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나안의 믿음 (민 14:6-10)
6 그 땅을 정탐한 자 중 눈의 아들 여호수아와 여분네의 아들 갈렙이 자기들의 옷을 찢고 7 이스라엘 자손의 온 회중에게 말하여 이르되 우리가 두루 다니며 정탐한 땅은 심히 아름다운 땅이라 8 여호와께서 우리를 기뻐하시면 우리를 그 땅으로 인도하여 들이시고 그 땅을 우리에게 주시리라 이는 과연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니라 9 다만 여호와를 거역하지는 말라 또 그 땅 백성을 두려워하지 말라 그들은 우리의 먹이라 그들의 보호자는 그들에게서 떠났고 여호와는 우리와 함께 하시느니라 그들을 두려워하지 말라 하나 10 온 회중이 그들을 돌로 치려 하는데 그 때에 여호와의 영광이 회막에서 이스라엘 모든 자손에게 나타나시니라
이 시간 “가나안의 믿음”이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드리고자 합니다. 믿음의 품사는 무엇일까요? 믿음을 영어로 faith(풰이스)라고 하는데 영어사전을 찾아보면 명사로 나와 있습니다. 그러나 알고 보면 믿음은 동사입니다. 왜냐하면 믿음은 살아 움직이고 역사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야고보는 “행함이 없는 믿음은 그 자체가 죽은 것이라 ”(약2:17) 했습니다.
우리가 천국에 들어가려면 죽은 믿음 가지고는 안 됩니다. 가나안의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오늘 본문을 보면 가나안을 탐지하고 돌아온 10명의 정탐군들은 우리가 지금 가면 다 죽을 것이라는 부정적인 보고를 했습니다. 그러나 여호수아와 갈렙은 달랐습니다. 그 결과 불신앙의 백성들은 모두 광야에서 죽었지만 여호수아와 갈렙은 가나안에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가나안의 믿음이란 어떤 것일까요?
1. 예수 안에서 천국을 주신 것을 믿는 것입니다.
여호수아와 갈렙은 조금도 의심하지 않았습니다. 7-8절에 “우리가 두루 다니며 정탐한 땅은 심히 아름다운 땅이라 여호와께서 우리를 기뻐하시면 우리를 그 땅으로 인도하여 들이시고 그 땅을 우리에게 주시리라 이는 과연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니라” 그러나 10명의 정탐군들은 엄두도 나지 않으니 들어갈 생각도 말라는 것이었습니다.
우리 마음에도 두 생각이 있습니다. 믿음의 생각과 불신의 생각입니다. 우리 마음에 두 마음이 존재합니다. 영의 마음과 육신의 마음입니다. 영의 마음은 하나님의 말씀을 기초로 생각하지만 육신의 마음은 보이는 대로만 생각합니다. 이런 악한 환경에서 내가 어떻게 마음의 천국을 갖겠느냐고 말합니다. 그러나 육신의 눈으로 보이지 않는다고 없는 것이 아닙니다.
성경의 눈으로 바라보면 우리에게 주신 복이 보입니다. 그래서 시16:6-8에 “내게 줄로 재어 준 구역은 아름다운 곳에 있음이여 나의 기업이 실로 아름답도다 - 내가 여호와를 항상 내 앞에 모심이여 그가 나의 오른쪽에 계시므로 내가 흔들리지 아니하리로다” 했습니다. 이 말씀은 모두 다윗이 믿음으로 바라보고 한 말씀입니다. 이처럼 성도는 예수 믿어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고 천국을 기업으로 받아 그 영역으로 옮겨졌으며 하나님 앞에 있다는 믿으시기 바랍니다.
요5:24에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 했고, 벧전2:9-10에는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가 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 데서 불러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이의 아름다운 덕을 선포하게 하려 하심이라 너희가 전에는 백성이 아니더니 이제는 하나님의 백성이요 전에는 긍휼을 얻지 못하였더니 이제는 긍휼을 얻은 자니라” 했습니다.
골2:9에 “그 안에는 신성의 모든 충만이 육체로 거하시고 너희도 그 안에서 충만하여졌”다고 했습니다. 고후5:17에는 우리가 예수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이 되었다고 했습니다. 얻을 것이다가 아니라 얻었습니다. 성도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고, 영적으로 하나님의 나라에 옮겨졌습니다. 이 진리를 알고 천국백성 답게 행해야 합니다. 그렇게 살 때 우리 삶에 천국이 이루어집니다.
말씀에 근거하면 믿음의 눈이 열립니다. 고후5:7에 “이는 우리가 믿음으로 행하고 보는 것으로 행하지 아니함이로라” 했습니다. 하나님이 보이지 않지만 곁에 계신다고 말씀하셨으니 곁에 계신 것처럼 우리가 믿고 기도하고 찬송하는 것과 같습니다. 이렇게 안 보이지만 보이는 것처럼 행동해야 합니다. 이렇게 다른 것도 말씀으로 눈을 여시기 바랍니다. 성경적 시각이 영적 시각입니다.
영적 시각을 갖되 확실히 믿으시기 바랍니다. 히11:1에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라고 한 것처럼 보이지 않아도 실상처럼 확실하게 믿으시기 바랍니다. 자기 믿음을 증거로 내놓을 만큼 확실해야 합니다. 실재를 본 법정의 증인처럼 그만큼 확신하시기 바랍니다. 예수 믿었음에도 행복하지 않고 불안하고 두렵고 기쁨과 즐거움이 없다면 주신 은혜를 모르거나 믿음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눈에 보이지 않고 손에 잡히는 것 없고 내 앞길 어두울지라도 기록된 말씀을 믿고 그런 복을 우리에게 주셨음을 믿고 감사하고 기뻐하고 확신하고 행복한 그런 믿음의 사람이 되시기 바랍니다. 그러기 위해 말씀을 나에게 적용하며 훈련하시기 바랍니다.
눅12:32에 “적은 무리여 무서워 말라 너희 아버지께서 그 나라를 너희에게 주시기를 기뻐하시느니라” 하셨습니다. 이 약속의 천국을 예수 안에서 주셨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살전5:16-18에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 믿는 성도는 복 받은 자이므로 이렇게 살라는 하나님의 뜻입니다.
2. 가나안의 믿음은 입으로 시인하는 믿음입니다.
민13:30에 “갈렙이 모세 앞에서 백성을 조용하게 하고 이르되 우리가 곧 올라가서 그 땅을 취하자 능히 이기리라” 했습니다. 반면 이스라엘 백성들은 부정적인 말만 하였습니다. 민13:31-33에 “그와 함께 올라갔던 사람들은 이르되 우리는 능히 올라가서 그 백성을 치지 못하리라 그들은 우리보다 강하니라 하고 이스라엘 자손 앞에서 그 정탐한 땅을 악평하여 이르되 우리가 두루 다니며 정탐한 땅은 그 거주민을 삼키는 땅이요 거기서 본 모든 백성은 신장이 장대한 자들이며 거기서 네피림 후손인 아낙 자손의 거인들을 보았나니 우리는 스스로 보기에도 메뚜기 같으니 그들이 보기에도 그와 같았을 것이니라” 했습니다.
그 뿐 아니라 그들은 밤새 통곡하고 모세에게 대들며 “장관을 세워 지도자로 삼고 애굽으로 돌아가자.” 하면서, 갈렙과 여호수아에게 달려들어 돌로 치려고 했습니다. 하나님이 얼마나 마음이 상하셨으면 그들을 모두 전염병으로 멸하려고 하셨을까요? 그토록 증거를 보여주셨음에도 불신앙이었습니다. 이 불신앙 때문에 가나안에 들어가지 못했습니다.
우리도 아버지의 사랑과 그리스도의 은혜를 마음으로 믿을 뿐 아니라 입으로 시인해야 천국에 들어갑니다. 그러므로 구원해 주심을 늘 감사하고 찬송하시기 바랍니다. 히13:15에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로 말미암아 항상 찬송의 제사를 하나님께 드리자 이는 그 이름을 증언하는 입술의 열매니라” 했습니다. 잠18:21에 “죽고 사는 것이 혀의 힘에 달렸나니 혀를 쓰기 좋아하는 자는 혀의 열매를 먹으리라” 하였습니다. 말이 이처럼 중요합니다.
노만 빈센트 필 박사가 기차 여행을 하면서 식당 칸에서 식사를 하는데 옆의 한 노부부가 있어 부인이 끊임없이 불평하는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이거 야채가 왜 이래? 고기는 너무 질긴 것 같고, 포도도 너무 신 것 아니야? 이 열차의 온도는 맞지 않아. 오늘 날씨도 좋지 않고 우리 괜히 여행 나온 것 아니야?”
필 박사를 의식한 그녀의 남편이 필 박사에게 얘기를 건넸습니다. “선생님! 죄송합니다. 이해해 주세요. 제 아내가 본래 직업이 그래요. 제 아내는 제조업에 종사하고 있어요.” “무엇을 제조하신가요?” “아 예 제 아내는 불행을 제조하고 있습니다. 날마다 스스로 불행을 만들면서 살고 있죠.” 오늘부터 성도는 예수 안에서 복 받은 자이므로 항상 기뻐하고 믿음의 말을 하고 찬송하며 사시기 바랍니다.
3. 가나안의 믿음은 도전하는 것입니다.
수14:10-12에 갈렙이 말합니다. “오늘 내가 팔십오 세로되 모세가 나를 보내던 날과 같이 오늘도 내가 여전히 강건하니 내 힘이 그 때나 지금이나 같아서 싸움에나 출입에 감당할 수 있으니 그 날에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이 산지를 지금 내게 주소서 - 그 곳에는 아낙 사람이 있고 그 성읍들은 크고 견고할지라도 여호와께서 나와 함께 하시면 내가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대로 그들을 쫓아내리이다” 나이를 잊어버린 갈렙의 믿음입니다.
이처럼 천국은 도전하는 자의 것입니다. 마11:12에 “세례 요한의 때부터 지금까지 천국은 침노를 당하나니 침노하는 자는 빼앗느니라” 하셨습니다. 천국 못 가게 얼마나 사탄의 방해가 얼마나 심한지 그걸 이겨야 합니다. 존 번연의 천로역정이라는 그 명칭 그대로 많은 시험을 이기고 또 이겨야 합니다. 세상을 이기고 자기를 이기고 사탄을 이기고 무지를 이기시기 바랍니다.
말씀을 떠난 건 믿음이 아닙니다. 민14:39 이하를 보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슬픔에 못 이긴 나머지 경고에도 불구하고 원수들과 싸우다가 크게 당합니다. 내 감정 내 기분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에 근거하여 행하시기 바랍니다. 구약을 요약하면 십계명이고, 십계명을 요약하면 하나님 사랑, 이웃 사랑입니다. 이처럼 마음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으로 하시기 바랍니다.
미국 프린스턴 신학대학에 신약학 교수 이야기입니다. 그는 채플 시간에 전혀 찬송을 부르지 않았습니다. 너무나 음치여서 자신도 듣는 자도 은혜가 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던 어느 날 교수가 어찌된 일인지 채플시간에 찬송을 부르고 있었습니다. 음정도 박자도 틀렸지만 찬송을 힘차게 불렀습니다.
한 학생이 "교수님! 웬일이십니까?" 그러자 교수는 지난 밤 꿈을 꾸었는데 천국 문에 이르렀더니 베드로가 누구냐고 물어 자신은 어릴 적부터 신자요 지금은 신학교 교수라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베드로가 책을 열어 보더니 “지식은 많다만 찬미의 제사를 올린 기록이 없구나. 천국은 신학박사를 원하는 것이 아니라 찬양을 하나님께 올려드린 사람을 원한다. 가서 찬송 많이 부르다가 오너라!" 하더니 천국 문이 닫혀버렸습니다. 깜짝 놀라 깨어보니 꿈이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수님께서 천국은 여기 있다 저기 있다 못하리나 천국은 너희 안에 있느니라 하셨습니다. 지금 천국을 누리는 가나안의 믿음인지 살펴보시기 바랍니다. 그러므로 우리 모두 하나님께서 예수 안에서 우리에게 주신 천국을 믿을 뿐 아니라 범사에 감사하고 날마다 천국 백성으로 조금도 부족함이 없이 예배하고 사랑하는 가장 복된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