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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로새서

[스크랩] 확신을 주는 사람 (골 4:12-13)

작성자호현낙선|작성시간26.06.11|조회수1 목록 댓글 0

확신을 주는 사람 (골 4:12-13)

 

12 그리스도 예수의 종인 너희에게서 온 에바브라가 너희에게 문안하느니라 그가 항상 너희를 위하여 애써 기도하여 너희로 하나님의 모든 뜻 가운데서 완전하고 확신 있게 서기를 구하나니 13 그가 너희와 라오디게아에 있는 자들과 히에라볼리에 있는 자들을 위하여 많이 수고하는 것을 내가 증언하노라


이 시간에 “확신을 주는 사람”이라는 제목으로 말씀의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이 세상에는 유익한 사람들이 많습니다. 주는 사람입니다. 돈을 주는 사람이 있습니다. 늘 그늘진 곳을 찾아 봉사하는 사람입니다. 착한 사람입니다.


혹은 비전을 주는 사람도 있습니다. 모세가 그렇습니다. 애굽에서 종살이하는 민족에게 다가가서 가나안이라는 비전을 주었습니다. 1864년 덴마크의 그룬드빅(S.F.C.Grundvig,1784-1872)목사는 전쟁에 패하여 절망 가운데 있는 덴마크에 희망을 주었습니다. 그 결과 지금은 국민소득이 3만 불에 이르는 부강한 나라가 되었습니다. 귀한 사람입니다.


혹은 늘 유익한 정보를 주는 사람도 있습니다. 엘리사 같은 사람입니다. 엘리사는 기도하다 하나님이 알려주시는 정보를 왕에게 전하여 어려운 고비를 수없이 넘기게 하였습니다. 영적으로 맑아서 아람왕이 궁중에서 하는 소리까지도 들었습니다. 그렇지 못할지라도 우리에게 귀한 정보를 전해준다면 다들 귀한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더 귀한 사람이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 나오는 에바브라와 같이 확신을 주는 사람입니다. 바울은 “저가 항상 너희를 위하여 애써 기도하여 너희로 하나님의 모든 뜻 가운데서 완전하고 확신있게 서기를 구”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에바브라는 골로새 교회를 세우고 일하다가 바울과 함께 감옥에 있었습니다. 에바브라의 기도제목은 오직 하나 뿐이었습니다. “골로새 교인들이 확신 있는 성도들이 되는 것” 오직 이것 하나뿐이었습니다.


에바브라가 귀한 것은 낙심하지 않고 그들에게 계속하여 확신을 주었다는 것입니다. 확신을 주는 사람이었습니다. 우리가 본받아야 할 사람입니다. 에바브라는 목회자의 표상입니다. 또한 성도들에게도 전도자의 표상이 됩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에게 예수를 전해 하나님 앞에 돌아와 구원 받고 영생 얻고 행복한 삶의 주인공들이 되게 해야 합니다. 확신을 심어주는 이 일을 어떻게 해야 할까요?


에바브라가 어떻게 하였습니까?


1. 문안하였습니다.


에바브라는 바울과 같이 감옥에 있으면서 골로새 교인들에게 문안하고 있습니다. “에바브라가 너희에게 문안하니” 자주 문안하고 자주 접하여야 확신의 사람을 만들 수 있습니다. 관계는 옥토를 만들기 때문입니다. 좋은 관계를 만들어 나가세요.


비즈니스에서도 관계를 중요 시 여긴다고 합니다. 좋은 상품을 가지고 있어도 관계가 나쁘면 사려고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좋은 관계는 존중과 사랑에서 출발합니다. 좋은 관계를 가지면 마음의 문을 엽니다. 우리 한국인들은 특히 사적인 관계를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처음부터 진리에 관심 있는 사람이 얼마나 있겠습니까? 대부분은 우리 믿는 자에게 호감을 느끼고 예수 믿게 됩니다. 혹은 반대로 믿는 사람들에게 실망하여 신앙을 떠나기도 합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편지이고 그리스도의 향기입니다. 그러므로 사람들이 우리보고 예수 믿는 것입니다. 그래서 믿는 자의 책임이 큽니다. 보이지 않는 향기가 온 동네를 가득합니다. 이처럼 백 마디 예수 천당보다 아름다운 예수 향내 하나가 더 능력 있습니다.


시험이 오면 인간관계가 틀어지지만 하나님이 함께 하시면 인간관계가 잘 맺어집니다. 말세란 사람이 악하다는 뜻입니다. 이 세상 아무리 악한 세대요, 목회환경 역시 목회하기 척박하다 해도 사랑으로만 무장하면 어디서나 승리할 수 있습니다. 늘 문안하세요. 늘 축복하세요. 늘 사랑하시기 바랍니다.


2. 애써 기도했습니다.


너희를 위하여 애써 기도하여” 영어 성경으로 보면 <He is always wrestling in prayer for you>, 항상 너희를 위하여 기도할 때 레슬링하는 것같이 하였다는 말입니다. 씨름으로 표현해도 되겠습니다. 여기 씨름기도가 나타납니다. 씨름기도란 마음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애써 하는 기도입니다. 이것이 가장 좋은 방법입니다. 모든 것을 기도로서 해야 합니다. 사랑도 좋지만 기도 없는 사랑은 효과 없습니다. 여러 방법론도 좋지만 기도 없이는 아무 효과가 없습니다.


씨름하면 생각나는 사람이 있습니다. 먼저 예수님이 생각납니다. 감람산에서 기도하실 때 땀이 땅에 떨어지는 핏방울처럼 되도록 기도하셨습니다. 또 생각나는 사람은 에스더입니다. 유대인들이 모두 하만의 간교함에 빠져서 몰살당할 위기에 처했을 때 에스더는 죽으면 죽으리라고 금식하고 기도하였습니다.


야곱도 형 에서가 20년 동안 악감정을 그대로 가지고 야곱을 죽이려고 다가올 때 야곱은 얍복강 가에서 천사를 붙들고 씨름하였습니다. “당신이 나를 축복하지 않으면 놓지 않겠나이다.” 한나도 그렇게 기도하다가 하나님께서 사무엘이라는 아들을 주셨습니다. 다니엘도 사자굴을 무릅쓰고 목숨 걸고 기도하였습니다.


씨름기도의 특징이 있습니다. 응답입니다. 에바브라는 감옥에서 이런 기도를 성도들을 위해서 드렸습니다. 믿음의 확신을 위해서 힘써 애써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역사해 주십니다.


3. 많이 수고했습니다.


다시 본문에 “많이 수고하는 것을 내가 증거하노라"(골 4;13). 많이 수고했습니다. 한 번 했다고 다 예수 믿으면 누가 못하겠습니까? 단번에 되지 않습니다. 그런데 에바브라는 남보다 더 많이 수고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에바브라가 돌아보았던 골로새 라오디게아 히에라볼리가 어떤 곳입니까? 요한계시록에도 나오지만 라오디게아 히에라볼리는 뜨겁지도 않고 차지도 않고 믿음도 없고 확신도 없고 아멘도 없고 그러면서도 자만하고 거만하기까지 한 사람들입니다. 되지 않았으면서도 다 된 것으로 여기는 사람들입니다.


그런 사람들은 참으로 어렵습니다. 말하면 믿어 주는 순박함이란 조금도 없는 사람들입니다. 사람의 마음 밭이 옥토 가시밭 돌짝밭 길바닥이 있는데 이런 사람은 가시밭도 아닙니다. 돌작밭도 아닙니다. 그 보다 못한 길바닥 같은 사람들입니다. 닳아지고 닳아졌습니다. 교인들이 믿음 좋으면 하나님의 일할 만합니다. 그러나 믿음도 없고 꿈도 없고 주장대로 하려고 하면 참 어렵습니다.


한국에서 오랫동안 선교하고 정년이 되어 미국으로 돌아가 여생을 보내고 있는 선교사님에게 물었습니다. “한국에서 평생 선교하시고 오셨지요?” “그렇습니다.” “한국 교인들은 장점이 많은 민족인 데 단점이 있다면 어떤 것인가요?” “한국 교인들은 기도는 많이 하는 데 행함이 좀 부족합니다.” 그런데 기도도 부족하고 행함도 부족하다면 어디에 쓰임 받겠습니까? 더 수고해야 합니다.


수고 없이 되는 것은 없습니다. 어느 부모의 소원은 자녀가 반에서 5등하는 것이 소원이었습니다. 항상 꼴찌만 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간절히 기도드렸습니다. “하나님! 아들이 5등 안에 들게 하여 주옵소서!” 얼마나 응답을 사모했든지 도시락 위에도 5라는 글을 써놓았습니다. 책상 앞에 5라는 글자를 붙여 놓았습니다. 퇴근길에 라면을 사오라고 하면 5개를 사다 주었습니다. 기차를 타고 갈 때에도 5번 칸에 5번 자리 예약을 하였습니다. 어디를 가도 일찍 예약을 하여 5번 자리에 앉혔습니다. 기도하며 수고하였습니다. 그런데 그 아들이 마음을 잡더니 5등을 하더라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세계에서 작지만 큰 나라가 이스라엘입니다. 강원도 땅보다 조금 큰 곳에 650만 명이 살고 있습니다. 그런데 노벨상을 독차지 하고 있습니다. 어느 기자가 노벨 수상자에게 인터뷰를 했습니다. “이스라엘에서 어떻게 그렇게 수상자가 많이 나오나요?”


그가 말했습니다. “그 비결이 있습니다. 우리 민족은 세 가지를 가지고 있습니다. 첫째는 하나님이 주신 꿈이 있습니다. 늘 하나님과 같이 살면서 하나님이 주시는 비전을 가지고 있습니다. 둘째는 그 꿈을 이루어 다른 나라 사람들에게 봉사하려고 하는 아름다운 마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셋째는 그 꿈을 이루기 위하여 최선을 다 합니다.” 확신을 가진 민족이었다는 말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확신은 믿음인데 믿음은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하나님께서 이 선물을 주시기를 바랍니다. 그 뿐 아니라 확신에 있어서 우리 주님을 본받고 앞서간 선진들을 본받으시기 바랍니다. 우리 모두 에바브라처럼 늘 사랑하고 애써 기도하고 많이 수고하여 모두에게 확신을 줄 수 있는 사랑하는 성도들이 되시기 바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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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원문 : 한국강해설교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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