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궁지조(傷弓之鳥)
활에 다친 새라는 뜻으로,
어떤 일로 크게 놀라 그 뒤로는
작은 일에도 두려워하고
경계하는 것을 비유하는 말이다.
傷 : 다칠 상
弓 : 활 궁
之 : 갈 지
鳥 : 새 조
활에 놀란 새, 즉 활에 상처를 입은 새는
굽은 나무만 보아도 놀란다는 뜻으로,
한번 놀란 사람이 조그만 일에도
겁을 내어 위축됨을 비유해 이르는 말이다.
또한 어떤 일에 봉변을 당한 뒤에는
뒷일을 경계함을 비유하는 말이다.
어떤 사물에 크게 놀란 사람은
비슷한 것만 보아도 겁을 내어 몸을 피한다.
이와 비슷한 속담으로
'자라 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 보고 놀란다',
'국에 덴 놈은 찬물도 불고 마신다',
'불에 놀란 놈이 부지깽이만 보아도 놀란다',
'더위 먹은 소 달만 보아도 허덕인다',
'몹시 데면 생선회(膾)도 불어 먹는다'
등의 우리 속담이 잘 나타낸다.
또한 '불에 덴 아이는
불을 두려워 한다'는 말도 있다.
지진이나 화재, 사고 등으로
신체적인 위험에 처했을 때는
후유증이 오래가
트라우마가 되는 것도 같은 이치다.
반대되는 표현으로
초생지독부외호(初生之犢不畏虎)으로
'갓 태어난 송아지
호랑이 무서운 줄 모른다' 라는 말이 있다.
이런 현상을 나타내는 성어도 많아
바람소리만 듣고도 적의 무리인 줄 알고
혼비백산하는 풍성학려(風聲鶴唳),
어려운 한자로 뜨거운 국에 혼이 난 사람은
시원한 냉채를 불어서 마신다는 징갱취제(懲羹吹虀),
오(吳)나라의 소가 달을 보고 헐떡인다는 뜻으로
공연한 일에 지레 겁먹고 허둥거리는 사람을 두고 이르는
오우천월(吳牛喘月)와도 유사하다.
한 번 화살에 맞아 상처 입었던 새는
구부러진 나무만 보아도 놀란다는 뜻의
이 성어도 마찬가지다.
한 번 혼이 난 일로 늘 의심과 두려운
마음을 품는 것을 이르는 말인데
경궁지조(驚弓之鳥)와 같이 쓴다.
중국 전한(前漢)시대 학자 유향(劉向)의
전국책(戰國策) 초책(楚策)에서 유래했다.
전국시대(戰國時代) 말엽
초(楚), 조(趙), 연(燕), 제(齊), 한(韓), 위(魏) 등
여섯 나라가 합종(合從)의 맹약을 맺고
진(秦)나라와 대치하고 있을 때의 일이다.
조나라 왕이 위가(魏加)를 초나라에 보내
초나라 승상 춘신군(春申君)과
군사동맹 문제를 협의하게 했다.
춘신군을 만난 위가가 물었다.
"맡길 만한 장군이 있습니까?"
춘신군이
"있고 말고요. 우리는 임무군(臨武君)을
장군으로 삼으려고 합니다."
위가가 말했다.
"신이 어릴 때부터 활쏘기를 좋아했는데,
활쏘기를 비유로 말씀드려도 되겠습니까?"
춘신군이 말했다.
"그러시지요."
위가가 말했다.
옛날에 경영(更羸)이 위왕(魏王)과
경대(京臺) 아래에서
대화를 나누다가
새가 나는 것을 보고 말했다.
경영이 말했다.
"대왕, 저는 빈 활을 쏘아
새를 떨어뜨릴 수 있습니다."
위왕이 물었습니다.
"정말로 그럴 수 있단 말이오?"
경영이 대답했다.
"그렇습니다."
잠시 후 기러기가 동쪽에서 날아왔다.
경영이 빈 활의 시위를 당기자
기러기가 땅에 떨어졌다.
위왕이 놀라 그 까닭을 물었다.
경영이 대답했다.
"이 기러기는 상처 입고 외로운 놈입니다."
위왕이 물었습니다.
"선생은 어떻게 알았소?"
王曰, 先生何以知之.
경영이 대답했다.
"나는 속도가 느리고 울음소리가 처량했습니다.
천천히 나는 것은 다쳤기 때문이고,
울음이 슬픈 것은 무리를 잃었기 때문입니다.
상처가 아직 아물지 않고
놀란 마음도 없어지지 않았기 때문에
시위 소리만 듣고도 높이 날려고 하다가
(상처가 도져) 땅에 떨어진 것입니다."
임무군은 일찍이 진나라와 싸워서 졌으므로
진나라를 막는 장군이 될 수 없습니다.
이 이야기는 전국책(戰國策) 초책(楚策)에 나오는데,
위가가 춘신군에게 해 준,
다치고 무리를 잃은 기러기가
빈 활에 떨어졌다는 이야기에서
상궁지조(傷弓之鳥)가 유래했다.
상궁지조는 경궁지조(驚弓之鳥)라고도 한다.
그로부터 상궁(傷弓)은 재난을 당한 적이 있어
그에 대한 아픔과 두려움이 남아있음을 비유하고,
상궁지조(傷弓之鳥)는 그런 사람을 비유한다.
위가가 이 비유를 들었던 것은
아무리 임무군이 탁월한 장수라 하더라도
한번 싸움에 대패한 장수는
상처입은 기러기처럼
그 상처에 대한 흔적이 남아있기에
이번 전투에 적임자가 아니라고 주장했던 것이다.
물론 한 번 실수는
병가(兵家)의 상사(常事)라는 말도 있다.
그래서 경험은 흔히 유용한 지혜를 선사하기도 한다.
그러나 극복하기 힘든 심한 재난의 경험은
쉬 지울 수 없는 상처와 두려움을 남긴다.
그래서 유사한 작은 고난에도
쉬 상심하고 무기력하게 꺾이기도 한다.
이런 심리적 병의 치유에는 긴 시간이 필요하며,
자신의 노력 외에도 주변의 꾸준한
이해와 격려가 절실히 필요하다.
시작이 중요한 것은 우리 옛 성현들의
가르침에서도 잘 나타나고 있다.
당(唐)나라 태종(太宗)의 지시로
방현령(房玄齡) 등이 쓴 진(晉)나라 왕조의
정사(正史)인 진서(晉書)에 보면
호리지실 차이천리
(豪釐之失 差以千里)
라는 말이 나오는 데
이는 처음에 조금 틀리면 나중에는
크게 그르치고 만다는 의미다.
또 중국 전국시대(戰國時代) 말(末)
한(韓)나라의 공자로 법치주의를 주창한 한비(韓非)와
그 일파의 논저인 한비자(韓非子)에 보면
각삭지도 비막여대 목막여소
(刻削之道 鼻莫如大 目莫如小)
라는 말이 나온다.
이 말은 사람의 얼굴을 조각하는데 있어
처음에 코를 작게 만들면 나중에 크게 하기 어렵고
눈은 한번 크게 만들면 다시 줄이기 어렵다는 의미다.
이 두 가지 모두가 뜻하는 것은
일을 시작하는 단계에서 정확하고 신중하게
판단을 한 다음 해야한다는
교훈을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실패의 경험이 크면 클 수록 빈시위에도
맥없이 떨어지는 기러기처럼
사람의 의지는 빈약하기 그지없다.
요즘 우리 주변에 보면
상처입은 기러기들이 너무 많다.
지레 겁을 먹고 퇴로를
먼저 확인해 두는 사람들이 너무 많다.
이런 사람을 선봉장으로 세우면
빈시위에도 추풍낙엽이 되고 만다.
-옮긴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