겠다고, 홀연히 변화가 되리니 썩지 않고 죽지 않는 예수님이 오셨던 부활체로 우리가 있게 될 것을 약속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왜 죽어야 되죠? 성도의 죽음이 왜 영광스럽다고 이야기 하는 것인가 하면, 이 육체가 죽어야 무슨 옷을 입는 겁니까? 새로운 영광의 육체를 우리가 입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 주님께서 재림 주로 오게 되었을 때에 우리를 그 나라로 인도하시는데 그러면 의문이 있습니다. 그러면 우리가 죽고 나면 재림 때까지 무엇을 합니까? 지난주 메시지 중에 십자가 우편 강도에게 예수님께서 뭐라고 말씀하셨지요? 네가 오늘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가서 무엇을 예비하러 가셨다고요? 천국을 예비하러 가셨다고 주님께서 말씀을 하셨지요. 가셨다가 다시 오겠다고 말씀하셨는데, 그 기간 동안 우리는 낙원에서 다시는 추위도 더위도 눈물도 없는 그곳에서 우리가 주님을 기다리게 되는 겁니다.
그런데 누가복음 16장 19~31절 말씀 보면 거지 나사로도 죽고 부자도 죽지요. 거기에 예수님께서 뭐라고 말씀하시는가 하면 부자가 지옥에 가서 고통 중에 바라보면서 하는 부자의 소원이 나와요. 나사로를 살려서 보내서 내 형제들이 예수 안 믿고 있는데 분명히 나를 따라서 지옥에 올 건데, 제발 보내가지고 지옥에 오지 않도록 그들에게 뭐해달라고? 복음 전해 달라고.. 하나님께서 말씀합니다. 나사로가 살아서 간다 해도 안 믿을 놈은 안 믿는다. 세상의 전도자가 있는데 전도자의 말을 듣고서 예수 믿어야 한다고 분명히 말씀하셨어요. 다음 주 우리 추석 명절입니다. 예수 안 믿는 내 부모 형제 내 친척들 내 이웃들 내 친구들 안 믿으면 어디 간다고요? 지옥가요. 성경에 분명히 말씀하고 있습니다. 천국과 지옥은 분명히 있고요 죽은 자의 소원이 무엇인지 압니까? 내 자식만큼은 내 형제 만큼은 내가 있는 고통에 장소에 오지 않기를 원하는 것이 죽은 자의 소원이요. 예수님이 재림 할 때에 신자만 부활하는 것이 아닙니다. 불신자도 부활 합니다. 신자는 생명의 부활로 불신자들은 심판의 부활로 나오게 되는 겁니다. 불신자들은 심판받아서 지옥가기 위해서 부활한 것이고 신자들은 천국에 상급을 위해서 심판 앞에 서게 되는 겁니다.
지옥의 모습을 단테가 쓴 그 신곡이라는 곳에 지옥에 모습을 묘사를 했는데 1지옥부터 9지옥까지를 표현해 놨어요. 제일 혹독한 지옥의 밑바닥 지옥에는 누가 들어간 것인가? 그 분이 단테가 표현한데로 가롯 유다가 들어가 있고 그 다음 시저를 열세 번 찢어서 죽였던 그 브루터스가 들어가 있고 몇 명 열거해 놓았어요. 지옥의 모습을 어떤 지옥은 똥물 지옥, 기어 나오면 또 집어놓고 똥통에.. 어떤 지옥에는 벌레가 달라 들어서 극도에 고통을 주면서 갉아 먹는 무는 이런 지옥들을, 구더기도 죽지 않는 지옥이요. 소금에 불 치듯이, 그 고통을 견딜 수 없는, 물 한방의 자비도 긍휼도 없는 그 지옥 속에 지 애비 마귀 따라서 가게 되는.. 우리가 전도를 왜 해야 되나요? 이 사실을 정말 믿어진다면 여러분들이 견딜 수 없는 마음이 생겨나야 되는 겁니다. ‘야! 내 남편, 내 자식들, 내 부모들 전부 여기 가겠구나?’ 그런데 내 마음에 아무 마음에 감격이 없다? 감동이 없다? 하나님 말씀 안 믿는 거지요? 이것이 제 말이 아니고 성경에 뭐라고 이야기 했습니까? 나는 천당 가고 여러분 남편은 지옥가고.. 기회는 언제 밖에 없지요?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라.” 살아 있을 때 믿어야 되는 겁니다.
성도들은 무엇을 받는다고요? 하나님 기뻐하는 일들을, 전도와 선교를 내 인생에 얼마나 쓰임 받은 만큼.. 여러분 선교 그냥 하는 게 아닙니다. 그 나라의 상급을 준비하는 선교.. 그냥 십일조 내는 게 아닙니다. 그 나라를 준비하게 되는.. 이 부분을 두고서 바울이 설명을 합니다. 해의 영광이 다르고 달의 영광이 다르고 별과 별들의 영광이 다르다고 이야기 합니다. 영광이 달라요. 천국은 꼭 같이 가는데 부끄러운 구원을 받는 사람들도 있고 영광스러운 구원을 받아서 영원토록 그 나라에서 왕 노릇 할 자도 있어요. 여러분들은 어떻습니까? 영광스러운 구원을 받을 거 같습니까? 겨우 예수 영접하고 턱걸이 해가지고 부끄러운 구원 받고 가실 거 같습니까? 왜 우리가 복음 때문에 헌신하며 수고 합니까? 주님 뭐라고 말씀하셨지요? 어린 소자에게 냉수 한 그릇 대접 한 것도 그 상을 내가 결코 잊지 않겠다고 말씀합니다. 선지자의 이름으로 선지자를 대접하면 선지자의 상을 받을 것이요. 전도자의 이름으로 전도자를 섬기고 도우면 전도자의 상을 받겠다고 약속하고 있는 겁니다. 선교를 위해서 우리가 왜 기도합니까? 선교를 우리가 왜 합니까? 그리고 우리가 헌금을 왜 합니까? 전도를 왜 합니까? 그 나라가 분명히 있기 때문에..
이 땅에 사는 것이 끝이라고 그러면 오늘 예배드릴 이유 자체도 없어요. 어차피 구원 받은 건데 뭐.. 내세가 분명히 있기 때문에 그 나라의 상급에 차등이 있기 때문에 내가 헌신하는 겁니다. 올림픽 메달 따기 위해서 수고하는 운동선수들, 레슬링 선수가 한 장면 나오더라고요. 나오는데, 아령이 무게가 하나에 10kg도 넘는 것으로 땀을 뻘뻘 흘리면서, 그리고는 운동장도 그냥 달리는 것이 아니고, 화물차 타이어 큰 거 있죠? 그것을 매달아서 끙끙대면서 비지땀을 흘리면서 달리는 거예요. 왜? 메달 따기 위해서.. 우리가 헌신을 왜 합니까? 그 나라의 상급이 있기 때문입니다. 없으면 대충 살다가 가면 되잖아요. 성경에서 뭐라고 약속하고 있습니까? 분명히 그 나라가 있기 때문에, 고린도전서 15장 58절 말씀 보면 “그러므로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견실하며 흔들리지 말고 항상 주의 일에 힘쓰는 자들이 되라. 이는 너희 수고가 주 안에서 헛되지 않은 줄 앎이라.” 소망이 우리를 부끄럽게 하지 않습니다. 죽는 것이 끝이 아니오. 우리에게는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가 기다리고 있는 겁니다. 그 나라를 사도 요한이 보고서 묘사를 하죠? 하나님이 최고의 걸작품을 준비해 놓으시고 그 나라에서 영원토록 왕 노릇하면서 그 상급을 누리도록 하나님께서 준비해 놓으신 겁니다.
제가 예비역 육군 병장입니다. 제대하고 나니까 계급이 안 올라가더라고요? 10년 가도 예비역 병장.. 그전에는 주민등록증에 예비역 병장이라고 썼는데, 요즘은 안 써놨더라고요. 죽을 때까지 예비역 병장이에요. 여러분 천국 가게 되면 이 땅에서 마지막 순간에 여러분들이 가졌던 그 계급장 가지고, 이뤄뒀던 그 상급 갖고서 영원토록 어떤 사람은 일등병으로 살 것이고, 어떤 사람은 영원토록 병장으로 살 것이고, 어떤 사람은 장교로, 어떤 사람은 스타가 돼서 살겠죠. 많은 사람들을 옳은 대로 인도한 사람을 하늘의 뭐처럼? 별과 같이 빛나리라.. 뭐하도록? 스타 되게 하겠다고 약속해 주셨습니다. 우리가 3천제자 운동을 왜 합니까? 서남아선교 왜 합니까? 후대 운동을 왜 합니까? 돈 아까워서 돈 한 푼 못 내고, 시간 나도 딴 짓거리하는데, 왜 하는 것이죠? 내 돈 들어가는데, 아까운데 왜 하는 겁니까? 그 나라가 있기 때문에..
3.예수님은 우리를 이 세대에 부활의 증인으로 부르셨다(눅24:47-48).
하나님은 우리를 이 세대에 부활의 증인으로 부르셨습니다. 다메섹에서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났던 사도바울, 즉시로 각 회당에서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임을 전파하니.. 정말 부활하신 예수님 만난 자들은 예수님을 증거하게 되어 있는 겁니다. 오늘 본문 속에서도 “그 이름으로 죄 사함을 받게 하는 회개가 예루살렘에서 시작하여 모든 족속에게 전파될 것이 기록되었으니 너희 이 모든 일들에..” 뭐 하라? 증인이라고 말씀하는 겁니다. 예수님의 부활을 보았거든요. 이 제자들이 그 순간부터 뭐 하는 겁니까? 예수 부활했음을 증거했어요. 이것 증거하다 예수님의 열두 제자 몽땅 다 순교했어요. 부활하신 예수님을 정말 우리가 만나게 되면, 복음을 체험하고 누리게 되면 우리 눈이 열려져서 세상 가운데서 사단에 속아서 저주 가운데 빠진 자들이 눈이 열려서 보이는 겁니다. 이것이 천명입니다. ‘저들이 예수 믿지 않으면 저들이 다 지옥 가겠구나!’ 견딜 수 없는 마음이 생겨나는 것, 이것이 천명의 시작입니다. 안타까운 마음 가지고, 마가다락방에 이들이 모여서 왜 전혀 기도에 힘썼죠? 예수가 부활하신 것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안타까운 마음으로 이 복음 아니면 저들이 다 망할 것인데.. 절박한 마음으로 초대교회에 모여서 전혀 기도에 힘쓰게 됐을 때, 성령의 충만한 역사가 임하게 된 것입니다. 그냥 가만히 있는데 성령충만이 임하지 않습니다. 뭐 하는 것? ‘이 복음만이 정말 해답인데, 이 복음 몰라서 내 형제 내 식구가 정말 죽어가고 있는 것이로구나.. 정말 저들을 살려야 되겠구나! 이 복음의 증인 되어야 되겠구나!’ 이 마음 갖고 기도하는 그에게 뭐 하시겠다고요? 성령으로 충만하게 하시겠다고 약속하고 있는 겁니다. 그 결과로 일어난 사건 자체가 사도행전 2장 사건이잖아요. 바로 이 비밀을 깨달은 자에게 하나님께서 소명을 주시고 내게 사명을 주셔서, 이 사명 감당하도록 나를 불러주신 겁니다.
우리 마음속에 정말 ‘이 복음 전해야 되겠구나!’ 이 마음이 안 생겨나는 것은 아직도 내 마음에 안 와 닿는 것이죠. 이들은 예수 이름 때문에 어려움을 당하면서도 “사도들은 그 이름을 위하여 능욕 받는 일에 합당한 자로 여기심을 기뻐하면서 공회를 떠나니라 그들이 날마다 성전에 있든지 집에 있는지 예수는 그리스도라고 가르치기와 전도하기를 그치지 아니하리라.” 바울은 돌에 맞아 죽어가면서도 부활의 당연성을 가는 곳곳마다 증거했어요. 예수님은 십자가와 부활로 그리스도가 되셨습니다. 우리에게 이제는 현장 보는 눈이 열려져야 합니다. 초대교회는 이 부활신앙을 가슴에 품고서 죽음의 위협 가운데서도 그들은 복음의 증인으로 섰습니다. 무엇을 알기 때문에? 죽음이 끝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기 때문에. 죽음이 끝이라면 악착같이 살아야 합니다. 죽음이 끝이라면 악착같이 사기 치고 도둑질을 해서라도 잘 먹고 잘 살아야 합니다. 왜요? 죽으면 끝나는데.. 남이야 욕을 하든 뭐라고 하든, 사기 치고 거짓말을 해서라도 잘 먹고 잘 살아야 하는 거예요. 그러나 우리는 뭐가 기다리고 있는 겁니까? 그 나라가 있어요.
초대교회에 로마에 원형 경기장에 크리스천들이 잡혀 와서 옹기종기 둘러앉은 그 곳에, 수많은 군중들이 콜로세움에서 내려다보고 있는 그 장소에, 일주일을 굶겼던 사자들을 풀어서 뛰쳐나와서 물어 죽이는데, 아무도 도망을 안 가요. 다 찬송 부르면서 즐겁게 기꺼이 다 죽었어요. 기꺼이 화형도 당했어요. 왜 죽을 수 있죠? 죽음이 끝이 아니기 때문에.. 뭐기 때문에? 이 예수님의 부활을 보았거든요. 죽어도 다시 살뿐 아니라, 그 나라가 있다는 사실을 정말 확신하게 될 때, 죽음이 그들을 막지 못했어요. 정말 이 소망을 가진 자들은,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가 “그리 아니하실지라도 우리는 왕의 금신상에게 절하지 않겠나이다.” 무엇을 가진 것입니까? 부활신앙이죠. 그래서 바울은 “나는 날마다 죽는다.” 고 이야기 합니다. 왜요? 죽는 것이 두렵지 않아요. 뭐가 있기 때문에? 부활의 영광과 함께 그 나라의 최고의 상급이 준비되고 있기 때문에..
바울은 무엇을 본 것인가 하면, 고린도후서 12장 1~3절 말씀을 보면 셋째 하늘에 천국의 놀라운 영광을, 말로 다할 수 없는 영광을 보았다고 말합니다. 바울은 뭐라고 고백하는 것인가?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족히 비교할 수도 없다고.. 지금 고난 당하는 것은 그 날의 상급과 그 날의 영광과 비교하면 이건 아무것도 아니다.. 주 예수께 맡은 사명, 이 은혜의 복음을 증거하기 위해서는 나의 생명을 조금도 아까운 것으로 여기지 않는다고.. 바울은 고백을 합니다. “나는 그 나라 정말 빨리 가고 싶다.” 이것 보았거든요. 이 땅에 더 살아야 될 이유 자체가 없어요, 사실은. 그 나라 가는 것, 아 빨리 가고 싶은데.. 내가 살아야 할 이유가 있다면, 단 한가지 때문에 산다. 전도자의 삶을 살기 위하여서, 이 복음 증거하기 위하여서 내가 오늘 하루를 더 산다.. 우리는 왜 지금 잘 먹고 잘 살려고 노력을 하죠? 목적이 어디에 있는 겁니까? 어떤 분은 그러더라고요. 할머니가, 죽어야 되는데.. 내 손자 태어나는 거 볼 때까지.. 또 손자 태어나는 것 보더니, 손자 재롱 떠는 것 더 보고 싶어가지고.. 삶의 목적이 달라요, 우리는. 잘 먹고 잘 사는 것이 내 인생의 참 목적이 아니잖아요. 분명히 그 나라가 기다리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부활의 모델이 우리에게 되어 주신 것입니다.
우리는 잠시 잠깐 살다가 이 세상을 떠나갑니다. 우리에게 영원한 하나님 나라의 영광이, 부활의 영광이 나를 기다리고 있는 것입니다. 이제는 세상의 헛된 일에 우리의 인생을 낭비하지 말라고 말을 합니다. 하나님의 나라를 위하여서, 교회를 위하여서, 선교와 전도를 위해서 인생을 투자하라고 우리에게 말씀을 합니다. 왜요? 우리의 수고가 뭐기 때문에? 결코 헛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우리 한번 자신을 점검해 봅시다. ‘나는 겨우 턱걸이해서 부끄러운 구원을 받을까?’ ‘나 정도면 그래도 빛나는 영광스러운 구원을 받지 않겠나?’ 돌이켜 보아야 되는 겁니다. 인생 짧습니다. 잠시 잠깐 끝나는 겁니다. 나에게 생명 있는 그 날까지, 정말 이 복음 때문에.. 이제는 우리가 새로운 피조물로 새로운 인생을 살아간다는 것은, 바로 이 땅에서 살아갈 모든 필요는 그분께서 이미 완벽하게 준비해 놓으셨고, 이제는 왜 축복을 누리는 것인가? 그 나라를 위해서 살기 위해 하나님이 예비해 놓으신 것을 우리가 누리면서, 정말 그 날을 준비하는 인생을 살아가야 되는 것입니다. 이 목적 가지고서 우리가 하나님 앞에 기도하게 될 때, 하나님께서 주의 성령으로 충만하게 하시겠다고 약속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제 오늘 이 부활의 소망을 가지시고, 부활의 소망을 가진 자가 어떤 인생을 살아야 할 것인지, 오늘 이 말씀 속에서 깨닫고 새롭게 도전하는 우리 모든 성도들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합니다. 주님.
이 땅의 내 인생이 끝이라면, 우리는 어떻게든 잘 먹고 잘 살기 위해서 노력해야 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영원한 나라의 소망을 가진 자들입니다. 이미 예수는 그리스도입니다. 이 비밀 깨닫고 내가 먼저 복음을 누리며 이 복음의 증인되게 하여 주옵시고, 오늘 하루를 살아도 그 나라를 준비하며 삶을 살아갈 수 있는 저희 인생 되기까지 하나님이 간섭하여 주옵소서. 부활의 소망을 가진 새로운 피조물의 인생을 살아갈 수 있도록 주께서 저희를 권고하여 주옵소서.
주 예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