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부심을 가집시다 (벧전 2:9)
9 그러나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가 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 데서 불러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이의 아름다운 덕을 선포하게 하려 하심이라
이 시간에 “자부심을 가집시다”라는 제목으로 함께 은혜의 말씀을 나누고자 합니다. 자부심이 무엇일까요? 자부심(自負心)에 대한 사전적인 뜻은 '자신의 가치나 능력을 믿고 당당히 여기는 마음'을 가리킵니다.
어느 분이 교만과 자부심을 비교하였습니다. “자기를 과대평가하는 것은 교만입니다. 자기를 과소평가하는 것은 비굴입니다. 그러나 자기를 정확하게 평가하는 것은 자부심입니다.”
그러므로 자부심을 가지고 산다는 것은 당당한 것이고 삶에 에너지일 뿐 아니라 특히 성도는 하나님의 자녀라는 영광이 있고 예수 이름으로 나아갈 때 그 앞에 태산이라도 평탄케 될 수밖에 없는 귀한 능력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범위 안에서 우리는 당당한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이스라엘 민족은 전쟁에 지지 않는다는 당당한 믿음이 있습니다. 그래서 모든 전쟁에 이기고 있습니다. 뉴질랜드 사람들은 자기 나라는 하나님이 천국을 만드시다가 천국의 귀퉁이가 떨어져 만들어진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나라라는 자부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국토를 잘 가꾸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성도는 어떤 자부심을 가져야 할까요?
1. 선택 받았다는 자부심을 가져야 합니다.
9절에 “그러나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그랬습니다. 여기 ‘택했다.’는 말의 히브리어 원문은 에클레크토스라고 하는데 가장 귀한 것을 선택할 때 사용하는 언어입니다. 참으로 최고의 선택을 받은 감사하기 이를데 없는 은혜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선민 즉 자기들이 선택 받은 민족이라는 자부심이 대단했습니다. 나중에 변질하여 교만한 것이 문제였지 자부심 자체는 잘못이 아닙니다. 우리 성도들 역시 생명처럼 생명보다 더 귀한 선택을 받았습니다.
벧전2:4절에 “사람에게는 버린 바가 되었으나 하나님께는 택하심을 입”었다고 말씀합니다. 대통령이 불러도 가문의 영광이라는데 하나님께서 부르셨으니 영광 아니겠습니까? 학자들 간에는 선택의 교리에 대해서 의견이 분분합니다. 그러나 확실한 것은 성경이 수없이 말씀하고 있으며, 심지어 선택의 교리에 확신이 없는 사람도 기도할 때는 선택을 말하는 선택주의자가 됩니다.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엡1:4-5에도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다"
사43:1에도 “내가 너를 구속하였고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나니 너는 내 것이라.” 예수님께서도 “너희가 나를 택한 것이 아니요 내가 너희를 택하여 세웠나니”(요 15:16), 사도 바울도 “내 어머니의 태부터 나를 택정하시고 은혜로 나를 부르”(갈 1:15), 셨다고 했습니다.
세 아이가 아버지 자랑을 하고 있었습니다. 한 아이가 말했습니다. “우리 아버지는 사장님과 친하다.” 다른 아이가 말했습니다. “우리 아버지는 국회의원과 친하다.” 그런데 마지막 아이가 말했습니다. “우리 아버지는 하나님과 친하다.” 하나님에 대한 자부심이 누구보다 강한 아름다운 믿음의 아이였습니다. 이런 자부심을 갖자는 말입니다.
요한 웨슬리가 죽을 때 자녀들에게 빈 지갑을 보여주면서 말했습니다. “나는 너희들에게 물려줄 돈은 없지만 가장 좋은 것을 물려준다. 이 땅에서 살아가는 동안 가장 귀한 것은 하나님이 함께 하신다는 것이다. 나는 너희들에게 하나님을 물려준다. 하나님이 영원토록 너희들과 함께 하실 것이다.” 하나님의 사람으로 부르심을 받았다는 사실, 우리의 당당한 자랑이 아닐 수 없습니다.
2. 엄청난 신분을 가졌다는 자부심을 가져야 합니다.
9절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가 된 백성이니” 왕 같은 제사장이란 다윗이나 솔로몬 멜기세덱과 같은 제사장을 가리킵니다. 왕이라고 다 제사장이 아닙니다. 웃시아는 왕이었어도 제사를 드리다가 문둥병에 걸렸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을 언제든지 만날 수 있으며 언제든지 신령한 제사를 드릴 수 있고 드릴수록 하나님께서 기뻐하십니다. 왕 같은 제사장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보혈만 믿고 하나님께 나아가면 누구도 해할 수 없고, 예수 이름으로만 기도하면 무엇이든지 들어주시며, 예수 이름으로 전진하면 큰 산 같은 문제도 평지가 될 수밖에 없다는 사실입니다.
어느 성도는 하루에 전도지를 7장씩 뿌리기로 하나님과 약속했습니다. 앉아 있는 사람에게만 전도지를 주었습니다. 서 있는 이는 버리지만 앉아 있는 이는 한번은 읽는다는 것입니다. 최고 많이 전도한 해가 255명이었습니다. 어떤 성도는 성경 갈피에 전도할 사람의 이름을 적고 날마다 기도하였습니다. 3년 기도해서 예수 믿지 않는 사람이 없더랍니다. 자기에게 준 권세를 잘 사용한 사람들입니다.
시16:3에 “땅에 있는 성도들은 존귀한 자들이니 나의 모든 즐거움이 그들에게 있도다” 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기쁨이랍니다. 예수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입니다. 그러므로 자기를 무시하지 말고 감사하면서만 살면 기적이 일어납니다. 천군천사들이 호위합니다. 도와줍니다. 보이지 않는 손길로 가득합니다.
예수님이 복이시니 예수님이 함께 하는 사람이 복덩이입니다. 요셉이 가는 곳마다 형통하지 않았습니까? 그러므로 믿음 없는 사람과 멍에를 같이 메지 마세요. 일이 풀리지 않습니다. 십일조 내지 않는 사람과도 동업하지 마세요. 누구나 사귈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불평 많이 하고 부정적인 사람과 깊이는 사귀지 마세요. 손해를 보게 됩니다. 그들과 하나로 보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고후6:14-15에 “너희는 믿지 않는 자와 멍에를 함께 메지 말라 의와 불법이 어찌 함께 하며 빛과 어둠이 어찌 사귀며 그리스도와 벨리알이 어찌 조화되며 믿는 자와 믿지 않는 자가 어찌 상관하며 하나님의 성전과 우상이 어찌 일치가 되리요” 하셨습니다. 자신의 신분에 맞게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세상 박해자들이 교회를 비판한다고 휘말려 스스로 자조섞인 말로 비하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옳은 말은 받아들이지만 터무니없는 말은 배격하세요. 떠돌아다니는 이상한 자료들의 70%는 기독교를 음해하려는 이단들이 만들고 있다고 합니다. 하나님 앞에서 겸손할 뿐이지 상대평가적으로는 어떤 종교도 교회의 위대함을 따라올 수 없습니다.
3. 가장 귀한 사명을 가졌다는 자부심을 가져야 합니다.
9절 하 반절에 “이는 너희를 어두운 데서 불러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이의 아름다운 덕을 선포하게 하려 하심이라” 이처럼 기이한 빛에 들어온 자기를 간증할 수 있는 성도가 되게 하셨습니다. 새 삶의 간증입니다.
런던에 프린스 휴거스 목사 이야기입니다. 그의 설교를 들으면서 수많은 사람들이 회개하여 예수 믿고 병자들이 고침을 받고 자살하려던 사람들이 새 생명을 얻었습니다. 수많은 죄인들이 거듭나서 새로운 삶을 살았습니다.
그 때 런던에는 유명한 무신론자 챨스 브레드레프라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가 목사에게 말했습니다. “나는 아무리 보아도 하나님이 계시지 않는다. 우리 군중들 앞에서 공개토론을 하자. 목사님은 하나님이 계시다고 증언할 수 있는 사람 100명을 데리고 오세요. 나도 무신론자 100명을 데리고 오겠습니다.”
그래서 토론이 붙었습니다. 목사님은 100명을 데리고 왔습니다. 그러나 무신론자 브레드레프는 한 명도 데리고 오지 못하였습니다. 열띤 토론이 벌어졌습니다. 브레드레프는 과학의 이름으로 비과학적인 추측만 늘어놓을 뿐 아무런 증거도 내놓지 못했습니다. 이제 휴거스 목사님과 함께 온 100명의 성도들이 차례로 간증하기 시작했습니다.
“나는 예수님 때문에 거듭났습니다.” “나는 예수님이 아니었으면 자살하였을 것입니다.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닐 것입니다.” “나는 불치병에 걸려서 이미 죽은 몸입니다. 예수님이 아니면 이미 관속에 있을 것입니다.” “나는 예수님이 아니면 이혼하였을 것입니다. 예수님이 주시는 사랑으로 행복한 가정을 이루고 있습니다.”
100명이 하나같이 예수님 때문에 변화된 삶을 증언하였습니다. 브레드레프가 말했습니다. “제가 졌습니다. 제가 변화시킨 사람은 한 명도 없지만 예수님은 수많은 이들을 변화시켰으니까요.” 성도들이 조금만 주님을 가까이해도 간증거리가 널릴 정도가 됩니다. 당당한 믿음이 되시기 바랍니다.
예수님이 겟세마네 동산에서 잡혀가실 때 요18:6을 보면 예수님께서 “내가 그니라.” 이렇게 입술만 조금 움직이셔도 수십 명의 원수들이 도미노 물결처럼 쓰러졌습니다. 위엄이 있으신 굉장한 분이셨기 때문입니다. 우리도 예수 안에 있으니 굉장하다는 믿음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부족해도 함께 하시는 예수님은 위대하시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에게 무한한 은혜를 주신 은혜를 받아 누리십시다. 그래서 우리 모두 선택 받은 특별한 하나님의 자녀요, 왕 같은 제사장, 거룩한 나라, 그의 소유가 된 백성이요, 하나님의 아름다운 덕을 선전할 수 있는 특별한 은혜를 받은 자라는 사실을 생각하면서 자부심을 갖고 하나님께 감사하며 살아가는 성도들이 다 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