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시기에 좋은 사람 (창 1:1-5, 31)
1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2 그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고 하나님의 영은 수면 위에 운행하시니라 3 하나님이 이르시되 빛이 있으라 하시니 빛이 있었고 4 그 빛이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 하나님이 빛과 어둠을 나누사 5 하나님이 빛을 낮이라 부르시고 어둠을 밤이라 부르시니라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 이는 첫째 날이니라... 31 하나님이 지으신 그 모든 것을 보시니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 이는 여섯째 날이니라
창 1장을 다 읽어야 하는데 시간관계상 생략했습니다. 이 시간에 “보시기에 좋은 사람”이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드리고자 합니다.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신 후에 그 소감을 말씀하셨습니다. 31절에 “하나님이 지으신 그 모든 것을 보시니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 얼마나 좋았으면 보시기에 심히 좋으셨을까요?
그런데 천지창조만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예수 안에서 우리를 그렇게 아름답게 창조하셨습니다. 그래서 고후5:17에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 했고, 그래서 고전1:31에 "자랑하는 자는 주 안에서 자랑하라" 했습니다. 요일3:2에 “사랑하는 자들아 - 그가 나타나시면 우리가 그와 같을 줄을 아는 것은 그의 참모습 그대로 볼 것이기 때문이니” 그러므로 예수님을 모시되 얼마나 잘 모시느냐에 우리의 모습이 달렸습니다.
어떻게 하나님 보시기에 심히 좋은 사람이 될 수 있을까요?
그 원리는 창조의 원리와 같습니다.
1. 구원이 필요한 존재임을 깨달아야 합니다.
2절 “그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고 하나님의 영은 수면 위에 운행하시니라”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기 전의 상태인데 이것이 바로 어쩌면 죄인의 마음과 똑같은지 모릅니다. 그래서 다윗이 밧세바와 동침하고 나단 선지자의 책망을 받고 회개할 때 자기 뒤죽박죽이 된 영적 상태를 의식하고 “하나님이여 내 속에 정한 마음을 창조하소서.”(시51:10) 부르짖었습니다. 자신이 죄인인지 아는 것은 예수가 나의 구주시라는 것만큼 중요합니다. 그걸 모르면 예수가 필요 없기 때문입니다.
예수를 알기 전의 바울의 영적상태가 그랬습니다. 롬7:21-24에 “그러므로 내가 한 법을 깨달았노니 곧 선을 행하기 원하는 나에게 악이 함께 있는 것이로다 내 속사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하되 내 지체 속에서 한 다른 법이 내 마음의 법과 싸워 내 지체 속에 있는 죄의 법으로 나를 사로잡는 것을 보는도다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 부르짖었습니다.
하나님을 몰랐을 때 인생에 대해서 얼마나 고민했는지 생각에 깊이 몰입되어 있을 땐 숨이 쉬어지지 않고 죽는 줄 알았습니다. 왜 그렇게 어둡고 불안하고 슬프고 불행한지 어디서 와서 무엇 때문에 살고 어디로 가는지 어린 저로서는 너무나 가혹한 문제였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준비가 되었기에 예수를 받아들일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율법을 주신 것도 인간은 스스로 의로울 수 없고 저주와 진노 아래서 구세주가 필요하다는 것을 깨닫게 하시기 위해서였습니다.
2. 예수의 복음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3-4절 “하나님이 이르시되 빛이 있으라 하시니 빛이 있었고 그 빛이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 우리 마음에도 빛이 있어야 합니다. 빛이 무엇일까요? 요1:9에 "참 빛 곧 세상에 와서 각 사람에게 비추는 빛이 있었나니" 하면서 예수를 말씀합니다. 예수님이 빛이십니다. 빛을 어떻게 비추셨습니까? 롬10:8에 "우리가 전파하는 믿음의 말씀이라" 한 것처럼 복음의 말씀으로 비추셨습니다.
그러므로 예수의 복음을 받아들이는 것이 예수를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나의 아버지로 예수 그리스도를 나의 주와 구원자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우리를 예수 안에서 구원하시고 영광스럽게 하셨음도 믿으시기 바랍니다. 우리의 구원 우리의 지혜 우리의 능력 우리의 의이신 예수를 진실로 믿고 사랑하여 합당하게 모시는 것이 영생에 이르는 비밀입니다. 그러므로 날마다 이루살 것을 믿고 찬양하던 아브라함의 자손 답게 삭개오처럼 택하시고 구원해 주심을 생각하며 날마다 찬송하시기 바랍니다. 이런 아브라함의 자손이 될 때 죽음의 공포도 이깁니다.
3. 하늘의 문을 열어야 합니다.
6-7절 “하나님이 이르시되 물 가운데에 궁창이 있어 물과 물로 나뉘라 하시고 하나님이 궁창을 만드사 궁창 아래의 물과 궁창 위의 물로 나뉘게 하시니 그대로 되니라” 궁창은 하늘입니다. 둘째 날은 하늘이 열린 날입니다. 흑암이 깊음 위에 있듯 캄캄하던 세상이 윗물과 아랫물로 갈라지면서 청명한 하늘이 열렸습니다. 영적으로 암담하십니까? 여러분의 심령의 문도 활짝 열리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예수 믿고 하나님께 나왔는데 맨날 넘어지고 지은 죄가 생각나서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큰 벽이 있다면 얼마나 안타깝습니까? 물이 갈라지고 뚫어져서 하늘의 문이 열려야 합니다. 마3:16-17에 “예수께서 세례를 받으시고 곧 물에서 올라오실 새 하늘이 열리고 하나님의 성령이 비둘기 같이 내려 자기 위에 임하심을 보시더니 하늘로부터 소리가 있어 말씀하시되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 하신 일이 우리에게도 일어나야 합니다.
물과 물이 갈라진 사건이 또 성경에 나옵니다. 홍해의 사건입니다. 고전10:1-2에서 바울은 홍해의 사건을 세례에 비유합니다. “다 구름과 바다에서 세례를 받고” 세례는 내 죄를 씻고 장사하는 것입니다. 먼저 죄를 씻는 것은 예수의 보혈입니다. 내 죄를 영원히 담당하신 예수님의 보혈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래야 심령에 자유함을 얻고 하늘의 문이 열리고 하나님께서 은혜를 내려 주십니다.
4. 죄와 세상도 멀리하시기 바랍니다.
9-10절 “하나님이 이르시되 천하의 물이 한 곳으로 모이고 뭍이 드러나라 하시니 그대로 되니라 하나님이 뭍을 땅이라 부르시고 모인 물을 바다라 부르시니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 그래서 그 땅에 온갖 아름다운 풀과 채소와 씨 가진 과목을 내었습니다. 바다가 물러가니 생명의 움이 트기 시작했습니다.
신령한 의미에서 바다가 뭘까요? 요한계시록에 “바다도 다시 있지 않더라.”(계 21:1) 했는데 우리에게 다시 있어서는 안 될 것, 여기서 바다는 세상입니다. 예수님의 천국비유에서도 바다는 세상입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기쁘심이 되려면 세상이 물러가야 합니다. 죄가 물러가야 합니다.
롬8:8에 “육신에 있는 자들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느니라.” 했고, 골3:6에 “이것들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진노가 임하느니라” 했고, “일락을 좋아하는 이는 살았으나 죽었느니라”(딤전5:6) 했습니다. 그러므로 죄를 버려야 합니다.
당연히 버려야 할 이유는 예수 공로로 죄와 세상에 대해서 죽은 자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실 때 그 공로로 나도 죽고 세상도 죽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를 믿음으로 모셔 들이고 십자가 공로를 알고 나면 죄도 사라집니다.
갈6:14에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세상이 나를 대하여 십자가에 못 박히고 내가 또한 세상을 대하여 그러하니라” 했고, 롬6:2-3에 “그럴 수 없느니라 죄에 대하여 죽은 우리가 어찌 그 가운데 더 살리요 무릇 그리스도 예수와 합하여 세례를 받은 우리는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은 줄을 알지 못하느냐” 했습니다.
예수를 믿고 사랑하면 죄는 어디론가 사라지고 없습니다. 세상이 물러가면 마음에 생명의 부활의 은혜가 나타납니다. 천지창조의 원리와 같습니다. 아직도 죄가 살아서 꿈틀거린다면 무슨 문제 있는지 살펴보시기 바랍니다. 예수를 믿지만 사랑하지 않았는지, 보혈로 말미암는 양심의 자유를 누림에 서툴다든지, 하나님 섬김에 게으르거나, 하나님은 교만한 자를 물리치시고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주신다고 하셨습니다.
5. 온전한 믿음으로 살아야 합니다.
16-18절 “하나님이 두 큰 광명체를 만드사 큰 광명체로 낮을 주관하게 하시고 작은 광명체로 밤을 주관하게 하시 - 니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 하나님께서 해와 달과 별들을 만드신 이유는 낮과 밤을 주관하게 하시기 위해서입니다.
인생도 낮과 밤이 있습니다. 전7:14에 “형통한 날에는 기뻐하고 곤고한 날에는 되돌아보아라” 영적 세계에도 낮과 밤이 있습니다. 말씀과 성령으로 충만할 때가 있는가 하면 말씀도 체험도 없고 암담할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형통하든 곤고하든 체험이 있든 체험이 없든 이 두 가지를 다 주관할 줄 알아야 합니다.
믿음으로 사는 것입니다. 시험을 이기시기 바랍니다. 형통하다고 자만하거나 교만하지 않고 어둡다고 실망하지 않아야 합니다. 체험이 있다고 신나고 체험이 없다고 답답해 하지 않아야 합니다. 어떤 상황에 있더라도 말씀에 서서 믿음으로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떠나지 않으며 그 약속은 영원히 변치 아니하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근본을 깨달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체험 좀 했다고 교만하거나 체험이 없다고 실망지 말고 날마다 감사하며 찬송하시기 바랍니다.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마시기 바랍니다. 말씀을 생각하면서 낮엔 해처럼 밤엔 달처럼 사시기 바랍니다. 목숨까지도 버려야 할 때는 버리시기 바랍니다. 히10:38에 “나의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또한 뒤로 물러가면 내 마음이 그를 기뻐하지 아니하리라” 하셨습니다. 이것이 낮과 밤을 지배하는 믿음입니다.
6. 성령으로 충만하시기 바랍니다.
20절 “하나님이 이르시되 물들은 생물을 번성하게 하라 땅 위 하늘의 궁창에는 새가 날으라 하시고” 빈 공간을 그대로 두지 아니하셨습니다. 그래서 바다에 고기와 하늘의 새가 날고 번성합니다. 이처럼 우리도 영육 간에 충만해합니다. 그런데 “큰 바다 짐승들”을 학자들은 용이라고 말합니다. 난폭한 주인공입니다. 이처럼 육체는 짐승과 다를 바가 없어서 미련하고 우둔하고 하나님보다 세상적이고 정욕적이고 마귀적인데 더 가깝습니다.
그러므로 영혼만 아니라 육체도 영성을 입어야 합니다. 행2:17에 “하나님이 말씀하시기를 말세에 내가 내 영을 모든 육체에 부어 주리니” 한 대로 영육 간에 성령의 능력으로 충만해야 합니다. 은사로도 충만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능력의 사람이 되기를 원하십니다. 초대교회 성도들과 같이 성령으로 충만하시기 바랍니다.
7. 하나님을 닮아 가시기 바랍니다.
26절 “하나님이 이르시되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그들로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가축과 온 땅과 땅에 기는 모든 것을 다스리게 하자 하시고” 하나님의 최고의 걸작이 여섯 째날 만들어집니다. 하나님의 형상으로 인간을 지으신 것입니다.
이처럼 하나님을 닮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십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처럼 사랑하시기 바랍니다. 영혼 살리는 일에 힘쓰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마12:18에 “보라 내가 택한 종 곧 내 마음에 기뻐하는바 내가 사랑하는 자로다” 하신 것처럼 하나님의 기쁨이 되시기 바랍니다.
8. 그리고 영광 돌리는 삶을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창2:3에 “하나님이 그 일곱째 날을 복되게 하사 거룩하게 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그 창조하시며 만드시던 모든 일을 마치시고 그 날에 안식하셨음이니라” 히 4장을 보면 복음을 믿고 순종하는 자는 예수 안의 안식에 들어간다고 말씀합니다. 예수 믿으면서도 안식이 없습니까? 잘못 믿거나 경외함에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열심히 경외하시기 바랍니다. 하늘을 날던 비행기가 속력을 잃으면 땅에 떨어지는 것처럼 하나님을 경외하는 삶이 부족하면 시험 들게 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 천지를 창조하실 때처럼 마음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습니까? 그러나 하나님께서 우리를 버려두지 않으시고 예수 안에서 우리를 구원하시되 영광스럽게 지으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모두 예수를 믿는다면 이제는 더욱 사랑하고 마음을 다해 하나님을 경외함으로 성령의 충만함을 받아 그 은혜 안에서 자유와 거룩과 사랑과 평안과 하나님의 온전한 기쁨이 되는 하나님 보시기에 심히 좋은 복된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