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적을 일으키는 찬양 (대하 20:21-23)
21 백성과 더불어 의논하고 노래하는 자들을 택하여 거룩한 예복을 입히고 군대 앞에서 행진하며 여호와를 찬송하여 이르기를 여호와께 감사하세 그의 인자하심이 영원하도다 하게 하였더니 22 그 노래와 찬송이 시작될 때에 여호와께서 복병을 두어 유다를 치러 온 암몬 자손과 모압과 세일 산 주민들을 치게 하시므로 그들이 패하였으니 23 곧 암몬과 모압 자손이 일어나 세일 산 주민들을 쳐서 진멸하고 세일 주민들을 멸한 후에는 그들이 서로 쳐죽였더라
이 시간에 “기적을 일으키는 찬양”이라는 제목으로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좀 우수운 이야기지만 만약 우리가 새라면 어떤 새가 되고 싶습니까? 저는 작은 새가 되고 싶습니다. 독수리 타조 칠면조 이런 큰 새들은 노래하지 않습니다. 큰 동물도 노래하지 않습니다. 한다 해도 자주 하지 않고 별로 아름답지도 않습니다. 반면 카나리아 종달새 굴뚝새 같은 작은 새들은 아름답게 노래를 부릅니다.
이처럼 찬양하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천국이 천국인 것은 아버지의 사랑 때문이지만 또한 날마다 찬양하는 성도들과 천군천사가 있기 때문입니다. 찬양하는 곳에 천국이 임합니다. 오늘 본문에도 유다 왕 여호사밧이 찬송하다가 놀라운 승리를 체험했습니다. 암몬과 모압과 세일의 거대한 연합군이 유다를 침략했을 때 여호사밧은 레위지파로 성가대를 조직해서 찬양하며 나갔더니 하나님께서 역사하셔서 다 이기게 하셨습니다.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기적을 일으키는 찬양은 어떤 찬양일까요?
1. 마음을 다한 찬양입니다.
21절 “백성과 더불어 의논하고” 왕이 백성들과 의논하니 백성들이 찬송을 부르자는데 동의했습니다. 반대하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성전에서 찬송하는 것이라면 누가 못하겠습니까? 적군 앞에 나가서 찬송하자는데 이게 가능한 일입니까?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 같으면 애굽으로 돌아가자고 난을 일으켰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선지자 야하시엘이 외친 전쟁은 여호와께 속했다는 말씀을 믿었습니다. 여호수아의 군대가 여리고성을 나팔 불며 돌던 그 믿음과 같은 믿음입니다. 이 때 한 가지 규칙이 있었는데 돌 때마다 아무 소리도 하지 말다가 마지막 날에 외쳐 부르라는 것입니다. 다른 소리가 나오면 안 되기 때문입니다.
우리에게 적용시켜 본다면 마음을 다한 찬양입니다. 우리의 생각 속에서 한 생각도 거부하지 않는 일치된 마음입니다. 하나님을 그렇게 섬기는 것입니다. 신6:4 -5에 “이스라엘아 들으라 우리 하나님 여호와는 오직 유일한 여호와이시니 너는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 했습니다. 시50:23에도 “감사로 제사를 드리는 자가 나를 영화롭게 하나니 그의 행위를 옳게 하는 자에게 내가 하나님의 구원을 보이리라” 하셨습니다.
학창시절 밴드부에서 연습하고 있을 때 미술부 아이들이 와서 그림을 그린 적이 있었는데 그 애들의 자부심이 대단했습니다. 이 애들이 말하기를 '미술은 영원히 남지만 음악은 남는게 없다.' 그 때는 그 말이 맞는 줄 알았습니다. 그러나 예수 믿고 보니 미술도 좋지만 음악은 더 좋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찬양은 결코 허공으로 날아가지 않습니다. 시69:30-31에 "내가 노래로 하나님의 이름을 찬송하며 감사함으로 하나님을 광대하시다 하리니 이것이 소 곧 뿔과 굽이 있는 황소를 드림보다 여호와를 더욱 기쁘시게 함이 될 것이라" 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 황소 한 마리 드린다는 마음으로 찬양하시기 바랍니다. 마음을 다한 찬양에 기적이 일어납니다.
2. 찬송의 용사에게 기적이 일어납니다.
“노래하는 자들을 택하여” 여기 노래하는 자들은 레위지파의 제사장들입니다. 그들의 임무 중 중요한 것은 찬송하는 것입니다. 이들은 일도 하지 않고 십일조로 살면서 찬양만 합니다. 그런데 이 찬양대는 보통 찬양대가 아닙니다. 그들은 적진에 목숨을 걸고 찬송하며 나가는 찬양의 용사들이었습니다.
이처럼 찬양의 용사여야 합니다. 찬양을 알아도 하지 않으면 소용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어떤 방해가 있어도 찬양하시기 바랍니다. 찬양하며 사십니까? 설혹 죽인다고 해도 찬양하세요. 찬송은 이론이 아니라 실재입니다. 난제 앞에서도 찬양해야 합니다. 보통 때는 찬송하다가 문제를 만나면 찬송 못하는 그 찬양은 가짜입니다.
다윗도 찬양의 용사였습니다. 곰과 사자 앞에서도, 골리앗과 사울 앞에서도, 반란을 일으킨 압살롬 앞에서도 찬송했습니다. 욥도 찬양의 용사입니다. 그 큰 시험 당했어도 “주신 이도 여호와시요 거두신 이도 여호와시오니 여호와의 이름이 찬송을 받으실지니이다.”(욥1:21) 찬양했습니다. 다니엘의 세 친구도 찬송의 용사입니다. 활활 타는 용광로 속에서도 하나님을 찬양하고 있었습니다.
바울도 찬송의 용사였습니다. 그토록 매 맞고 착고에 채여 감옥에 갇혔지만 한 밤중에 기도하고 찬송했습니다. 그럴 때 큰 지진이 나서 옥 터가 움직이고 문이 곧 다 열리며 모든 사람의 매인 것이 다 벗어졌습니다. 초대 교인들도 찬송의 용사였습니다. 온갖 박해 가운데서도 기쁨으로 찬송했습니다.
베스트 셀러인 ‘찬송생활의 기적’이라는 책을 쓴 멀린 R. 캐로더스 목사는 "우리가 어떤 환경에 처하든지 끊임없이 감사하면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모든 사소한 일까지 참으로 완전하게 역사해주신다."라고 말합니다. 그러면서 “문제 앞에서 주님을 찬양하라. 이해가 되지 않더라도 현실 그대로를 감사히 받아들이고 찬송하라. 그러면 하나님께서 역사해 주실 것이다.”고 말합니다. 그의 말대로 많은 사람들이 찬양하다가 기적을 체험했습니다.
3. 거룩한 찬송에 기적이 일어납니다.
“거룩한 예복을 입히고” 군복을 입어야 할 상황에 제사장은 거룩한 예복을 입었습니다. 제사장복이라 하지 않고 거룩한 예복이라 한 것은 제사장은 하나님이 구별한 거룩한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거룩한 제사장이니 거룩한 노래만 불러야 합니다. 그래서 거룩한 노래를 불렀습니다.
찬송이 타락하면 안 됩니다. 사탄이 원래 음악장관이었다고 하지 않습니까? 그러므로 세속음악의 힘이란 상상할 수 없이 큽니다. 세상노래 부르면 안 됩니다. 찬송은 자기 한풀이나 흥이 아닙니다. 오직 하나님을 위한 것입니다. 사42:8에 “나는 여호와니 이는 내 이름이라 나는 내 영광을 다른 자에게, 내 찬송을 우상에게 주지 아니하리라”, 사43:21에도 “이 백성은 내가 나를 위하여 지었나니 나를 찬송하게 하려 함이니라” 했습니다. 총신의 교회음악 교수인 김의작 교수는 한국교회의 찬송의 타락을 늘 염려하셨습니다.
우리 고장의 자랑은 찬양축제입니다. 그런데 언제부터선가 세상 가수를 초청하기 시작했습니다. 처음에는 교인들이 머쓱해 하더니 해마다 반복되자 이젠 당연하다는 등 아주 그 궁짝에 노래 부르며 어께춤을 춥니다. 그런데 보니까 장내가 갑자기 썰렁해지면서 거룩하신 하나님의 임재가 떠나고 세속의 영이 타오르는 것이었습니다. 제발 그런 짓하지 마세요. 나납과 아비후가 다른 불을 드리다가 저주 받아 죽었는데 다른 불 드리면 영혼 다 죽이는 것입니다.
찬송일지라도 급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더 영광 돌리는 찬송이 있습니다. 언젠가 모여서 찬송하는데 얼마나 성령께서 역사하시는지 큰 은혜가 임했습니다. 그런데 어느 순간 찬송 소리는 드높은데 은혜가 되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웬일인가 했더니 찬송이 바뀌었습니다. 찬송은 찬송이되 사람의 흥을 돋우는 가락이 들어 있는 찬송이었습니다. 그런 영분별이 되어야 합니다.
은혜 받기 위해 찬송하자는 말도 엄밀히 말하면 바른 말이 아닙니다. 하나님께 영광 돌릴 때 은혜를 주시는 것이지 은혜 받기 위해 추구하다 보면 사탄이 틈을 탑니다. 기도도 은혜 받기 위해 몰두하다 보면 사탄의 영이 틈타는데 그것이 신비주의입니다. 나는 잘못한 것이 없는데 왜 이럴까? 뭔가 잘못이 있기 때문에 사탄이 틈탄 것입니다.
바벨론에 포로 된 이스라엘 백성들의 가장 큰 고통은 비천도 노역도 아니고 바벨론 사람들이 자기들의 흥을 위해 하나님의 노래를 부르라고 한 것입니다. 그래서 시137:5-6에 “예루살렘아 내가 너를 잊을진대 내 오른손이 그의 재주를 잊을 지로다 - 내 혀가 내 입천장에 붙을 지로다” 탄식했습니다. 거룩한 찬양도 동기가 나쁠 때는 고통으로 여겼습니다. 거룩한 찬양을 부르세요. 그러면 하나님이 여러분과 함께 하실 것입니다.
4. 복음의 찬송에 기적이 일어납니다.
“군대 앞에서 행진하며 여호와를 찬송하여 이르기를 여호와께 감사하세 그의 인자하심이 영원하도다 하게 하였더니” 찬양대가 군대의 선두에서 찬송한 것은 담대히 승리를 선포하는 의미가 있습니다. 그 내용은 하나님의 인자하심과 영원하심입니다. 복음을 선포한 것입니다. 하나님 이름도 복음입니다. 하나님의 속성도 복음입니다. 예수님의 공로도 복음입니다. 성경의 약속도 복음입니다.
하나님의 이름만 선포해도 승리가 옵니다. 사랑의 하나님을 찬양해 보세요. 하나님의 사랑이 임합니다. 방황할 때 인도하시는 하나님을 찬양하세요. 인도의 기적이 나타납니다. 빈곤할 때 후히 주시고 풍성하신 하나님을 찬양하세요. 풍성한 기적이 나타납니다. 아버지라 불러보세요. 하나님은 아버지로서의 임무를 다하려 하십니다.
여리고성에서 제사장들이 군대 앞에 불었던 양각나팔은 양뿔로 만든 나팔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상징입니다. 우리는 예수 안에서 이긴 자요 복된 자입니다. 그러므로 생각 속에 이기기 어려운 문제들 마음의 상처나 사망의 공포 같은 것이 다가올 때 예수 안에서 이긴 자 되게 하신 것을 감사하시고 찬양하시기 바랍니다.
롬10:10에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 한 것처럼 찬송은 믿음이요 입술의 시인입니다. 찬송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제사요 입술의 열매입니다. 그래서 사57:19에 “입술의 열매를 창조하는 자 여호와가 말하노라 먼 데 있는 자에게든지 가까운 데 있는 자에게든지 평강이 있을지어다 평강이 있을지어다 내가 그를 고치리라” 하셨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히브리인들은 말했습니다. "생명을 주신 창조주께 찬양과 경배와 감사를 드리지 않는 것은 하나님의 것을 약탈하는 것이다." 우리가 세상에 나온 것도 은혜이고, 예수 믿어 구원 받은 것도 은혜이고, 이 땅의 온갖 아름다운 창조를 누리고 사는 것도 하나님의 은혜인데 찬송하지 않는다면 그건 도둑질이 맞습니다. 찬송하면 천국이 다가온다는데 찬송하지 않을 이유가 어디 있습니까? 그러므로 우리 모두 각박한 세상만 보지 말고 아버지의 사랑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주신 은혜의 복음을 믿고 마음을 다하여, 찬양의 용사처럼, 거룩한 찬송으로, 하나님께만 영광 돌리는 기적의 주인공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