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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그리스도의 3대 선물 (골 3:15-17)

작성자호현낙선|작성시간26.06.06|조회수0 목록 댓글 0

그리스도의 3대 선물 (골 3:15-17)

 

15 그리스도의 평강이 너희 마음을 주장하게 하라 너희는 평강을 위하여 한 몸으로 부르심을 받았나니 너희는 또한 감사하는 자가 되라 16 그리스도의 말씀이 너희 속에 풍성히 거하여 모든 지혜로 피차 가르치며 권면하고 시와 찬송과 신령한 노래를 부르며 감사하는 마음으로 하나님을 찬양하고 17 또 무엇을 하든지 말에나 일에나 다 주 예수의 이름으로 하고 그를 힘입어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하라

 

이 시간에 “그리스도의 3대 선물”이라는 제목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최고의 선물은 예수 그리스도십니다. 사9:6에 “이는 한 아기가 우리에게 났고 한 아들을 우리에게 주신 바 되었는데” 하였고, 요3:16에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했습니다. 이 약속은 아담 때부터 약속하신 것으로, 예수님이 없었으면 우리는 영원히 멸망 받을 수밖에 없었을 텐데 예수 믿고 구원 받고 사랑 받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신학자 A.W 토저는 “오, 주님! 바로 당신입니다.” 라고 고백했습니다. 예수를 믿고 사랑하면 예수 안에서 삼위일체 하나님을 다 모실 수 있으니 이보다 더 큰 복은 없습니다. 그래서 엡1:23에 “교회는 그의 몸이니 만물 안에서 만물을 충만하게 하시는 이의 충만함이니라” 이 하나님으로 충만함은 인간이 누릴 수 있는 최고의 복 중의 복입니다.

 

본문에도 가져야 할 그리스도의 3가지의 선물이 나타납니다.

 

1. 첫째는 그리스도의 평강입니다.

 

15절 “그리스도의 평강이 너희 마음을 주장하게 하라 너희는 평강을 위하여 한 몸으로 부르심을 받았나니 너희는 또한 감사하는 자가 되라” 평강이란 마음의 평안과 육신의 강건함입니다. 영혼이 잘되고 범사가 잘되고 강건하다면 이보다 더 바랄 것이 있을까요? 날마다 평화 평화로다 찬송하며 살 수 있다면 가장 행복한 사람입니다.

 

이 평강은 세상의 그 무엇으로도 느낄 수 없는 평강입니다. 그래서 요14:27에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 같지 아니 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 하셨습니다.

 

성웅 이순신 장군도 그의 난중일기에서 두렵고 떨린다고 했습니다. 장군도 떨립니다. 그러나 주님이 주시는 평강은 근심도 두려움도 없는 완전한 평강입니다. 그래서 빌4:7에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라고 했습니다. 평강을 헬라어로 보면 ‘에이레네’입니다. 에이레네란 ‘다스린다.’는 의미입니다. 황제가 나라를 잘 다스려 평온하고 안정되면 에이레네라고 표현하였습니다.

 

이처럼 그리스도의 평강은 어떤 불안과 공포와 아픔과 슬픔도 다 사라지게 만듭니다. 큰 고통이 오면 작은 고통은 느끼지 못하는 것이 감각의 법칙입니다. 가령 불에 데었을 때 화상치료를 위해 환부에 소금을 얹어도 쓰리지 않습니다. 이것이 감각의 법칙입니다. 이처럼 예수님의 평강이 오면 그 어떤 고통도 사라지게 됩니다.

 

그래서 성 어거스틴은 그의 고백록에서 “주님! 당신은 당신을 위해 우리를 지으셨나이다. 그러므로 우리의 마음은 당신 안에서 안식을 얻을 때까지 평안을 모릅니다.”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이 거하시기 위해서 우리를 지으셨기 때문에 예수를 믿고 사랑하면 그 때 비로소 인간이 누릴 수 있는 참된 평강을 누리게 됩니다. 그러므로 사랑하시기 바랍니다.

 

히2:14-16에 “그도 또한 같은 모양으로 혈과 육을 함께 지니심은 죽음을 통하여 죽음의 세력을 잡은 자 곧 마귀를 멸하시며 또 죽기를 무서워하므로 한평생 매여 종 노릇 하는 모든 자들을 놓아 주려 하심이니 이는 확실히 천사들을 붙들어 주려 하심이 아니요 오직 아브라함의 자손을 붙들어 주려 하심이라” 했습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면 조금의 두려움도 없을 것입니다.

 

2. 두 번째 선물은 그리스도의 말씀입니다.

 

16절 “그리스도의 말씀이 너희 속에 풍성히 거하여 모든 지혜로 피차 가르치며 권면하고 시와 찬송과 신령한 노래를 부르며 감사하는 마음으로 하나님을 찬양하고그리스도의 말씀이 풍성히 거할 때만이 모든 지혜로 피차 가르칠 수 있을 뿐 아니라 시와 찬미와 신령한 노래를 부를 수 있고 감사함으로 하나님을 찬양할 수 있습니다.

 

반면 모르면 믿을 수도 가르칠 수도 찬송할 수도 감사할 수도 없습니다. 말슴이 우리 안에 있을 때 무엇이든지 구하면 받습니다. 그러므로 신앙의 최고의 기초는 말씀입니다. 기도를 못합니까? 찬송을 못합니까? 전도를 못합니까? 충성하지 않습니까? 몰라서입니다. 우리가 구원 받되 얼마나 영광스런 구원을 받았는지 안다면 날마다 기쁨으로 살게 될 것입니다.

 

일본의 패전으로 2차 세계대전이 끝이 나고 평화가 찾아왔지만 일본군 소위 오노다 히로오는 이 사실을 알지 못한 체 필리핀 마닐라 근처의 루뱅섬에서 29년 동안이나 숨어서 살았다고 합니다. 이처럼 무지만큼 어리석고 악한 것은 없습니다. 알지 못한 결과가 큽니다. 진리를 배척한 결과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사람들은 지금도 도를 찾아 헤매고 있습니다. 세계의 인구 중에 기독교인이 3분의 1이고 교회가 수백만 개이지만 사람들은 귀를 막고 듣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이제는 몰랐다는 말이 통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행17:30-31에 “알지 못하던 시대에는 하나님이 간과하셨거니와 이제는 어디든지 사람에게 다 명하사 회개하라 하셨으니 -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신 것으로 모든 사람에게 믿을 만한 증거를 주셨음이니라” 했습니다.

 

죤 훌리(John Fully)박사가 노벨상 수상자 400명을 15년간 연구하여 ‘유대인과 기독교인’(Jews and Christian)이라는 책을 내었는데 그는 그 책에서 귀한 자료를 발표합니다. 노벨상 수상자들의 종교 분포도가 기독교인이 64%, 유대인이 22%, 천주교가 11%, 불교인이 0.9%, 회교가 0.1%였습니다. 성경을 읽는 이들이 97%였습니다.

 

또 노벨상을 받은 이들의 나라는 모두 23개국이었는데, 1등부터 7등까지 보면 스위스, 덴마크, 스웨덴, 네덜란드, 영국, 미국, 독일 순입니다. 모두 하나님의 말씀에 기초해서 움직이는 나라들이었습니다. 뭔가 보고 깨달아야합니다. 우리나라가 잘 사는 것은 나라를 건국하던 선조들이 외국을 다녀보니 한결같이 기독교를 믿는 나라가 잘 사는 것을 보고 깨달은 바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주체사상을 가르치던 사람이 거두가 돌아왔습니다. 그 이론대로라면 한국은 못 살고 또 못 살아야 하는데 나라가 날로 발전하고 가난한 사람도 복지의 혜택을 받으며 잘 사는 걸 보았습니다. 반면 공산주의는 한결같이 못 살뿐 아니라 남미나 유럽처럼 사회주의로 그 흉내만 내도 파산하거나 성장이 그치는 것을 보고 자기가 믿는 이론이 잘못된 것을 깨달았습니다. 이 분 같은 지혜만 있다면 무슨 문제가 있겠습니까? 성경에서 비롯된 이 가치와 복을 지키시기 바랍니다. 그래야 영육 간의 복을 받을 수 있습니다.

 

3. 세 번째 선물은 그리스도의 이름입니다.

 

17절 “또 무엇을 하든지 말에나 일에나 다 주 예수의 이름으로 하고 그를 힘입어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하라” 예수의 이름이 최고의 선물입니다. 그것은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고 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예수 이름으로 하는 일만이 하나님 나라의 상이 되기 때문입니다. 소자에게 물 한 그릇을 주더라도 예수님이라 생각하고 하시기 바랍니다.

 

마10:40-42에 “너희를 영접하는 자는 나를 영접하는 것이요 나를 영접하는 자는 나를 보내신 이를 영접하는 것이니라 선지자의 이름으로 선지자를 영접하는 자는 선지자의 상을 받을 것이요 의인의 이름으로 의인을 영접하는 자는 의인의 상을 받을 것이요 또 누구든지 제자의 이름으로 이 작은 자 중 하나에게 냉수 한 그릇이라도 주는 자는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 사람이 결단코 상을 잃지 아니하리라” 하셨습니다.

 

그리고 예수 이름이 능력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자기 이름을 얼마든지 활용하도록 자기 이름을 맡기셨습니다. 베드로와 요한이 성전에 올라가다가 나면서 앉은뱅이 된 거지를 일으킨 사건도 예수 이름이 일으킨 기적이었습니다. 예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고 병든 자에게 손을 얹은 즉 나으리라 하셨습니다.

 

로마의 원형경기장에서 일어났던 일입니다. 중세 3세기 경 텔레마투스라고 하는 수도사가 있었습니다. 그는 기도하는 수도사였습니다. 어느 날 기도하는 중에 하나님의 음성을 듣게 되었습니다. "로마로 가라!" 그래서 그는 긴 여행 끝에 로마에 도착했습니다. 마침 축제기간이었습니다. 원형극장에서 검투시합이 있었는데 검투시합은 두 검투사 중 한 사람이 죽을 때까지 하는 경기입니다.

 

경기에 앞서 두 사람의 검투사는 황제 앞에서 "제가 죽기까지 싸우겠습니다." 맹세하고 경례를 한 후 경기장 중앙으로 나아갔습니다. 그때 그 수도사의 마음속에 불현듯 `이것은 옳지 못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왜 로마로 가게 하셨는지 깨닫게 되었습니다. 싸움이 시작되는 순간 그는 많은 군중 앞으로 나가 "예수의 이름으로 멈춰라!"라고 소리를 쳤습니다. 영문을 모르는 군중들은 쇼의 일부분인줄 알고 박수를 치며 좋아했습니다.

 

검투사들의 싸움이 시작되었습니다. 수도사는 경기장에 뛰어 들어가 외쳤습니다. "예수의 이름으로 멈춰라!" 관중들은 게임을 방해하는 수도사를 향해 야유를 퍼부으며 역정을 내었습니다. 검투사 중 한 사람이 수도사를 찔렀습니다. 그는 칼에 맞아 쓰러지면서도 "예수의 이름으로 멈춰라!" 외쳤습니다. 경기장의 분위기는 숙연해졌습니다. 야유하고 조롱하던 많은 사람들도 입을 다물었습니다.

 

그 때 한 사람이 자리에서 일어나 퇴장했습니다. 로마 황제였습니다. 배석했던 고관들도 황제를 따라 퇴장했습니다. 수도사를 죽였던 검투사들도 고개를 숙이고 퇴장하고 관중들도 뿔뿔이 흩어졌습니다. 그런데 AD 391년에 있었던 이 사건 이후로 로마에서는 사람을 죽이는 검투사의 결투가 사라졌습니다. 우리에게 주신 예수 이름으로 명해 보세요. 놀라운 일 벌어질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께서 믿는 우리에게 그리스도의 생명과 평강과 말씀과 이름을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할 일은 그것을 믿고 감사할 일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본문에 감사 감사 감사, 감사가 연달아 나옵니다. 그러므로 우리 모두 예수를 믿고 예수를 사랑함으로 이 3가지의 선물을 온전히 누리며 감사하며 살아가는 가장 복된 성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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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원문 : 한국강해설교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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