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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작 시와 글방

부모님 전 상서 (1)

작성자청운의 꿈|작성시간16.09.13|조회수66 목록 댓글 2

 

 

 

부모님 전 상서 (1)

 

                                     - 청운의 꿈

 

 


 

푸른 솔바람 소리 끝에

 

학처럼 날개 접고

 

달밤이면 배꽃가지 그늘 속을

 

닭이 울도록 거니시던 고향,

 

살구꽃 지는 동구 밖 언덕길을

 

큰 뜻 품은 큰아들 뒤쫓아 떠나시며

 

눈물 삼키고 돌아서서 웃음 지어

 

손 흔드시던 어머니, 아버지.

 

물정에 어두운 자식들 뒷바라지로

 

채석장에서 땀방울로 돌을 뜨듯

 

날마다 살을 에고 뼈를 깎아

 

책과 시루떡으로 내놓으시던 아버지.

 

육중한 소나무 앉은뱅이책상을

 

남산 밑에서 광나루까지 찻길 따라

 

걸음마다 기쁨으로 이고 오신 어머니.

 

터지고 해어진 옷가지 바느질하듯

 

추위와 더위 꿰매어 누비시고

 

밤마다 사랑의 피 기름 부어

 

심지 돋우어 주시던 어머니.

 

준비 덜된 잔치 앞두고

 

비녀 빼고 머릿채 잘라 보탬 될까

 

수건 쓰신 얼굴로 바쁘시던 모습.

 

각살림에 골고루 듬뿍 듬뿍 주시고자

 

뙤약볕에 진종일 고사리를 꺾으시고

 

노을 타는 우물가에 뇌출혈로 쓰러져

 

길어 올린 두레박 물 한 모금 못마시고

 

달빛도 이우는 벽과 창 사이

 

안개 속에서 한달쯤을 헤매시다가

 

가족들 손 한번 잡아 보지 못한 채

 

끝내 마지막 말씀 못하시고 돌아누워

 

불러도 듣지 못하고 막아도 보지 못하며

 

매달려도 멈추지 못하는 길손이 되어

 

낡고 그을린 성경책 가슴 속에 품으시고

 

옷고름 치맛자락 날리며 떠나신 어머니.

 

아끼시던 명주 한복, 수의로 입히시며

 

“멀고 험한 저승길에 짐이 된단다.”

 

불효의 얼굴 눈물 닦아주시던 아버지.

 

식음도 거르시고 산소 둘레 가꾸시며

 

생전처럼 말씀 건네시던 아버지.

 

철쭉꽃 피고 뻐꾹새 유난히 울던 어느날

 

즐겨 드시던 *고추간장, 술 담배 끊으시고

 

위암이란 절망의 늪을 돌아

 

낙엽의 창가에서

 

*매달아놓은 마지막 잎새를, 쳐다보시며

 

앙상한 몸 눕기도 겨운 고통 숨기시고

 

서성거리는 갈대꽃같이 웃으시며

 

밤바람에 쫓기는 구름과도 같이

 

등불도 없이 맨발로 떠나가신 아버지.

 

아직도 허공을 잡고 신음을 삭히시는 듯

 

숨결이 느껴지는 이 높고 깊은 산 속에

 

긴긴 세월 멍에 메어 끌고 오르시던

 

못 박힌 육신, 병든 그림자를 거두시고

 

길을 잃고 주저앉은 자식들

 

꿈속까지 찾아와

 

촛불 되어 몸 사르시던 그 얼,

 

지금은 어디쯤

 

구름과 물이 되어 흐르시옵니까.

 

바람과 소리 되어 헤매시옵니까.

 

산과 산 사이, 나무와 나무 사이

 

해와 달 모두 여의고

 

하늘 땅 쥐어뜯던 몸

 

산짐승 되고 두더지 되고 풀벌레 되어서

 

동 서 남 북 흩어져 떠도는 4남매,

 

죽을 수도 없는 죄벌의 벼랑을 타고

 

춥고 어두운 복역의 골짜기를 지나

 

낙엽 흩어지는 뉘우침의 몸부림 속에

 

여생의 반쯤은 사죄의 나날이어야 하고

 

우러르고 되새기며 기리고 빛내는

 

각고의 시간들로 채워 나아가야 할

 

슬픔이 더욱 부끄러운

 

문둥이 얼굴의 목숨이건만,

 

어느덧 청개구리 우는

 

먹구름 기슭에서 빠져나와

 

아내와 아이들 사이의

 

장바닥을 휘적거리는

 

움켜쥐고 잃어버린 이 손과 가슴,

 

등과 어깨, 팔과 다리 어디고 없이

 

번갯불 같은 채찍으로 내리쳐 주옵소서.

 

천둥 같은 말씀으로 깨우쳐 주옵소서.

 

비목(碑木)도 없는 잡초 속에 무너져

 

젖은 풀잎 흔드는 이 통곡,

 

어둡고 외로운 영전(靈前)을 밝히는

 

한 그루 꽃나무로 서게 하옵소서.

 

눈보라 추위도 녹이는 붉은 꽃으로 피어나

 

점점이 떨어지는 꽃잎이고 싶습니다.

 

어머니! 아버지! ‥‥‥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고추간장 : 풋고추를 썰어 넣은 양념장

 

*매달아놓은 마지막 잎새 : 의사의 경솔로

 

위암인 것을 아셨지만, 다시 정밀검진을

 

거치면서 초기 위궤양인 것같이 아버지께

 

꾸며대고 행동했음을 비유함.

 

 

부모님 별세 후 10여년이 지난 1981년

 

9월 13일, 합장한 아차산 묘소에서

 

불초 둘째 엎드려 -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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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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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푸른잔디 | 작성시간 16.09.13 올리신글를 보니 옛 생각이 납니다.
    좋은글과 시 즐감하고 갑니다. 수고하셨습니다.~
  • 답댓글 작성자청운의 꿈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16.10.10 감사, 감사합니다. 푸른잔디 님!!!~~~^_^*
    계획하신 일들 골고루 보람있게 성취하시길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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