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FE

디모데전후서

[스크랩] 조심해야 할 것들 (딤전 6:9-12)

작성자호현낙선|작성시간26.06.13|조회수3 목록 댓글 0

조심해야 할 것들 (딤전 6:9-12)

 

9 부하려 하는 자들은 시험과 올무와 여러가지 어리석고 해로운 정욕에 떨어지나니 곧 사람으로 침륜과 멸망에 빠지게 하는 것이라 10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가 되나니 이것을 사모하는 자들이 미혹을 받아 믿음에서 떠나 많은 근심으로써 자기를 찔렀도다 11 오직 너 하나님의 사람아 이것들을 피하고 의와 경건과 믿음과 사랑과 인내와 온유를 따르며 12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우라 영생을 취하라 이를 위하여 네가 부르심을 받았고 많은 증인 앞에서 선한 증언을 하였도다

 

이 시간에 “조심해야 할 것들”이라는 제목입니다. 우리가 조심해야 할 것이 한 두가지가 아닙니다. 아이들에게 차조심부터 시작해서 조심해야 할 것이 얼마나 많습니까? 그래서 조심은 세상을 사는 지혜입니다. 우리 신앙생활에도 조심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1. 돈을 조심해야 합니다.

 

돈에 대한 명언이 많습니다. “돈은 중요한 것이다. 따라서 모든 건전하고 성공적인 개인과 국가의 도덕은 이 사실에 기초를 두어야 한다.”는 조지 버나드 쇼(George Bernard Shaw)의 긍정적인 말이 있는가 하면, “돈은 최선의 종이요 최악의 주인이다.”(프란시스 베이컨), “돈이란 훌륭한 하인이기도 하지만, 나쁜 주인이기도 하다.”(프랭클린)는 선악간의 양면성을 지적한 말도 있고, “돈으로 살 수 있는 행복이라 불리는 상품은 없다.”(헨리 벤 다이크), “돈이 많아지면 곧 미덕은 감소된다.”(베베르), “돈이 있어도 이상이 없는 사람은 몰락의 길을 밟는다.”(도스도예프스키)는 돈에 부정적인 말도 있습니다.

 

과연 돈이란 어떤 것일까요? 명인들이 한 말처럼 돈은 긍정과 부정 둘 다 가지고 있는 경제의 수단임은 틀림없는 사실입니다. 그럼에도 조심해야 할 것 중의 하나가 돈입니다. 딤전6:9-10에 “부하려 하는 자들은 시험과 올무와 여러 가지 어리석고 해로운 정욕에 떨어지나니 곧 사람으로 침륜과 멸망에 빠지게 하는 것이라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가 되나니 이것을 사모하는 자들이 미혹을 받아 믿음에서 떠나 많은 근심으로써 자기를 찔렀도다” 했습니다.

 

돈은 필요하지만 아주 조심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욕심 부려서도 안 되고 경제활동을 게을리 해서도 안 되고 지나치게 사랑해서 시험에 들어서도 안 됩니다. 지나치게 부하려 하다가 위법하거나 분수에 넘는 일을 해서 인생을 그르치거나 몸을 상합니다. 이 땅에 일어나고 있는 수많은 사건들이 돈과 관련되어 있습니다.

 

돈이 많으면 교만의 원인이 되기도 하고, 도적이 돈을 노리거나, 하나님보다 돈을 더 사랑하게 되고, 돈을 좋지 않는 곳에 사용하거나, 뭐든 돈으로만 해결하려고 하고 기도하지 않으니 문제가 됩니다. 반면 돈이 없으면 육신의 삶이 영위되지 않습니다. 없을 때의 시험도 만만치 않습니다. 남의 보증을 서서 평생 물질 때문에 고통당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물질관이 잘못되어 내가 번 돈이니 내 돈이라 하는 생각도 하나님의 것을 도적질한 것이 됩니다. 돈을 사랑하지 말아야 할 것은 하나님과 재물을 함께 섬길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유대의 지혜 탈무드에는 “사람을 알려면 그의 지갑, 쾌락, 그리고 불평을 보라.”는 말이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최소한 십일조는 드릴 수 있어야 교인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십일조도 드릴 수 없다면 그는 아직도 돈이 하나님입니다. 현실적으로 생각해 보면 수입도 적당히 있어야 하고 건전한 물질관도 수립되면 좋겠지요? 여기서 물질관이 더 앞서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필요한 것을 아시고 후히 주시고 누리게 하시는 분이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약1:17에 “온갖 좋은 은사와 온전한 선물이 다 위로부터 빛들의 아버지께로부터 내려오나니” 했고, 마6:33에 “그런즉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했습니다. 딤전6:17에도 “정함이 없는 재물에 소망을 두지 말고 오직 우리에게 모든 것을 후히 주사 누리게 하시는 하나님께 두”라 했습니다. 이렇게 책임지신다는 믿음이 있을 때 죄를 짓지 않습니다.

 

그러나 돈을 사랑하면 돈은 피합니다. 잠23:5에 “네가 어찌 허무한 것에 주목하겠느냐 정녕히 재물은 날개를 내어 하늘에 나는 독수리처럼 날아가리라” 했습니다. 반면 전2:26에 “하나님이 그 기뻐하시는 자에게는 지혜와 지식과 희락을 주시나 죄인에게는 노고를 주시고 저로 모아 쌓게 하사 하나님을 기뻐하는 자에게 주게 하”신다고 했습니다.

 

바른 물질관을 가져야 신앙생활도 가능하고 하나님과 동업도 가능합니다. 결정 다 해놓고 축복해 달라고 하면 안 됩니다. 그리고 왜 축복입니까? 축복과 복을 구분해서 쓰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은 축복하는 하나님이 아니고 복 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잠16:3에 “너의 행사를 여호와께 맡기라 그리하면 너의 경영하는 것이 이루리라” 하셨습니다. 날마다 연구하고 하나님께 여쭈어 은사를 받아서 하라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돈에 시험 들지 말고 물질을 잘 운영하는 하나님의 합당한 청지기가 되시기 바랍니다.

 

2. 시험을 조심해야 합니다.

 

엡4:26-27에 “분을 내어도 죄를 짓지 말며 해가 지도록 분을 품지 말고 마귀로 틈을 타지 못하게 하라” 시험에는 하나님이 우리를 복 주시려고 테스트하시는 시험이 있고, 사탄이 우리를 넘어뜨리려고 유혹하고 파괴하는 시험이 있습니다. 공통점이 있다면 두 가지 다 이겨야 합니다.

 

먼저 시험은 생각을 통해 오기 때문에 생각을 잘 지켜야 합니다. 예수님도 사단에게 시험을 받으셨습니다. 마4:3에 “시험하는 자가 예수께 나아와서 가로되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명하여 이 돌들이 떡덩이가 되게 하라” 이 때 주님은 말씀으로 물리치셨습니다. 말씀으로 물리치셨다는 것은 사단의 시험이 먼저는 말과 생각으로 다가온다는 것을 보여주는 말씀입니다.

 

불신앙과 욕심 등 각종 악한의 생각은 사탄이 넣어주는 것으로 가룟 유다처럼 자기 머리에서 생각나게 할 수도 있고, 사람이나 책이나 어떤 매체를 통해서 주입될 수도 있습니다. 그러므로 생각이라 해서 무시하지 말고 악한 생각이라면 예수 이름으로 물리쳐야 합니다.

 

틈을 주어서는 안 됩니다. 엡4:27에 “분을 내어도 죄를 짓지 말며 해가 지도록 분을 품지 말고 마귀로 틈을 타지 못하게 하라” 했습니다. 속히 회개하는 것도 틈을 주지 않는 것입니다. 말씀과 기도와 감사로 무장하는 것도 틈을 주지 않는 것입니다. 지혜롭게 행동하는 것도 틈을 주지 않는 것입니다.

 

반면 성급함과 어리석음이 틈이 됩니다. 너무 한가한 것도 마귀가 역사할 틈이 됩니다. 세속을 가까이하는 것도 틈이 됩니다. 몸과 마음이 약해져도 틈이 됩니다. 상처를 치료하지 않을 때 틈이 됩니다. 우유부단한 말과 행동이 틈이 됩니다. 아니면 아니라. 기면 기다 분명하지 않으면 틈이 됩니다. 마귀의 주특기는 틈만 주면 들어오는 것입니다. 마귀는 공격수이지 수비수가 아닙니다. 끊임없이 공격해 옵니다. 그러므로 마귀의 공격을 막아내는 최선의 방법은 틈을 주지 않는 것입니다.

 

혹은 시험은 환경을 통해서 옵니다. 엡6:12에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에 대한 것이 아니요 정사와 권세와 이 어두움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에게 대함이라” 정치의 환경처럼 큰 시험은 없습니다. 로마의 10대 박해 아시죠? 지금 중국 북한 중동 등 기독교 박해 국가들로 인해 교인들의 삶은 말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기도의 폭을 넓혀야 합니다. 폭을 넓혀 기도하면 그 복이 다 자기에게로 옵니다. 그래서 바울은 딤전2:2에서 “임금들과 높은 지위에 있는 모든 사람을 위하여 하라 이는 우리가 모든 경건과 단정한 중에 고요하고 평안한 생활을 하려 함이니라” 하였습니다. 주님께서도 “우리를 시험에 빠지지 않게 하시고 악에서 구하소서.” 기도를 가르치셨습니다.

 

3. 게으름을 조심해야 합니다.

 

롬12:11에 “부지런하여 게으르지 말고 열심을 품고 주를 섬기라” 했습니다. 게으름의 죄가 얼마나 무서운 것인지 자신도 모르게 하나님의 생명에서 떨어지게 되는 것이 바로 게으름입니다. 자신도 모르게 하나님의 생명과 멀어지는 것이라는 것이 두려운 것입니다.

 

이 죄는 선악과를 따먹어 생긴 인류의 원죄만큼이나 큰 죄라고 할 수 있습니다. 천성을 향해 나아가는 순례자의 여정을 소설로 쓴 천로역정에도 아무 일 없다고 자던 사람들은 나중에 보니 다 못 베임을 당했습니다. 신앙의 목 베임이란 결국 배도를 말합니다. 유명한 설교가 스펄전은 존 번연의 천로 역정을 평생 100번 이상 읽었다고 합니다. 여러분도 꼭 한 번 읽어보시기를 바랍니다.

 

학자들도 게으름의 유전자를 연구할 정도로 게으름은 죄악된 인간의 원초적 본능이라고 합니다. 사람은 부지런하게 창조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다스리는 권세를 주셨는데 다스리려면 부지런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롬12:8에 “다스리는 자는 부지런함으로” 그랬습니다. 이것으로 볼 때 사람은 본래 부지런한 존재였습니다.

 

신앙의 위기는 게으름을 통해 옵니다. 사탄은 뱀과 같습니다. 게으른 사이에 사탄이 소리 없이 다가와 우리를 결박하고 온갖 죄악과 시련으로 다가옵니다. 베드로도 예수님과 함께 깨어있지 못함으로 “나는 예수를 모른다.”고 세 번이나 부인했습니다. 게으르면 신앙은 땅에 떨어지고 하나님이 주신 평강도 다 잃고 맙니다. 우리 기독교는 부지런한 종교입니다.

 

그래서 종교개혁자인 마르틴 루터는 “하루 세 시간의 기도를 하지 않으면 그날은 마귀에게 포로가 되는 날이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래서 열심을 품고 주를 섬기라 했고, 잠6:6-11에는 “게으른 자여 개미에게 가서 그가 하는 것을 보고 지혜를 얻으라 - 좀 더 자자, 좀 더 졸자, 손을 모으고 좀더 누워 있자 하면 네 빈궁이 강도 같이 오며 네 곤핍이 군사 같이 이르리라” 이 말씀이 어찌 육신의 문제만이겠습니까? 영적으로도 그렇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값비싼 보약만 먹어야 건강해지는 건 아닙니다. 해로운 것만 피해도 건강이 옵니다. 돈 사랑함을 조심합시다. 시험을 조심합시다. 게으름을 조심합시다. 우리가 조심해야 할 것이 이뿐이겠습니까? 그러므로 우리 모두 우리 삶의 모범이 되신 예수님을 본받아 시험에 들지 않고 승리하는 가장 복된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다음검색
스크랩 원문 : 한국강해설교연구원
현재 게시글 추가 기능 열기

댓글

댓글 리스트
맨위로

카페 검색

카페 검색어 입력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