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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작 시와 글방

박명[薄明]의 벽

작성자청운의 꿈|작성시간16.09.10|조회수41 목록 댓글 2

 

 

 

 

박명[薄明]의 벽

                                                                

                                                                - 청운의 꿈

                                     

 

 

문도 창도 없는 흰 벽뿐인

나는, 아직도

반쯤 누운 알몸인 채 깍지를 끼고

오랜 첫 산고(産苦)의 밤의

아랫배를 문지르고 있단다,

끓고 있는 냄비 속의 초록빛 해초(海草)야.

 

 

한때는, 그 푸른 들판의 꽃수레를 달리며

무지개를 머금던 사랑의 하늘이 있어,

깊고 어두운 빙산(氷山) 그늘을 앓던

네 찝찔한 향수(鄕愁)의 눈물 같은 건

바람 부는 뒷골목 풀이슬로 지나치기도 했단다.

 

 

어느 날,

벽과 벽을 허물어내고

창과 창을 이어주는

해바라기 가슴으로 그을린 사공(沙工)들이

닻줄에 묶여, 달구지에 실려 가고

 

 

일식(日蝕)하는 무리들이 너무나 많아

일식하는 시간들이 너무도 길어,

벽으로 일어서는 박명(薄明)에 갇히면서

인어(人魚)의 비늘이 돋아나는 아픔을

땀 흘리며 땀 흘리며 찜질해 온 막바지

 

 

아무리 쥐어뜯고 뚜드리고 밀쳐도

삭신 쑤시게, 잃어가는 그림자의

몸부림일 뿐, 아물거리는 이 벽.

벽과 벽 사이에 끼어 꿈틀거리는

또 하나의 벽.

 

 

아직은, 뛰어넘을 수도

무너뜨릴 수도, 뚫을 수도 없는

보이지 않는 칸막이를 둘러치고

안개 짙은 고도(孤島)의 기슭에 누워

반쯤은 인어가 되어가는 오한(惡寒) 속에서

몽유(夢遊)의 병든 잠을 자는

너는, 나의 새로운 분신(分身).

 

 

이제, 무한한 감격으로 솟구쳐 오르던

환호(歡呼)가 파도치는 무수한 가슴팍에

따스한 한 아름 웃음꽃도 뿌리며

설레는 노을 녘 해안을 끼고

보랏빛 모정(慕情)으로 옷자락을 나부끼던

그 숨결은, 여기

바닷물을 달이는

이 풍로(風爐)속의 불꽃으로나 피어나는가.

 

 

겨울 밤비를 질척이는 지금은, 여름 한낮

뚝, 뚝, 떨어져 흐르는 코피의

박명의 벽의

아랫배를 문지르며

해산을 서둔단다, 서둔단다,

 

 

끓고 있는 것이여.

 

 

 

 

 

 

 

     ♣1967. 7. 21 동산골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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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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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푸른잔디 | 작성시간 16.09.10 등산골에서 지으신글 참 절실한 귀한 글입니다.
    보고 또 보고 갑니다. 수고 하셨습니다.~
  • 답댓글 작성자청운의 꿈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16.09.10 과찬하시니 더욱 부끄럽군요~. 푸른잔디 님!!!~~~^_^*
    과거를 회상할 겸, 27세의 서툰 몸부림을 고백한 글이지요.
    님께서 소망하시는 꿈과 비전을 기쁘게 이루어가시는 복된 나날 되시길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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